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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화. 문태식 사망 사건과 트렁크의 세 번 노크 일러스트

9-10화. 문태식 사망 사건과 트렁크의 세 번 노크

제목: 9화. 문태식 팀장 사망 사건

“한지율 씨, 그리고 강도윤 씨. 감식반 문태식 팀장 사망 사건 참고인으로 동행 요청합니다.”

문 너머 목소리는 소름 끼치게 정중했다. ARS 안내 멘트에 수갑을 채워 세워 놓으면 딱 저런 톤일 것이다. 내용은 폭탄이었다.

나는 굳어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한테 억울함을 호소하며 장비를 수리해달라던 인간이, 오늘은 시체가 되어 참고인을 찾고 있다니. 이게 무슨 전개란 말인가.

내 옆에 서 있던 한지율은 나보다 더 심하게 동요했다. 그녀의 칼끝이 먼저 흔들렸고, 그다음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녀가 낮게, 하지만 단호하게 읊조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문태식 팀장은 살아 있었어. 분명히.”

목소리는 낮았지만 숨끝이 갈라져 있었다. 한지율에게 문태식은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문 밖에서는 그를 사건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문 밖의 목소리는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두 분 다 안에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협조해 주시지 않으면, 공무 집행 방해로 간주하고 강제 진입하겠습니다.”

친절한 문장으로 포장한 협박이었다. 협회는 사람을 패기 전에도 양식을 맞춘다.

나는 혀를 찼다. 순순히 따라가면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가 될 것이다. 운이 나쁘면 피의자도 못 되고, 서류철 사이에 끼운 먼지가 된다.

나는 재빨리 수리점 내부를 훑어보았다. 이 낡고 좁은 지하 수리점에 BG-04 같은 엘리트 헌터 팀을 막아낼 방어 수단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벌 수 있다.

“저기, 세제랑 소화기 분말 좀 뿌려줄래? 그리고 저기 낡은 방어구들, 저 문 앞에 다 쌓아놔.”

나는 한지율에게 지시를 내리며, 차단기 쪽으로 달려갔다.

“뭐 하게요?”

“도망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나는 차단기를 내려 전등을 껐다. 수리점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한지율은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군말 없이 세제 통을 집어 들고 문 앞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낡은 방어구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와 문 앞을 막아섰다.

나는 소화기를 집어 들고 문 앞에서 대기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문을 엽니다.”

문 밖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친절함은 사라지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명령조였다.

그 순간, 잔향청취 능력이 발동했다.

문고리에서, 그리고 셔터에서, BG-04 팀장의 장갑에 남은 잔향이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보고서를 낭독하는 듯한, 건조하고 딱딱한 문장들이었다.

[대상: 한지율. 부속 대상: 강도윤. 회수 우선순위 변경. 문태식 사망 판정 갱신 완료.]

사망 판정 갱신?

나는 그 표현에 걸렸다. 사망이 아니라 사망 판정 갱신. 죽었다가 아니고 판정 갱신. 말장난 같지만 협회에서는 말장난으로 사람이 사라진다. D-17에서도 이름이 먼저 지워지고 몸이 나중에 무너졌다고 했다.

“한지율.”

나는 소화기를 꽉 잡으며 그녀를 불렀다.

“너 D-17에서, 사람들이 죽을 때 이름표가 먼저 빈칸이 됐다고 했지?”

한지율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이라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네. 이름표가 먼저 빈칸이 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갔어요.”

그녀의 대답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협회는 문태식을 기록에서 먼저 죽이고 있었다. 시체는 나중에 맞추면 된다는 식으로.

그때, 문고리가 돌아갔다.

철컥.

나는 즉흥적으로 전등 스위치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전등을 터뜨렸다.

펑! 펑! 펑!

전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수리점은 완전한 암흑에 휩싸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소화기 핀을 뽑고 문을 향해 분말을 마구 뿌려댔다.

치이이익-!

하얀 분말이 시야를 가렸다. 싸움이 아니었다. 나는 F급이다. F급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사고를 치고 그 사고를 남 탓처럼 보이게 만든 뒤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소화기를 던져버리고 한지율의 손을 잡았다.

“어디로 가요?”

그녀는 의외로 빠르고 냉정했다. 그녀는 나를 이끌고 수리점 벽 뒤쪽으로 향했다.

“여기 정비용 환기통이 있어요. 오래돼서 잘 안 보이지만, 밖으로 이어질 거예요.”

그녀는 벽의 낡은 패널을 뜯어내고 좁은 환기통 입구를 드러냈다.

“먼저 들어가세요.”

나는 그녀를 먼저 밀어 넣고, 나도 환기통으로 기어 들어갔다.

환기통은 좁고 어두웠으며,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내 직업 선택과 체중을 동시에 후회했다. F급 현장 정리 헌터의 업무 범위에 환기통 생존술이 들어 있었나. 계약서를 다시 읽어 보고 싶었다. 살아서 나가면.

우리는 환기통을 기어갔다. 뒤에서 BG-04가 수리점에 진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우리를 쫓고 있을 것이다.

“문태식 팀장은….”

앞서 기어가던 한지율이 입을 열었다.

“D-17에서 검은 비가 내렸을 때, 죽은 사람들의 이름표가 먼저 빈칸이 되었고, 문태식은 그 빈칸들 중 하나를 다시 쓰려고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환기통을 타고 낮게 울렸다.

“그래서 협회 안의 누군가가 그를 ‘사망 사건’으로 처리하고 있는 거예요. 그가 진실을 알고 있으니까.”

환기통 철판이 팔꿈치에 찍혔다. 아픈데도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졌다. 협회가 무서운 이유는 괴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람을 지울 때도 결재선을 맞출 것 같아서였다.

그때, 환기통 안쪽에 붙은 오래된 정비 태그에서 잔향이 들려왔다.

문태식의 목소리였다.

[강도윤, 내 사망 신고서를 믿지 마라. 내 시체가 있으면 더더욱 믿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짧고 단호했다. 그는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이 물건에 남긴 것이다.

나는 시체가 있어도 믿지 말라는 말에 질렸다. 미스터리도 정도가 있지, 시체까지 의심하라니. 나는 추리 소설 주인공이 아니라 월세 밀린 F급이다. 시체 감별 옵션은 기본 패키지에 없었다.

환기통 끝은 지하 주차장 위쪽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환기통 덮개를 열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 주차장에는 BG-04 차량과 검은 우산 문양이 없는 평범한 협회 차량이 같이 서 있었다. 검은 우산과 협회 공식 라인이 따로 논다는 내 희망이 그 자리에서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차량들을 지나쳐 지하 주차장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때, 내 휴대폰이 켜지며 윤서하에게서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윤서하의 목소리 뒤에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메시지는 짧았다.

“도윤 씨, 지금 듣는다면 대답하지 마요. 제 옆에… 문태식 팀장님이 있어요.”

나는 굳어버렸다. 윤서하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그 말은 방금 BG-04가 들고 온 '문태식 팀장 사망 사건'이라는 문장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었다. 아니, 요즘은 둘 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 지하 주차장의 협회 차량 트렁크 안에서 무언가가 안쪽에서 세 번 두드렸다.

쾅. 쾅. 쾅.

나는 숨을 삼키고 트렁크 쪽으로 한 발 다가갔다. 지하 주차장 공기가 갑자기 냉장고 안쪽처럼 차가워졌다.

작가의 말: 사망 신고서보다 트렁크 노크가 더 믿음직한 회차였습니다.

제목: 10화. 트렁크 안의 세 번 노크

쿵, 쿵, 쿵.

세 번의 타격음이 지하 주차장 공기를 뚫고 왔다. 윤서하의 음성 메시지 끝, ‘문태식 팀장님이 있어요’라는 말이 아직 폰 스피커에 남아 있는데 트렁크가 대답하듯 울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강도윤 씨! 뭐 해요, 빨…!”

한지율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손아귀가 팔뚝을 파고들었다. 손끝은 차가운데 맥박은 미친 듯이 빨랐다. 살아남은 사람의 몸은 도망부터 외운다.

“저거, 저거…! 방금 안에서 난 소리 맞죠? 빨리 나가야 해요, 제발!”

“잠깐만요.”

내 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나도 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미확인 트렁크를 여는 건 공포 영화에서 가장 먼저 죽는 조연이나 하는 짓이다. 도망쳐야 한다. 환기통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든, 고장 난 차 밑에 숨든, 여기서 벗어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협회 차량의 트렁크 손잡이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호기심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F급 스킬, 잔향청취의 강박이었다. 손잡이 근처의 공기가 내 귀에 대고 미친 듯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 속삭임은 비명도, 울음도 아니었다. 웃기지도 않는 고장 난 개그 프로그램 같았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승인번호 9S-554! 나 죽은 지 세 시간 됐어! 날 좀 꺼내줘요, 이 양반들아! 나 죽었는데 왜 자꾸 움직여!]

그 소리는 트렁크 손잡이 금속 재질의 잔향이었다. 마치 자신이 ‘죽은’ 물건임을 증명하려는 듯,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꺼내달라’는 듯, 모순된 비명이 내 고막을 때렸다.

‘승인번호…?’

내 손가락이 손잡이 안쪽의 레버를 당겼다. 츠츠츳, 하고 잔향의 비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트렁크 리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한지율은 비명을 삼키며 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나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트렁크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문태식의 시체도, 윤서하도, 정체불명의 괴물도 없었다.

대신, 트렁크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몇 가지 물건들이 보였다.

피가 군데군데 묻어 딱딱하게 굳은 협회 감식반 재킷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낡고 긁힌, 옛날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녹음기 하나. 마지막으로, 녹음기 주변으로 흩어져 있는 협회 신분증 여러 장.

신분증들을 보는 순간 머릿속 잔향이 뚝 멎었다. 대신 가슴에 차가운 돌멩이가 얹혔다. 신분증의 이름 칸이 대부분 지워져 있었지만, 증명사진은 선명했다. 나는 그중 두 장을 본능적으로 알아봤다.

하나는 한지율의 것이었다. D-17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그녀의 F급 헌터 신분증.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태식 팀장의 것이었다. 그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찍힌 신분증 역시 이름 칸이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이게… 이게 왜 여기….”

한지율이 내 어깨 너머로 트렁크 안을 확인하더니,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이름 없는 신분증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경계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강도윤 씨… 제 이름이… 제 이름이 왜 저기….”

나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지만, 나 역시 손이 떨려서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녹음기로 향했다. 그 녹음기에서는 어떤 잔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잔향’이 아니라, ‘지금’ 재생되고 있는 것처럼 아주 희미한 기계음이 들렸다.

츠츠츳… 츠츠츳….

나는 무의식적으로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낡은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익숙하지만 지독하게 마모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태식 팀장이었다.

“…사망 판정은… 죽음이 아니다. 이름을 지우는… 절차다. 이름이 지워진 사람은… 협회 시스템 안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데이터로만 존재한다. 데이터는… 죽일 수 없다. 데이터는….”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지직거리는 잡음만이 트렁크 안을 채웠다. 마지막 문장은 “데이터는 승인받아야 한다.”였을까, “데이터는 지워져야 한다.”였을까.

“제 이름이 저기 있으면….”

한지율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트렁크 리드가 올라갈 때의 마찰음보다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어떤 비명보다도 크게 들렸다.

“D-17에서… 이름표가 비었을 때… 몸이 아주 가벼워졌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고… 협회 단말기에 제 지문을 찍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그냥… 그냥 F급 장비처럼, 수리 대기 물목에 올라가 있었어요. 제 이름이 여기 있으면, 제 몸은 아직 저쪽 장부에 묶여 있어요. 저는… 저는 아직 죽지 않았는데, 장부에서는 저를 지웠어요.”

한지율은 울지 않았다. 대신 목, 가슴, 이름 없는 신분증을 차례로 만졌다. 내가 여기 있다고, 아직 물건이 아니라고, 자기 몸에 확인받는 사람처럼.

‘이름을 지우는 절차….’

트렁크는 살아 있는 사람을 실은 게 아니었다. 사망 판정된 물건을 실었다. 협회식 표현으로는 물건. 실제로는 한지율 같은 사람들.

그때, 저 멀리 지하 주차장 입구 쪽에서 무거운 차량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BG-04의 검은색 밴일 것이다.

“젠장, 시간이 없어.”

나는 급하게 트렁크를 닫았다. 트렁크 손잡이의 잔향이 [닫지 마! 나 숨 막혀! 꺼내줘!]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지금은 그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협회 차량을 몰 줄 모른다. 운전면허도 없고, 인증 시스템을 뚫을 재주도 없다. 대신 현장을 더럽히는 건 할 수 있다. 정확히는 정리하는 척하면서 더럽히는 쪽.

나는 차 안으로 뛰어들어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전원 표시가 깜빡였다. 메모리 카드를 뽑고, 차 안 세차용품 함에서 경광봉을 꺼내 스위치를 켰다. 붉은색 경광등이 지하 주차장의 어둠을 찢었다.

나는 경광봉을 운전석 앞 유리 너머로, 마치 방금 전까지 운전자가 있었던 것처럼, BG-04가 내려오는 방향에서 가장 잘 보이게 거치해 두었다. 그리고 세차용품 중 고체 왁스를 꺼내, 차량의 뒷바퀴 주변에 두껍게 발랐다. 타이어가 미끄러진 자국을 위조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주차장 한쪽에 방치된, 고장 난 주차 차단기 봉을 주워다가 차량 앞범퍼 밑에 끼워 넣었다. 마치 급하게 주차하다가 차단기를 들이받고 도망친 것처럼.

그 모든 작업을 하는 동안, 내 귀는 또 다른 잔향을 포착했다.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가 내 손에 닿는 순간, 아주 짧은 음성이 재생되었다.

[대상, 협회 차량에서 하차. 하차 시간 10시 45분.]

블랙박스의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방금 전까지 이 차에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리기 전, 내 귀는 또 다른 발소리 잔향을 들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였다. 윤서하의 하이힐 소리와 아주 비슷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윤서하의 걸음걸이보다 더 규칙적이고, 더 차가웠다. 마치 기계가 걷는 것처럼.

‘윤서하가… 아니야?’

그럼 그 음성 메시지는 뭐였지? 누군가 윤서하의 목소리를 빌려, 나를 이 트렁크로 유인한 건가? 문태식 팀장이 진짜 옆에 있었다면, 왜 그는 트렁크 안에 이런 기괴한 흔적만 남겼을까?

“강도윤 씨, 이거….”

한지율이 트렁크 안에서 나온 신분증들과 녹음기를 챙기려 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 없는 신분증만은 꽉 쥐고 있었다.

“안 돼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

나는 그녀를 말렸다. 이 물건들은 BG-04의 목표다. 이걸 가지고 다니는 건 그냥 “나 여기 있어요, 어서 와서 나를 지워주세요.”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하지만… 제 이름이 여기 있잖아요. 제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여기 있잖아요. 만약 제가 이걸 못 챙기면, 저는 정말로… 데이터가 되어버려요.”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숨이었다. 이름 없는 신분증을 쥔 손등에 힘줄이 섰다. 저걸 놓으면 자기 몸까지 장부에 두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그녀의 눈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녹음기와 신분증들을 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젠장. F급이 F급을 챙기다 다 같이 F가 되는 루트였지만, 그걸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 문제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는 겁니다.”

나는 빈정거리며 말했지만, 내 목소리도 조금 떨리고 있었다.

우리는 경광봉이 붉게 빛나는 협회 차량을 뒤로하고, 주차장의 구석에 있는 비상구 계단을 향해 달렸다. BG-04의 밴이 지하 주차장 3층에 진입하는 소리가 들렸고, 타이어 마찰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의 가짜 현장이 그들의 시선을 몇 분이라도 끌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던 중, 나는 문득 깨달았다. 트렁크는 이미 비어 있었다. 한지율의 신분증도, 문태식의 녹음기도 내 주머니에 있었다. 그런데,

쿵, 쿵, 쿵.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트렁크 안쪽에서 났던 것과 똑같은, 세 번의 노크 소리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소리는 트렁크가 아니었다. 내 주머니 속의 그 낡은 녹음기 내부에서 나고 있었다. 카세트테이프의 모터가 헛도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 안쪽에서 쇠뭉치로 녹음기 플라스틱 케이스를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츠츠츳… 츠츠츳….

녹음기가 자동으로 켜졌다. 내 주머니 안에서, 문태식 팀장의 목소리가 아닌,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독하게 기계적이고 차가운 톤이었다.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강도윤 사망 판정 갱신 요청. 대상: F급 현장 정리 헌터 강도윤. 승인번호 N/A. 사유: 미확인 시스템 침입 및 데이터 오염. 승인 대기.]

그 소리와 동시에, 우리는 지하 주차장 출구 쪽에 설치된 협회 단말기 앞을 지나갔다. 단말기의 화면이 잠시 켜지며, 내 이름이 나타났다.

[강도윤: F급 현장 정리 헌터. 상태: 정상]

그리고 그 짧은 찰나에, 내 이름의 회색 색조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죽은 사람들의 이름처럼 짙어지기 시작했다.

죽음이 내 이름을 지우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도윤은 이제 사건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장부에서 지워지는 사람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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