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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19화. 반품 물류 라인과 유효기간이 지난 보증서 일러스트

218-219화. 반품 물류 라인과 유효기간이 지난 보증서

218화. 반품 물류 라인

망막을 찌르는 붉은 LED 글자가 지직거리며 형태를 바꿨다.

[ 강도윤 : 보호자 동반 1인 통과 가능 ]

[ 윤서하 : 반품 승인 대기 ]

내 이름 옆에 붙은 ‘보호자’라는 타이틀보다, 서하 씨의 이름 뒤에 붙은 ‘반품’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반품이라니. 사람을 두고 쓸 만한 단어는 결코 아니었다. 백번 양보해서 쇼핑몰 고객센터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를 이런 기괴한 지하철 개찰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반품……?”

내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는 사이, 서하 씨는 이미 개찰구 전광판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있었다. 협회 신분증도, 그 어떤 탐색 권한도 잃어버린 그녀였지만, 눈동자만큼은 예의 그 냉철한 수사관의 빛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냉정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도윤 씨, 이거 농담 아니에요.”

서하 씨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광판 아래쪽의 작은 기계 뭉치를 가리켰다. 거기엔 검은 우산의 살대처럼 생긴 금속 막대기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742일 전, 제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되었던 그날…… 그 기록이 이 시스템의 ‘장부’에는 여전히 유효한가 봐요. 살아있는 탑승객이 아니라, 이미 회수 절차가 시작된 물건. 그게 지금 이 개찰구가 판단하는 저의 정체예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코트 자락을 쥔 손끝이 하얗게 질려 떨리고 있었다.

“물건이라니요. 서하 씨가 왜 물건입니까? 우린 지금 같이 퇴근하는 중이잖아요. 퇴근길 지하철에 반품 칸 같은 건 없다고요. 뭐, 출근하기 싫어서 스스로를 반품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나는 일부러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주머니 속의 500원 토큰을 꺼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이 상황이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에 목숨을 거는 건 오락실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토큰을 개찰구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 짤그랑―. ]

동전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기계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 확인되었습니다. 보호자 입장하십시오. ]

개찰구의 금속 바가 틱, 소리를 내며 잠금이 풀렸다. 나는 옆에 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런데 서하 씨가 내 뒤를 따라 발을 들이밀려는 찰나였다.

쿠구궁!

“서하 씨!”

부서질 듯한 굉음과 함께 멈춰 있던 금속 바가 마치 짐승의 이빨처럼 튀어나와 서하 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카로운 금속 끝이 그녀의 복부 바로 앞에서 멈췄다.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그대로 배를 뚫어버릴 기세였다.

“형! 이거 냄새가 이상해!”

가온이가 코를 싸쥐며 개찰구 틈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녀석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지하철 냄새가 아니야. 쇠 냄새나 기름 냄새 같은 게 아니라…… 그, 형도 알지? 장례식장 지하 매점에 있는 커다란 업소용 냉장고 냄새. 눅눅한 포장 비닐이랑, 비에 젖은 검은 우산 냄새가 뒤섞여서 나. 여기 지하철역 아니야, 형. 이건 물건 나르는 통로야.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물건들만.”

가온이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개찰구 너머의 풍경은 분명 계단이었지만, 그 계단들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무기력하게 이어져 있었다. 가온이의 감각은 틀린 적이 없다. 이곳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시설이 아니라, 잘못 분류된 물건들을 다시 수거해가는 ‘반품 물류 라인’인 것이다.

“반품은 버리는 게 아니야, 계산원 아저씨.”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아이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 아이의 눈은 여전히 개찰구 너머의 어둠을 향해 있었다.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거야.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이게 아이의 기억인지, 아니면 이 공간에 입력된 시스템 멘트가 아이의 입을 빌려 출력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서하 씨를 이대로 두면 그녀가 말한 ‘원래 자리’—즉, 742일 전의 그 차가운 기록 속으로 영영 되돌려 보내질 거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구겨진 보호자 영수증을 다시 펼쳐 들었다. 영수증 하단, ‘귀가 경로’라고 적힌 문구 아래에 아주 미세하게 긁힌 자국들이 보였다. 잉크가 번진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 같기도 한 한 줄의 문장.

나는 심호흡을 하며 왼손을 영수증 위로 가져갔다.

‘잔향청취.’

귀를 기울이자, 종이의 질감 너머로 아주 희미한 기계음과 문태식의 목소리가 섞인 환청이 들려왔다.

「……보호자가 서명하면…… 반품 대기자의 임시 보증을…… 이전할 수 있다…… 지이익…… 서명은 혈흔이나 각인으로…… 보증금은…… 네 놈의……」

뒷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불합리한 시스템에서 누군가를 구하려면 내 쪽에서 무언가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억일까, 아니면 남은 수명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계산원 권한의 보증금일까?

“도윤 씨, 그냥 가세요.”

서하 씨가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전 이미 덤으로 살고 있었던 거니까요. 당신이랑 가온이가 나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전 여기서 좀 더 조사해 볼 게요. 원래 탐정은 현장에 남는 법이잖아요?”

“탐정은 사건이 해결되면 의뢰인이랑 같이 퇴근하는 게 국룰입니다. 제가 웹소설에서 봤는데, 주인공 버리고 남겨진 조연은 십중팔구 흑화하거나 소멸하더라고요. 전 그런 클리셰 싫어합니다.”

나는 영수증 뒷면을 뒤집었다. 텅 빈 백지. 하지만 내 왼손 손목에는 뜨겁게 달궈진 바코드와 낙인이 박혀 있었다. 오른손의 도니가 남기고 간, 이 빌어먹을 시스템의 ‘인장’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왼손 손목의 낙인을 영수증 뒷면에 강하게 눌렀다.

치이익!

“아악!”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화상이 아니었다. 영혼의 일부를 압착기로 찍어내는 듯한 극렬한 고통이 팔을 타고 뇌를 후려쳤다.

[ “야, 이 미친놈아. 도장 함부로 찍으면 책임도 같이 찍히는 거야. 보증 서지 말라는 조상님 말씀 못 들었냐?” ]

머릿속에서 문태식의 비릿한 농담 섞인 경고가 울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영수증 뒷면에 내 손목의 문양과 똑같은 붉은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전광판의 글자가 미친 듯이 깜빡였다.

[ 시스템 업데이트 중…… ]

[ 윤서하 : 반품 승인 대기 → 임시 보증 이전 심사 중 ]

[ 확인되었습니다. 임시 보증인 ‘강도윤’의 권한으로 통과를 허용합니다. ]

철커덕!

서하 씨를 가로막고 있던 금속 바가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마치 거대한 맹수가 먹잇감을 놓아준 것처럼.

“도윤 씨!”

서하 씨가 놀라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제대로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왼손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차가운 시스템의 알림음이었다.

[ 알림 : 보증 이전 완료. ]

[ 경고 : 담당 구역 이탈 발생. ]

[ 오른손 계산원 : 4번 출구 역무실 배정 완료. 지연된 정산을 시작하십시오. ]

나는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다시 보았다. 새로 뜬 메시지는 아까보다 훨씬 더 불길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오른손 계산원’. 방금 전까지 내 곁에서 우산을 들고 나를 죽이려 했던, 나와 똑같이 생긴 그 존재가 이미 4번 출구 너머에 배정되었다는 소리였다.

“……역무실?”

가온이가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저 아래, 형광등이 깜빡이는 계단 끝자락에 유리창이 깨진 낡은 역무실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직거리는 마이크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수증 확인하겠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변조되어 있었지만 의심할 여지 없는 내 목소리였다.

나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나’가, 우리가 통과해야 할 유일한 출구의 문을 잠근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목의 낙인이 다시 한번 뜨겁게 요동쳤다. 이제 퇴근길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나와의 전면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219화. 유효기간이 지난 보증서

“영수증 확인하겠습니다.”

지직거리는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울림에는 생기가 거세되어 있었다. 마치 수만 번쯤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내려간 ARS 안내 음성처럼, 무미건조하고 서늘한 기계음.

발걸음을 떼기가 무거웠다. 뒤를 돌아보자, 방금 우리가 빠져나온 편의점의 자동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닫히고 있었다. 단순한 폐점이 아니었다.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급격히 일그러지더니, 진열대도, 삼각김밥도, ‘1+1’ 행사 안내문도 전부 검은 잉크를 쏟아부은 것처럼 어둠 속으로 녹아내렸다.

퇴로는 끊겼다. 이제 남은 건 이 축축하고 기분 나쁜 계단을 내려가, 나를 기다리는 ‘나’와 대면하는 것뿐이었다.

“도윤 씨, 왼손…….”

서하 씨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내 왼손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니, 살피려 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내 왼손은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서명에 대한 대가치고는 꽤나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통증이었다.

손끝부터 시작된 감각의 마비가 손목을 타고 팔꿈치까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얼음물을 혈관에 주입한 것처럼 차가웠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신체적인 감각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잠깐, 아까 문태식 씨가 뭐라고 했더라?’

분명히 머릿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보증을 서지 말라느니, 도장을 함부로 찍지 말라느니 하던 특유의 비릿하고 능글맞은 농담조의 경고. 그런데 그 문장의 끝맺음이, 그가 짓던 특유의 비열하면서도 안쓰러운 표정의 디테일이 마치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흐릿하게 번져나갔다.

기억의 일부가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소실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며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까먹던 어느 날의 공기, 문태식이 건네던 싸구려 라이터의 불꽃 모양 같은 사소하지만 선명했던 조각들이 보증의 담보로 잡혀 어디론가 송출되는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원래 보증이라는 게 영혼 좀 털리고 시작하는 거잖아요.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랑 보증 서류 한 장쯤은 품고 사는 법이니까.”

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대꾸했다. 하지만 서하 씨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협회에서 발행한 신분증도, 그 막강했던 수사 권한도 모두 잃었지만, 현장을 꿰뚫어 보는 감각만은 여전했다. 내 농담이 공포를 가리기 위한 조잡한 가림막이라는 걸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사과는 나중에 퇴근하고 소주 한 잔 사면서 하세요. 아, 서하 씨는 비싼 거 마셔야 하나? 그럼 양주로 하든가.”

말을 내뱉으면서도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지하철역 특유의 쇠 비린내와 먼지 냄새 대신, 아주 오래된 병원 소독약 냄새와 눅눅한 종이 냄새가 섞여 들었다.

“형, 여기 냄새 진짜 구려.”

가온이가 코를 찡그리며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녀석의 예민한 후각은 이미 저 아래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데, 그게 그냥 소독약이 아니야. 장례식장에서 시신 닦을 때 쓰는 그런 냄새랑 비슷해. 그리고…… 아저씨 냄새도 나. 그 우산 들고 다니던 아저씨. 문태식 아저씨가 여기 한참 동안 서 있었던 것 같아. 냄새가 아주 깊게 배어 있어.”

문태식이 이곳을 지나갔다고? 단순한 통과였을까, 아니면 이 기괴한 시스템의 일부였을까. 742일 전 서하 씨의 사망 기록과 이 역무실의 연관성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4번 출구 역무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아는 지하철 역무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면의 유리창은 뿌옇게 먼지가 앉아 있었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기묘한 기계들의 전시장 같았다. 일반적인 역무용 컴퓨터 대신, 편의점에서 쓰는 낡은 POS 기기와 장례식장 매점에서나 볼 법한 투박한 계산대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조잡하게 인쇄된 표지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 영수증 확인 창구 ]

[ 반품 접수함 ]

[ 분실 보호자 보관함 ]

그 아래쪽에는 ‘폐기 대기’라고 적힌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분류해서 폐기 처분하는 공장 라인 같았다.

그리고 그 유리창 너머, 낡은 사무용 의자에 ‘그’가 앉아 있었다.

오른손의 도니.

나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격. 하지만 그는 아까처럼 살기를 띠고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 밤을 꼬박 새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처럼 퀭한 눈을 하고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오른손 손목에는 내 것과 똑같지만 훨씬 더 진하고 선명한 낙인이 박혀 있었다.

“영수증. 그리고 토큰.”

도니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유리창 아래의 좁은 틈새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평생 물건을 찍고 영수증을 발행해온 사람의 손처럼.

나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주머니 속의 500원 토큰과 붉은 인장이 찍힌 영수증을 꺼내 밀어 넣었다. 서하 씨가 내 곁으로 다가오려 하자, 도니의 시선이 날카롭게 그녀를 훑었다.

“반품 대기자는 창구 밖에서 대기하십시오. 보증인의 심사가 끝나기 전까지 구역 침범은 불허합니다.”

그의 말에 서하 씨가 멈칫하며 멈춰 섰다. 그녀의 눈에 비친 도니는 괴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도니가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그는 무심하게 영수증 앞면을 살피다, 뒷면으로 돌려 내가 찍은 낙인 서명을 확인했다.

그 순간, 기계처럼 차갑던 그의 표정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초점이 없던 눈동자가 떨리며 내 왼손목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왼손?”

도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섞여 들었다.

“왼손은 보증인이 될 수 없다. 규정에 어긋나. 왼손은…… 원래 계산대 밖에 있어야 한다. 이쪽 세계의 기록을 오염시키면 안 돼.”

“규정 따질 거면 근로기준법부터 지키라고 해. 야간 수당은 제대로 받고 일하는 거야? 얼굴 꼬락서니 보니까 최저시급도 못 받는 것 같은데.”

내 비아냥에 도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영수증 뒷면의 낙인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중얼거렸다.

“왼손의 보증은…… 기록을 뒤섞는다. 반품되어야 할 물건이 보호자를 찾게 되고,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가 폐기물이 된다. 이건 교환 불가능한 오류야.”

그가 혼란에 빠진 사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아이가 조용히 움직였다. 아이는 역무실 유리창 아래, ‘분실 보호자 보관함’이라고 적힌 작은 창구 앞에 멈춰 섰다.

창구 안쪽에는 낡고 때 묻은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아주 작은 아이용 운동화 한 짝. 그리고 손잡이가 부러진, 이름 없는 어린아이용 검은 우산.

아이는 그 물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알아보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아이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작은 손을 뻗어 차가운 유리벽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서리가 낀 것처럼 하얗게 김이 서렸다.

“이거, 서명 확인된 거 맞지? 그럼 통과시켜 줘. 우리 지금 되게 피곤하거든.”

내가 독촉하자 도니는 한참 동안 영수증을 만지작거리더니, 옆에 놓인 낡은 철제 보관함—‘반품 접수함’이라고 적힌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나온 것은 낡은 아크릴 명찰 하나였다.

도니는 그 명찰을 유리창 틈새로 밀어 넣었다. 명찰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 윤서하 ]

하지만 그 아래에 적힌 문구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보통이라면 [반품 완료]나 [폐기 확정] 같은 잔인한 단어가 적혀 있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명찰에 새겨진 글자는 서하 씨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 윤서하 / 보호자 후보 ]

“……보호자 후보?”

서하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명찰을 받아 들었다. 도니의 비어 있는 눈동자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 뒤에 숨은 아이를 향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방금 찍은 보증 서명이 손목 안쪽에서 차갑게 뒤집혔다.

윤서하는 반품 대기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아이의 또 다른 보호자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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