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217화. 환불 불가, 교환 대상과 보호자 영수증
216화. 환불 불가, 교환 대상
찰랑, 챙그랑!
포스기 현금함이 바닥에 굴러떨어지며 오백 원짜리 동전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좁아터진 카운터 안쪽은 순식간에 금속성의 소음과 비릿한 동전 냄새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내 시선은 발치로 흩어진 잔돈이 아니라, 아크릴판 너머에서 성큼 다가온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742일 전의 나, ‘오른손의 도니’에게.
녀석이 영수증 송곳을 치켜들었다. 끝이 날카롭게 갈린 쇠꼬챙이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녀석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고해상도 사진을 사람 모형에 붙여놓은 것처럼, 생동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손님, 계산 전 제품의 훼손은 본인 부담입니다.”
오른손의 도니가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인데 내 목소리가 아니다. 감정의 고저가 거세된, 편의점 ARS 안내 멘트를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변조음.
“비켜, 이 가짜 새끼야! 난 파손 주의 스티커 붙여놓은 적 없어!”
나는 급히 카운터 옆면의 아크릴 차단판을 움켜쥐었다. 녀석이 휘두른 영수증 송곳이 빡, 소리를 내며 아크릴판을 긁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내 목덜미에 구멍이 났을 터였다.
“도윤 씨, 왼쪽!”
윤서하의 외침과 동시에 몸을 숙였다. 오른손의 도니가 비정상적으로 긴 팔을 뻗어 카운터 문 잠금장치를 해제하려 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덩치 큰 가온이와 아이까지 보호하며 싸우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가온아! 애 데리고 뒤로 붙어!”
“알았어, 형! 근데 이 새끼 냄새가…… 냄새가 너무 이상해!”
가온이가 코를 찡그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녀석은 괴력을 발휘해 뒤쪽 담배 진열장을 통째로 밀어내며 공간을 확보했다.
“사람 냄새가 아니야! 새로 산 비닐 우산 뜯었을 때 나는 그 역한 냄새랑 똑같아! 라이터 기름 냄새도 나고, 타지 않은 심지 냄새…… 그리고 냉장고 깊숙한 곳에 낀 성에 냄새까지 섞여 있어!”
가온이의 외침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사람 냄새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도니’는 과거의 내가 아니라, 검은 우산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계산원용 대체 부품이라는 소린가.
“강도윤 씨, 저거 보세요!”
윤서하가 바닥을 가리켰다. 과거의 자신이 명찰을 넘겨주던 찰나, 바닥으로 떨어졌던 작은 이물질. 나는 그것이 여성용 라이터일 거라 짐작했지만, 윤서하의 손끝이 닿은 곳에 있는 건 라이터 자체가 아니었다.
그녀가 집어 든 것은 라이터 옆면에 붙어 있었을 법한, 아주 작은 투명 보증 스티커 조각이었다.
“이건…… 협회 물건이 아니에요. ‘K-우산용 점화부품’. 그리고 그 아래에…… ‘AS 불가, 소모품’이라고 적혀 있어요.”
윤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협회 신분증도, 권한도 잃어버린 그녀였지만 현장을 분석하는 눈빛만큼은 죽지 않았다.
“이 공간 자체가 누군가의 ‘수리점’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저 가짜는…… 수리하는 동안 잠시 끼워 넣은 임시 부품이고요.”
그 말에 오른손의 도니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영수증 출력 중입니다. 대기해 주십시오.”
녀석이 다시 송곳을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내 가슴팍을 정조준한 자세였다. 카운터라는 좁은 공간은 무기를 휘두르기엔 최악이었지만, 찌르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 점검 시간까지 남은 시간 : 00:00:32 ]
시간이 없었다. 32초 뒤면 우린 전부 ‘재고 소각’ 대상이 된다. 헌터 협회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화끈한 종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젠장, 서비스 정신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네! 야, 너 최저시급은 받고 일하냐?”
나는 비어버린 포스기 돈통을 방패처럼 들어 올렸다.
깡!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송곳이 돈통의 철판을 뚫고 들어왔다. 그 반동을 이용해 녀석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손에 잡힌 건 사람의 살결이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비닐 비옷 같은, 미끈거리고 이질적인 감촉.
그때였다.
딸깍.
내 발치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카운터 아래쪽 구석에 박혀 있던 낡고 붉은 버튼을 눌러버렸다. 보통 편의점에서 진상 손님이 나타났을 때 누르는 고객 호출 혹은 비상벨 버튼이었다.
우우우우웅―!
편의점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알림 : 고객 호출이 감지되었습니다. ]
[ 프로세스 전환 : 보호자 확인 절차를 시작합니다. ]
“보호자 확인? 손님 호출이 아니라?”
내 당혹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포스기 모니터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동시에 내 왼쪽 손목의 낙인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뜨거운 열기가 혈관을 타고 뇌로 치솟았다.
[ 잔향청취(殘響聽取)가 강제 발동합니다. ]
이번에는 문태식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포스기, 이 무생물인 기계 장치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기록들이 내 머릿속으로 직접 꽂혔다.
― 『기록 : 742일 전. 계산원 ‘도니’ 이탈 확인.』
― 『대체 부품 가동. 주의 : 오른손 계산원은 결제자가 아닙니다.』
― 『그는 영수증 위에 찍힌 그림자일 뿐이며, 진짜 주인은 왼쪽의 인장을 가집니다.』
그림자.
내 눈앞의 ‘나’는 내가 버리고 간, 혹은 누군가에 의해 잘려 나간 내 과거의 잔영이었다.
“도윤 씨! 20초 남았어요!”
윤서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오른손의 도니가 송곳을 뽑아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녀석의 오른손 손목에 새겨진 바코드가 붉게 타올랐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 녀석이 가진 계산원 권한을 뺏지 못하면 우린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어떻게? 명찰도 없고, 신분증도 없다.
내게 남은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반품 안 된다고 해도 난 몰라!”
나는 송곳을 휘두르는 ‘나’의 팔을 겨우 쳐내며, 왼쪽 손목을 포스기에 연결된 바코드 스캐너 앞으로 들이밀었다.
적색 레이저가 내 손목의 낙인을 훑었다.
삐빅!
날카로운 비프음이 편의점의 정적을 깼다.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를 찌르려던 오른손의 도니가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녀석의 몸에서 가온이가 말했던 그 역한 비닐 냄새와 라이터 기름 냄새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 데이터 대조 중…… ]
[ 확인 완료 : 유효한 관리자 인장입니다. ]
[ 임시 계산원 권한을 회수하고, 정규 계산원 ‘강도윤’의 로그인을 승인합니다. ]
모니터에 뜬 글자들을 보며 나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 특이사항 발생. ]
[ 보호자 확인 절차 종료. ]
[ 미등록 아동의 보호자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
[ 보호자 : 강도윤 ]
머리가 멍해졌다. 보호자? 내가?
이 아이의 정체도 모르는데 시스템이 나를 보호자로 지목했다고?
“……도윤 씨, 괜찮아요?”
윤서하가 내 어깨를 짚었다. 그녀의 시선은 굳어버린 채 서서히 투명하게 변해가는 오른손의 도니를 향해 있었다. 녀석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처럼, 연기처럼 흩어지며 검은 우산의 잔해만을 바닥에 남겼다.
[ 점검 완료. 편의점 영업을 재개합니다. ]
형광등의 깜빡임이 멈추고, 편의점 내부가 평소의 그 따스하고도 인위적인 백색 광으로 가득 찼다. 742일 전의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우리가 알고 있던 폐허가 된 편의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포스기 근처에 주저앉아 땀을 닦았다.
“살았네…… 진짜 퇴사하기 더럽게 힘드네.”
내 농담에 가온이가 바닥에 대자로 뻗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윤서하도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줄곧 나를 ‘아빠’라고 부를 듯 말 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나를 보호자로 승인한 직후, 아이의 눈동자에는 이전과 다른 기묘한 이채가 서려 있었다.
아이가 입술을 뗐다.
“……계산원 아저씨.”
217화. 보호자 영수증
“……계산원 아저씨.”
아이의 입술이 달싹이며 내뱉은 그 한마디가 텅 빈 편의점 내부에 메아리쳤다.
방금까지 나를 ‘아빠’라고 부를 듯이 망설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이제 유리구슬처럼 맑지만, 동시에 기계적인 서늘함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입력된 데이터를 읽어 내리는 출력 장치처럼.
“아저씨?”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 아니면 나를 한낱 계산원이라는 직함으로 분류해버린 시스템의 냉정함에 소름 끼쳐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도윤 씨, 주변을 보세요.”
윤서하의 낮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742일 전의 깨끗하고 활기 넘치던 편의점 풍경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형광등은 다시 깨진 채 대롱거렸고, 진열대는 녹슨 철골을 드러내며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검은 곰팡이와 먼지가 켜켜이 쌓인,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그 폐허 그대로였다.
하지만 단 하나.
내가 손목을 들이밀었던 카운터 위의 포스기만은 달랐다. 녀석은 홀로 유령처럼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으며 지직거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 지이이잉―. ]
포스기 옆에 달린 소형 프린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정적을 찢는 기계음이 기분 나쁘게 고막을 긁었다.
“형, 저기…… 이거 냄새가 너무 지독해.”
가온이가 코를 틀어쥐며 바닥을 가리켰다. 오른손의 도니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가 들고 있던 검은 우산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가온이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주춤거리며 다가가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이상해. 분명히 불에 탄 것처럼 그을음이 가득한데, 탄 냄새가 안 나. 대신…….”
“대신?”
“방금 막 공장에서 찍어낸 빳빳한 플라스틱 냄새가 나. 새 차 샀을 때 나는 그 머리 아픈 냄새 알지? 그거랑, 기계실에서나 날 법한 기름 냄새가 섞여 있어.”
가온이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탄 흔적은 있는데 탄 냄새는 없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우산 천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가온이의 말대로였다. 겉보기엔 화마에 휩쓸린 듯 시커멓게 죽어 있었지만, 손끝에 닿는 감촉은 매끄러웠다. 안쪽 면에는 불길의 흔적 대신 정교하게 설계된 회로 같은 문양들이 아주 미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건 우산이 아니야. 우산처럼 보이게 만든 장치였던 거지.”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누가 소품실에서 물건을 잘못 가져온 모양인데. 타는 척 연기만 하라고 만든 가짜에 우리가 목숨을 걸 뻔했단 소리잖아. PPL이라도 들어온 건가? ‘K-우산, 절대 타지 않는 방화 성능’ 같은 거라도 홍보하려고?”
입안이 바짝 말랐다. 유머라도 던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이 기괴한 공간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농담은 공중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단서는 명확했다. 검은 우산은 생명체도, 단순한 저주받은 물건도 아니다. 철저하게 의도된 부품이다.
[ 지익, 지이익! ]
마침내 영수증 출력이 끝났는지, 프린터가 날카로운 비프음을 내뱉었다. 나는 홀린 듯 카운터 안쪽으로 손을 뻗어 길게 늘어진 종이를 찢어냈다.
손끝에 전해지는 종이의 질감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방금 출력된 영수증 특유의 미지근한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보호자 영수증……?”
나는 영수증 상단에 찍힌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 미등록 아동 ]
[ 보호자 : 강도윤 ]
[ 보증 항목 : K-우산용 점화부품 회수 전까지 임시 보관 ]
[ 거스름돈 : 500원 ]
[ 목적지 : 귀가 경로 4번 출구 ]
글자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혔다. 보호자 강도윤. 이 시스템은 나를 단순히 계산원으로 부려 먹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 정체불명의 아이를 내게 임시 보관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점화부품 회수 전까지…… 그럼 이 아이가 그 부품이라는 뜻인가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윤서하가 영수증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협회 신분증도, 권한도 없는 상태였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은 여전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영수증 하단의 아주 작은 숫자들을 짚었다.
“도윤 씨, 여기 결제 승인 번호 보세요. 일반적인 상점 번호가 아니에요.”
“네? 그냥 복잡한 숫자 배열 아닌가요?”
“아뇨. 00-39로 시작하는 이 체계…… 제가 본 적 있어요. 742일 전, 그러니까 제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에 조사했던 사건 현장이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장례식장 매점이었어요. 죽은 자들을 위한 노잣돈을 바꿀 때 발행되던 영수증 번호와 비슷해요. 협회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아주 폐쇄적인 유통망이죠.”
39화. 내가 기억하는 서하의 기록 중 하나였다. 그때 그녀는 장례식장 매점에서 무언가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고 했었지. 그게 지금 이 편의점의 영수증과 연결된다고?
“그럼 이 편의점은 장례식장 매점의 확장판이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거기서 물건을 떼다 파는 도매상인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영수증을 구겨 쥐었다.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루프물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유통업 미스터리로 장르가 변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발밑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살짝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 위에는 낡은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거스름돈.”
아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수증에 적혀 있던 그 500원이었다.
“어, 고맙다. 근데 아저씨는 팁 같은 거 안 받는데.”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하며 동전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동전을 쥐는 순간, 손가락 끝에 닿는 감각이 이상했다. 매끄러워야 할 동전의 테두리에 미세하고 날카로운 홈들이 파여 있었다.
나는 동전을 눈앞으로 가져가 살폈다.
학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할 앞면은 매끈하게 갈려 있었고, 그 자리에는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가 양각되어 있었다. 뒷면의 숫자 ‘500’ 역시 평범한 숫자가 아니었다. 테두리를 따라 나 있는 홈들은 마치 특정 장치에 끼워 맞추기 위해 정밀하게 가공된 열쇠나 토큰처럼 보였다.
“이거, 돈이 아니네.”
“열쇠…… 인가요?”
윤서하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500원이 영수증에 적힌 귀가 경로를 여는 수단임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정적을 유지하던 포스기 화면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화면 중앙에는 굵은 서체의 안내문이 떠올랐다.
[ 알림 : 영업 재개 준비 완료. ]
[ 주의 : 교대 근무자 한 명 미출근.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부하 주의. ]
“교대 근무자 미출근?”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사라진 오른손의 도니를 말하는 건가? 녀석이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라, 무단결근 상태로 처리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녀석은 지금 이 공간 어딘가에, 혹은 다른 출구 어딘가에서 여전히 계산원으로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랑 똑같이 생긴 놈이 다른 곳에서 영수증 송곳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니.
쿠구구궁―!
바닥이 크게 울리며 편의점 정면의 자동문이 천천히 열렸다.
원래라면 편의점 밖은 우리가 들어왔던 어두운 골목길이어야 했다. 하지만 문 너머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달랐다.
차디찬 형광등 불빛이 쏟아지는 지하 통로.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지하철역에서나 볼 법한 금속제 개찰구였다.
[ 귀가 경로 4번 출구 ]
개찰구 기둥에 붙은 낡은 표지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개찰구 위쪽 전광판에는 붉은색 LED 글자들이 흐르고 있었다.
[ 강도윤 : 보호자 동반 1인 통과 가능 ]
“나랑 애만 통과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광판의 글자가 다음 줄로 넘어갔다.
[ 윤서하 : 반품 승인 대기 ]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윤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반품 승인 대기’. 742일 전 사망 처리되었던 그녀의 기록이, 이 시스템에선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었다. 통과 대상이 아니라는, 아니, 아예 이 공간에서 반품되어야 할 불량품 취급을 받고 있다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도윤 씨…….”
윤서하가 힘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개찰구 너머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그녀를 거부하는 거대한 장벽처럼, 개찰구의 금속 바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잠겼다.
나는 주머니 속의 500원 동전을 꽉 쥐었다.
퇴근길은 여전히 멀고, 내 영수증에는 아직 찍히지 않은 항목들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