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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3화. 폐기된 시간의 영수증과 환불 신청서 일러스트

212-213화. 폐기된 시간의 영수증과 환불 신청서

212화. 폐기된 시간의 영수증

딩동.

자동문이 열리는 기계음이 고요한 편의점 안에 울려 퍼졌다. 742일 전의 윤서하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우리는 카운터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밖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우윳빛 안개뿐이다. 세상에 우리와 이 편의점, 그리고 루프에 갇힌 과거의 유령만 남겨진 기분이다.

“강도윤 씨, 저거…… 꺼버리면 안 될까요?”

윤서하의 목소리가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떨렸다. 그녀는 화면 속의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하긴, 누가 자기 자신이 유령처럼 반복되는 영상을 즐겁게 감상하겠는가. 그것도 2년 전에 이미 ‘사망 처리’되었다는 시스템의 선고를 들은 직후에 말이다.

“끄고 싶어도 스위치가 안 보입니다. 그리고 저건 단순한 영상이 아니에요. 저 안에는 우리가 놓친 ‘진짜’가 섞여 있습니다.”

나는 카운터 주변을 훑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편의점이다. 1+1 행사 안내표, 눅눅하게 식은 치킨 쇼케이스,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삼각김밥들. 하지만 공기는 납처럼 무거웠다. 공간 자체가 거대한 관(棺)이 되어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을 박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저기…… 아줌마가 만졌던 거요.”

반가온이 내 코트 자락을 당기며 진열대 한구석을 가리켰다. 아이를 꼭 껴안은 녀석의 코가 실룩거렸다.

“저기서 아주 매운 냄새가 나요. 눈이 따가울 정도로요. 그런데 그게 캡사이신 냄새가 아니라, 뭔가…… 엄청나게 화가 난 냄새예요.”

가온이가 가리킨 곳은 컵라면 코너였다. CCTV 속의 윤서하는 지금 막 그 코너를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진열대 위에 놓인 바코드 스캐너를 집어 들었다. 평범한 무선 스캐너였지만, 손잡이 부분에 묻은 잔향이 내 고막을 두드렸다.

[잔향청취를 시도합니다.]

지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스캐너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비명이라기보다 일종의 ‘품평회’에 가까웠다.

— 아, 또 이거야? 이 손님은 742일째 똑같은 것만 찍어. 튜나마요 삼각김밥, 900원짜리 생수, 그리고 저 지독한 라이터. 야, 나도 좀 비싼 것 좀 찍어보자. 백화점 바코드 스캐너들은 캐비아나 트러플 같은 거 찍으면서 우아하게 산다는데, 난 왜 맨날 폐기 직전인 놈들 뒷조사나 하고 있어야 해?

스캐너의 잔향은 아주 건방지고 수다스러웠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 속에 뼈가 있었다.

— 저 여자 말이야, 사실 물건 사러 오는 거 아냐. 저기 앉아서 영수증 뒷면에다 뭔가를 계속 적는다고. ‘경로 수정 불가’, ‘관찰자 교체 실패’…… 뭔 소린지는 모르겠는데, 적는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꼭 고장 난 센서 같다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여자가 찍는 바코드는 이 매장에 등록된 게 아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매장에 등록되지 않은 바코드?

— 내 레이저가 아까워 죽겠어. 존재하지 않는 좌표를 왜 자꾸 나한테 읽으라고 하는 건지. 찍을 때마다 내 회로가 타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이봐, 거기 내 손잡이 잡은 헌터 양반. 당신도 조심해. 저 여자가 찾는 건 ‘퇴근길’이 아니라, ‘퇴직금’도 아니고, 그냥 ‘지워진 입구’니까.

스캐너의 목소리가 비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스캐너를 내려놓고 윤서하를 보았다. 그녀는 카운터 옆에 비치된 영수증 롤 보관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찾았나요?”

“강도윤 씨 말이 맞았어요. 이건 단순한 루프가 아니에요. 기록실에서 봤던 그 ‘사망 처리’ 데이터를 확정 짓기 위한 프로세스의 일부예요. 저 화면 속의 내가 편의점을 나가는 순간, 시스템상의 윤서하는 완전히 소멸하는 거죠.”

그녀의 손이 영수증 프린터로 향했다.

“하지만 기록이 반복된다는 건, 수정할 기회도 반복된다는 뜻이에요. 이 편의점의 결제 로그를 강제로 열어야겠어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데이터가 이 영수증 롤 안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열려면 관리자 권한이 필요할 텐데요. 아까 보니까 팀장님 권한은…….”

“네, ‘사망 예정’이라 정지됐죠.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어요.”

윤서하가 자신의 목에 걸린 협회 신분증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단말기 옆의 마그네틱 리더기에 주저 없이 긁으려 했다.

“팀장님, 잠깐만요. 그거 지금 쓰면 협회 서버에 위치 노출되는 거 아닙니까? 정화 수거반이 다시 들이닥칠 수도 있어요.”

“위치 노출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죠. 이 카드는 제 생체 정보와 동기화되어 있어요. ‘죽은 자’의 카드를 억지로 승인시키면, 제 신분증은 영구 파기되고 전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증발’하게 됩니다. 수사협조관으로서의 모든 기록이 지워지는 비용이죠.”

그녀의 눈에 서린 결연함은 지독할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해 던지는 그 태도. 나는 그게 그녀 나름의 방어기제라는 걸 알기에 차마 말리지 못했다.

치익, 카드가 긁혔다.

단말기 화면이 붉게 점멸하며 경고음을 내뱉었다. [미승인 사용자], [권한 상실], [데이터 강제 로드 중……].

순간, 편의점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진열대의 과자 봉지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형광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아저씨, 저기요!”

가온이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갑자기 손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이의 손끝은 편의점 출구도, 창고도 아닌, 카운터 바닥의 좁은 틈새를 향하고 있었다.

“저기 밑에…… 무거운 게 있어요.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옆으로 밀려난 길이에요. 엄마가 그랬어. 길이 막히면 그림자를 보라고.”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아이는 이름 대신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직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옆으로 뒤틀려 만들어진 틈새. 그건 시스템의 설계도가 아니라, 누군가 억지로 찢어 만든 ‘개구멍’에 가까웠다.

“강도윤 씨, 나왔어요!”

윤서하의 외침과 함께 영수증 프린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끝없이 쏟아지는 하얀 종이띠가 카운터 아래로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지는 영수증 조각 하나를 낚아챘다.

그런데 영수증에 적힌 내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삼각김밥이나 생수 같은 품목이 아니었다.

[결제 일시: 742일 전 23:58]

[품목: 귀가 경로 4번지 진입권]

[구매자: 강도윤]

[상태: 결제 대기 - 승인 거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이름이었다.

“……이게 왜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

내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742일 전이면 내가 현장 정리 헌터로 일하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던 시기였다. 나는 이 편의점에 온 기억이 없다. 아니, 적어도 이런 기괴한 ‘진입권’을 구매하려 한 적은 단언컨대 없었다.

윤서하도 영수증 내용을 확인하더니 굳어버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신분증이 파르르 떨리더니 검게 타들어 갔다. 권한을 사용한 대가였다. 그녀는 이제 협회의 수사협조관이 아니다. 시스템에서 지워진, 이름 없는 관찰자일 뿐이다.

“강도윤 씨…… 당신, 742일 전에 여기서 뭘 한 거죠?”

“저도 묻고 싶네요. 난 그날 평범하게 퇴근해서 소주나 마시고 있었을 텐데.”

나는 영수증 롤을 더 길게 뽑아 올렸다. 종이 뒷면에는 붉은색 잉크로 휘갈겨 쓴 메모가 추가로 인쇄되어 있었다. 루프 속의 윤서하가 적었다던 바로 그 필체였다.

[그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문 자체가 되었다.]

메모 밑에는 정체불명의 바코드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건 물건을 위한 바코드가 아니었다. 인간의 생체 코드를 형상화한 듯한, 기분 나쁘게 뒤틀린 검은 선들의 집합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 왼쪽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우산의 낙인이 새겨진 그 부위가 화끈거리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딩동.

다시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CCTV 속의 유령이 아니었다.

안개 너머에서, 검은 우산을 쓴 누군가가 천천히 편의점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루프 속의 윤서하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대에 존재하는 ‘누군가’였다.

“가온아, 아이 데리고 카운터 뒤로 숨어.”

나는 검은 우산을 고쳐 쥐며 문쪽을 응시했다. 영수증 롤은 여전히 내 발치에서 비명을 지르듯 드르륵거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742일 전, 내가 이곳에서 사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이 편의점은 내 결제를 ‘거부’하고 나를 지금까지 살려둔 것일까.

안개 속에서 나타난 인영이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멈춰 섰다. 그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영수증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가볍게 호선을 그리며 벌어졌다.

“아직도 환불 안 받았어? 그거 유통기한 지났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잔향청취 능력이 폭주하듯 날뛰기 시작했다. 편의점 안의 모든 물건이 일제히 한 사람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 이름이 내 귀 안쪽에서 긁히는 순간, 바코드 스캐너가 혼자 켜졌다. 붉은 레이저가 내 왼쪽 손목의 낙인을 정확히 찍었다.

213화. 유통기한이 지난 환불 신청서

삑―.

고막을 찢는 듯한 기계음이 편의점의 정적을 박살 냈다. 카운터 위에 놓여 있던 바코드 스캐너의 붉은 레이저가 내 왼쪽 손목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었다. 아니, 관통이 아니라 ‘인식’하고 있었다.

손목의 낙인이 화끈거렸다. 우산 끝부분을 달궈서 지진 것 같은 통증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치솟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헛웃음을 삼켰다. 공포가 임계점을 넘으면 뇌는 비상용 발전기를 돌리듯 실없는 농담부터 내뱉기 마련이니까.

“와, 나 진짜 상품 취급받는 건가? 이왕이면 신상으로 좀 찍어주지. 유통기한 임박 상품 같은 소리 들으면 섭섭한데.”

농담을 내뱉으면서도 시선은 카운터 모니터에 고정했다. 스캐너가 읽어 들인 내 정보가 화면 위로 글자 한 줄씩 투독, 투독, 떨어졌다.

[품목명 : 재처리 대기 대상자 (강도윤)]

[판매가 : 0원 (비매품 / 증정품)]

[유통기한 : 742일 전 만료]

[보관방법 : 상온 방치 금지. 그림자 아래 영구 격리 권장.]

[특이사항 : 교환 대상 부재로 인한 자동 폐기 프로세스 일시 정지.]

“……0원? 증정품?”

내 몸값이 편의점 봉투값만도 못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742일 전 만료라는 글자가 붉게 깜빡이는 걸 보니, 나는 이미 2년 전에 상해버린 인간인 모양이다. 그것도 주인도 없이 증정품으로 딸려 왔다가 버려진.

“강도윤 씨, 농담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요!”

윤서하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그녀는 권한을 잃고 타버린 신분증 조각을 손에 쥔 채, 오히려 나보다 한 발 앞서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협회 수사협조관으로서의 공식적인 힘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2년 넘게 현장을 구른 팀장의 깡다구는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모니터가 아니라 유리창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안개 속, 검은 우산을 쓴 인영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편의점의 인공적인 조명이 안개에 굴절되어 그자의 실루엣을 기괴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아직도 환불 안 받았어? 그거 유통기한 지났는데.”

창밖의 인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유리창을 타고 진동하며 고막 안쪽을 긁었다. 낮게 깔리는 저음, 끝부분을 살짝 흐리는 나태한 말투.

문태식 선배?

아니, 비슷하지만 달랐다. 문 선배의 목소리에는 항상 지독한 소독제 냄새 섞인 피로함이 묻어 있었지만, 저 목소리에는 서늘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지하 기록실에 처박혀 있던 낡은 테이프를 재생하는 듯한 위질감이 느껴졌다.

그때, 남자가 들고 있던 검은 우산을 가볍게 돌렸다. 우산 살이 맞물리며 나는 규칙적인 금속음. 틱, 틱, 틱. 그건 문 선배가 작전 구상을 할 때 볼펜 뒷부분을 누르던 리듬과 소름 끼칠 만큼 닮아 있었다.

“누구야. 당신, 문태식 헌터야?”

내 물음에 남자는 대답 대신 우산 끝으로 편의점 바닥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내가 뛰어나가려 했지만, 윤서하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안 돼요. 나가면 안개에 먹혀요. 저건 유인하는 거예요.”

“하지만 문 선배일지도 모릅니다. 저 습관, 제가 알아요.”

“강도윤 씨, 정신 차려요. 지금 저 밖은 우리가 아는 현실이 아니에요.”

윤서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났다. 그녀는 신분증이 없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카운터 안쪽의 기계 장치들을 직접 손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공식 권한이 없으면 수사도 못 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죠. 협회 매뉴얼은 다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녀가 영수증 프린터의 덮개를 강제로 뜯어냈다. 엉켜 있던 종이 뭉치 사이에서 그녀가 찾아낸 건, 아까 우리가 본 것보다 훨씬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종이 한 장이었다.

그 와중에 가온이가 내 옷자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녀석의 코가 실룩거리다 못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아저씨, 저 사람한테서…… 문 아저씨 냄새랑, 그 예쁜 라이터 냄새랑…… 그리고 ‘죽은 쥐’ 냄새가 나요. 아주 많이요.”

반가온의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죽은 쥐의 냄새. 그건 정화 수거반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특유의 악취였다. 시스템의 청소부들이 풍기는 그 기분 나쁜 향기가 그 남자에게서 났다고?

“그리고 저기…… 그림자가 이상해요.”

내 품에 안긴 아이가 매대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의 눈은 편의점의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을 쫓지 않았다. 대신, 형광등의 위치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뻗어 있는 ‘검은 그림자’의 꼬리를 보고 있었다.

편의점 매장 한복판, 컵라면 매대와 음료수 냉장고 사이의 좁은 틈새. 분명 조명은 천장에서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그 틈새의 그림자는 마치 누군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벽면을 따라 비스듬히 꺾여 있었다.

“저기 아래에…… 엄마가 숨겨둔 게 있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확신에 찼다. 나는 아이를 내려놓고 매대 쪽으로 다가갔다. 윤서하도 영수증 조각을 챙긴 채 내 뒤를 따랐다.

매대 뒤의 좁은 틈새는 성인 남자가 들어가기엔 턱없이 좁아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손을 뻗자, 마치 고무처럼 벽면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공간을 넓혔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매대 뒤의 사각지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가온아, 아이 손 꼭 잡아. 팀장님, 제 뒤에 붙으세요.”

나는 검은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그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좁은 통로 안은 편의점의 인공적인 냄새와는 전혀 다른 냄새로 가득했다. 눅눅한 종이 냄새, 그리고 오래된 인장(印章)을 찍을 때 쓰는 인주 냄새.

얼마나 들어갔을까. 통로 끝에는 작은 철제 서랍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서랍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낡은 장부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 거기에는 익숙한 지장이 찍혀 있었다. 내 왼쪽 손목의 낙인과 똑같은 문양의 인장.

그리고 그 인장 바로 옆에, 방금 인쇄된 것 같은 깨끗한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반품 및 교환 증명서]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내 눈이 경련하듯 떨렸다.

[반품 품목 : 관찰자 Y.S.H (윤서하)]

[사유 : 규격 미달 및 불법 잔존 (742일 경과)]

[교환 대상 : 임시 보관물 K.D.Y (강도윤)]

“이게…… 무슨…….”

윤서하의 신음이 들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742일 전의 기록과 내 눈앞의 교환권이 충돌하며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장부의 하단에는 날카로운 필체로 덧붙여진 메모가 있었다. 문태식의 필체였다. 하지만 아까 들었던 그 기괴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쓴 것 같은, 서늘한 습기가 문장에 배어 있었다.

[강도윤, 네가 이 영수증을 주웠다면 환불은 불가능하다. 이미 교환된 물건은 반품되지 않거든.]

나는 고개를 돌려 윤서하를 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고 : 교환된 대상(K.D.Y)의 소유권은 742일 전부터 ‘검은 우산’에게 귀속됨.]

“팀장님, 아까 그 영수증 뒷면……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내 물음에 윤서하가 떨리는 손으로 아까 프린터에서 뽑은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내가 주운 교환권의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고 : 강도윤은 교환된 적이 없다. 그는 가짜를 대신 채워 넣고 사라진 ‘원래의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같은 날짜, 같은 장소에서 나온 두 개의 기록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한쪽 기록은 내가 윤서하를 대신해 ‘소모’되었다고 말했고, 다른 기록은 내가 누군가를 대신해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우겼다.

그때, 통로 입구 쪽에서 다시금 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코드 스캐너의 레이저가 어두운 통로 안쪽까지 길게 뻗어 들어왔다. 레이저는 이번에 내 손목이 아니라, 윤서하의 가슴팍을 정조준했다.

“품목 확인.”

통로 입구에 서 있는 건 아까의 그 검은 우산이었다. 우산 끝에 매달린 작은 라이터가 찰칵거리며 불꽃을 일으켰다. 그 불빛에 비친 남자의 하반신은 사람이 아니라, 수만 장의 영수증 조각들이 뭉쳐진 괴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유통기한 지난 상품은 수거반이 가져가는 게 원칙이지.”

남자가 우산을 들어 올렸다. 우산 안쪽에는 수십 개의 바코드 스캐너가 다닥다닥 붙어 일제히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윤서하의 앞을 가로막으며 검은 우산을 휘둘렀다.

“환불 안 한다고 했잖아, 이 새끼야!”

내 외침과 함께 통로 벽면의 그림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내렸다.

742일 전.

내가 산 것이 윤서하의 목숨이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의 소멸이었는지.

그 답을 듣기도 전에, 편의점의 모든 형광등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암전.

그리고 내 손목의 낙인이, 어둠 속에서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스템 오류 : 상품의 상태가 ‘변질’되었습니다. 강제 폐기 프로세스를 즉시 재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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