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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옥상에는 출구가 없었고 출입증은 살아 있었다 일러스트

5-6화. 옥상에는 출구가 없었고 출입증은 살아 있었다

제목: 5-6화. 옥상에는 출구가 없었고 출입증은 살아 있었다

제목: 5화. 옥상에는 출구가 없었다

은성주차타워 옥상은 세차장 폐업 정리 현장 같았다.

비는 그쳤는데 바닥은 아직 질척였다. 물웅덩이가 난간 아래까지 번져 있었고, 낡은 환풍기는 녹슨 목으로 컥컥댔다. 멀리서는 협회 사이렌이 4층 C구역 쪽으로만 열심히 울었다. 내가 있는 곳은 옥상인데.

인생도 위치추적을 이따위로 하면 환불을 받아야 한다.

나는 SD카드를 손바닥 안에 숨긴 채 뒤로 물러섰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이민재의 마지막 동선, 폐쇄 던전 D-17, 윤서하의 책상, 내 권능 샘플. 죄다 이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었다.

검은 우산 사내는 옥상 문턱에 섰다.

찢어진 우산 끝에서는 회색 접착 폼 찌꺼기가 뚝뚝 떨어졌지만, 그의 구두는 여전히 말라 있었다. 옥상 바닥의 물이 그의 발치에 닿기 전에 아주 얇게 갈라졌다. 마치 물이 알아서 비켜 주는 것처럼.

"카드."

또 그 말이었다.

"진짜 단어장 업데이트 안 하십니까? 요즘 자동완성도 그거보단 다양하게 말해요."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산 끝을 내 목이 아니라 내 오른손 쪽으로 겨눴다.

죽이는 게 1순위는 아니었다. SD카드 회수. 그리고 나.

아마 정확히는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상한 청취 습관, 호흡, 성대 떨림, 겁먹으면 아무 말이나 뱉는 정신 나간 생존 반응까지. 놈들은 나를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녹음 장치로 보고 있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무서운 것과는 별개로 더러웠다.

나는 발끝으로 물웅덩이를 건드렸다. 차가운 물이 운동화 옆면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물이 아주 낮게 속삭였다.

[빗물 아님. 오염물 회수 잔류. 나노 방수 코팅 내부 흡입 기능 작동. 증거 입자, 혈흔, 마력 찌꺼기, 섬유 조각 우산 안쪽으로 이동. 보관. 보관. 보관.]

나는 숨을 삼켰다.

우산이 젖지 않는 이유가 아니었다. 우산은 주변 증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물이 묻지 않는 게 아니라, 물에 섞인 흔적까지 먹어 치우는 장비였다. 이민재의 피가 깨끗하게 사라진 것도, 현장에 남은 게 말라붙은 우산 자국뿐인 것도 설명이 됐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청소업계 입장에서 좀 자존심 상하네요. 저 정도 흡입력이면 저도 월세 두 달은 아꼈을 텐데."

사내의 붉은 눈이 조금 좁아졌다.

"입."

"닫으라는 말이죠? 이제 압니다. 고객 응대 매뉴얼에 저장했습니다."

나는 말하면서 옥상 한쪽의 전광 표지판을 봤다. 주차 가능 대수를 표시하던 낡은 LED판이었다. 반쯤 꺼진 숫자가 `00`과 `03` 사이에서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물이 배선 안으로 들어갔는지 타는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저런 고장 난 물건은 말을 잘한다.

멀쩡한 물건은 체면을 차리지만, 고장 난 물건은 대체로 속에 든 걸 줄줄 흘린다. 사람도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한다.

나는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사내도 따라 움직였다. 우산 끝은 계속 내 손을 향했다.

전광 표지판이 귓속에서 치직거렸다.

[월요일 03:17:45. 은성주차타워 옥상 보조망. 협회 폐쇄 던전 출입관리 시스템 임시 팝업 수신. D-17 임시 출입 승인. 승인자 코드 삭제. 삭제 요청 재전송. 화면 출력 시간 1.2초.]

뒤통수에 얼음이 부어졌다.

폐쇄 던전 D-17.

이민재가 죽기 전 향하려던 곳. 공식 기록상 사망자 0명으로 닫힌 던전. 사고도 없고, 보상도 없고, 그러니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안전한 실패 사례.

그런데 표지판의 낡은 회로는 1.2초를 기억하고 있었다. 삭제된 승인 알림. 누군가가 닫힌 던전에 문을 열어 줬고, 바로 지웠다.

나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엄지로 더듬었다. 화면은 깨져 있었지만 녹음 앱 바로가기는 살아 있었다. 표지판의 잔향을 녹음할 수는 없다. 잔향청취는 내 머릿속에서만 울리니까. 대신 나는 내가 들은 숫자를 중얼거렸다.

"03:17:45. D-17 임시 출입 승인. 승인자 코드 삭제."

"기록하지 마."

사내가 처음으로 문장다운 문장을 말했다.

"아, 역시 들리세요? 제 발음 평가 좀."

우산 끝에서 검은 마력이 뭉쳤다.

나는 바로 뛰었다. 전광 표지판 쪽이 아니라 소화전 쪽으로. 옥상 가장자리의 빨간 소화전함은 녹이 슬어 문짝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아까 3층에서 튼 물이 배관을 타고 여기까지 압을 밀어 올렸는지, 호스 끝이 살아 있는 뱀처럼 들썩였다.

정면 승부는 안 된다.

F급 헌터가 S급 흉내를 내면 대체로 장례식장에서 등급이 재평가된다. 사후 등급 상승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는 소화전 밸브를 잡고 온몸으로 돌렸다.

끼이이익.

팔꿈치가 비명을 질렀다. 허리가 나갔다. 그리고 물이 터졌다.

콰아아아!

녹물 섞인 물줄기가 옥상 바닥을 쓸었다. 사내는 우산을 펼쳤다. 물줄기가 우산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주 우아했다. 고급 청소기 광고 같았다. 하지만 물은 계속 밀려왔다. 바닥의 먼지, 접착 폼 찌꺼기, 내 피가 섞인 빗물, 낡은 배선 가루까지 한꺼번에 빨려 들어갔다.

우산 안쪽에서 낮은 진동음이 났다.

웅.

그 소리에 내 귀가 다시 열렸다.

[포화. 회수량 초과. 혈흔 샘플 7종. 섬유 샘플 12종. 보험 서류 잔류 마력 감지. D-17 관련 청구 묶음 식별. 하급 헌터 사망 보상금 일괄 처리. 공식 사망자 0명. 보험 청구 9건. 불일치. 불일치.]

나는 밸브를 붙잡은 채 웃음도 욕도 아닌 소리를 냈다.

"사망자 0명인데 보험금은 9건이라. 회계팀이 던전보다 무섭네."

사내가 움직였다. 물줄기 속에서도 전혀 미끄러지지 않았다. 우산은 한계에 가까웠지만, 놈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SD카드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표지판 아래 배선함에 가져다 댔다. 깨진 화면에 녹음 파형이 뛰고 있었다. 내가 중얼거린 숫자, 우산이 토해낸 잔향의 일부, 사이렌 사이로 섞인 협회 무전까지 전부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무전 소리가 옥상 스피커를 타고 갈라졌다.

[타격대 2조, 4층 C구역 유지. 옥상 접근 금지. 반복, 옥상 접근 금지.]

윤서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낯선 남자 목소리. 너무 침착했고, 너무 깨끗했다. 현장 무전에서 저렇게 깨끗한 목소리는 둘 중 하나다. 지휘실에 앉아 있거나, 이미 녹음된 명령이거나.

곧이어 아주 작은 잡음이 끼었다.

[...덮어쓰지 마. 3층 B에서 옥상으로—]

윤서하의 목소리였다. 반 박자 뒤, 누군가 그 위에 새 명령을 덮었다.

[4층 C구역 유지.]

나는 윤서하를 믿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몰랐다. 적어도 지금 누군가는 그녀의 명령을 지우고 있었다. 문제는 그걸 알려 주는 목소리마저 윤서하라는 점이었다.

믿음이 필요한 순간에 하필 증거가 제일 수상했다.

검은 우산 사내가 내 앞에 도착했다.

우산 끝이 내 손목을 때렸다. 손가락이 저절로 벌어졌다. SD카드가 바닥으로 튀었다.

나는 몸을 던졌다. 사내도 손을 뻗었다. 물웅덩이 위에서 우리가 동시에 미끄러졌다. 나는 멋있게 구르지 못했다. 그냥 젖은 빨래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그래도 손끝이 SD카드에 닿았다.

그 순간 사내의 구두가 내 손등을 밟았다.

뼈가 으드득했다.

"아악, 잠깐, 손은 생계 수단인데요!"

"샘플 확보."

그가 낮게 말했다.

우산 안쪽에서 얇은 금속 핀이 튀어나와 내 손등의 피를 찍었다. 피 한 방울이 빨려 들어갔다. 내 능력 샘플. 내 몸에서 강제로 떼어낸 증거.

나는 이를 악물고 휴대폰을 반대손으로 밀었다. 깨진 화면이 SD카드 옆을 스쳤다. 짧은 접촉. 자동 백업 앱이 살아 있다면 파일명 정도는 읽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못 읽었을 것이다.

인생은 늘 이렇다. 죽을 만큼 노력해도 결과창은 로딩 중이다.

사내가 SD카드를 집어 들었다.

나는 졌다.

완전히는 아니길 바랐다.

그때 옥상 전광 표지판이 마지막으로 번쩍였다. 소화전 물이 배선함 안으로 들어가며 스파크가 튀었다. 사내가 고개를 돌린 0.5초. 나는 몸을 굴려 환풍기 덮개를 걷어찼다. 녹슨 덮개가 반쯤 뜯겼다.

아래는 어둠이었다.

출구라기보다 건물의 식도 같았다.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옥상에도 출구가 없고, 인생에도 출구가 없으면 보통 덜 죽을 것 같은 구멍을 고른다.

나는 구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강도윤."

사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 대신 미끄러졌다.

환풍기 통로는 사람을 위해 만든 길이 아니었다. 팔꿈치가 벽에 갈리고, 무릎이 철판에 찍히고, 갈비뼈가 방금 전 콘크리트 바닥과 재회하자고 항의했다. 한 층, 또 한 층. 나는 먼지와 곰팡이와 내 욕설을 동반한 채 아래로 떨어졌다.

마지막에는 2층 화장실 천장 환풍구를 뚫고 세면대 위로 추락했다.

거울 속의 나는 훌륭했다. 피투성이에 젖은 생쥐 같았다. 그래도 살아 있었다. F급 치고 너무 오래 살아남은 놈이라는 평판은 오늘도 간신히 유지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켰다.

화면은 반쯤 죽어 있었다. 하지만 자동 백업 알림 하나가 떠 있었다.

`파일명 캐시 3개 저장됨.`

나는 숨을 멈추고 목록을 열었다.

`D17_temp_access_031745.log`

`insurance_batch_lower_rank_9cases.tmp`

그리고.

`감식반_윤서하_책상_월요일0317.mp4`

영상은 4초뿐이었다. 화면은 깨지고 소리는 없었다. 그래도 보였다.

어두운 감식반 사무실. 윤서하의 책상. 커피잔. 정리된 사건 파일. 그리고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낡은 출입증 하나.

윤서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출입증의 흠집을 알고 있었다. 플라스틱 오른쪽 아래가 깨져 있고, 사진 위에 커피 얼룩이 반달처럼 남아 있었다. 예전에 감식반 야근 중 문태식 팀장이 컵라면 국물을 엎었을 때 생긴 자국이었다.

내 전 상사.

문태식 팀장의 감식반 출입증이 윤서하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세면대에 기대어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숨이 샌 것에 가까웠다.

검은 우산은 SD카드를 가져갔다.

대신 나는 더 골치 아픈 이름을 주웠다.

작가의 말: 도윤은 SD카드를 잃었지만, D-17과 문태식이라는 더 위험한 단서를 손에 넣었습니다.

제목: 6화. 문태식 팀장의 출입증

바닥은 예상보다 딱딱했고, 내 척추는 그보다 훨씬 협조적이지 않았다.

쿵.

나는 은성주차타워 2층 남자 화장실 타일 바닥에 처박혔다. 옥상 환풍구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자유낙하의 낭만 같은 건 없었다. 녹슨 철판, 먼지, 곰팡이, 그리고 내 갈비뼈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만 있었다.

"으윽…… 반갑다, 2층 바닥아. 너도 3층 바닥 친척이냐."

입안에서 쇠 맛이 났다. 손등은 부어올랐고, 검은 우산 사내가 핀으로 찔러 간 자리에서는 피가 느리게 번졌다. 내 권능 샘플. 내 피 한 방울. 내 호흡과 성대 진동까지 모자라 이제는 혈액까지 가져갔다.

이 정도면 신체검사를 너무 열심히 하는 스토커였다.

나는 세면대를 붙잡고 일어났다. 거울 속의 남자는 처참했다.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었고, 헌터 점퍼는 찢어졌고, 얼굴에는 환풍구 먼지가 줄무늬처럼 묻어 있었다. 그래도 살아 있었다.

F급 헌터에게 생존은 늘 최고급 성과다. 인센티브는 없지만.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액정은 거미줄처럼 깨져 있었고, 오른쪽 아래는 아예 검게 죽어 있었다. 그래도 화면은 켜졌다.

`파일명 캐시 3개 저장됨.`

나는 피 묻은 엄지로 목록을 열었다.

`D17_temp_access_031745.log`

`insurance_batch_lower_rank_9cases.tmp`

`감식반_윤서하_책상_월요일0317.mp4`

SD카드는 빼앗겼다. 하지만 완전히 빈손은 아니었다. 지하철 막차를 놓쳤는데 편의점 도시락 할인쿠폰은 주운 기분이었다. 위로가 안 된다는 점에서 아주 정확한 비유였다.

나는 세 번째 파일을 눌렀다.

4초짜리 영상이었다. 어두운 감식반 사무실. 윤서하의 책상. 커피잔, 정리된 사건 파일, 모니터 밑에 붙은 노란 메모지. 그리고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낡은 출입증 하나.

사진 속 남자는 굳은 얼굴로 정면을 보고 있었다.

문태식.

내 전 상사. 감식반 팀장. 나를 협회에서 내보낸 사람.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 능력의 진짜 이름을 끝까지 보고하지 않은 사람.

"왜 거기 계십니까, 팀장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순간 깨진 액정이 귓속에서 바스락거렸다. 유리 조각들이 서로 긁히는 소리였다.

[원본 아님. 잘린 냄새. 앞뒤가 없다. 누군가 여기만 남겼다. 보라고 남겼다. 낚싯바늘이다. 삼키면 목에서 피 난다.]

나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미끼 백업.

영상은 우연히 남은 조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이 4초만 남겼다. 내 눈에 문태식 팀장의 출입증이 들어오도록. 원본은 따로 있고, 이건 나를 끌어당기는 갈고리였다.

좋다. 이제 사건이 친절하게 나를 죽이려고 손짓까지 한다.

밖에서 부츠 소리가 울렸다.

쾅, 쾅, 쾅.

주차타워 벽을 타고 협회 타격대의 무전이 번졌다.

[2층 화장실 쪽 낙하 흔적 확인.]

[대상 생포 우선. 저항 시 제압 허가.]

[블랙 가드 장비 회수팀과 동선 겹침. 식별 코드 확인 전 교전 금지.]

마지막 문장이 귀에 걸렸다.

블랙 가드 장비 회수팀.

협회 타격대 무전에 그 이름이 왜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지? 협회가 블랙 가드를 쫓는 건지, 같이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둘 다 모르는 척 같은 문을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지금 내 꼴로 저 사람들 앞에 나가면 나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현장 오염물로 분류된다.

나는 화장실 문 쪽으로 가다 멈췄다.

세면대 아래 배수구 주변에 희미한 붉은 얼룩이 있었다. 물로 여러 번 씻긴 피였다. 내 피는 아니었다. 너무 오래 식어 있었다.

거울이 낮게 중얼거렸다.

[검은 장갑. 차가운 물. 왼손 손등 절상. 씻어도 안 지워짐. 20분 전. 옥상 진입 전. "먼저 온 놈이 있었다." "도윤 오기 전에 치워." 물 더 틀어. 더.]

나는 숨을 멈췄다.

검은 우산 사내가 여기서 피를 씻었다. 그런데 그 피가 자기 것인지,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더 거슬리는 건 말이었다.

먼저 온 놈이 있었다.

나 말고 누가 은성주차타워에 왔다는 뜻이다. 이민재는 이미 죽었다. 윤서하는 현장에 없다고 했다. 문태식? 아니면 보험금 파일 속 살아 있는 사망자?

복도 쪽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세면대 아래 청소도구함을 열었다. 걸레, 락스, 고무장갑, 그리고 오래된 청소업체 유니폼 조끼 하나. 이런 순간에 청소도구함을 뒤지는 내 인생이 싫었지만, 덕분에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조끼를 걸치고 대걸레를 들었다. 피 묻은 얼굴은 수도꼭지 물로 대충 문질렀다. 더러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종류가 바뀌었다. 청소부로 위장하기에는 훌륭했다. 헌터로 위장하기에는 원래도 별로였으니 손해는 없었다.

문을 열자 타격대 둘이 복도 끝을 지나갔다. 검은 방탄복, 협회 마크, 하지만 오른쪽 어깨에는 낯선 은색 클립이 꽂혀 있었다. 블랙 가드 장비에서 본 것과 비슷한 광택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반대편 비상계단으로 걸었다.

"거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심장이 뒤통수로 튀어나올 뻔했다.

"청소 인력은 통제 전에 빠져나가라고 했잖아."

나는 대걸레를 더 세게 쥐었다.

"죄송합니다. 2층 남자 화장실이…… 말로 하기 힘든 상태라서요."

대원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무전기를 누르며 지나쳤다.

"하긴 오늘은 건물 전체가 말로 하기 힘들지. 나가."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층, 반 층, 다시 주차장 옆 환기구.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을 때 손등이 찢어져 다시 피가 났다. 그래도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은성주차타워는 뒤에서 번쩍이는 경광등에 갇혀 있었다. 나는 골목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

윤서하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

"살아 있어요?"

"오늘 들어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요. 기능은 몇 개 꺼졌는데 본체는 켜져 있습니다."

"그 출입증 봤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봤다면 절대 협회 서버에 올리지 마요. 영상도, 캐시 파일도, 특히 insurance라고 붙은 파일도."

"윤서하 씨 책상 위에 문태식 팀장님 출입증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 설명부터 듣고 싶은데요."

수화기 너머에서 숨이 흔들렸다.

"설명하면 도윤 씨가 더 위험해져요."

"지금은 안전해서 통화 중인 줄 아십니까?"

"그 출입증은 원래 제 책상 서랍 안에 있었어요. 팀장님이 실종되기 전에 맡긴 겁니다. 누가 꺼냈는지 몰라요. 저는 아니에요."

믿고 싶었다.

그래서 더 믿기 힘들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문태식 팀장이 떠올랐다. 감식반 야근실에서 컵라면을 먹던 뒷모습. 내가 처음 잔향청취라는 말을 입 밖에 냈을 때, 그는 딱 한 번 나를 오래 봤다.

그다음 날 그는 내 능력 기록을 `F급 육감 증폭`으로 낮춰 적었다.

일주일 뒤에는 나를 감식반에서 내보냈다.

"넌 여기 오래 있으면 죽는다. 나가서 현장 정리나 해."

그때는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모욕이었을 수도 있고, 대피 명령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둘 다 문태식다운 방식이라는 점이다. 사람을 아끼는 척도 안 하고, 설명도 안 하고, 나중에 알아서 원망하라는 식.

"도윤 씨."

윤서하가 말했다.

"문 팀장님을 너무 믿지는 마요. 하지만 완전히 버리지도 마요. 그분이 남긴 게 우리를 살릴 수도 있어요."

"우리요?"

"……끊을게요. 추적 붙었어요. 반가온 씨한테 가요. 협회 밖에서 파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에요."

통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반가온.

던전 부산물 감정사. 사람보다 물건을 믿고, 의리보다 수수료를 사랑하는 남자. 성격은 폐던전 곰팡이 같지만 실력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회 서버에 빚진 게 없었다.

나는 깨진 액정에 메시지를 쳤다.

[은성주차타워 캐시 3개. 감정 가능? D17, insurance, 문태식 출입증 영상. 급함.]

곧바로 답장이 왔다.

[급하면 비싸다.]

[살려 주면 외상 가능?]

[죽으면 못 받잖아. 선입금.]

나는 욕을 삼키고 10만 세라를 보냈다. 월세 통장에 있던 돈이었다. 이번 달 집주인에게는 던전 미스터리가 월세를 잡아먹었다고 설명해야겠다. 설득력은 없지만 사실이었다.

반가온의 답은 7분 뒤에 왔다.

[파일명 캐시만 봐도 냄새가 이상하다. insurance_batch_lower_rank_9cases.tmp 이거, 사망자 9명 보상 묶음 맞아. 근데 서로 다른 사고가 아니야. 같은 날짜 처리다.]

나는 골목 벽을 짚었다.

[그리고 하나 더. 9명 중 1명은 협회 등록부에서 아직 생존 상태야. 사망 보상 대기인데 생존. 이런 멍청한 오류는 보통 실수가 아니라 숨겨 둔 문이다.]

살아 있는 사망자.

D-17 공식 사망자 0명. 보험금 청구 9건. 그중 1명은 아직 살아 있음.

퍼즐이 맞춰지는 게 아니라, 퍼즐 상자가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파일 이야기를 물었다.

[문태식 출입증 영상은?]

이번에는 답장이 조금 늦었다.

[미끼 백업 맞다. 원본에서 윤서하 책상 부분만 잘랐어. 그리고 출입증 이미지에 남은 메타 잔류가 이상해.]

[뭐가?]

[문태식 팀장 실종이라며.]

나는 손가락을 멈췄다.

[그 사람, 오늘 새벽 D-17 출입자 명단에 살아 있는 이름으로 찍혔어.]

골목 끝에서 협회 사이렌이 다시 울렸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오래 봤다. 문태식 팀장의 낡은 출입증, 윤서하의 책상, 살아 있는 사망자, 그리고 오늘 새벽 D-17.

죽은 줄 알았던 이름이 문을 열고 있었다.

작가의 말: 도윤은 문태식의 출입증이 과거의 유품이 아니라 현재의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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