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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화. 대체명 승인 대기 일러스트

22-23화. 대체명 승인 대기

제목: 22화. 아직 내 것이 아닌 이름

"그 이름, 아직 네 거예요?"

여자가 물었다. 윤서하의 얼굴, 윤서하의 목소리, 하지만 윤서하가 아닌 무언가.

그녀의 질문은 멸균실의 독기보다 차가웠고, 검은 우산의 그림자보다 짙었다.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내 이름. 세 글자. 강도윤.

"강, 도… 윤."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소리는 내 귀에도 낯설었다. '도'에서 '윤'으로 넘어가는 찰나, 혀뿌리가 꼬이고 목구멍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치 내 입이 그 이름을 발음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아니, 더 정확히는 내 것이 아닌 무거운 무언가를 억지로 뱉어내는 기분이었다.

입 안에서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예컨대, 하진… 지… 그 겹쳐진 번호표의 잔향처럼.

여자의 검은 눈동자가 내 손목에 묶인 KDY 태그를 향했다. 태그는 여전히 미친 듯이 점멸하며 'K… D… Y…'를 헐떡이고 있었다.

"흐릿하네. 이름이 지워지고 있어.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완전히 찍히지 않았거나."

여자는 피 묻은 사냥용 나이프를 금속 테이블 위에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탁, 탁, 탁.

금속음과 함께 나이프의 잔향이 내 고막을 때렸다.

[비릿해. 아주 비릿해. 이봐, 거기 두 사람. 내 위에서 피 흘리려면 최소한 예약은 하고 오란 말이야. S급 대기실 격리 구역 규칙 제1조. 예약을 지킬 것. 하지만 예약을 지키지 않은 건 저 여자지.]

나이프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 속에 뼈가 있었다. 예약을 지키지 않은 여자.

"당신 누구야. 윤서하는 어디 있어?"

한지율이 내 앞을 막아서며 으르렁거렸다. 다친 어깨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여자는 한지율을 보더니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한지… 아니, 지율. 여전하네. 그 미지근한 정의감은."

"입 닥쳐. 서하 언니 얼굴로 그따위로 말하지 마."

"언니?"

여자의 미소가 짙어졌다.

"재미있네. 넌 그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잖아. 안 그래, 'HJY'?"

한지율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HJY'라는 글자를 들었을 때, 태그의 흐림보다 더 깊은 균열을 보였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나는 그녀가 '하진…'이나 '한지…' 같은 이름을 뱉으려다 필사적으로 삼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방 안을 둘러봤다. S급 대기실의 비밀 정비 통로를 통해 들어온 이곳은, 격리실처럼 보였다. 차가운 금속 벽, 벽 한쪽에 박힌 관찰창, 그리고 7번 태그 보관함과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장치들. 방은 비정상적으로 깨끗했다. 세탁실의 멸균 프로토콜이 이곳만은 닿지 않았다는 듯, 물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공기만은, 살인 현장의 그것처럼 차갑고 묵직했다.

탁.

여자가 나이프를 멈추고 나를 보았다.

"강도윤. 맞지? 네 이름을 기억하는 건, 네 KDY 태그가 아직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야. 흐릿해도 작동은 하니까. 하지만 곧 멈출 거야. 이름은 완전히 뭉개질 거고, 넌… 그 누구도 아니게 되겠지."

그녀의 말은 예언 같았다. 내 손목의 KDY 태그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K...D...'를 한 번 더 점멸했다.

"거래를 제안할게. 강도윤."

"거래?"

나는 건조하게 물었다.

"KDY 태그를 임시로 안정화해 줄게. 네 이름을 최소한의 정체성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 줄게. 네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대가로 뭘 원하는데?"

"방금 네가 열어버린 YSH 잔향의 일부."

여자가 검은 우산의 손잡이를, 그러니까 우리가 방금 조작했던 그 스위치를 가리켰다.

"네가 그 통로를 열면서, YSH의 잔향이 이 방으로 흘러들었어. 그것을 내게 넘겨. 그러면 넌 네 이름을 지킬 수 있어."

여자의 제안은 달콤했다. 나는 내 이름이 뭉개지는 공포를 이미 겪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제안이 뭘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YSH의 잔향을 넘긴다. 그것은 윤서하를 구하는 선택일 수도, 아니면 그녀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선택일 수도 있었다.

"그 거래 받으면 안 돼요."

한지율이 다친 어깨를 붙잡고 내 손목을 꽉 쥐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왜?"

"그냥… 그냥 안 돼요. 저 여자, 윤서하가 아니에요. 저 여자가 하는 거래는… 위험해요."

한지율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원본은 둘이면 안 된다.]

갑자기 금속 테이블이 흘렸다. 나이프가 아니라, 테이블 자체가 과거의 대화를 기억해 냈다.

[호흡 하나를 지워. 그게 규칙이야.]

[문태식 코드는 빌린 거야. 돌려줘야 해. 하지만 이 호흡은… 지워야 해.]

목소리는 겹치고 뭉개져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태식, 코드를 빌렸다는 단서. 그가 이 모든 일의 배후인지, 아니면 이 격리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조력자인지, 여전히 확정할 수 없었다.

쿠웅!

방 밖에서 무거운 진동이 느껴졌다. BG-04. 세탁실 붕괴를 추적해 이 격리실 문 밖까지 온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 강도윤. 선택해. 네 이름을 지킬 건가, 아니면 저 여자의 말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건가?"

검은 눈의 여자가 나를 몰아붙였다. 문 밖에서 봉인 도구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지직, 철컥. 방 안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조명이 비상용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BG-04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손목의 KDY 태그를 보았다. '...K...' 마지막 불빛마저 꺼지려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이,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려는 찰나였다.

한지율의 손이 여전히 내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 속에서 나는 내 이름의 잔영을 보았다.

"당신 거래, 비틀어 주지."

나는 검은 눈의 여자를 보며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면 대개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미쳤거나, 이미 반쯤 죽었거나.

"내 이름은 내가 지켜. YSH 잔향? 그건 당신이 가져. 하지만 그 대가로 당신도 내 태그를 안정화해야 할 거야. 내가 네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내 말에 여자의 검은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떨렸다. 그녀는 내가 내 이름을 지키는 것보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재미있네."

여자가 나이프를 허공에 휘둘렀다. 붉은색 조명 아래, 나이프의 피가 공중에서 원을 그리더니 내 KDY 태그 위로 떨어졌다.

치익!

태그에 피가 닿는 순간, KDY 문자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K… D… Y…'가 'Y… S… H…'와 겹쳐졌다가, 다시 'KDY'로 뭉쳐졌다.

검은 눈의 여자가 YSH 잔향을 흡수하듯, 격리실의 차가운 공기가 그녀에게 빨려 들어갔다.

철컥.

방 문이 열렸다. BG-04가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며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한지율을 끌어당기며 문 밖으로 뛰었다. 손목의 KDY 태그가 다시 안정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성공했나?"

나는 태그 화면을 확인했다. 'KDY'라는 문자가 명확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아래, 이전에 없던 새로운 보조명이 뜨고 있었다.

[KDY-대체명 승인 대기]

그 문구를 본 순간, 나는 내 이름이 여전히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체명'이라는 단어가, HJY보다 더 위험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작가의 말: 도윤아, 네 이름은 도대체 누가 지어준 거니? 그리고 그 '대체명'은… 쉿.

제목: 23화. 대체명 승인 대기

[KDY - 대체명 승인 대기]

내 홀로그램 태그 위에 뜬 문구는, 마치 카드사에서 온 '한도 초과 대기' 문자처럼 건조하고, 동시에 내 연봉 전체를 압류하겠다는 통지서처럼 무거웠다. 검은 눈의 여자, 그 '윤서하'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내 태그를 만진 순간, 내 이름은 '안정'된 게 아니었다.

'대체(代替)'.

그건 내 '강도윤'이라는 이름 위에 다른 이름을 덧씌우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시스템이 나를 '강도윤'으로 인식하기를 멈추고, 더 적합한 다른 이름—아마도 YSH 계열의 무언가—으로 분류하기 전에 뜨는 대기 상태. 나는 내 이름이 내 몸에서 서서히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다, 증발해버릴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노려봤다. 내 목소리가 낯설게 울렸다. '강도윤'이라는 세 글자를 발음할 때마다 입안에 모래가 씹히는 것 같았다.

검은 눈의 여자는 피 묻은 나이프를 검지로 톡톡 치며, 기묘하게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안정화라고 했잖아요. 'KDY'라는 그 불안정한 껍데기가 터지지 않게, 더 튼튼한 '이름'으로 갈아끼우기 위한 사전 작업. 고마워해야 할 텐데? 그대로 뒀으면 넌 5분 안에 네 이름의 파편에 찔려 죽었어."

"내가... 내 이름으로 죽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소리치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네가 '강도윤'으로 죽으면, 내가 가질 YSH 잔향의 가치가 떨어지거든. 원본이 완전히 지워지기 전까진, 대체명도 완벽할 수 없으니까."

그녀는 마치 주식 시장의 동향을 논하듯 담담하게 내 존재의 소멸을 이야기했다.

그때, 격리실의 육중한 금속 문이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비틀렸다.

콰아앙!

문이 부서지듯 열리고, 그 사이로 BG-04의 요원들이 아닌, 다른 형체가 밀고 들어왔다. 그것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피부 대신 매끄럽고 차가운 강화 플라스틱과 금속 관절로 이루어진 'S급 대기실 전용 자동 방호 유닛'이었다. 마치 검은색 전신 타이즈를 입은 마네킹처럼 생겼지만, 그들의 손에는 무기 대신 기묘한 형태의 억제장 발생기와 태그 스캐너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이 좁은 격리실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진공으로 만들어버릴 듯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이 딛는 문턱과 바닥에서 낡고 짓눌린 잔향이 터져 나왔다.

『—규정 위반 개체 확인. 분류: 미식별/오염된 KDY.』

『—절차 개시. 대상의 존재 정의를 거부함.』

『—대체명 부여 승인 대기 상태. 즉시 승인 절차로 이행.』

방호 유닛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기계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기괴한 법정의 판결 같은 단호함이 있었다. 그들은 폭력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정리'하고, 시스템이 정한 '이름'의 틀 안에 나를 처박으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이번엔 또 뭐야."

나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섰다. 내 어깨를 짚고 있던 한지율이 내 태그 화면을 보고는, 숨을 헐떡이며 경악했다.

"안 돼... 그 문구가 뜨면 안 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녀의 부상당한 어깨에서 피가 배어 나와 내 셔츠를 적셨다.

"지율아, 이게 무슨 뜻인지 알면 설명해! 대체명이 승인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다급하게 물었지만, 한지율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도윤아, 절대로 승인받으면 안 돼. 그 이름이 네가 되는 순간, 너는... 너는 더 이상 '너'로 존재할 수 없어. 기록상으로만 존재하는 '과거의 유령'이 될 거야."

그녀는 여전히 핵심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진심이었다.

검은 눈의 여자는 방호 유닛들을 보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나이프를 집어 들고는, 방호 유닛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머, 시스템의 청소부들이 왔네. 내가 잠시 빌린 코드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그녀는 문태식의 코드를 이용해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다. 방호 유닛들은 그녀를 향해 스캐너를 들이댔다.

『—위반 개체 2 확인. 코드: 문태식(위조). 분류: YSH-02(불일치).』

『—YSH-02는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다. 즉시 격리 및 소거.』

방호 유닛 중 하나가 그녀에게 억제장을 발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프를 가볍게 휘둘러 억제장의 에너지를 갈라버렸다. 그리고는 오히려 방호 유닛의 몸체에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나는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이건 뭐니?"

그녀가 비웃으며 나이프를 비틀자, 방호 유닛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녀는 방호 유닛들과 싸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내 태그 위에 뜬 YSH 잔향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녀는 방호 유닛을 이용해 YSH 잔향을 '정제'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이름의 주권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었다.

내 안의 '강도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내 태그를 꽉 쥐고, 그 위에 새겨진 'KDY'를, 내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나는 강도윤이다. 강도윤. 강도윤...!"

하지만 시스템은 내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 태그 화면은 마치 고장 난 민원창구처럼 '승인 대기' 문구를 깜빡거리며, 내 이름을 '대체명 후보 1번'으로 분류하려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좁은 격리실에서 나가야 한다. 이곳은 그녀의 영역이고, 방호 유닛들의 사냥터였다. 나는 한지율의 허리를 부축하고, 방호 유닛 중 하나가 검은 눈의 여자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격리실 문으로 달렸다.

"가자! 보관함 7번까지 가야 해!"

내가 소리쳤다. 한지율은 고통을 참으며 나를 따랐다. 보관함 7번. 그곳이 이 지옥 같은 격리실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이자, YSH 원본 태그의 진실이 숨겨진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YSH 원본을 직접 확인해야, 내 이름의 소유권을 다시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내 잔향! 어디 가!"

검은 눈의 여자가 우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녀가 나이프를 던지려 했지만, 고장 났던 방호 유닛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위반 개체 소거 절차 2단계 개시.』

우리는 그 혼란을 틈타 세탁실 점검구를 빠져나와 S급 대기실의 본 구역으로 달려갔다.

대기실은 겉보기엔 평화로웠지만, 내 눈엔 이미 균열이 가고 있었다. 시스템의 '대체명 승인' 절차가 진행될수록, 내 존재가 이 공간에서 튕겨져 나가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이 흐물거리는 것 같았고, 공기는 내 숨통을 조여왔다.

내 태그는 여전히 'KDY - 대체명 승인 대기'를 깜빡거리며 나를 압박했다. 대체명이 승인되기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나를 증명해야 했다. 내 이름이 '강도윤'이라는 것을, 이 시스템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게, 내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했다.

문득, 내 바지 주머니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손에 잡히는 것을 꺼냈다. 그건 퇴근할 때 찍었던 사원증 카드와, 편의점에서 샀던 싸구려 캔커피 영수증, 그리고 몇 개의 낡은 동전이었다.

이것들은 윤서하의 기억 조각도, 문태식의 코드도, 한지율의 숨겨진 과거도 아니었다. 이건 온전히 내 것, '강도윤'이라는 보잘것없는 소시민의 하루를 증명하는 아주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생활 잔향이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찌든 커피 냄새, 부장에게 갈굼 당하고 편의점에서 샀던 영수증의 잔열,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의 피로가 배어 있는 내 사원증.

나는 그 잔향들을 내 태그 위에 쏟아부었다.

"나는... 이런 구질구질한 것들로 이루어진 강도윤이다! 시스템 따위가 정해준 이름으로 갈아탈 생각 없어!"

내가 외치자, 내 주머니 속 잔향들이 태그에 스며들었다. 순간, '대체명 승인 대기' 문구가 멈칫하며 깜빡거림이 느려졌다. 내 몸을 감돌던 이질적인 YSH 잔향이 아주 잠깐, 내 생활 잔향에 눌려 약해졌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벌었다. 내 이름의 소유권을 온전히 되찾기 전까지, 이 사소한 잔향들이 나를 '강도윤'으로 임시 고정해줄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S급 대기실 7번 보관함 앞에 도착했다.

"여기야... 이 안에..."

한지율이 숨을 헐떡이며 보관함을 가리켰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7번 보관함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YSH 원본 태그도, 사냥용 나이프도, 검은 눈의 여자의 흔적도 없었다.

"어...?"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보관함 안쪽 벽에는, 'YSH'가 아닌 낡고 녹슨 'KDY' 라벨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보관함의 어둠 속에서, 아주 익숙한, 하지만 동시에 기괴하게 뒤틀린... 바로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야? 내... 내 이름을 돌려줘."

그건 내 목소리였지만, 내가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보관함 안에, 내가 갇혀 있었다.

작가의 말: 가끔은 내 이름이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죠. 퇴근 후엔 특히나... 도윤이의 이름 찾기, 쉽지 않네요. 다음 화에서는 보관함 안의 목소리를 따라갑니다.

작가의 말

도윤의 이름은 잠시 고정됐지만, 7번 보관함 안쪽에서 또 다른 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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