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53화. 결석자 명단과 네 번째 이름
제목: 52-53화. 결석자 명단과 네 번째 이름
제목: 52화. 살아 있는 결석자 명단
내 손바닥에 닿은 윤서하의 손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A급 헌터다운 단단하고 서늘한 체온이었겠지만, 지금 내게 느껴지는 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박동뿐이었다. 시야 전면에 떠오른 시스템 창은 잔인할 정도로 선명했다.
[검은 우산 보관함: 살아 있는 결석자 명단]
[3. 윤서하 (A급 헌터, 제1공격팀장, 現 목격자 및 공동 증언자)]
그녀의 이름 아래로 검은 연기 같은 잔향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짐승의 혀처럼 윤서하라는 글자를 핥으며, 그녀의 존재를 명단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손을 놓아야 할까.
본능적인 경고음이 뇌를 때렸다. 방금 전까지 내 이름을 고정해주던 그녀의 손이, 이제는 나를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닻이 될 수도 있었다. 시스템은 공평했다. 내가 누군가를 구하려 할 때마다 내 이름의 일부를 갉아먹더니, 이제는 내 곁의 동료를 명단에 올리는 방식으로 ‘비용’을 청구하고 있었다.
“……강도윤 씨?”
윤서하가 나를 불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죽은 자들과 나란히, 혹은 그보다 더 기괴한 분류명 아래 놓여 있는 장면을.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이름 태그가 더 이상 침식되지 않게 하려는 듯,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이거, 제 이름 맞죠? 그런데 왜…….”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나 또한 입술을 깨물었다. 협회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팀장님이라도, 자신의 인사기록 카드가 영정 사진함에 들어 있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하면 제정신이기 힘들 것이다.
나는 공포를 누르기 위해 억지로 뇌 가동률을 높였다. 헌터 협회 행정망에서도 이런 황당한 오류는 본 적이 없다. 아니, 이건 오류가 아니라 ‘수정된 진실’이다.
“놓지 마세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갈라져 나왔다.
“이 명단, 그냥 죽은 사람들 리스트가 아닙니다. 문태식 씨가 남긴 기록이에요. 그 양반, 자기 죽음도 서류상으로 몇 번이나 조작했던 인간입니다. 이건…….”
나는 명단 위로 손을 뻗어 잔향을 훑었다.
[살아 있는 결석자 명단]
글자 위로 흐르는 차가운 감각. 그것은 죽음의 악취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숨기려 할 때 발생하는, 눅눅한 지하실의 곰팡이 냄새와 닮아 있었다.
“기록에서 빠져야만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의 대피소 같은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차가웠다. 대피소라고 하기엔 명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이 너무나도 거대했으니까.
나는 명단의 윗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1. 이현우 (C급 헌터, 첫 번째 생존자, 관측 불가 대상)]
[2. 한지율 (04번 결석자, 7년 전 유실 기록, 재구성된 인격)]
한지율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04번. 아까 시스템 트랩이 그녀를 끌고 가려 했던 그 번호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 옆에 붙은 ‘재구성된 인격’이라는 문구를 넋이 나간 듯 응시했다. 자신이 진짜 한지율인지, 아니면 그저 그 이름을 덧씌운 무언가인지에 대한 공포가 그녀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세 번째 줄이었다.
[3. 윤서하 (제1공격팀장, 출석 예외자, ‘윤’의 직계 보관물)]
‘출석 예외자’라는 단어 위에 마우스를 올리듯 손가락을 갖다 대자, 시스템이 상세 설명을 뱉어냈다.
[사유: 원본 데이터 오염 방지를 위한 행정적 격리. 7년 전 기록 열람실 폐쇄 당시 ‘결석’ 상태로 유지됨.]
“출석 예외……?”
윤서하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7년 전에도, 그 후로도 계속 협회에 출근했어요. 한 번도 결석한 적 없고, 기록상으로도 저는…….”
“윤 팀장님 본인은 그랬겠죠. 하지만 시스템은 다르게 말하고 있네요.”
나는 그녀의 태그 주위로 피어오르는 검은 우산의 잔향에 집중했다.
이건 일종의 인사 비리다. 그것도 아주 고위직이 개입된, 국가급 서류 조작.
현대 사회에서 서류상 죽은 사람이 실존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실존하는 사람이 서류상 ‘존재해서는 안 되는 상태’로 방치되는 것이다.
협회 헌터들이 연장 근무 수당 청구할 때마다 ‘예산 초과’라며 반려하던 그 깐깐한 행정 시스템이, 유독 윤서하 한 명의 존재는 유령처럼 처리해두었다?
그때였다.
윤서하의 이름 태그에서 날카로운 잡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었다. [잔향청취]가 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리며 과거의 파편을 끌어올렸다.
― 서하는 출석시키지 마.
서늘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윤서하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낮고, 권위가 서려 있는,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비장한 음성.
― 저 아이는 결석으로 남아야 살아.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그것’이 이름을 훔치러 올 거야.
목소리는 윤서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이라는 성을 공유하는 누군가, 혹은 이 명단에 접근할 수 있었던 최고위 서명권자의 목소리였다.
― 모든 기록에서 지워. 윤서하는 존재하지 않는 헌터여야 해. 7년 전 그날처럼…….
“윽!”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신음이 터졌다. 이름 침식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잔향을 파고든 대가였다.
“강도윤 씨! 괜찮아요?”
윤서하가 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보호 아래 기록상 ‘결석자’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 대가로 지금까지 A급 헌터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는 사실도.
“……팀장님, 혹시 집안 어른 중에 협회 고위직에 계셨던 분 있습니까?”
“저희 가문은 대대로 협회와 협력 관계였지만, 7년 전 사고 이후로는 대부분 은퇴하셨어요. 왜 그러시죠?”
“아뇨, 그냥……. 팀장님 인사고과가 왜 그렇게 좋았나 싶어서요. 유령 사원이라 세금도 안 냈을 텐데.”
나는 농담을 던지며 식은땀을 닦았다. 공포를 덮기엔 형편없는 농담이었지만,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밀쳐내고 도망치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녀의 이름 옆에 피어오르는 검은 우산의 잔향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이건 보호인 동시에 감시였다.
그때, 명단이 번쩍이며 새로운 팝업창을 띄웠다.
[! 경고: 공동 증언자 ‘윤서하’의 원본 확인 절차가 시작됩니다.]
[현재 상태: 결석(Absent)]
[선택하십시오.]
[1. 출석 처리(Attendance): 현재의 A급 헌터 신분을 공식 기록과 동기화합니다. (주의: 검은 우산의 추적 허용)]
[2. 결석 유지(Remain Absent): 존재의 불확실성을 유지하며 보호 상태를 지속합니다. (주의: 현재 신분 및 권한 일부가 무효화될 수 있음)]
시스템이 윤서하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건 함정이다.
‘출석’을 하면 그녀는 공식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되겠지만, 동시에 검은 우산이 이름을 훔쳐갈 수 있는 타깃이 된다. 반대로 ‘결석’을 유지하면 그녀는 지금 누리고 있는 A급 헌터로서의 힘과 지위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협회 ID 카드가 먹통이 되고, 게이트 출입이 거부되며, 최악의 경우 동료들의 기억 속에서도 ‘결석자’로 분류되어 잊힐 수 있다는 뜻이다.
“서하 언니…….”
한지율이 불안한 듯 윤서하의 옷자락을 잡았다. 한지율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04번으로 불리며 존재가 흐릿해졌을 때 느꼈던 그 지독한 소외감을.
윤서하의 눈이 선택지 위에서 머물렀다. 그녀는 제1공격팀장이다.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온 여자다. 그런 그녀에게 ‘존재의 무효화’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일 것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출석 처리’ 쪽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나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강도윤 씨, 이건 제 문제예요. 제가 출석을 해야 당신들의 증언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고…….”
“팀장님이 출석하는 순간, 이 명단은 보호 명단이 아니라 사냥 명단으로 바뀝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명단의 빈칸을 노려보았다. [잔향청취]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뇌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문태식이 이 명단을 ‘보관함’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내 시야 속에서 명단의 네 번째 줄,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빈칸 너머로 문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다층 잔향이 아니라, 아주 또렷한 유언이었다.
―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만, 빈칸은 진실을 말하지.
나는 명단의 여백을 손가락으로 긁어내듯 훑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글자들이 피처럼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스템이 제시한 선택지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규칙이었다.
[보호 규칙 제3조]
[세 번째 이름이 출석하면, 네 번째 이름이 죽는다.]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 번째 이름은 윤서하다.
그렇다면 네 번째 이름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네 번째 줄의 잔향을 벗겨냈다. 검은 연기가 걷히고, 거기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름의 첫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4. 반……]
반.
그 한 글자가 떠오르는 순간, 윤서하의 손이 내 손 안에서 굳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름 하나가, 이 심사실 안의 모든 선택지를 죽음 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제목: 53화. 네 번째 이름의 첫 글자
“누르지 마세요.”
내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형편없이 갈라졌다. 하지만 손아귀에 준 힘만큼은 필사적이었다. 윤서하의 손가락이 ‘출석 처리’ 버튼의 문턱에서 멈췄다.
시야가 번쩍였다. 시스템 창의 네 번째 줄,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칸에 새겨진 그 한 글자가 내 망막을 난도질했다.
[4. 반……]
반.
이 바닥에서 흔치 않은 성씨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은 단 하나뿐이었다.
병실의 서늘한 공기, 코끝을 찌르는 독한 소독약 냄새.
낡은 감정사 작업대 위에서 나던 매캐한 금속 가루의 향.
그리고 내가 매일같이 마시던 싸구려 믹스커피의 들큰하고 텁텁한 잔향까지.
그 모든 감각이 [잔향청취]를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름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 빈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궤적은 명확하게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면 명단이 확정될 것 같아, 나는 혀끝에서 삼켰다.
내가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지금은 생사조차 불분명한 나의 조수.
“강도윤 씨, 이거 놔요! 지금 안 누르면 기록이 영구 결손될 수도 있어요!”
윤서하가 내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녀의 눈에는 당혹감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녀에게 이건 단순한 클릭 한 번의 문제가 아니다. A급 헌터로서 쌓아온 7년의 세월, 제1공격팀장이라는 명예, 그리고 ‘윤서하’라는 인간이 사회에서 증명받아온 모든 유효기간이 이 버튼 하나에 달려 있었다.
“팀장님, 제발.”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기 써 있잖아요. 세 번째가 출석하면, 네 번째가 죽는다고.”
윤서하의 시선이 다시 명단으로 향했다.
[3. 윤서하 (출석 예외자)]
[4. 반……]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 역시 ‘반’이라는 글자에서 누군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가온 군…… 말인가요?”
옆에서 숨죽이고 있던 한지율이 낮은 비명을 내뱉었다. 그녀는 줄곧 반가온을 의심해 왔다. 7년 전 사건의 생존자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하지만 정작 그 소년의 이름이 ‘사망 확정’의 칸에 오르려 하자, 그녀의 얼굴도 종잇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럴 리가요. 시스템이 어떻게 실시간으로 사람 목숨을…….”
“이 시스템, 협회 행정망보다 더 지독한 놈입니다. 서류상으로 죽여놓고 실제로 숨통을 끊는 건 이 바닥 특기잖아요.”
나는 억지로 냉소를 흘리며 뇌를 굴렸다.
지금 윤서하가 ‘출석’을 누르면 공식 기록은 복구되지만, 그 애는 ‘사망자’로 확정되어 검은 우산의 제물이 된다.
반대로 ‘결석’을 유지하면 그 애는 살겠지만, 윤서하는 헌터로서의 모든 권한을 상실하고 유령이 된다.
어느 쪽도 답이 아니다.
이건 악질적인 인사팀장이 퇴사하려는 직원에게 ‘사표 쓸래, 아니면 후임자 길막 할래?’라고 묻는 것보다 더 저질스러운 이지선다였다.
윤서하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방황했다. 그녀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명예보다 타인의 목숨을 앞에 두고 진심으로 고뇌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자비가 없다.
[! 경고: 결정 시간이 30초 남았습니다.]
[미결정 시 ‘강제 결석’ 처리되며, 공동 증언자 전원의 존재 지수가 하락합니다.]
“도윤 씨, 어떡하죠? 전…… 제가 유령이 되는 건 상관없지만, 팀장 자리를 잃으면 제 아래 팀원들은요? 그리고 우리가 쫓던 진실은 누가…….”
윤서하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맞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제1공격팀이라는 거대 조직의 수장이다. 그녀가 무너지면 그녀를 믿고 따르던 수십 명의 헌터와 그들이 관리하던 게이트 방어선이 통째로 흔들린다.
검은 우산은 이 점을 노린 것이다.
개인의 양심과 집단의 안녕을 저울질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잔인한 공격.
나는 침식되어가는 내 손등을 보았다. 이름의 일부가 지워진 자리가 화끈거렸다.
행정직의 마인드로 생각하자.
규정이 있으면 예외가 있고, 절차가 있으면 꼼수가 있다.
“팀장님, 지금 본인이 ‘단독’ 출석 대상이라고 생각합니까?”
“네? 그게 무슨…….”
“아까 시스템이 말했잖아요. 당신은 지금 ‘공동 증언자’로 등록되어 있다고.”
나는 명단 옆에 떠 있는 작은 ‘공동 증언’ 탭을 가리켰다.
“대학교 조별 과제 할 때, 한 명이라도 승인 안 하면 제출 안 되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겁니다.”
나는 시스템 창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잔향청취]를 극대화했다. 문태식이 남긴 이 명단은 완벽한 폐쇄 회로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후배들을 위해 ‘반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선배였다.
나는 명단의 결정창이 아니라, 그 하단의 ‘행정 처리 상태’를 노려보았다.
“윤서하 팀장은 현재 강도윤, 한지율, 이현우와 함께 ‘원본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인 공동 증언자입니다. 따라서 단독 신분 동기화는 절차상 오류입니다.”
허공에 대고 외쳤다. 시스템은 반응이 없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뇌 속의 온갖 행정 용어를 끄집어냈다.
“증언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제 신분 처리는 기록 오염의 우려가 있으므로, 본 건을 ‘보류(Pending)’ 상태로 전환할 것을 청구합니다! 근거는 협회 기록 관리 규정 제12조, 미결 기록의 잠정 보존 규칙!”
지어낸 규정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지배하는 문태식의 잔향은 ‘행정’이라는 논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웅―!
녹음실 전체가 진동했다. 시스템 창의 타이머가 멈췄다.
[검토 중……]
[공동 증언자의 상태 불일치 감지.]
[단독 출석 처리를 보류하고, 임시 보호 상태를 연장합니다.]
“……살았다.”
나는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윤서하 역시 긴장이 풀린 듯 벽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보류…… 그런 게 가능했나요?”
“시스템도 결국 서류 작업의 연장선이니까요. 결재권자가 애매하면 보류시키는 게 상책이죠.”
하지만 공짜는 없었다.
멈춰버린 시스템 창 너머로, 네 번째 이름의 빈칸이 다시 한번 일렁였다.
[보류 승인 대가로, 네 번째 이름의 확정 지수를 일부 공개합니다.]
글자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4. 반가……]
‘온’이라는 마지막 글자는 여전히 검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반가’까지만 보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한지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제 가온 군은 안전한 건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명단 하단에 새롭게 떠오른 붉은색 문구 때문이었다.
[보류 기한: ‘반가……’의 의식 회복 전까지.]
[주의: 해당 개체가 의식을 회복하여 스스로의 이름을 증명하는 순간, 윤서하의 출석/결석 선택지가 강제 재활성화됩니다.]
심장이 서늘해졌다.
이건 살려준 게 아니다.
그 애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눈을 뜨는 순간 다시 윤서하의 목숨줄과 맞바꾸겠다는 잔인한 예고였다.
“도윤 씨, 저 문구…….”
윤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살기 위해 반가온이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검은 우산은 사람의 이름을 훔치지 않는다.
사람이 스스로 이름을 포기하게, 혹은 타인의 이름을 포기하게 만든다.
문태식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나가죠. 여기 더 있어 봐야 저놈들 페이스에 말려들 뿐입니다.”
나는 윤서하와 한지율을 재촉했다.
녹음실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7년 전의 교실 풍경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시 현대의 차가운 복도가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병실로 돌아가면, 나는 깨어나지 못하는 조수의 얼굴을 예전처럼 편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눈을 뜨면, 내 옆의 윤서하가 무너진다.
그녀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는 계속 잠들어 있어야 한다.
이 지독한 사망 플래그의 연쇄가, 이제는 내 동료들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복도로 발을 내디딛는 순간, 내 귓가에 아주 작은 기계음이 들렸다.
[띠링.]
[현재명 ‘강도윤’의 침식도가 45%에서 고착되었습니다.]
[새로운 업무가 등록되었습니다: ‘반가……’의 존재 증명.]
나는 주머니 속의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금연한 지 3년째였지만, 오늘만큼은 협회 옥상에서 연기나 뿜으며 이 거지 같은 인사기록 카드를 전부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가죠. 일단 퇴근부터 합시다. 야근 수당도 안 나올 텐데.”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내 뒤로, 검은 우산을 든 누군가의 환영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