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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1화. 04번의 영수증과 4번 영안실의 보관품 일러스트

40-41화. 04번의 영수증과 4번 영안실의 보관품

제목: 40화. 04번의 영수증

[결제 승인: 반가온]

[실사용자: 검은 우산 04번]

[승인 메모: KDY 원본 코드 이식 완료 - 임시 증인 대기 중]

감열지 위에 찍힌 먹색 글자가 내 눈을 찔렀다. 비릿한 잉크 냄새 너머로, 이 기록이 품은 진짜 '냄새'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협회 전산망에서나 쓰이는 암호화된 데이터의 잔향. 그리고... 가온 형의 권한 코드.

분명 그의 것이다. 던전 부산물보다 사람을 더 싸게 평가하던 그 특유의 권한 흔적. 하지만 영수증에 묻은 건 가온 형의 냉소가 아니었다. 얼어붙은 주검처럼 차갑고, 동시에 다른 무언가에 억지로 조작된 듯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 순간, 왼손목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아윽...!"

비명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다, 육개장 냄새와 섞여 안으로 삼켜졌다. 통증의 근원은 내 손목에 박힌 헌터 신분 태그였다. 하지만 그 열기는 태그에 머물지 않고, 내 피부 아래, 혈관을 타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연결되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의식을 잃은 한지율의 손목과.

그녀의 손목, 그 여린 살결 아래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그것은 기록망 깊숙한 곳에서 봤던, 검고 끈적거리는 데이터의 가시가 아니었다. 투명하고, 희미하지만, 분명 존재를 주장하는 '기록' 그 자체였다.

KDY-00-ORIGINAL.

그녀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내 이름의 '원본' 코드가.

지금, 내 태그를 향해 역류하고 있었다.

"강도윤!"

윤서하가 내 비명을 듣고 즉시 스틱을 휘둘렀다. 은빛 스틱이 나와 한지율의 손목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 금속 스틱이 우리 사이에 닿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치이익!

용접 불꽃 같은 스파크가 튀었다. 스틱 끝에서부터 검은 데이터 조각들이 윤서하의 장갑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손 떼!"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밀쳤다. 윤서하가 바닥으로 구르며 스틱을 내동댕이쳤다. 스틱 표면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이게... 무슨..."

그녀가 장갑을 벗어 던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보았다. 냉철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한 접속이 아니야. 한지율의 코드가 당신을 '승인'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윤 팀장님. 제가 저를 승인해요? 전 아직 살아있는데요? 포인트 적립도 안 했는데 승인이라니."

식은땀을 흘리며 빈정거렸다.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 걸 숨길 수 없었다.

"이동이 아니라 '이식'이라고 적혀 있잖아, 그 영수증에! 지금 당신들이 억지로 떨어지면, 한지율의 코드 원본이 깨져. 당신의 '존재'도 함께 오염되거나, 아니면..."

윤서하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내 왼손목 태그와 한지율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나는 내 미래를 읽었다.

"아니면 둘 다 죽거나."

내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빙고. 장례식장 매점에서 죽음을 특가로 판매하고 계셨군요."

나는 실소했다. 하지만 웃음은 이내 헛구역질로 바뀌었다. 손목의 통증은 이제 온몸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평범하던 포스기가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영수증을 뱉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영수증이 아니었다.

[KDY-00-ORIGINAL]

[오류: 임시 승인 필요]

[사용자: 검은 우산 04번]

포스기 모니터에 내 이름과 함께 '오류'라는 단어가 번쩍였다. 영수증들이 뱀처럼 기어나와 카운터 위를 덮쳤다.

"가온 형의... 로그가... 아니야..."

나는 포스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잔향이 들려야 했다. 저 기계 속에 남은 가온이의 목소리가 들려야 했다.

"가온 형! 어디 있어! 이게 정말 형이야?"

나는 포스기를 잡고 소리쳤다.

하지만 포스기에서 들려온 것은 가온 형의 빈정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결제... 완료...]

[...손님, ...가입하시겠... 습니까?]

[죄송... ...서버... 점검... 중...]

그것은 포스기에 녹음된, 기계적이고 조각난 안내 멘트들의 짜깁기였다. 하지만 그 조각난 멘트들은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냉소적이고, 감정이 없으며, 오로지 '승인'과 '기록'만을 위해 존재하는 목소리.

[강도윤... 넌... 여전히... '대기' 중이군.]

"누구냐!"

나는 소리치며 포스기를 내동댕이쳤다. 포스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플라스틱 파편이 튀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온수통이었다.

보글보글... 치이익...

온수통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뜨거운 물을 뱉어냈다. 물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것은 물이 아니라 검은 잉크처럼 변해 매점 바닥에 퍼졌다.

[증인... 증인이... 필요해...]

온수통의 끓는 소리가, 바닥의 잉크가 말하고 있었다.

"증인이라니? 내가 뭘 봤다고 증인이야! 난 그냥 퇴근하고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나는 한지율을 안아 들고 뒷걸음질 쳤다. 매점 출입구는 이미 검은 우산 도장이 찍힌 조의금 봉투들로 봉쇄되어 있었다. 봉투들은 서로 엉겨 붙어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윤 팀장님! 이거 어떻게 안 돼요?"

윤서하가 스틱을 다시 집어 들었지만, 그녀의 스틱은 이미 검은 데이터에 침식되어 은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 힘으론... 이 정도의 기록 침식은... 막을 수 없어. 이건 전산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가 '기록'으로 덮어쓰기 되고 있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무력감이 섞여 있었다. 협회의 정예 헌터인 그녀가 이토록 무력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가온 형이 배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하지만 영수증에 찍힌 그의 이름, 그리고 내 손목을 파고드는 이 기괴한 기록. 모든 것이 나를 압박했다.

나는 다시 한번 영수증을 노려보았다. '04번'. 이 녀석이 원흉이다.

나는 영수증을 움켜쥐고 잔향청취를 시도했다.

그순간, 내 머릿속에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보관고... 4번... 열어...]

[...사고... 기록... 재생... 승인...]

[...왜... 왜... 아무도... 보지... 않았지?]

[...우리가... 겪은... 건... 사고가... 아니야... ...살인...]

그것은 절규였다. 누군가의 오래된, 잊힌 절규.

'사고'?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04번의 냉혹한 목소리가 모든 절규를 덮어씌웠다.

[너희는... '잊혔지만'... 강도윤은... '기억할' 것이다.]

[...그가... '원본'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를... 증인으로... 세워... ...사고를... 다시... '승인'받는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04번의 목적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임시 증인'으로 세워, 그들이 숨기려는 어떤 오래된 사고의 기록을 재생하고, 그것을 현실로 '승인'받으려는 것이었다.

"너희가... 숨기려는 게... 대체... 뭔데...!"

나는 영수증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영수증은 검은 연기로 흩어졌지만, 그 잔향은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품에 안겨 있던 한지율이 꿈틀거렸다.

"한지율! 정신이 들어?"

나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았고, 기계적인 빛만이 감돌았다.

"도윤... 선배..."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가늘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래, 나야! 괜찮아? 나 좀 봐!"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도망... 도망가면... 안 돼..."

"뭐? 무슨 소리야, 한지율!"

"증인은... 죽으면... 안 돼..."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녀의 손목에서 내 태그로 이어지던 KDY-00-ORIGINAL 코드의 역류가 더 빨라졌다.

'증인은... 죽으면 안 돼.'

"젠장, 퇴근하고 치킨 먹기로 했는데! 이게 무슨 시나리오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한지율을 안아 들었다.

매점 안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포스기 파편들은 서로 엉겨 붙어 기괴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렸고, 바닥의 잉크 같은 온수는 내 발목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다. 매점의 형광등은 '지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였고, 그때마다 검은 우산의 실루엣이 매점 곳곳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강도윤! 저기로!"

윤서하가 침식당하지 않은 스틱 끝으로, 매점 한구석에 있는 비상구를 가리켰다. 비상구 문에는 조의금 봉투들이 아직 덮이지 않았다.

"가요!"

나는 한지율을 안고 비상구를 향해 뛰었다. 바닥의 잉크를 밟을 때마다 발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잠깐, 이 비상구... 물가가 좀 비싼데요? 봉투 하나에 5만 원씩은 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봉투로 막힌 비상구를 보며 헛웃음을 쳤다.

윤서하가 스틱을 휘둘러 비상구를 막고 있던 조의금 봉투들을 찢어발겼다. 봉투들이 찢어지며 검은 연기가 튀어 나왔지만, 우리는 그 연기를 뚫고 비상구 안으로 뛰어들었다.

비상구 안은 헌터협회 지하 보관고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통로 벽면의 모든 스피커에서, 동시에 04번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인... 완료...]

[임시... 증인... 강도윤... ...대기... 위치... 변경...]

그리고 비상구 문 옆에 있던, 고장 난 것 같던 포스기 모니터에 마지막 문구가 출력되었다.

[다음 승인 대기 위치: 헌터협회 지하 보관고 4번 영안실]

나는 그 문구를 보는 순간, 가온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떠올랐다.

누가... 원격으로...

가온이는 이용당했다. 그리고 04번은 나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그가 갇혀있는, 아니, 그가 '기록'되어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4번 영안실.

그곳에, 04번의 원본이, 그리고 그가 숨기려는 사고의 '기록'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나는 한지율을 고쳐 안고, 어둠뿐인 지하 통로를 내려다보았다. 손목의 통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지만, 이제는 다른 감각이 그 통증을 압도했다.

공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끝내고 가온 형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다음 승인 대기 위치: 헌터협회 지하 보관고 4번 영안실]

...

작가의 말: 장례식장 매점 영수증 하나가 다음 길을 열었습니다. 도윤이는 이제 가온 형의 권한이 왜 쓰였는지 직접 확인하러 갑니다. 컵라면보다 찝찝한 3분이었네요.

제목: 41화. 4번 영안실의 보관품

비상구 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내가 기대한 건 최소한 장례식장 주차장의 눅눅한 밤공기였다. 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콘크리트 바닥과 그 위를 덮은, 규격화된 초록색 방수 페인트였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지독할 정도로 익숙한 냄새.

“……협회 지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윤서하의 스틱 끝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나의 잔광이 꺼지자, 천장에 달린 구형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점멸했다.

우리는 병원 장례식장 지하 매점에서 비상구 문을 열었는데, 도착한 곳은 헌터협회 지하 보관고 복도였다. 공간 정보가 겹쳐진 정도가 아니다. 이건 거의 복사 붙여넣기 수준의 왜곡이다.

“강도윤 씨. 정신 똑바로 차려.”

윤서하가 내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기절한 한지율을 업은 채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더 낮고 차가웠다.

“정신은…… 안 그래도 너무 멀쩡해서 탈인데.”

나는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헌터 태그가 박힌 손목 주변으로 검은색 코드가 문신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피부를 뚫고 들어온 ‘검은 우산’의 데이터 조각들이 핏줄을 타고 심장으로 기어드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게 아니라, 시렸다.

얼음 송곳으로 뼛속을 긁어내는 듯한 감각. 그 통증 너머로, 이질적인 기억들이 내 뇌리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가 가본 적 없는 장소,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 내가 느끼지 않았던 감정들이 엉겨 붙었다.

순간,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강도윤.

그게 나인가? 아니면 이 데이터 조각들이 연주하는 수많은 이름 중 하나일 뿐인가?

“강도윤.”

윤서하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엔 조금 더 다급하게.

“네?”

“대답 늦었어. 침식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자꾸 딴생각하지 마.”

나는 짐짓 어깨를 으쓱였다.

“딴생각이 아니라, 협회 지하 보관고 유료 주차장 요금이 얼마였는지 생각 중이었어요. 비상구로 들어왔으니 무단 침입으로 과태료 무는 건 아니겠죠? 우리 팀 경비 처리 안 해주잖아요.”

“……그놈의 경비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내가 직접 네 머리 경비 처리해줄게.”

윤서하는 냉정하게 쏘아붙이며 앞장섰다. 하지만 내 팔을 잡은 그녀의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감시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쓰러지지 않게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그녀는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 그녀에게 나는 단순한 팀원이 아니다. 이 비정상적인 침식 현상과 ‘검은 우산’의 코드를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혹은 시한폭탄이다.

“네가 사라지면 나도 곤란해. 그러니까 버텨.”

그녀의 방식대로 던진 걱정이었다.

“노력해볼게요. 제가 또 곤란한 건 체질적으로 못 참아서요.”

우리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협회 지하 보관고는 던전에서 회수한 부산물이나 미확인 물품들을 임시 보관하는 곳이다. 평소에도 음침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벽면의 초록색 페인트가 피처럼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고, 천장의 형광등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깜빡이며 모르스 부호 같은 소리를 냈다.

복도 끝머리, 이정표가 보였다.

[A구역: 미승인 부산물]

[B구역: 고위험 저주 물품]

[C구역: 영안실]

화살표는 모두 C구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본 [다음 승인 대기 위치: 헌터협회 지하 보관고 4번 영안실]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4번 영안실…….”

윤서하의 등 뒤에 업혀 있던 지율이 몸을 뒤척이며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없었지만,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기록 시작.”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적이고 서늘한 목소리.

“……A-04 구역, 분기점 확보 완료. 증인 코드 이식율 74%. 시스템 정상 작동 중.”

“한지율 양?”

윤서하가 그녀를 고쳐 업으며 불렀지만, 지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과거의 기록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동합니다. 지연될 경우 승인 코드는 만료됩니다.”

그 목소리가 끊기자마자, 우리 앞에 서 있던 ‘4번 영안실’의 육중한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영안실 안은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보통의 영안실이라면 시신을 보관하는 냉동고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버려진 창고 같았다. 철제 선반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시신 대신 먼지가 겹겹이 쌓인 ‘보관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영안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와, 여기는 관리자가 누구길래 청소를 이따위로 해놓은 겁니까? 협회 행정팀에 민원 넣어야겠어요.”

나는 선반 위에 놓인 녹슨 헌터 태그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농담을 던졌다. 공포심을 떨쳐내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윤서하는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영안실 구석에 지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스틱을 고쳐 잡았다.

“여기 있는 물건들, 전부 잔향이 느껴져. 보통 물건들이 아니야.”

그녀의 말대로였다. 굳이 내 ‘잔향청취’ 능력을 쓰지 않아도, 영안실 안에 찬 눅눅하고 불쾌한 기운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선반 위의 물건들을 살폈다.

불에 탄 우산살.

찢어진 던전 출입증.

반으로 깨진 감식반용 녹음기.

빛바랜 사망신고서 뭉치.

각각의 물건에는 이름 모를 주인의 마지막 순간이, 지독한 원념이, 그리고 ‘검은 우산’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곳은 영안실이 아니었다.

나는 깨진 녹음기 앞으로 손을 뻗었다. 잔향을 들어야 했다. 이게 04번이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일 테니까.

왼손의 침식이 다시 심해졌다. 태그 주변의 피부가 터져나가며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고통을 참고 녹음기에 손을 올렸다.

‘잔향청취.’

순간, 영안실의 풍경이 흐릿해지며 목소리들이 뇌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건 사고가 아니야. 이건…….” (익숙하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 공포에 질려 있다.)

“……반가온 씨, 승인하시겠습니까? 데이터 회수율이 낮습니다.” (기계적인 목소리.)

“……진행해. 미련 두지 마.” (차가운 냉소. 반가온의 목소리였다.)

“……안 돼! 저기 애들이, 아직 애들이 안에……!”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 문태식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승인 완료. KDY 코드를 가동합니다. ‘증인’ 시스템을 활성화하십시오.”

목소리들이 뒤엉키며 폭발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비틀거리다 선반을 짚었다.

단편적인 목소리였지만, 분명했다.

과거의 그 사고는 단순한 던전 붕괴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승인’으로 시작된, 그리고 반가온이 관여한 어떤 ‘실험’이었다.

‘KDY 코드…… 증인 시스템…….’

내 왼손 태그에 새겨진 ‘KDY-00-ORIGINAL’이라는 코드가 떠올랐다. 나는 이 실험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실험을 지켜봐야 했던 증인인가?

“강도윤! 괜찮아?”

윤서하가 내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걱정과 경계심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네. 잠시 현기증이 나서요.”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옆 선반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사망신고서 뭉치가 놓여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 뭉치를 집어 들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가장 위에 있는 문서를 확인했다.

[사망신고서]

이름: 이민우

사망일시: ……

[사망신고서]

이름: 김지혜

사망일시: ……

수십 장의 사망신고서를 넘기다, 나는 멈칫했다.

그것은 사망신고서가 아니었다. 다른 양식의 문서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문서를 집어 들었다. 문서의 하단, ‘승인자’ 란에는 반가온의 사인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임시 증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문구에 적힌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임시 증인 등록: 강도윤 / 등록일: 7년 전.”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7년 전.

내가 헌터협회 감식반에 들어오기도 전이다.

아니, 내가 성인이 되기도 전, ‘강도윤’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기도 전의 일이었다.

작가의 말: 영안실엔 시신 대신 보관품이 있었습니다. 도윤이 모르는 도윤의 서류도요. 협회 행정은 늘 사람을 늦게 죽이고, 문서는 너무 일찍 만들어둡니다.

작가의 말

영수증은 도윤을 4번 영안실로 끌고 갔고, 그곳엔 시신 대신 도윤이 모르는 도윤의 서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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