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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화. 7년 전의 내 서명과 폐쇄 실습동 출석 체크 일러스트

42-43화. 7년 전의 내 서명과 폐쇄 실습동 출석 체크

제목: 42화. 7년 전의 내 서명

그 문구를 본 순간, 내 시야 가장자리로 검은 잉크 같은 노이즈가 울컥 번졌다.

[임시 증인 등록: 강도윤]

[등록일: 7년 전 04월 01일]

7년 전. 만우절 장난치고는 질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7년 전이면 나는 아직 헌터 면허는커녕 예비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일반인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 협회 보안 문서에 내 이름이 '증인'으로 기재되어 있다니.

나는 홀린 듯 문서 하단, [증인 서명] 란으로 시선을 내렸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필체가 휘갈겨져 있었다.

'강도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익숙했다. 너무나 익숙해서 소름이 돋았다. 내 필체였다. 협회에 입사해서 수천 장의 감식 보고서에 사인을 갈겨대던 바로 그 습관적인 필체.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이 달랐다.

나는 '윤' 자의 마지막 받침을 쓸 때, 버릇처럼 오른쪽 위로 꼬리를 살짝 올린다. 그런데 이 문서의 서명은 그 꼬리가 왼쪽 아래로, 마치 무언가를 옭아매듯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설마 내가 미래에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과거의 출근 도장을 찍고 온 건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헛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모순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 왼손의 태그가 지이잉, 하고 불길한 진동을 울렸다.

KDY-00-ORIGINAL 침식율: 61.2%

[경고: 기억 오염 주의]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7년 전의 내 필체, 하지만 지금의 나와는 미묘하게 다른 버릇. 그리고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증인 등록.

"이리 내."

윤서하가 냉큼 내 손에서 문서를 낚아챘다. 그녀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는 문서를 눈앞에 바짝 들이대고는 손가락으로 종이의 질감을 훑었다.

"종이 재질, 협회 표준 규격. 워터마크 확인. 보안 섬유 반응, 진품. 마나 인장…."

윤서하가 손가락 끝에 마나를 살짝 실어 문서 중앙의 협회 로고를 문질렀다. 로고가 희미하게 발광하며 고유의 마나 파동을 내뿜었다.

"진짜야. 위조된 흔적은 없어. 7년 전에 작성된 협회 정식 문서가 확실해."

그녀의 진단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협회 감식반 출신인 내가 봐도 저건 진짜였다. 그런데 진짜라면 문제가 더 심각했다.

"그럼 제가 고등학교 때 몰래 협회 알바라도 뛰었다는 겁니까? 증인 알바? 시급은 셌나 모르겠네."

"닥쳐 봐."

윤서하가 내 농담을 단칼에 자르고 결재 라인을 가리켰다.

"결재자가 이상해."

[담당: 반가온 (대리 승인)]

[원 승인자: 04]

반가온 팀장님이 대리 승인을 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원 승인자' 칸에 이름 대신 딸랑 숫자 '04'만 적혀 있었다. 협회 결재 시스템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승인자는 반드시 고유 번호와 이름이 명시되어야 한다.

04.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지율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눈이 풀린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04번 영안실, 04번 승인자, 그리고 내 태그의 침식 코드. 모든 숫자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한지율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낮고,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마치 테이프가 늘어진 녹음기 같았다.

"…D-07 구역. 폐쇄 예정 D급 던전. 민간 실습생 배치 승인 완료. 증인 코드 이식율 21%… 진행… 원본 보관은… 04…."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으로 파편화된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습기 찬 동굴 냄새. 누군가의 비명.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내 손목에 채워지던 차가운 금속 팔찌.

"으윽…."

나는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한지율의 중얼거림은 7년 전의 그날을 재생하고 있었다. '폐쇄 예정 던전', '민간 실습생', '원본'.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7년 전, 협회는 불법적인 실험을 자행했고, 거기에 고등학생이던 나를, 그리고 어쩌면 다른 학생들을 '증인'이라는 명목으로 끌어들였다.

그 순간, 영안실의 보관품들이 하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불에 탄 우산살이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우산살을 중심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바닥에 거대한 검은 우산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내 왼손 태그 속의 검은 우산 데이터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경고: 고위험 데이터 공명 발생]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나에게 뻗어오려 했다.

"비, 비켜!"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다음은 찢어진 던전 출입증이었다.

"아, 진짜. 왜 내가 이런 데까지 와야 하는 거야? 실습이라며! 시발, 밥도 안 주고…."

출입증의 찢어진 단면에서 누군가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앳된, 하지만 짜증이 가득 섞인 고등학생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마치 테이프가 반복되듯 "시발, 밥도 안 주고… 밥도 안 주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목소리에는 깊은 공포와 원망이 서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녹슨 헌터 태그가 울렸다.

쿵, 쿵, 쿵, 쿵.

일정한 박자였다.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태그의 울림은 내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태그가 울릴 때마다 내 몸속의 마나가 요동쳤다. 마치 태그가 나를 원본으로 인식하고 동기화를 시도하는 것 같았다.

"이게 다 대체 뭐야…."

이곳은 영안실이 아니었다. 7년 전의 진실을 가둬둔 감옥이자, 나를 부르는 함정이었다.

나는 윤서하가 들고 있던 임시 증인 등록서에 손을 뻗었다. 그녀가 말릴 틈도 없었다. 내 손가락이 종이에 닿는 순간, '잔향청취'가 멋대로 발동했다.

세상이 흑백으로 반전되었다. 윤서하도, 한지율도, 영안실의 물건들도 모두 사라졌다. 오직 내 눈앞의 문서와, 그 문서를 붙잡고 있는 누군가의 손만이 보였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목소리보다 훨씬 더 어리고, 메말라 있었다. 감정이 거세된, 기계적인 말투였다.

"그러니까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증인이니까요."

모순.

증인은 본 것을 증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7년 전의 나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협회가 나에게 원한 건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덮어줄 '공백'이었다는 뜻이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느껴졌다.

7년 전 4월.

나는 분명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그런 기억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면, 마치 신기루처럼 흐릿해졌다. 4월의 특정 일주일. 그 기간의 기억은 유난히 뽀얗게 안개가 껴 있었다. 부모님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협회 예비교육 때는 누가 강사였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당했나?

내 몸이 반응했다. 손끝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거부 반응이었다. 내 뇌가, 내 영혼이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공백이 바로 '증인 코드'가 이식된 자리였다.

"강도윤! 정신 차려!"

윤서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환각을 깼다. 그녀가 내 손을 문서에서 거칠게 쳐냈다. 내 왼손 태그는 검은색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고, 팔뚝까지 검은 실핏줄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 문서에 계속 접촉하면 침식이 빨라져. 너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녀가 욕설을 내뱉으며 서류를 봉인하려 했다. 허리춤에서 마나 억제 봉투를 꺼내 서류를 집어넣으려는 순간.

스스스.

문서가 윤서하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허공에서 스스로 접히기 시작했다. 종이접기를 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며 접힌 문서가 내 발치에 툭, 떨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A4 용지가 아니었다. 정갈하게 접힌 소환장 모양의, 증인 출석 요청서였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젠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협회는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부려 먹는 데는 아주 도가 텄어. 사후 서비스까지 확실하네."

출석 요청서.

나는 7년 전의 나와 04번의 연결고리를, 그리고 내 기억 속의 공백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나를 '증인'으로 소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내 태그의 침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죽거나, 증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출석 요청서를 집어 들었다. 윤서하가 제지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문서가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로 오라는 겁니까, 04님?"

내가 비아냥거리며 요청서를 펼쳤다. 요청서 하단, [출석 장소] 란에 검은 잉크가 번지며 글자가 새겨졌다.

[서울헌터고등학교 폐쇄 실습동]

그 장소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의 안개가 아주 조금 걷혔다.

내 모교. 그리고 내 잃어버린 일주일의 시작점.

"아, 진짜…."

나는 이마를 짚었다.

"나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또 학교를 가야 해? 수능 다시 보는 기분이네. 시발."

이것은 공포였다. 하지만 나는 그 공포를 빈정거림으로 포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7년 전의 내가 나에게 보낸 초대장.

나는 출석 요청서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갑시다, 윤서하 씨. 학교에 지각하겠네요."

내 왼손 태그가 불길하게 빛나며, 주머니 속의 문구가 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증인 출석 요청: 강도윤]

[장소: 서울헌터고등학교 폐쇄 실습동]

작가의 말: 도윤의 잃어버린 일주일이 드디어 문서로 튀어나왔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모교의 폐쇄 실습동입니다. 출석 체크가 이렇게 살벌할 일인가요.

제목: 43화. 폐쇄 실습동 출석 체크

4번 영안실의 철문은 분명 안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었다. 윤서하가 봉인된 증인 출석 요청서를 주머니에 넣고, 한지율을 부축하며 문고리를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끼익, 하고 녹슨 경첩 비명이 터졌다.

문은 바깥쪽으로 밀려 열렸다.

차가운 장례식장 복도가 아니었다. 습기 찬 지하 공기 대신, 코를 찌르는 건 낡은 목재 바닥 왁스 냄새와 분필 가루,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래 방치된 비구조재가 썩어가는 쿰쿰한 체취였다.

“……뭐야.”

내가 가장 먼저 뱉은 말은 감탄보단 헛웃음에 가까웠다.

문너머로 펼쳐진 것은 길게 뻗은 학교 복도였다. 그것도 아주 낯익은, 그러나 기억 속보다 훨씬 더 폐허에 가까운 풍경.

바닥에는 누군가 급하게 도망친 듯 실내화 한 짝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벽면의 녹색 페인트는 뱀 허물처럼 벗겨져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은 수명이 다해 가며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보랏빛 불빛을 간헐적으로 쏘아대고 있었다.

“공간 전이? 아니면 덧씌우기인가?”

윤서하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권총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시선이 복도 끝, 어둠 속에 잠긴 계단을 날카롭게 훑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방금 나온 4번 영안실의 문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철제 청소도구함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퇴근했는데, 다시 등교라니.

이게 말로만 듣던 ‘꿈속의 모교’라면 차라리 낫겠다. 하지만 내 감각은 이곳이 지독하게 현실적임을 알리고 있었다. 협회 지하의 영안실 냄새와 학교 특유의 먼지 냄새가 기묘하게 섞여 코끝을 맴돌았다. 마치 누군가 무덤 위에 학교를 지어 올린 것 같은 불쾌한 혼탁함이었다.

“강도윤 씨, 정신 차려요.”

윤서하가 의식을 잃어가는 한지율을 벽에 기대어 앉히며 내게 명령했다.

“한지율 대원은 제가 보호합니다. 강도윤 씨는 여기서 1미터도 떨어지지 마세요. 제 시야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협회 규정에 따라 잠재적 위험 개체로 간주하고 무력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명령 한 번 확실하시네. 걱정 마세요. 나도 이 지긋지긋한 모교에 미련 없으니까.”

나는 빈정거리며 벽에 등을 기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선은 자꾸만 복도 창밖으로 향했다.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져 있었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울음소리를 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것처럼 유독 한곳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끊어진 필름이 툭, 하고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젖은 체육복이 살에 달라붙어 찝찝했고, 손목에는 묵직한 금속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마나 억제기였다.

—실습생 04번은 뒤로. KDY-00은 대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독하게 냉정하고, 기계적인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가려 했지만, 이내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혔다. 7년 전의 기억은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 단편적인 이미지와 소리만을 내뱉고 있었다.

윤서하가 휴대 단말기를 조작하다가 혀를 찼다.

“통신 차단. GPS 불능. ……그리고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군요.”

그녀가 단말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협회 내부 데이터베이스 화면이었다.

“강도윤 씨가 졸업한 서울헌터고등학교 폐쇄 실습동. 기록상으로는 6년 전에 안전 문제로 철거 완료된 건물입니다.”

“철거요?”

나는 실소했다.

“그럼 우리는 지금 6년 전에 사라진 유령 건물 안에 서 있다는 겁니까? 이거 완전 강제 동창회네. 주최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센스가 꽝이야.”

“농담할 상황이 아닐 텐데요.”

“농담이라도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서 그럽니다. 헌터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야간 자율학습이 제일 싫었는데, 졸업하고 나서 폐쇄 실습동에서 야자를 하게 될 줄이야. 이거 추가 수당 줍니까?”

윤서하는 내 농담을 무시하고 부서진 사물함들이 줄지어 선 복도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군화 소리가 딱, 딱, 하고 건조하게 울렸다.

복도 벽에는 오래된 헌터 실습 포스터들이 찢어진 채 붙어 있었다. [F급 던전 안전 수칙], [마나 역류 시 대처법] 같은 것들. 그 위로 빨간색 봉인 테이프와 노란색 마나 차단선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이곳이 한때 얼마나 위험한 공간이었는지, 혹은 지금도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나는 윤서하의 뒤를 따르며, 발길에 차이는 낡은 오물들을 시선으로 쫓았다. 그러다 내 발끝에 걸린 것은 먼지가 두껍게 쌓인, 표지가 다 뜯겨나간 책 한 권이었다.

출석부였다.

표지에는 201X학년도 2학년 실습 B반이라고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내가 2학년이었던, 7년 전의 그해였다.

나는 홀린 듯 출석부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잔향청취가 멋대로 발동했다.

—강수혁.

—네.

—고진호.

—네.

—박민재.

—……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7년 전, 이 복도를 채웠을 생기 넘치지만 동시에 긴장에 질린 목소리들. 명단을 부르는 교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출석부를 넘겼다. 내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강도윤. 강도윤…….

없었다.

ㄱ, ㄴ, ㄷ 순으로 정리된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명단의 가장 마지막 줄, 번호조차 매겨지지 않은 칸에 기괴한 표기가 남겨져 있었다.

KDY-00.

그리고 그 옆, 비고란에는 거친 필치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공백 증인.

공백 증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내 이름이 왜 출석부에 없는 거지?

그때, 출석부의 잔향 속에서 또 하나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이현우. 이현우. 이현우……. 얜 또 지각이야?

이현우.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얼마 전, 양평 E급 던전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헌터. 그리고 내 집 앞에서 검은 우산을 쓰고 죽어 있던, 그 미라가 되어버린 사내의 이름이었다.

그도, 이 실습 B반이었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찰나, 윤서하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강도윤 씨, 여기 좀 보시죠.”

그녀는 교무실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위로 출입 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스티커는 비교적 최근의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로 낡고 빛바랜, 협회 양식의 결재 완료 스티커가 겹쳐져 있었다.

거기서도 잔향이 느껴졌다.

나는 윤서하의 곁으로 다가가 그 스티커에 손을 뻗었다.

—실습생 04번의 증인 이식율이 21%를 넘겼습니다. KDY-00은 아직 반응이 없습니다.

—예정대로 진행해. 04번은 영안실 보관품으로 분류하고, KDY-00은 대기실로 격리한다.

그 목소리는 4번 영안실의 문서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같았다. 냉정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함.

[담당: 반가온].

역시, 당신이었어. 반가온 대리. 7년 전 당신은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인 거지?

잔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주 작게, 마치 혼잣말처럼, 혹은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흠칫 놀라 토해낸 것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안하다.

그 목소리는 앞선 냉정함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독한 죄책감과 슬픔이 섞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목소리.

그는 악마인가, 아니면 그저 시스템의 부속품이었나.

나는 혼란스러웠다. 반가온에 대한 단서는 오히려 그를 더 수수께끼의 인물로 만들고 있었다.

“뭐가 들립니까?”

윤서하가 물었다.

“반가온 대리의 목소리요. 7년 전, 여기서 실습생들을 무언가 실험 도구처럼 다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이현우도.”

내 대답에 윤서하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복도의 보랏빛 형광등이 모두 꺼졌다.

완벽한 어둠.

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던 낡은 출석부가 스스로 펼쳐지며, 기괴한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출석부의 종이들이 하얗게 질린 채, 어둠 속에서 펄럭거렸다. 그리고 그 위로 검은 글씨가 스르르 떠올랐다.

출석 체크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시스템 메시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붓으로 꾹꾹 눌러쓴 것 같은, 저주에 가까운 글씨였다.

출석부는 7년 전 그 교사의 목소리를 빌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기괴하게 뒤틀린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강수혁.

……응답이 없었다. 강수혁은 이미 7년 전 그날, 사망했다.

—고진호.

역시 응답은 없었다.

—박민재.

출석부는 대답 없는 이름들을 계속해서 호명했다. 호명할 때마다 복도의 공기가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고, 벽면에 엉켜 있던 마나 차단선들이 징징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것은, 죽은 자들을 부르는 의식이었다.

—이현우.

출석부가 최근에 죽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벽에 기대어 있던 한지율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으윽, 으…….”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고, 피부 위로 검은 반점들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한지율 대원!”

윤서하가 그녀를 붙잡았지만, 침식은 멈추지 않았다.

출석부는 대답 없는 이름을 패스하지 않았다. 이현우의 이름 위로 검은 잉크가 번지며,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산 자의 대답을.

나는 직감했다. 여기서 누군가 이현우를 대신해 대답하지 않으면, 한지율은 이 자리에서 침식되어 죽거나, 무언가 다른 존재로 변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이름으로 대답한다면? 4번 영안실의 그 문서처럼, 나 역시 이 지옥 같은 출석부에 ‘증인’으로 영원히 묶여버릴 터였다.

출석부의 목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현우. 이현우. 이현우! 출석! 응답하라!

한지율의 호흡이 멎어가고 있었다. 윤서하의 입술이 초조함에 짓이겨졌다. 그녀의 총구는 한지율을 향해야 할지, 출석부를 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씨발, 되는 대로 되라지.

나는 출석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안 왔어!”

나는 이현우 대신 소리쳤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간 말은 내 의지와는 달랐다.

“지각입니다.”

내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7년 전, 그 냉정했던 반가온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겹쳐져 있었다.

출석부의 펄럭임이 멈췄다. 이현우의 이름 위에 번지던 검은 잉크가 거두어졌다.

그리고 출석부는 천천히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명단의 가장 마지막 줄.

번호 없는 칸. KDY-00.

—KDY-00.

출석부가 나를 불렀다.

내 이름, 강도윤이 아니었다. 7년 전 내가 불렸던 그 코드네임.

나는 침을 꿀컥 삼켰다. 여기서 내 이름을 말하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경고가 머릿속을 때렸다. 이름을 대는 순간, 침식은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한지율이 죽는다.

나는 출석부에 적힌 그 기괴한 표기를 그대로 입에 담았다.

“……출석.”

내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한지율의 거친 호흡이 안정을 찾았다. 그녀의 피부에 퍼지던 검은 반점들이 서서히 옅어졌다. 내 손목을 옭아매던 무거운 압박감도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출석부는 만족한 듯 스르르 감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직, 지직.

꺼졌던 보랏빛 형광등이 다시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도 끝, 굳게 닫혀 있던 제1 실습실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열린 문너머로, 7년 동안 묵혀두었던, 지독하게 농축된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열린 실습실 안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내 쪽을 향해 나직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건넸다.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와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늦었네, 강도윤.

7년 전의 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작가의 말: 등교 완료. 출석 체크는 확실하게 해야죠.

작가의 말

도윤의 오래된 서명은 폐쇄 실습동 출석부로 이어졌습니다. 모교가 이렇게 무서운 던전보다 성실하게 출석을 부를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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