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91화. 이름이 반응하고 보호자 0번의 열쇠가 열린다
제목: 90화. 이름이 반응한다
“강도윤.”
제갈후의 목소리가 쏟아진 것은 스피커가 아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빈 믹스커피 상자, 토너가 다 떨어진 프린터의 급지함, 그리고 책상 모서리에 눌러 붙은 오래된 테이프 자국이었다. 사방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왼쪽 손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10년 전 병원 팔찌가 채워져 있던 그 자리에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힌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강도윤. 인식번호 0904-X821. 응답하십시오.”
몸이 멋대로 굳었다. 단순히 위압감에 눌린 게 아니었다. 근육과 신경, 심지어 혈관을 흐르는 피조차 ‘강도윤’이라는 음절에 맞춰 재배열되는 기분이었다. 팔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관절은 누군가 원격 제어라도 하는 것처럼 뻑뻑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시야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사무실의 모든 사물이 나를 ‘기록’하려는 것처럼 렌즈처럼 변해 다가왔다.
— [오후 4시 12분, 대상의 심박수 급증.] (재떨이)
— [동공 확장. 체온 상승. 기록 시작.] (반쯤 남은 형광펜)
— [승인된 이름에 반응 확인. 정규 절차를 개시합니다.] (최성국의 낡은 의자)
“이게…… 무슨…….”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었다. 제갈후의 목소리는 이제 내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고 있었다. 놈은 즐거운 듯 웃음을 흘렸다.
“거부하지 마세요. 당신의 존재 자체가 그 이름 위에 설계되었으니까. 당신이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은 수단이지만, 당신에게 ‘강도윤’은 본질이자 명령어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기록했으니까요.”
“입 닥쳐!”
윤서하가 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에 있던 프린터를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바닥을 뒹굴며 파편을 흩뿌렸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되었다.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마다 제갈후의 목소리가 수만 개로 쪼개져 터져 나왔다.
“강도윤, 강도윤, 강도윤, 강도윤…….”
“그만해! 이 개자식아!”
윤서하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가 나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다. 재떨이가 깨지고, 빈 박스가 찢어졌다. 하지만 잔향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파편이 늘어날수록 나를 옥죄는 ‘명령’의 파동은 더 촘촘해졌다. 내 잔향청취가 폭주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사무실의 모든 기록 조각들이 비명처럼 내 뇌에 박혔다.
— [“야, 계약직.”]
— [“이놈아, 서류 정리 다 했어?”]
— [“퇴근 못 한 놈이 왜 아직 여기 있어. 얼른 꺼져.”]
그것은 최성국의 목소리였다. 수천, 수만 번 들었던 그 무뚝뚝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 그런데 이상했다. 그 많은 기억 속에서, 최성국은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거다. ‘강도윤’이라고 부르는 순간, 내가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어가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별명 뒤로 나를 숨겼던 것이다. ‘야’, ‘너’, ‘계약직’, ‘퇴근 못 한 놈’. 그 성의 없는 호칭들이 사실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던 유일한 방벽이었다.
“……아저씨.”
신물이 올라왔다. 최성국이 죽어서까지 나를 위해 남긴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도윤 씨! 정신 차려요!”
반가온이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흘러나왔지만, 제갈후의 파동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제길, [균형의 추]로 벌어둔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이대로는 제갈후한테 ‘원본 등록’ 권한이 완전히 넘어가요! 그놈이 당신 이름을 협회 중앙망에 정식으로 박아버리는 순간, 당신은 영원히 놈의 꼭두각시가 된다고요!”
반가온이 이를 갈며 독설을 내뱉었다.
“이거 진짜 위험한 도박인데, 당신 그 사진이랑 사망진단서 내놔요. 비용은 나중에 청구할 거니까 죽지나 마. 이 반응을 역추적해서 이름의 연결고리를 잠시 끊어낼게요. 잘못되면 나까지 뇌가 타버릴지도 모르지만…… 아, 씨. 진짜 수지타산 안 맞네!”
이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거들었다.
“도윤 씨, 제갈후가 하려는 건 단순한 세뇌가 아니에요. ‘대여명’을 회수하고 ‘0-0’으로 등록한다는 건…… 당신을 기록상에서 ‘원래 없던 사람’으로 되돌리겠다는 뜻이에요. 협회 시스템 안에서 당신이라는 존재를 삭제하고, 오직 명령어로서의 기능만 남기겠다는 불길한 절차라고요!”
“강도윤. 이쪽으로 오세요. 당신의 자리는 여기가 아닙니다.”
제갈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나를 끌어당겼다. 내 다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문을 향해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문고리에 닿으려는 찰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비릿하게 감돌았다.
나는 ‘강도윤’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제갈후가 부르는 그 이름은 내가 아니다.
“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 쇳덩어리가 걸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최성국이 내게 남긴 그 투박한 방패를 붙잡았다.
“난…… 강도윤이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당신의 기록이, 당신의 뼈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데.”
“아니. 내 이름은…….”
나는 억지로 입 근육을 비틀며 웃어 보였다. 제갈후의 통제에 구멍을 내기 위한 가장 어처구니없고 슬픈 선언이었다.
“퇴근 못 한 놈이다. 이 개자식아.”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시스템의 압력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도윤’이라는 명확한 식별자가 아니라, 최성국이 멋대로 지어낸 임시 별칭이 내 자아의 빈틈을 메웠다. 제갈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침묵에 빠졌다.
비논리적인 식별자. 기록되지 않은 이름. 시스템이 해석할 수 없는 잔향.
“……임시 별칭으로는 오래 못 버팁니다. 당신은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제갈후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가온이 내 손에 들려 있던 최성국의 사망진단서와 아이의 사진을 낚아챘다.
“지금이에요! 역추적!”
반가온의 손끝에서 강렬한 불꽃이 튀었다. 나는 사진 속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잔향청취가 그 찰나의 틈을 파고들어 과거의 파편을 끄집어냈다.
하얀 병원 복도. 차가운 공기.
어린 내가 서 있었다. 내 앞에는 검은 우산을 든 누군가가 서 있었고, 그의 발치에는 이름 부분이 까맣게 지워진 환자 차트가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내 진짜 이름을 지웠다.
강도윤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누군가가.
— [환자 명부 재확인 중…….]
사망진단서 뒷면, 최성국이 남긴 보이지 않는 기록의 잔향이 반가온의 마력에 반응하며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현우와 윤서하, 그리고 나조차 예상치 못한 문구였다.
[보호자 0번 승계 대상 확인.]
제갈후는 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 믿고 있었다. 최성국이 죽었으니 그 보호자 권한이 자신에게 넘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진 뒤편에 숨겨진 잔향의 진실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호자 0번 : 강도윤.]
글자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최성국이 나의 보호자였던 게 아니다.
10년 전, 그 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의 보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제갈후의 여유롭던 숨소리가 멎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신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건 말도 안 되는군.”
그가 한 마디를 채 끝내기 전, 반가온이 들고 있던 사진이 하얗게 타오르며 통신 회선을 강제로 차단해 버렸다. 사무실을 가득 채웠던 기괴한 진동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목의 열기는 가라앉았지만, 방금 본 기록의 잔상은 떠나지 않았다.
내가 나의 보호자라고?
그럼 10년 전, 내 이름을 지우고 나를 ‘강도윤’이라는 명령어로 재조립한 것은 누구인가.
부서진 프린터 파편 사이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이제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사진 조각을 주워 올렸다.
퇴근은커녕, 이제 막 지옥의 출근 도장을 찍은 기분이었다.
제목: 91화. 보호자 0번의 열쇠
사무실 공기는 타버린 회로와 종이 먼지로 가득했다. 코끝을 찌르는 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잔향청취의 후유증으로 고막 안쪽이 징징 울렸다.
“손 내밀어 봐요.”
윤서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았다. 차분하려고 애쓰는 것 같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당장이라도 누군가의 목을 꺾어버릴 듯한 서슬 퍼런 살기가 넘실거렸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슬쩍 손목을 내밀었다.
팔찌가 닿았던 자리가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치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가느다란 선들이 기묘한 문양을 그리며 피부 위에 남았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좀 부은 거예요.”
“가만히 있어요. 더 화나게 하지 말고.”
서하가 내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차가운 마력이 상처 부위를 훑고 지나가자 열감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내 상처를 살피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도대체 자기 몸을 얼마나 더 소모품처럼 쓸 생각이죠? ‘퇴근 못한 놈’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별칭에 매달려서 버티는 게 정상이냐고요.”
“……그게, 최 소장님이 지어준 나름의 방화벽이라서요. 듣다 보니 좀 정감이 가기도 하고.”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퇴근 못한 놈’. 다시 입 밖으로 내뱉고 보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지옥 같은 야근의 굴레가 내 영혼의 구원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하는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내 손등을 덮은 손길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사이 반가온은 재가 된 사진 조각들을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헤치고 있었다.
“기록 회선은 확실히 끊겼어. 제갈후 그 영감이 더는 도윤 씨 이름을 매개로 간섭하진 못할 거야. 하지만 대가가 좀 크네. 역추적 경로가 거의 다 날아갔거든.”
가온이 혀를 차며 사망진단서 뒷장을 들어 올렸다. 탄 자국과 그을음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종이 위에 눌린 압흔이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감정사 특유의 마력이 종이의 결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 봐. 이현우, 이거 네 전공 아니야?”
이현우가 다가와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는 복구된 압흔의 구조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보호자 0번: 강도윤’…… 이건 권한 설정값이에요. 그런데 일반적인 보호자 권한과는 메커니즘이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보통 보호자는 대상의 안전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역할이죠. 하지만 이건 강도윤 씨를 ‘기록망 밖’으로 밀어내서 고립시키는 방식이에요. 일종의 봉인 권한입니다.”
현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누군가 도윤 씨를 보호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시스템이 도윤 씨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시스템으로부터 도윤 씨를 ‘소유’하기 위해 박아넣은 불법 코드에 가깝습니다. 도윤 씨는 자유로웠던 게 아니라,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투명한 감옥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옆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박영진이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이게 뭐야? 협회장 권한으로 중앙 기록망에 접속했는데, ‘강도윤’이라는 키워드를 치자마자 검색창이 강제 종료돼. 로그 자체가 실시간으로 삭제되고 있어.”
“삭제라고요?”
“아니, 삭제라기보다는…… 시스템이 검색을 거부하고 있어. 마치 내 손가락이 뜨거운 난로에 닿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떼어지는 것처럼. 협회 시스템 전체가 도윤 씨의 이름을 검색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
박영진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심장이라 불리는 메인 프레임이 일개 헌터의 이름을 무서워한다니.
그때, 책상 밑을 뒤지던 한지율이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이거, 최 소장님 책상 밑 구석에 박혀 있었어요. 믹스커피 가루랑 담배꽁초 사이에 있어서 못 볼 뻔했네.”
지율이 내민 것은 낡고 해진 열쇠고리였다. 정확히는 구형 출입 태그였다. 플라스틱 표면은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너덜너덜했고,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없었다. 오직 누군가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놓은 듯한 ‘검은 우산’ 모양의 스크래치만이 선명했다.
태그를 건네받는 순간, 손끝에서 찌릿한 진동이 느껴졌다. 억제하려고 했던 잔향청취가 제멋대로 튀어 올랐다.
― 야, 이놈아.
최성국 소장의 목소리였다. 평소처럼 찌든 담배 냄새가 섞인, 투박하고 걸걸한 농담조의 목소리.
― 네가 네 보호자면, 네 출입증도 네가 들고 있어야지. 맨날 남의 사무실에서 잠만 자지 말고. 이건 비상구 열쇠 같은 거다. 길 잃어버리면 써라.
웃음이 나올 만큼 투박한 말이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홧홧해졌다. 소장님은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괴물 같은 기록들에 묶여 있는지. 그래서 그는 나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열쇠’를 남겼다.
“도윤 씨? 왜 그래요?”
서하의 물음에 나는 태그를 꽉 쥐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태그를 협회 단말기에 가까이 가져가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태그의 데이터 면을 훑자, 내 머릿속에 설치된 잔향의 지도가 희미한 이정표를 찍었다.
“협회 별관 지하. 엘리베이터 층수 표기에는 없는 곳이에요.”
“B0…… 아니면 0층인가요?”
이현우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층. 기록에서 지워진 내가 머물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우리는 즉시 별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지하 4층까지가 끝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낡은 태그를 숫자 패드 아래 센서에 갖다 대자, 기계음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지지직―.
갑자기 엘리베이터 천장의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허용되지 않은…… 접근…….]
낮고 차가운 음성. 제갈후였다. 그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협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혈관 속에 숨어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도윤아, 거기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이 아니다. 돌아가라. 지금이라면 이름만은 남겨줄 수 있다.]
“시끄러워, 영감님. 남의 퇴근길 방해하지 말고 비켜요.”
내가 냉소적으로 대꾸하며 태그를 한 번 더 강하게 눌렀다. 층수 표시판의 숫자들이 어지럽게 회전하더니, 이내 0이라는 숫자로 고정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듯한 중력 가속도가 느껴졌다.
“강도윤 씨.”
윤서하가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불안감을 보았다.
“혼자 가지 마요. 절대로.”
“걱정 마세요. 이번엔 야근 수당 확실히 챙겨야 하니까 혼자는 안 죽습니다.”
농담으로 넘기려 했지만, 손바닥에 고인 식은땀은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 저 문이 열리고 나면, 정말로 ‘강도윤’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 만약 감당하지 못한다면, 나는 기록의 바다 속에서 영원히 실종될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철컥, 하고 무거운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의 기계적인 여성 음성이 아니었다. 제갈후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 명의 목소리를 겹쳐놓은 듯한, 기묘한 공명이었다.
[보호자 0번. 출근 확인되었습니다.]
문이 열리기 직전, 등골이 먼저 알아차렸다. 이 목소리는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 장소 자체가 나를 ‘기록’으로 인식하고 소환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문 너머의 어둠을 응시했다. 오늘의 퇴근은커녕, 진짜 지옥의 출근 도장이 찍히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