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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3화. 0층 기록보관소와 오늘 죽을 사람 일러스트

92-93화. 0층 기록보관소와 오늘 죽을 사람

제목: 92화. 0층 기록보관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코끝을 찌른 것은 오존취와 눅눅한 종이 냄새, 그리고 코를 찌르는 소독약 취기였다.

분명 헌터협회 별관 지하로 내려왔건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괴한 콜라주 같았다.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깜빡이는 천장 아래로 병원 복도의 매끄러운 타일 바닥이 깔려 있었고, 그 양옆으로는 천장까지 닿을 듯한 녹슨 철제 캐비닛들이 성벽처럼 늘어서 있었다.

“……여기가 0층인가?”

내 목소리가 텅 빈 복도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아니, 울려 퍼졌다고 생각했다.

치익, 치치직.

“도윤 씨, 조심…….”

뒤에서 들려온 윤서하의 목소리가 라디오 노이즈처럼 뭉개졌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내 등 뒤에 서 있던 일행들의 모습이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윤서하, 반가온, 이현우. 세 사람의 윤곽선이 마치 오래된 VHS 테이프를 재생한 것처럼 지직거리며 흐려졌다. 특히 이현우는 아예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노이즈가 심했다. 마치 이 공간이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을 ‘불법 데이터’로 취급하며 밀어내려는 것 같았다.

[경고. 비인식 개체의 간섭이 감지되었습니다.]

[기록보관소는 오직 ‘기록’만을 허용합니다.]

허공에 뜬 시스템 메시지가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협회 본관에서 보던 매끄러운 홀로그램이 아니었다. 타자기로 친 듯 투박한 글씨체가 허공을 찢고 튀어나와 있었다.

“다들 괜찮아요?”

내가 손을 뻗었지만, 내 손가락은 윤서하의 어깨를 통과해 허공을 휘저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지만, 그녀의 반응은 내 동작보다 0.5초 정도 늦게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만 선명했다. 나만 이 공간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때, 발치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렸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낡은 출근 카드가 내 신발 끝을 툭 쳤다.

―퇴근 찍은 적 없습니다.

잔향청취가 강제로 고막을 긁었다. 출근 카드는 잉크가 다 번진 글씨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9,999일째 연장 근무 중. 수당은 필요 없으니 제발 집으로 보내줘요. 이름? 이름 같은 건 이미 파쇄기에 들어갔어. 나는 그냥 ‘사번 402번’이야.

카드 너머로 느껴지는 감정은 끈적한 절망이었다. 옆에 놓인 환자용 플라스틱 팔찌가 비웃듯 끼어들었다.

―손목은 기억력이 나쁘지. 하지만 여긴 손목이 없어도 기록되는 곳이야. 꼬마야, 네 이름도 저기 캐비닛 어디쯤에서 썩어가고 있겠네?

“시끄러워. 나 퇴근한 지 꽤 됐거든.”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손바닥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최성국이 남긴 낡은 열쇠 태그가 내 손안에서 기분 나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 태그가 없었다면 나 역시 저 노이즈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도윤 씨! 제 말 들려요?”

윤서하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수중에서 들리는 것처럼 먹먹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듯,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왼쪽 손등을 얕게 그었다.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그 순간, 지직거리던 그녀의 형상이 아주 잠깐 선명해졌다. 고통이라는 현실적인 감각을 매개로 이 가상 같은 공간에 닻을 내리려는 무식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오지 마요, 서하 씨!”

“상관없어. 놓치면…… 끝이야.”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다가왔다. 하지만 공간은 냉혹했다. 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캐비닛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위치를 바꿨다.

철컥, 철컥.

수천 개의 서랍이 동시에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 소리 사이로 제갈후의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 아니, 목소리라기보다는 시스템이 강제로 출력하는 안내 문구에 가까웠다.

[보호자 0번. 권한 확인 중.]

[대상: 강도윤(임시 명칭).]

[경고: 원본 데이터 유실. 대체 호출명으로 식별합니다.]

복도 끝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 내 정보가 떠올랐다.

이름: 강도윤 (Proxy Name)

상태: 기록 대기 중

특이사항: 10년 전 ‘병원’ 기록 삭제됨.

‘강도윤’이라는 세 글자 위에 검은 우산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뜨거운 인장으로 지져버린 것처럼, 내 진짜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는 공허하게 비어 있었다.

강도윤은 내 이름이 아니었다. 10년 전, 그 지옥 같은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누군가 내 가슴팍에 붙여준 임시표찰에 불과했다.

“이게 무슨…….”

내가 모니터로 손을 뻗으려 할 때, 반가온이 내 팔을 붙들었다. 그녀 역시 전신이 노이즈로 뒤덮여 있었지만, 감정사 특유의 서늘한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강도윤, 보지 마. 저거 보면 안 돼.”

반가온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경고했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흩어진 서류 쪼가리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긴 기록을 보는 게 공짜가 아니야. 방금 네 이름을 확인했을 때, 내 시계에서 ‘세 시간’이 사라졌어.”

“무슨 소리야?”

“이 공간의 유지 비용이야. 정보를 하나 읽을 때마다 누군가의 ‘기록상 하루’가 삭제된다고. 지금 서하 저 바보가 피 흘리며 버티는 시간도 전부 여기서 갉아먹고 있어.”

반가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 조명이 붉게 물들었다.

[보호자 변경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현재 보호자: 강도윤(0번)]

[신규 신청자: 제갈후]

[승인 조건 확인 중…….]

“그 영감이 내 보호자라도 되겠다는 거야? 사양하고 싶은데.”

나는 이를 악물며 최성국의 태그를 움켜쥐었다. 태그에 새겨진 검은 우산 스크래치가 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손목의 낙인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다.

태그는 단순히 출입증이 아니었다. 이건 ‘보호자 0번’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활성화하는 열쇠이자, 나라는 기록을 이 공간에 단단히 묶어두는 쇠사슬이었다.

철커덩!

복도 가장 깊숙한 곳, 유독 거대하고 낡은 캐비닛 하나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 위에는 먼지 쌓인 라벨이 붙어 있었다.

[식별 번호: 0904-X821]

[분류: 보호자 0번 전용]

[항목: 사망 플래그 보관함]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 안에 10년 전의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왜 최성국이 나를 ‘강도윤’이라는 가짜 이름 뒤에 숨겼는지.

나는 노이즈 속에서 비틀거리는 윤서하를 뒤로하고 캐비닛으로 달려갔다.

“도윤 씨, 안 돼! 열지 마!”

윤서하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캐비닛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그 안에는 수천 장의 사진이나 서류 대신, 단 하나의 투명한 유리 케이스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익숙한 형태의 종이 한 장이 빛나고 있었다.

사망진단서였다.

나는 홀린 듯 그 종이를 꺼내 들었다. 당연히 내 이름이나, 혹은 10년 전 죽었어야 할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잔향청취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는 내 예상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오늘 죽을 운명입니다. 퇴근은 무덤으로 하세요.

종이에 적힌 이름은 ‘강도윤’이 아니었다.

[대상자: 윤서하]

[사망 예정일: 오늘]

[보호자 변경 승인 조건: 대상자(윤서하)의 영구적 기록 말소 확인 시.]

“……이게 왜 여기 있어?”

손이 떨렸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윤서하의 형상은 이미 배경 노이즈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있었다. 그녀의 손등에서 흐르던 피조차 검은색 디지털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화면 위로 제갈후의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호자 변경 절차를 시작합니다. 대상자의 사망을 확정하십시오.]

제목: 93화. 오늘 죽을 사람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게 종이라지만, 내 손에 들린 이 종이는 납덩이보다 무거웠다.

[대상자: 윤서하]

[사망 예정일: 오늘]

글자 위로 심장이 쿵쾅거리는 진동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오타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면 기록보관소가 선사하는 질 나쁜 농담이거나. 하지만 이곳은 유머 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오직 서늘한 사실만을 수집하는 곳이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나는 이 빌어먹을 서류를 양옆으로 찢어버리려 힘을 주었다. 찢어발겨서 쓰레기통에 처넣으면 이 황당한 예언도 쓰레기가 될 것 같았다.

찌익, 소리가 나야 할 타이밍에 손가락 끝이 저릿했다.

“……어?”

종이는 찢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끈적한 가래떡처럼, 혹은 썩은 줄기세포처럼 길게 늘어났다. 종이의 단면에서 뻗어 나온 검은 실들이 허공을 헤엄치더니 그대로 윤서하에게 이어졌다.

흡사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윤서하의 어깨와 목덜미에 검은 실들이 들러붙었다.

“팀장님!”

이현우가 비명을 질렀다.

윤서하의 모습이 기괴했다. 그녀의 윤곽선이 마치 전파 수신이 불량한 텔레비전 화면처럼 지지직거리며 흔들렸다. 방금까지 선명했던 그녀의 손등이 노이즈가 섞인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기록보관소의 시스템이 그녀를 ‘생명체’가 아닌, 서류상의 ‘승인 조건’으로 재분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도윤 씨, 그 종이 놔요!”

반가온이 소리쳤지만, 내 손바닥은 이미 종이와 한 몸이 된 듯 떨어지지 않았다.

윤서하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0.5초 정도 늦게 도착했다.

“도…… 윤 씨…… 나 보지…… 마요.”

지연 현상(Lag). 사람의 말이 데이터 패킷처럼 끊겨서 들렸다. 윤서하는 자신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제 손바닥을 그었다.

툭, 투둑.

붉은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기록보관소의 무채색 복도 위로 선명한 혈흔이 번졌다.

“이게…… 진짜…… 나예요.”

그녀는 바닥의 피를 가리켰다. 노이즈로 변해가는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실존하는 고통을 보라는 뜻이었다.

“나 말고…… 절차를 봐요. 저들이…… 뭘 원하는지.”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다. 그 서늘함이 내 머릿속을 헤집던 공포를 잠시 눌러주었다. 그래, 당황하면 지는 거다. 여긴 서류의 세계고, 서류에는 반드시 빈틈이 있다.

“현우 씨, 분석해. 이거 뭐야?”

내 재촉에 이현우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그는 허공에 뜬 노이즈들을 낚아채듯 손을 휘저으며 분석 스킬을 돌렸다.

“이건…… 예언이 아니에요. 조건부 승인 문서예요! 누군가 제갈후에게 관리자 권한을 넘겨주기로 했는데, 그 선결 조건이 ‘윤서하 팀장의 영구적 기록 말소’…… 즉, 사망이에요. 사망 플래그를 꽂은 게 아니라, 죽음을 결제 서류의 도장으로 쓰겠다는 거예요!”

“비용은? 비용은 누가 내고 있는데?”

반가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과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내 시계 날짜가 벌써 하루 지났어. 아니, 이틀? 미친, 내 휴가가 날아가고 있잖아!”

반가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곳에서 정보를 열람하는 대가는 ‘기록상 하루’의 소멸이다. 하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깎여나가는 건 윤서하의 시간이었다. 그녀의 발치에 고인 피가 검게 말라붙으며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기록보관소가 그녀의 ‘오늘’을 통째로 씹어 삼키고 있었다.

나는 왼쪽 손목에 채워진 최성국의 열쇠 태그를 움켜쥐었다.

‘보호자 0번.’

최성국이 남긴 이 권한이 지금 유일한 동아줄이다. 나는 태그를 사망진단서의 여백에 거칠게 찍어 눌렀다.

[보호자 0번의 권한을 활성화합니다.]

[기록 간섭을 시작합니다.]

낙인이 찍힌 손목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워졌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10년 전의 잔상이 파편처럼 들이닥쳤다.

소독차 냄새. 하얀 침대 시트.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있던 누군가의 커다란 손.

그리고 내 옆 침대, 혹은 그 너머 차트 너머로 보이던 이름들.

‘윤(尹)……’

흐릿한 서류 한구석에 ‘보호자’ 자격으로 적혀 있던 낯익은 가문의 문장. 윤서하의 가문과 관련된 어떤 계약이 10년 전부터 이 지옥 같은 기록보관소의 결제선에 얽혀 있었다.

그때, 내 손에 들린 사망진단서가 비릿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잔향 청취. 죽은 자들의 농담이 내 귓가에 달라붙었다.

― ‘죽음은 서류가 아니라 결재선입니다, 고객님.’

― ‘사인(死因) 따위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건 누가 승인했느냐니까.’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내 뇌를 긁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사망진단서 하단을 노려보았다.

[승인자: ________ (서명 대기 중)]

비어 있었다. 제갈후가 신청은 했지만, 최종 승인 칸은 공란이었다. 그리고 그 칸 위로 깜빡이는 커서는 오직 ‘보호자 0번’의 응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안 하면 그만이라는 거군.”

내가 거부하면 이 절차는 완결되지 않는다. 윤서하의 기록 말소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고: 승인 거부 시, 시스템 유지 비용이 발생합니다.]

[대체 지불 수단 확인: 보호자 0번의 ‘진명(True Name)’ 일부.]

심장이 내려앉았다. 검은 우산 모양의 구멍으로 가려져 있던 내 진짜 이름.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이름의 조각을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이걸 내주면 나는 진짜 ‘강도윤’이라는 대역으로만 살게 될지도 모른다. 영원히 나 자신을 찾지 못한 채.

“도윤 씨…… 하지 마요…….”

윤서하의 형체가 이제는 유령처럼 투명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먹먹했다. 그녀는 내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눈치챈 듯했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피를 흘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내 퇴근길을 사사건건 방해하면서도 끝내 내 곁을 지키던 깐깐한 팀장님.

“팀장님, 나중에 연차 수당 제대로 계산해줘요.”

나는 내 이름의 첫 번째 글자를 가리고 있던 검은 장막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차갑고 깊은 어둠이 손가락을 타고 스며들었다. 내 영혼의 일부가 뜯겨나가는 감각. 텅 빈 이름의 첫 음절 하나가 검은 우산 구멍 속으로 툭, 떨어져 사라졌다.

[승인 거부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상자 ‘윤서하’의 기록 말소 절차가 중단됩니다.]

순간, 윤서하를 묶고 있던 검은 실들이 툭툭 끊어졌다. 지지직거리던 그녀의 신체가 순식간에 질량을 회복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반가온과 이현우가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하아, 하아…….”

나는 타 들어가는 손목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름의 한 글자를 잃었을 뿐인데, 세상의 절반이 깎여나간 것 같은 상실감이 몰려왔다. 내가 누구였는지, 아주 조금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끝…… 난 건가요?”

이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기록보관소의 캐비닛은 멈추지 않았다.

‘철커덩’ 소리와 함께, 방금 닫혔던 0904-X821 보관함 바로 옆 칸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새로운 서류 한 장이 나풀거리며 내 발등 위에 떨어졌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순간, 내 사고 회로는 완전히 정지해버렸다.

[대상자: 최성국]

[상태: 미확정(Unconfirmed)]

[사망 예정일: 내일]

“……뭐?”

등 뒤로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최성국. 그는 이미 죽었다. 10년 전 병원에서, 그리고 얼마 전 내 눈앞에서 완전히 소멸했다.

그런데 왜, 이미 죽은 사람의 사망 플래그가 ‘미확정’으로 떠 있는 거지?

게다가 사망 예정일이 어제가 아니라 ‘내일’이라고?

서류 뒷면에서 잔향의 농담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 ‘아직 퇴근 도장을 안 찍으셨네요,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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