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245화. 첫 번째 결재자와 소급 적용된 가족
244화. 첫 번째 결재자
오른손등에 박힌 검은색 글자가 마치 맥박이라도 뛰듯 움찔거렸다.
[ 백연(白淵) ]
잉크는 피부 위에 얹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처럼, 혹은 살갗을 뚫고 돋아난 가시처럼 내 팔뚝을 타고 서서히 올라왔다. 기분 나쁜 한기가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치달았다.
“백연……?”
입 밖으로 뱉은 이름은 낯설었다. 내 인생의 타임라인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이름을 가진 지인은 없었다. 백 씨 성을 가진 동창? 아니면 예전에 편의점 알바할 때 외상 안 갚고 튄 손님 이름인가?
하지만 내 머리의 부정과는 별개로, 내 오른손은 이 이름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경련했다. 손가락 끝이 멋대로 구부러지며 허공에 보이지 않는 펜을 쥔 듯한 형태를 취했다.
“내 오른손이 나 몰래 범죄 이력 조회라도 통과한 모양인데. 타투를 새길 거면 최소한 도안 상담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농담을 내뱉었지만 입안이 바짝 말랐다. 방어기제조차 이 상황의 압박감을 다 걷어내지 못했다.
검은 우산 밑의 껍데기가 낮게 웃었다. 강성훈의 목소리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낼 수 없는 기계적인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이 튀는 듯한 소리.
“기억나지 않나 보군. 하기야, Administrator-K의 첫 번째 업무는 언제나 ‘망각’이었으니까.”
우산 끝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바닥에 닿자마자 서류 뭉치로 변하더니, 기괴한 인영(人影)이 되어 나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네가 죽인 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대신 기록해 주지. 이 서류에 직인만 찍으면 된다. 그럼 너는 다시 평범한 ‘강도윤’으로 돌아갈 수 있어. 이 무거운 기록의 업보를 넘기고 말이지.”
그놈이 내민 것은 텅 빈 결재창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내 손등에 적힌 ‘백연’이라는 이름이 그 결재창의 ‘대상자’ 칸으로 빨려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웃기지 마.”
윤서하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곽두팔의 거친 기록이 오염된 채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검은 서류 인영들을 베어 넘겼다.
“도윤 씨 손에 든 건 당신들 장부가 아니야.”
서하가 내 오른손등의 글자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베어내려는 듯 마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검기가 글자를 스치고 지나가도, 피부만 붉게 달아오를 뿐 ‘백연’이라는 글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손길이 닿을수록 글자는 더 짙은 빛을 내며 내 뼈 마디마디에 각인되었다.
“안 돼, 서하 씨! 이건 피부에 적힌 게 아니야. 기록 그 자체라고!”
그때, M-17이 품 안에서 노란색 라벨 조각들을 한 움큼 꺼내 내 오른손목에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 검수 보류품 ]
[ 사유: 출처 불분명 ]
[ 담당자: M-계열 ]
라벨이 붙자마자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조금 잦아들었다. M-17의 무기력한 눈동자가 평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이거, 아빠가 하던 방식이야.”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K-서명실에서 회수된 기록들이 폭주할 때, 아빠는 항상 이렇게 라벨을 붙여서 ‘격리’했어. 아직은 안 뺏겨. 이 이름, 단순한 이름이 아냐. 일종의 고유 식별 코드야. 아주 오래전에 삭제됐어야 할…….”
“도윤아, 이상해.”
가온이가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코를 킁킁거렸다. 아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저 검은 우산 아저씨한테서는 썩은 종이 냄새만 나는데…… 형 손등에 있는 저 이름에서는 다른 냄새가 나. 아주 차가운 병원 소독약 냄새, 비 오는 날 젖은 지하철 의자 냄새…… 그리고 하얀 우산 천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 있어.”
하얀 우산?
검은 우산과 대칭되는 그 단어에 머릿속에서 강한 정전기가 일었다.
잔향청취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폭주했다. 테이프는 이미 터졌지만, 내 오른손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녹음기가 된 것처럼 주변의 소리를 빨아들였다.
시야가 뒤집혔다.
지금의 폐허 같은 공간이 아니다. 사방이 온통 하얀색인 방. 코를 찌르는 강렬한 알코올 소독약 냄새. 창밖에는 장마철 특유의 눅눅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다.
나는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바로 옆 침대, 창가 쪽 자리에는 이름표가 하나 붙어 있었다.
[ 백연(白淵) ]
침대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는 투명한 비닐로 된 하얀 우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방금까지 그곳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침대 시트에는 아주 작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도윤아, 그거 알아?』
기억 속의 누군가가 속삭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얀 우산 너머로 번지는 희미한 실루엣뿐.
『기록한다는 건, 사실 죽이는 거랑 똑같대. 누군가를 종이 위에 고정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변할 수 없게 되니까.』
환상 속의 내가 그 하얀 우산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검은 손들이 병실 벽을 뚫고 나와 그 아이의 목을 낚아챘다.
“안 돼!”
내 외침과 함께 현실로 튕겨 나왔다.
서류 인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내 오른손을 낚아채 결재 서류 위에 짓누르려 했다.
“결재해라, Administrator-K. 네가 죽인 자의 이름을 완성하고, 관리자의 자리를 받아들여라!”
검은 우산의 외침이 천장을 뒤흔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M-17이 붙여준 라벨 위로 왼손을 겹쳐 잡았다. 손등의 글자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내 이성을 갉아먹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속삭였다. 그냥 찍어버려. 이 고통을 끝내. 너는 원래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거야.
“미안하지만, 난 오늘 연차거든.”
나는 억지로 입근육을 끌어올려 웃었다.
“그리고 내 오른손은 결재 서류보다 편의점 1+1 영수증 챙기는 데 더 익숙해. 이딴 강제 야근은 고용노동부에 신고 대상이라고.”
나는 잔향청취의 공명을 역으로 이용해 내 손등의 글자를 향해 터뜨렸다. 기록을 기록으로 지운다. 아버지가 남긴 경고, ‘네 오른손을 믿지 마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오른손은 기록을 남기는 도구이자, 동시에 기록에 갇힌 자들을 해방하는 열쇠여야 했다.
퍼억!
내 손등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으며 서류 인영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검은 우산 밑의 존재가 처음으로 당황한 듯 뒤로 주춤거렸다.
“……기록을 거부하는 건가? 너 자신조차 부정하면서?”
“부정하는 게 아냐. 정정 요청을 하는 거지.”
나는 거칠게 몰아쉬며 내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온 그 찰나.
내 손등의 [ 백연 ]이라는 글자가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손으로 문지른 것처럼.
글자들은 뒤집히고, 섞이고, 다시 배열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일기장의 한 구절처럼 변해갔다.
가온이가 내 손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형…… 글자가 바뀌었어.”
내 시야에 들어온 문장은, 방금 전 보았던 그 차가운 병실의 기억을 완전히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 퇴근시켜 줘서 고마워, 도윤 오빠. ]
심장이 내려앉았다.
도윤 오빠?
나에게는 여동생이 없었다. 외동아들로 자라 부모님마저 잃고 홀로 살아온 세월이 내 기록의 전부였다.
그런데 왜.
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 가슴 한구석이 도려나간 것처럼 아픈 걸까.
히히히.
텅 빈 병실의 기억 속에서 들려오던 그 작은 웃음소리가, 이제는 내 귓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오빠, 이제 내 이름 기억해 줄 거야?”
하얀 우산을 든 누군가가 내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우산의 껍데기가 경악한 듯 소리쳤다.
“말도 안 돼…… ‘백색 기록’이 왜 네놈의 오른손에……!”
내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하얀 손이 내 오른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그리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병원 소독약, 그리고 젖은 하얀 우산의 냄새.
나는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연아?”
그 순간, 내 오른손의 ‘검수 보류’ 라벨이 일제히 붉게 타오르며 찢겨 나갔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내 뇌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 경고: 미등록 관리자 권한이 감지되었습니다. ]
[ 대상: 기록되지 않은 자(The Unrecorded). ]
[ 상태: 강도윤의 ‘가족’으로 임시 승인됩니다. ]
나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여동생의 이름이, 내 살점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것을 느꼈다.
245화. 소급 적용된 가족
[시스템: 관리자 권한—임시 가족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알림: 기록의 정합성이 훼손되었습니다. K-서명실 내 보안 프로토콜을 가동합니다.]
메시지가 망막을 긁고 지나가기 무섭게, 발밑의 대리석 바닥이 종이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비유가 아니다. 진짜 종이다. 바닥에서 솟구친 수만 장의 서류들이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천장으로 치솟았다.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다. [가족관계증명서], [말소 등본], [사망신고서]. 잉크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를 풍기는 문서들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내 인생에 여동생 설정은 DLC로도 산 적 없는데, 번들 구성이 너무 하드코어한 거 아냐?”
농담을 내뱉으면서도 내 몸은 뇌의 판단보다 먼저 움직였다. 경련하던 오른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아니,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을 낚아챘다.
차갑다. 하지만 얼음 같은 차가움이 아니다. 오랫동안 에어컨이 돌아가는 병실에 홀로 방치된 아이의 체온이다.
내 옆에는 흐릿한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하얀 우산 밑으로 환자복 자락이 펄럭였고, 비릿한 소독약 냄새와 젖은 지하철 의자에서나 날 법한 눅눅한 냄새가 섞여 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 공간의 해상도를 깎아먹고 있었다.
사각—!
날카로운 서류 한 장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선이 그어지며 피가 배어 나왔다. [사망 원인: 과다출혈]이라는 글자가 적힌 서류가 내 피를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윤 씨, 멍하니 있지 마세요!”
윤서하의 외침과 함께 서늘한 검기가 내 앞을 가로막던 서류 더미를 베어 넘겼다. 그녀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곽두팔의 오염을 억누르느라 창백해진 그녀가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가족으로 승인됐다는 건, 시스템이 당신의 과거를 실시간으로 재작성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저건 당신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라는 기록에 기생하려는 오류일지도 모른다고요!”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엔 여동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내 손등에 새겨진 ‘백연’이라는 이름이 심장박동에 맞춰 뜨겁게 박동하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신체의 일부가 뒤늦게 봉합된 것처럼.
“아저씨, 저 언니 냄새… 이상해요.”
가온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내 뒤로 바짝 붙었다. 녀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오른손을 잡고 있는 ‘백연’의 형체를 바라봤다.
“나쁜 냄새는 아닌데, 아주 오랫동안 아저씨랑 붙어 있다가… 강제로 잘려 나간 냄새가 나요. 아주 오래된 상처에서 나는 진물 냄새 같기도 하고.”
잘려 나간 조각이라고?
그때였다. 구석에서 떨고 있던 M-17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안 돼! 저건 회수하면 안 되는 거야! 아빠가 그랬어. ‘기록되지 않은 자’는 건드리는 순간 회수 담당자도 기록에서 지워진다고! 담당자가 없으면 기록도 없고, 기록이 없으면 우린 처음부터 태어나지도 않은 게 되는 거라고!”
M-17의 노란 라벨들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녀석은 자기 몸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아빠, 즉 K-서명실의 전 관리자가 남긴 금기. 그 금기가 지금 내 오른손에 매달려 있었다.
“누락분 주제에 제법 질기군.”
검은 우산 밑, 강성훈의 껍데기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손을 뻗어 허공에 떠다니는 [사망신고서] 한 장을 낚아챘다.
“백연. 15년 전 폐기된 가족관계. 처리 완료된 오류. 강도윤, 네가 저 아이를 인정하는 순간 너는 네가 죽인 자들의 명단을 전부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 모든 죽음의 무게를 감당하고도 저 유령의 손을 잡고 있겠나?”
“야, 껍데기.”
나는 욱신거리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난 헌터지 판사가 아니야. 내 알 바 없는 과거사 들먹이면서 감성 팔이 하지 마. 난 그냥 현장 정리하러 온 거라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내 손 잡고 울고 있으면, 일단 고객센터 연결부터 해주는 게 내 업무 루틴이거든.”
물론 우리 집 고객센터는 불친절하기로 유명하지만.
나는 백연을 내 등 뒤로 밀어내며 몰려드는 서류 인영들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오른손을 휘두를 때마다 [백연]이라는 이름이 빛나며 시스템의 간섭을 튕겨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결재를 하거나 서명을 하려 하면 검게 타 들어가던 손이, 이 아이를 보호하려 할 때만큼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검은 우산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서류 인영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파쇄기의 형상으로 변했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지워져라.”
거대한 칼날이 우리를 덮치려는 순간, 내 등 뒤에 있던 백연이 내 옷자락을 살며시 당겼다.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이 아니라, 아주 먼 과거의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메아리쳤다.
—오빠, 이거… 아직 가지고 있어?
그녀가 내민 것은 하얀 우산 손잡이에 걸려 있던 아주 작은 병원 팔찌였다. 낡고 해져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플라스틱 쪼가리.
나는 반사적으로 그 팔찌를 받아들었다. 그 순간, 눈앞의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며 시스템 창이 비정상적으로 일렁였다.
[데이터 판독 중…]
[대상: 환자 백연(白淵)]
[보호자: Administrator-K]
[환자와의 관계: 사망 원인(Cause of Death)]
사망 원인?
관계란에 적혀 있어야 할 ‘오빠’나 ‘부모’ 같은 단어 대신,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이게 무슨….”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철컥.
어디선가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명실의 풍경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사방이 하얀 타일로 덮인 병실로 변했다. 창밖엔 끝도 없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열린 문 너머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울지 마.
그건 내 목소리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리고, 겁에 질려 떨고 있지만, 분명히 나 자신인 목소리.
—누나 대신 내가 기록될게. 오늘은… 오늘은 내가 대신 죽을게.
복도 끝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오른손을 잡고 있던 백연의 형체가 처음으로 선명해졌다. 그녀는 나를 보며 슬프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환자복 가슴팍에는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름이 바뀐 채 기록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