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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5화. 내일 죽는 죽은 사람과 최초 보호자 윤○○ 일러스트

94-95화. 내일 죽는 죽은 사람과 최초 보호자 윤○○

제목: 94화. 내일 죽는 죽은 사람

바닥에 떨어진 종이는 차가웠다. 서릿발이 서린 것처럼 손가락 끝을 아리게 만드는 감각.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대상자: 최성국]

[상태: 미확정(Unconfirmed)]

[사망 예정일: 내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최성국 부장은 이미 죽었다. 10년 전, 그 지옥 같은 병원 지하에서 나를 대신해 죽음을 택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이미 부서진 잔해였고, 기록보관소 안에서 만난 그의 잔향조차 방금 전 소멸했다.

그런데 내일 죽는다고? 이미 제삿밥을 10년째 얻어먹고 있을 사람한테 무슨 추가 사망 선고란 말인가.

“기록보관소 이 미친놈들아, 고인 모독도 정도가 있지.”

내 비아냥거림에 응답하듯, 허공에 뜬 기록 노이즈가 지지직거리며 글자를 갱신했다.

[알림: 대상자 ‘최성국’의 물리적 소멸은 확인되었으나, 행정적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상태: 현장 소멸 / 기록 미퇴근 / 보호자 권한 잔존]

“기록상 미퇴근……?”

옆에서 이현우가 내뱉는 신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서류를 훑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강도윤 씨, 이건 예언이 아니에요. 이건…… 미결재 서류예요. 0층 기록보관소의 관점에서 ‘죽음’은 심장이 멈추는 게 아니라, 이 시스템에서 로그아웃하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장님이 아직 퇴근 도장을 안 찍고 야근 중이라는 거야? 10년 동안?”

“정확히는 누군가가 결재를 막고 있는 거죠. 최성국 부장님의 죽음을 ‘확정’ 짓지 않음으로써, 그분이 가진 [보호자 0번] 권한을 이 시스템에 억지로 남겨두고 있는 겁니다.”

머리 위를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 소름에 몸을 떨었다. 제갈후. 그 노회한 노인이 왜 나를 직접 건드리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최성국이 죽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기에, 내 임시 보호자 권한이 그에게 묶여 있었던 거다.

“죽은 사람 근태관리까지 하는 지옥이라니. 야, 이럴 거면 사후세계 노동법은 누가 보장해 주냐? 퇴사 서류 결재 안 해준다고 귀신을 잡아두는 건 너무 블랙기업 아니야?”

반가온이 평소처럼 독설을 내뱉었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내 손목, 정확히는 아까 내가 포기한 이름의 파편이 남긴 붉은 낙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강도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윤서하였다. 그녀는 간신히 벽을 짚고 서 있었다. 기록 노이즈로 인해 신체 일부가 희미하게 점멸하던 현상은 멈췄지만, 안색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했다.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내 손목의 낙인을 살짝 건드리려다, 마치 뜨거운 불꽃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멈췄다.

“왜 그랬어요.”

“뭐가요.”

“당신의…… 이름을 깎아서 나를 붙잡은 거잖아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냉철하던 눈빛 속에 내가 본 적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미안함, 부채감, 그리고 본인의 실존이 타인의 희생으로 연장되었다는 것에 대한 혐오감.

나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하며 손목을 소매 안으로 감췄다.

“별거 아닙니다. 강도윤에서 한 글자 빠진다고 강도 되는 거 아니잖아요. 나중에 이자 쳐서 갚으세요. 윤서하 씨 목숨값 비싸니까.”

“강도윤 씨.”

“지금은 제 이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이 ‘내일 죽는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합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다시 최성국의 서류를 보았다. 기록보관소의 냉기가 내 발등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선택을 요구합니다.]

[A. 최성국의 사망을 오늘 자로 확정함: 제갈후의 권한 이전 신청이 무효화되지만, 귀하의 ‘보호자 0번’ 보호막이 즉시 사라집니다.]

[B. 최성국의 사망 확정을 보류함: 내일 0시, 제갈후가 최성국의 기록을 탈취하여 귀하의 보호자 권한을 강제 교체할 수 있습니다.]

외통수였다. 지금 죽음을 확정하면 나는 제갈후의 손아귀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하지만 내버려 두면 내일 제갈후가 부장님의 권한을 가져가 나를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다.

그때였다.

야, 도윤아.

귀 옆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잔향청취. 93화에서 느꼈던 그 희미한 울림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훨씬 더 ‘사무적인’ 목소리.

내 퇴근 도장은 네가 찍지 마라. 그거 찍는 순간 너는 진짜 고아 되는 거야.

최성국 부장이었다. 아니, 기록에 박제된 그의 잔향이었다.

출근 기록을 먼저 찾아. 0층은 들어온 기록이 있어야 나가는 기록도 있는 법이거든.

“부장님? 최성국 부장님!”

내가 허공을 향해 소리쳤지만,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10년 전, 그 병원 지하층.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내 팔목에 채워졌던 종이 팔찌. 그리고 나를 입원시키던 간호사가 들고 있던 낡은 차트.

‘임시 표찰.’

강도윤이라는 가짜 이름이 붙기 전, 내가 이 ‘시스템’에 처음 등록되었을 때의 기록. 그건 지금의 내 이름이나 신분과는 별개의 보관함에 들어있을 터였다.

“이현우 씨, 10년 전 환자 기록이나 임시 표찰을 따로 보관하는 캐비닛이 이 근처에 있을까요? ‘출근 기록’이라고 불릴 만한 게.”

“출근 기록이라면…… 아! 입소 기록 보관소요? 하지만 거기는 구역 자체가 봉쇄되어 있을 텐데…….”

그 순간,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의 공기가 뒤틀렸다.

고층 건물만큼 높이 솟아있던 거대한 철제 캐비닛들이 끼이익,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짐승들이 몸을 뒤트는 것처럼 바닥이 진동했다. 캐비닛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길은 정상적인 물리 법칙을 따르고 있지 않았다. 길 곳곳이 노이즈로 끊겨 있었고, 잘못 발을 디디면 영원히 기록의 공백 속으로 추락할 것처럼 보였다.

“저기 보세요!”

반가온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아까 윤서하가 피를 토하며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찍어 눌렀던 핏자국들. 그 핏자국들이 마치 이정표처럼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기록보관소의 노이즈가 침범하지 못하는 유일한 ‘현실 좌표’였다.

“서하 씨의 좌표를 밟고 가야 해요. 안 그러면 기록 보관소에 먹힐 거예요.”

나는 윤서하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한계였다.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녀를 이곳에 두고 우리끼리 달려가야 할까? 아니면 그녀를 업고 이 위험한 길을 통과해야 할까?

윤서하는 내 시선을 읽은 듯, 차갑게 입술을 깨물며 내 옷소매를 잡았다.

“가요. 나를 두고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고집불통이시네요.”

“당신 이름값, 내가 갚아야 하니까.”

우리는 움직였다. 윤서하를 부축한 채, 그녀가 흘린 핏자국을 하나하나 밟으며 거대한 캐비닛의 미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등 뒤에서는 제갈후의 수하들이 다가오는 것인지, 아니면 기록보관소의 청소 절차가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종이 넘기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길의 끝, 다른 캐비닛들과 달리 녹슨 쇠 냄새가 진동하는 단 하나의 서랍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먼지 쌓인 라벨이 붙어 있었다.

[10년 전 - 임시 수용자 기록]

그리고 그 라벨 아래,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급하게 수정된 듯한 글자가 보였다. 내 이름 ‘강도윤’은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내가 잃어버린, 원래 이름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지워진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결정적인 한 줄.

[최초 보호자: 윤 ○ ○]

윤?

나는 옆에서 거친 숨을 내몰아쉬는 윤서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성과 같은 글자가, 내 10년 전 기록의 ‘최초 보호자’ 란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윤서하 씨, 당신…… 설마…….”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서랍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서류의 향기가 아니라, 오래전 잊어버린 피 냄새와 병원의 소독약 냄새였다.

제목: 95화. 최초 보호자 윤○○

서랍이 열리는 소리는 평범한 가구의 마찰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쇠창살이 바닥을 긁는 소리였고, 동시에 10년 전 어느 폐쇄 병동의 육중한 철문이 끼익하며 비명을 지르는 환청이었다.

서랍 안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다. 코끝을 찌르는 진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그 아래 끈적하게 눌어붙은 비릿한 피 냄새.

“이게…… 서랍 안이라고?”

이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서류 더미가 아니었다. 좁디좁은 서랍 공간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 안에는 녹슬어 비틀린 환자용 침대 다리 하나와, 누군가 급하게 뜯어낸 듯한 환자 팔찌, 그리고 갈기갈기 찢겨 너덜거리는 차트 조각들이 마치 정물화처럼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젖지도 않은 채 새까맣게 마른 검은 우산 하나가 창처럼 꽂혀 있었다.

손을 뻗으려 하자, 시야가 일렁였다.

[주의: 기록보관소 0층, ‘미퇴근 구역’의 잔향이 동기화됩니다.]

[현재 귀하의 권한은 ‘임시 보호’ 상태입니다.]

“도윤 씨! 손대지 마요!”

반가온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늦었다. 내 손가락 끝이 차트 조각에 닿는 순간, 주변의 풍경이 급류에 휘말린 것처럼 씻겨 나갔다.

반가온의 날카로운 경고도, 이현우의 당황한 숨소리도 순식간에 멀어졌다. 대신 들려오는 것은 불길한 기계 장치의 기계음과 아이들의 억눌린 울음소리였다.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10년 전, 모든 것이 시작된 그 병원 복도에.

내 발치에 작은 아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의 손목에는 하얀색 환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표는 무참히 훼손되어 있었다. 누군가 검은 우산 끝으로 지져버린 듯, 이름의 첫 자와 끝 자는 타버린 구멍으로 변해 있었다.

강○윤. 혹은 ○도윤.

내 이름의 조각들이 타버린 재가 되어 복도 바닥을 굴렀다. 아이는 이름이 지워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랍 라벨에 적혀 있던 문구 위로 시선을 옮겼다.

[최초 보호자: 윤 ○ ○]

나는 홀린 듯 그 이름을 읽으려 애썼다. 윤서하의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성씨가 주는 무게감은 내 목을 조여 왔다. 윤서하가 태어나기도 전, 혹은 그녀가 아주 어렸을 적에 가문의 실권을 쥐고 있었을 누군가의 이름.

“……안 돼.”

현실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서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이름, 우리 가계도에 있는…….”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내가 본 잔상 속에서, ‘윤 ○ ○’라는 이름 뒤에 붙은 직함은 ‘보호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관리자’에 더 가까운 서늘한 낙인이었다.

툭.

차트 조각 하나가 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잔향이 머릿속을 긁으며 말을 걸어왔다.

― 이 아이는 입원한 게 아닙니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마치 오래된 녹음기 같은 목소리였다. 낡은 퇴근 카드 한 장, 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 10년 전 오늘, 정식으로 ‘출근’했습니다.

― 다만 퇴근 도장을 찍어줄 사람이 사라졌을 뿐이죠.

― 덕분에 이 헌터는 10년째 무급 야근 중입니다. 지독한 블랙 기업이죠?

“야근치고는 지나치게 하드보일드한데.”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정신을 차렸다. 시야가 다시 0층 기록보관소로 돌아왔다. 등 뒤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반가온은 이미 내 손목을 낚아채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정신 차려요, 강도윤! 죽고 싶어 환장했어?”

반가온이 내 손바닥 위의 차트 조각을 낚아채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그녀의 미간이 급격히 좁아졌다.

“이거, 복사본 아니야. 시스템이 생성한 데이터 덩어리도 아니고. 진짜 10년 전 그 현장에서 찢겨 나온 원본이야. 어떻게 이게 여기 보관되어 있지?”

“그건 입원 기록이 아니니까요.”

이현우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거들었다. 그는 내 근태 기록 인터페이스와 차트의 일련번호를 대조하고 있었다.

“도윤 씨, 이건 병원 차트의 형식을 빌린 ‘협회 시스템 최초 접속 기록’이에요. 0층 기록보관소에 도윤 씨라는 개체가 처음으로 등록된 순간의 로그라고요. 당신의 ‘잔향 청취’ 능력…… 그거 사고로 얻은 각성 능력이 아닐지도 몰라요.”

“무슨 소리야?”

“그때 0층의 시스템과 강제로 동기화되면서 터진 시스템 에러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까 이건 능력이 아니라, 10년째 닫히지 않은 ‘접속 불량’ 상태인 겁니다.”

내가 10년 동안 들었던 망자들의 목소리가 그저 시스템의 노이즈였다는 소린가. 농담치고는 최악이었다. 내가 지켜온 괴로움이 고작 통신 장애였다니.

그때였다.

치익, 치지직―.

공중의 스피커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아니, 그것은 기록보관소의 공간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가까웠다.

[경고. 권한 없는 사용자의 기밀 기록 열람을 감지했습니다.]

[보호자 0번, 최성국의 권한은 현재 ‘유예’ 상태입니다.]

[해당 기록의 열람은 보호 규정 위반입니다.]

익숙한, 그리고 불쾌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 제갈후였다.

“제갈후……!”

내가 이름을 내뱉기 무섭게, 서랍 안쪽의 어둠이 꿈틀거렸다. 꽂혀 있던 검은 우산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우산살들이 마치 사람의 손가락처럼 길게 뻗어 나왔다.

그 검은 손가락들이 내가 쥐고 있는 차트 조각을 다시 뺏으려 허공을 긁었다.

“안 뺏겨.”

내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서랍에서 뿜어져 나온 중력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10년 전의 병원 침대 다리가 내 발등을 짓누르는 감각이 생생했다.

그때, 은색 검광이 허공을 갈랐다.

깡!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검은 우산살들이 튕겨 나갔다. 윤서하였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와중에도 검을 뽑아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가져가세요, 강도윤 씨.”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가문의 이름이 여기 왜 있는지, 나도 알아야겠으니까.”

그녀의 검 끝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정체성과 싸우고 있었다. 최초 보호자 ‘윤 ○ ○’. 그 이름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너지지 않고 내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차트 조각을 완전히 밖으로 끌어냈다. 서랍이 쾅 닫히며 주변의 환상이 유리창 깨지듯 부서졌다.

“하아, 하아…….”

내 손에는 너덜너덜한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앞면에는 지워진 내 이름과 그 불길한 보호자의 성씨가 적혀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차트를 뒤집었다. 그 뒷면에는 이 기록의 ‘이력’이 한 줄씩 타이핑되어 있었다.

[보호자 변경 이력]

1순위: 윤 ○ ○ (상태: 실종/권한 정지)

2순위: 최성국 (상태: 사망 확정 대기/권한 유예)

3순위(예약): 제갈후 (예약 시각: 내일 00:00)

그리고 그 아래, 마지막 줄에 새로운 글자가 실시간으로 타자기를 치듯 찍히기 시작했다. 잉크가 아니라 검은 피가 번지는 것 같은 글자였다.

4순위(확정): 제갈후 → 강도윤 (본명 삭제 후 개체 자동 폐기 절차 진입)

내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 먼저일까, 내 존재가 폐기되는 것이 먼저일까.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 0층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목숨의 퇴근 시간이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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