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139화. 생존 가능 시간 120초와 최초 점장의 방문
제목: 138-139화. 생존 가능 시간 120초와 최초 점장의 방문
제목: 138화. 생존 가능 시간 120초
[경고: 생존 가능 시간 120초.]
[시스템이 ‘재고 온도 유지 모드’를 강제 집행합니다. 미등록 생명체의 세포 활동이 정지됩니다.]
망막을 찢고 들어오는 붉은색 경고등이 내 시야를 피칠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그보다 훨씬 더 시리도록 하얬다.
“으, 윽…….”
내 품에 안긴 윤서하의 몸에서 고드름이 맺히는 소리가 났다. 아니, 그건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그녀의 피부 위로 서리가 돋아나고, 투명한 얼음 결정이 혈관을 따라 퍼져나가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인형처럼 정교했던 그녀의 얼굴이 진짜 조각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뒤편, 냉장 매대 사이사이에서 검은 우산들이 솟아올랐다. 젖지 않은 우산들이었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이 지하 냉장고 안에서, 검은 우산을 쓴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형씨, 저것들…… 사람이 아니에요.”
반가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평소의 장난기 섞인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람 냄새가 아니라, 비 오는 날 편의점 앞에 버려진 검은 비닐우산 냄새가 나요. 썩은 플라스틱이랑 먼지 낀 빗물 냄새요.”
“버려진 것들의 잔여물이라는 뜻인가.”
나는 이를 악물고 윤서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를 녹여야 했다. 내 체온이라도 나눠줘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이 울리며 ‘잔향청취’가 강제로 개방됐다.
— 오빠, 이번엔 나를 두고 가면 안 돼.
어린아이의 목소리. 동시에 흑백 필름처럼 조각난 기억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폐건물 복도였다. 어린 내가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다. 뒤편에서는 기괴하게 늘어난 그림자들이 쫓아오고 있었고, 내 손을 잡고 있던 작은 손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도윤아, 뛰어! 뒤돌아보지 마!’
누군가의 외침. 그건 형의 목소리였을까, 아니면 조작된 내 기억의 환청일까. 나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화면은 노이즈와 함께 끊겼다. 기억 속의 ‘나’는 결국 아이를 두고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 비겁하고, 처절하게.
“……아니야.”
나는 중얼거렸다. 그게 진실인지, 아니면 이 공간이 내게 보여주는 악의적인 환상인지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죄책감이 현실의 나를 짓눌렀다.
“도윤 씨, 정신 차려요! 70초 남았다고요!”
이현우의 비명이 들렸다. 그는 미친 듯이 단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거 미쳤어요! 여긴 외부 해킹이 안 먹혀요. 물류 규정이 최우선이라 ‘관리자’ 권한보다 ‘물품 상태’가 상위 로그에 박혀 있다고요!”
“해결책만 말해, 이현우!”
“지금 코어가 ‘분실물’로 등록돼서 시스템이 회수 프로세스를 돌리는 거예요. 이걸 ‘인계 중 물품’으로 상태를 변경해야 해요! 그럼 시스템이 운송 중인 걸로 착각하고 냉각을 멈출 겁니다!”
“어떻게 바꾸는데?”
“그게…… 인계받는 쪽의 승인 권한이 필요한데, 제 권한으론 택도 없어요!”
그때, 얼어붙어가던 윤서하의 손이 내 옷소매를 잡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반쯤 유리알처럼 변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서슬 퍼런 의지가 살아 있었다.
[사용자 ‘윤서하’가 임시 관리 권한을 ‘강도윤’에게 대여합니다.]
[경고: 동기화율이 임계치를 돌파합니다. 개체 ‘윤서하’의 자아 유실 위험이 증가합니다.]
“도윤 씨…….”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맡길게요. 당신이…… 내 주인이든, 아니면 나를 버린 사람이든…… 지금은 당신뿐이니까.”
그녀의 권한이 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차갑고도 날카로운 정보의 홍수였다. 동시에 내 품 안의 인수인계서가 바르르 떨리며 한 페이지가 강제로 펼쳐졌다. 거기엔 형, 강도원의 비뚤비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도윤아, 네가 또 멋대로 책임지려고 할 때 읽어라. 책임은 혼자 지는 게 아니라 나눠 지는 척하다가 같이 욕먹는 거다. 그게 팀워크고, 사회생활이다. 쫄지 마. 넌 혼자가 아니니까.」
망할 형놈. 죽어서도 내 속을 긁어놓는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그 농담이 방패가 되어 내 가슴속의 죄책감을 밀어냈다. 혼자 책임질 필요 없다. 내 옆엔 규정 마니아 이현우가 있고, 코가 예민한 반가온이 있고, 자신을 던져 권한을 준 윤서하가 있다.
“이현우, 지금이야! 상태 변경 신청 날려!”
나는 윤서하에게 받은 권한을 전부 이현우의 단말기에 쏟아부었다.
“가온아, 저 우산들 접근 못 하게 막아!”
“오케이! 냄새나는 우산들은 분리수거가 답이죠!”
반가온이 단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들의 우산살을 베어 넘겼다. 그림자들은 물리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 듯했으나, 가온의 신성력이 담긴 일격에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남은 시간: 15초.]
이현우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였다.
“변경 신청…… 승인 대기 중…… 제발, 제발!”
[물품 ID: BK-001(원본)의 상태가 ‘분실물’에서 ‘인계 중 물품(수신인: 강도윤)’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냉각 시스템 가동 중지. 생존 가능 시간 측정을 종료합니다.]
화면을 가득 채웠던 붉은 경고등이 꺼지고, 숨 막히던 냉기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120초의 카운트다운은 단 3초를 남기고 멈췄다.
“하아, 하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윤서하의 몸을 덮고 있던 서리가 녹아내리며 그녀의 호흡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하지만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단 위에 놓여 있던 [백설(원본)]의 팔찌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허공을 날아와 내 왼쪽 손목에 감겼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아이템 귀속 완료.]
[시스템 재분류: 강도윤(회수자) → 보관 실패 책임자.]
[알림: 책임자는 보관 물품의 손상에 대해 직접 소명해야 합니다.]
“이건 또 뭐야? 왜 나한테 붙어?”
내가 팔찌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문신처럼 내 손목에 밀착되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반가온이 베어 넘겨 바닥에 흩어졌던 검은 우산의 잔해들 사이에서, 익숙한 잔향이 피어올랐다. 아니, 그건 목소리였다. 형의 목소리와 지독하게 닮은, 하지만 훨씬 더 서늘하고 건조한 목소리.
— 막내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우산을 든 그림자 중 하나가 서서히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그것은 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어떤 형체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형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그 팔찌 차면 점장이 널 직접 보러 온다.
“형? 아니, 당신 누구야?”
내 물음에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소름 끼치도록 경쾌한 소리였다.
딸랑—.
지하 깊숙한 냉장 폐기실 입구 쪽에서, 편의점 문을 열 때 들리는 익숙한 차임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은 폐쇄된 지하 구역이고, 입구는 우리가 들어온 뒤로 잠겨 있었다.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공간의 ‘주인’이.
나는 서둘러 윤서하를 부축해 일으키며 문쪽을 노려보았다. 손목의 팔찌가 맥박처럼 고동치기 시작했다.
제목: 139화. 최초 점장의 방문
‘띠링-.’
냉장 폐기실의 육중한 납문 너머에서 들려올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벽 세 시, 술에 취한 취객이 비틀거리며 들어설 때나 들릴 법한 아주 전형적이고 경쾌한 편의점 차임벨 소리였다.
하지만 그 경쾌함이 주는 공포는 방금 전까지 우리를 얼려 죽이려던 영하 40도의 냉기보다 날카로웠다.
“어서 오세요. 정성을 다하는 24시간입니다.”
목소리는 문 너머가 아니라, 공간 전체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서리가 가득 끼어 있던 폐기실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낯익은 흰색과 회색 체크무늬의 데코타일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낡은 철제 선반 위에는 피 묻은 거즈와 적출된 장기 대신, 유통기한이 지나 비틀린 삼각김밥과 1+1 행사 안내판이 돋을새김처럼 솟아올랐다.
냉장 병동의 폐기실과 편의점 매장이 한 공간에 중첩되고 있었다. 마치 잘못 인화된 사진 두 장이 겹쳐진 것처럼, 비릿한 소독약 냄새와 고소한 튀김 기름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입구 쪽,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규격’에 맞춘 듯한 모습이었다. 빳빳하게 다려진 편의점 조끼,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러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목구비 대신 반투명한 노이즈가 일렁이고 있었다.
[경고: ‘최초 점장’이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경고: 관리자 권한 등급이 측정 불가능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세상에. 저게 점장이라고?”
반가온이 내 팔을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평소라면 ‘편의점 알바가 점장 되는 게 꿈이라더니 드디어 만났네’ 같은 농담이라도 던졌겠지만, 지금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놈에게선 압도적인 ‘시스템’의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점장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병동의 어둠이 지워지고 편의점의 형광등 불빛이 강제적으로 수복되었다.
“재고 관리에 차질이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방문했습니다. 현재 본 점포는 ‘보관 실패’ 상태군요.”
점장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과하게 친절해서, 당장이라도 내 목줄기를 따고 ‘폐기 상품입니다’라고 웃으며 말할 것 같았다. 그의 시선—혹은 시선이라 느껴지는 노이즈—이 내 왼쪽 손목에 고정되었다.
거기엔 아까 달라붙은 [백설(원본)] 팔찌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고객님, 아니. ‘보관 실패 책임자’ 강도윤 씨.”
점장이 나를 지칭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내 눈앞을 가득 메웠다.
[특이사항: 귀하는 물류 규정 제14조 2항에 의거, ‘분실 위험 물품’의 최종 소지자로 분류되었습니다.]
[소명 절차를 시작합니다. 물품의 파손 및 반품 불가 사유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 부족분은 책임자의 ‘생명 자산’으로 충당합니다.]
“저기요, 점장님. 제가 이 팔찌를 차고 싶어서 찬 게 아니라, 이게 제 손목에 자석처럼 붙은 거거든요? 소비자 과실이 아니라 제조 공정상의 결함 같은데, 이건 본사 차원에서 리콜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농담은 처절한 방어기제였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지만, 입이라도 놀리지 않으면 공포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점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였다.
“물품은 말이 없습니다. 규정만이 존재할 뿐이죠. [백설(원본)]은 이 점포의 핵심 자산입니다. 그것을 임의로 ‘인계 중 물품’으로 변경하여 냉각 프로세스를 중단시킨 행위는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그가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공간의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 그때, 비틀거리던 윤서하가 내 앞을 막아섰다. 아직 몸에 서리가 남아서 파르르 떨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그 물건은 물건이 아니야.”
윤서하가 갈라진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가…… 내가 그 팔찌의 복제본일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대리 개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선택은 내 거야. 이 사람은 내 권한을 빌린 것뿐이야. 책임은 나한테 있어.”
“서하야, 뒤로 물러나.”
내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지만, 윤서하는 요지부동이었다. 점장은 그런 윤서하를 마치 고장 난 키오스크를 보듯 건조하게 내려다보았다.
그 옆에서 태블릿을 미친 듯이 두드리던 이현우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도윤 형, 조심해. 저거 사람 아냐.”
“당연히 사람 아니겠지. 저런 복장을 하고 얼굴이 노이즈인데.”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데이터 로그가 이상해. 저 ‘최초 점장’이라는 존재는 개별적인 자아가 없어. 그냥 ‘폐점되지 않은 첫 번째 점포’의 운영 규칙 그 자체야. 사람이 규정의 탈을 쓴 게 아니라, 규정 덩어리가 사람 흉내를 내고 있는 거라고.”
반가온도 코를 킁킁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현우 말이 맞아. 냄새가 너무 기분 나빠. 사람 냄새가 전혀 안 나. 비닐 포장지 안에 15년 동안 갇혀서 잉크가 다 번진 영수증 냄새…… 아무도 환불하러 오지 않아서 썩어버린 물건 냄새만 가득해.”
그 순간, 내 손목의 팔찌가 다시 한번 진동했다.
머릿속에서 어린 백설의 목소리가, 이번엔 훨씬 선명한 잔향으로 울려 퍼졌다.
—오빠…… 오빠가 나를 버린 게 아니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억 속의 눈보라가 다시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누가…… 누가 오빠 이름을 지웠어. 오빠가 날 두고 간 게 아니라, 시스템이 오빠를 지워버린 거야.
기억 조작? 아니, 이것은 ‘기록의 말살’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와 백설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았다는 사실이, 팔찌를 통해 흘러들어온 백설의 진심과 함께 나를 때렸다.
점장이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손이 내 손목의 팔찌—백설의 코어를 향해 뻗어졌다.
“회수하겠습니다. 해당 품목은 재검수가 필요합니다.”
그대로 뺏길 수는 없었다. 머릿속을 풀가동했다. 이현우의 말대로 저놈이 ‘규정 덩어리’라면, 규정으로 맞서야 한다.
“잠깐!”
나는 외쳤다. 점장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점장님, 방금 저를 ‘보관 실패 책임자’로 명명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럼 물류 관리 지침 제22조를 확인해 보시죠. 보관 실패 책임자로 지정된 인원은, 해당 사안에 대한 ‘현장 소명’과 ‘정밀 감사’가 끝나기 전까지 현장을 보존할 의무가 있습니다. 맞습니까?”
점장의 노이즈 낀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부에서 연산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
“……맞습니다.”
“그리고 감사 기간 중에는 물품의 임의 회수가 금지되어 있죠. 책임자가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점장님이 이걸 가져가시면, 저는 소명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고, 그건 본사 감사 규정 위반 아닙니까? 제가 고객 센터에 ‘강제 회수로 인한 소명권 침해’로 클레임 걸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침묵이 흘렀다. 이현우와 반가온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윤서하조차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래, 나도 안다. 지금 내 논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인지. 하지만 놈이 ‘규정’ 그 자체라면, 이 말장난은 치명적인 오류가 된다.
점장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합리적인 지적입니다. 현장 보존 의무가 우선시되는군요.”
살았다. 나는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점장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 소명’은 24시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강도윤 씨. 당신에게 정식 소환장을 발부하겠습니다.”
점장이 허공에 손을 젓자, 공중에서 영수증 용지 한 장이 지익 소리를 내며 출력되었다. 그것은 천천히 낙하하여 내 손에 떨어졌다.
“24시간 내에 본 점포 고객센터로 출석하십시오. 불참 시, 귀하의 모든 권한은 영구 정지되며 ‘폐기 상품’으로 분류되어 소각 처리될 것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띠링-.’
다시 한번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편의점의 풍경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데코타일은 차가운 시멘트로, 형광등 불빛은 음산한 비상등으로 돌아왔다. 점장의 실루엣도, 그 기괴한 영수증 냄새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엉망진창이 된 냉장 폐기실과, 우리 넷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갔나?”
반가온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이현우도 벽에 기대어 마른세수를 했다. 윤서하는 여전히 내 앞을 지키듯 서 있다가, 안도감 때문인지 내 품으로 쓰러지듯 기댔다.
“도윤 씨…… 괜찮아요?”
“어, 어떻게든 넘겼네. 역시 편의점 알바 짬밥이 어디 안 가.”
나는 억지로 웃으며 그녀를 부축했다. 하지만 손에 든 소환장을 확인하는 순간, 내 웃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단순한 영수증처럼 보였던 소환장 하단, ‘담당자’라고 적힌 칸에 익숙한 이름이 박혀 있었다.
[담당자: 매니저 강도원]
[사원번호: 00-1204-DW]
내 형의 이름. 그리고 형이 살아생전 사용하던 사원번호와 똑같은 번호였다.
“형……?”
강도원은 폐기된 게 아니었다. 죽어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는 이 괴물 같은 점장 시스템 내부 어딘가에서, 여전히 ‘근무 중’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소환장을 꽉 쥐었다. 24시간. 그 안에 내가 가야 할 곳은 고객센터가 아니라, 형이 갇혀 있는 시스템의 심장부였다.
내 손목의 팔찌가 다시 한번 기분 나쁜 박동을 시작했다. 마치 어서 오라고, 형이 기다리고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