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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7화. 냉동 보관실과 해동되는 사망신고서 일러스트

66-67화. 냉동 보관실과 해동되는 사망신고서

제목: 66화. 냉동 보관실 B-12호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등 뒤로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지하 3층. 버튼 위에는 '안치실 및 기계실'이라는 투박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머릿속의 한 구석이 텅 비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배가 고프거나 잠이 부족해서 느끼는 공허함이 아니었다. 방금 전 '공정 관리자'에게 지불한 대가, 즉 내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통째로 도려져 나간 흔적이었다.

"……도윤 씨, 괜찮습니까?"

옆에 선 이현우가 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 머리가 좀 가벼워졌어. 다이어트 효과 확실하네. 뇌 용량 줄이는 게 제일 빠른 길이었어."

"농담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아직 정신은 붙어 있군요."

이현우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어깨를 꽉 쥐었다. 그 손길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따뜻하게 다독여주던 기억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제는 그 감각만 남고 '누구'였는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잃어버린 기억의 자리는 마치 충치라도 빠진 것처럼 시리고 아렸다. 보이지 않는 통증이 뇌를 쑤셨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입관실이 있던 1층과는 차원이 다른 냉기가 발등을 타고 올라왔다. 복도 양옆의 형광등은 전압이 불안정한지 지직거리며 푸르스름한 빛을 뱉어냈다. 바닥 타일 위로는 하얀 성에가 곰팡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웅웅'거리는 대형 냉동기 가동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 가래를 끓이며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제갈(諸葛)이라……."

이현우가 앞장서 걸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까 사망신고서에서 본 그 성씨였다.

"복성은 흔치 않지. 특히 한국에서는. 검은 우산 내부의 '집행자'급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뒤를 봐주는 거물급 보증인일 가능성이 커. 박철수 같은 일개 말단이 감히 손을 잡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야."

"박철수가 그 이름을 빌려 썼거나, 아니면 그놈이 아이의 이름을 '담보'로 맡겼다는 뜻이겠지."

나는 주머니 속에서 차갑게 식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 한지율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도윤 씨! 서하 씨 체온이 갑자기 떨어지고 있어요. 34.2도. 간호사들이 달려왔는데 원인을 모른대요. 그리고 손목에…… 아까 그 피멍 자국에서 실 같은 게 뻗어 나와요. 06:00이라는 숫자가 점점 진해지고 있어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06:00.

내가 벌어온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다. 그 시간이 흐를수록 서하의 몸은 이곳 냉동실과 동기화되어 얼어붙을 것이다.

"빨리 가자. 서하가 에어컨 바람 쐬는 수준이 아니게 됐어."

우리는 복도 끝, 'B-12'라고 적힌 육중한 철문 앞에 섰다. 문틈에서는 안개의 잔해 같은 냉기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고 있었다.

끼이익-.

기름칠이 되지 않은 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안치실 내부에는 은색 스테인리스로 된 시신 보관용 서랍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랍마다 번호표가 붙어 있었지만, 오직 B-12호 구역만이 유독 짙은 성에로 뒤덮여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오셨군요. 보관 기한을 연장하러 오신 고객님이신가요?"

서랍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스윽 나타났다.

그는 방진복 같은 얇고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눈가에는 스키 고글처럼 생긴 기괴한 장비를 쓰고 있었다. 손에는 구식 체온계와 두꺼운 장부를 들고 있었다.

"냉동 기록원입니다. 여기서는 썩지 않게 보관된 이름만을 관리하죠."

그의 목소리는 마치 액체 질소를 들이마신 것처럼 건조하고 차가웠다.

"강도윤. 20년 전 기록을 찾으러 왔다."

내가 이름을 뱉자, 기록원은 고글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장부를 넘겼다. 장부 종이가 얼어붙어 있어서 넘길 때마다 '바스락'이 아니라 '콰득' 소리가 났다.

"강도윤…… 아, '냉동 보증물'이군요. 소유권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썩지 않게 잘 보관되어 있죠. 소유권자가 제때 결제를 하지 않아 연체료가 쌓여 있긴 합니다만."

"냉동 보증물?"

"이름은 생명과 연결된 유기물입니다. 그냥 두면 변질되거나 증발하죠. 하지만 누군가의 '진짜 이름'을 숨기기 위해 대신 죽은 아이의 기록을 이곳에 얼려두면, 그 원본명은 결코 상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방부제이자 위장막이죠."

기록원이 B-12호 서랍 하나를 가리켰다. 서랍 손잡이에는 낡은 삼베 수의 조각이 묶여 있었다.

"열어보시겠습니까?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보관물을 건드리는 순간, 해동이 시작됩니다. 보증물이 녹으면 그와 연결된 '원본'들도 영향을 받게 되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서랍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이 철판에 쩍 달라붙었다. 살점이 뜯겨나갈 것 같은 추위가 느껴졌지만, 나는 그대로 서랍을 잡아당겼다.

드르륵!

서랍 안에는 시신이 없었다. 대신 그곳엔 켜켜이 쌓인 성에와 함께, 낡은 체온계 하나와 어린아이의 이름이 적힌 사망신고서 원본이 얼음 덩어리 속에 박혀 있었다.

잔향청취가 제멋대로 귓속을 열었다.

귀가 먹먹해지며 시야가 일그러졌다. 얼어붙은 사망신고서에서 20년 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아이의 이름으로 묶어두면 제갈(諸葛) 그 어른도 눈치 못 채겠지?"

"그래요. 진짜 강도윤은 이 기록 아래에 영원히 얼려두는 겁니다. 누구도 이 냉동 보관실을 열지 않는 한, 서울의 모든 기록망에서 '그 아이'의 흔적은 지워질 거예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와 박철수의 젊은 시절 목소리였다. 그들은 단순히 내 이름을 빌린 게 아니었다. 죽은 '진짜 강도윤'의 데이터를 냉동 보증물로 삼아, 제3의 인물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이게 서하를 옥죄고 있는 거군."

나는 서랍 안쪽, 얼음 속에 박힌 사망신고서의 매듭을 보았다. 그것은 병원에서 본 서하의 손목 멍 자국과 똑같은 형태의 실로 묶여 있었다.

"기록원. 이거 온도를 좀 올릴 수 있나?"

"온도를 올리면 보증물의 가치가 훼손됩니다. 연체료 대신 보관자의 생기를 소모하게 될 텐데요."

"상관없어. 일단 녹여."

나는 왼손을 서랍 안의 얼음 위에 올렸다. 헌터로서 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력을 손끝에 집중했다. 얼음을 녹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냉기'의 흐름을 비트는 쪽을 택했다.

치이익-!

손바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내 체온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대신 서랍 속의 실 매듭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동시에 내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한지율의 문자였다.

[도윤 씨! 서하 씨 체온이 35.5도까지 올라왔어요! 손목의 실 자국도 희미해졌고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편의점 냉동고에서 막 꺼낸 하드를 한입에 삼킨 것 같은 두통이 밀려왔다. 나는 비틀거리며 서랍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야. 임시방편이지."

나는 이현우의 부축을 받으며 서랍 안쪽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얼음이 투명해지며 사망신고서 뒷면의 가려진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고자: 諸葛 ○ (제갈 ○)]

뒷글자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흔들렸다. 그 순간, 기록원의 고글이 붉게 점멸했다.

"경고합니다. 보증물을 더 이상 해동하지 마십시오."

기록원의 목소리가 지하 전체를 울릴 만큼 거대해졌다.

"이 이름을 완전히 녹이면, 이 아이와 얽힌 서울 기록망의 모든 잠금쇠가 같이 녹아내립니다. 당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해동될 겁니다."

그의 말과 함께 냉동 서랍 안쪽 깊은 곳에서, 누군가의 낮은 웃음소리가 잔향으로 들려왔다. 박철수도, 관리자도 아닌 제3의 목소리.

"결국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내 '껍질'을 열러 온 꼬마가 너냐?"

서랍 안쪽의 어둠 속에서, 검은 우산의 끝부분처럼 생긴 길쭉한 그림자가 스윽 솟아올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서랍 안의 체온계를 집어 들었다. 그곳엔 현재 온도가 아닌, 어떤 '날짜'가 숫자로 각인되어 있었다.

[2004. 06. 03.]

나의 진짜 기일이자, 내가 이 세상에 '강도윤'으로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

제목: 67화. 해동되는 사망신고서

[2004. 06. 03.]

체온계의 액정 화면에 뜬 숫자는 단순한 날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속 어딘가에 박혀 있던 정체불명의 파편이 신경을 긁어내리는 신호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기억은 없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뱃속 뒤편에서부터 뜨거운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고, 손가락 끝은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콧가에는 비릿한 병원 소독약 냄새와 낡은 담요의 텁텁한 먼지 향이 훅 끼어들었다.

“결국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내 ‘껍질’을 열러 온 꼬마가 너냐?”

냉동 서랍 안쪽, 어둠이 웅크린 틈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서늘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더니 마치 검은 우산의 끝부분처럼 날카로운 형상이 서랍 밖으로 살짝 삐져나왔다.

“어이, 강도윤! 정신 차려!”

어깨를 강하게 잡아채는 악력에 현실로 끌려 내려왔다. 이현우였다. 그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냉기 속에 침잠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셔츠 깃을 풀었다.

“……나 괜찮아. 그냥, 이 날짜가 좀 재수가 없어서 그래.”

“재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안색이 시체랑 동급이야. 이봐, 기록원!”

이현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냉동 기록원을 쏘아보았다.

“이 ‘보증물’인지 뭔지, 어떻게 치워야 하는 거야? 우리 애 상태 안 보이냐고. 해동 절차든 뭐든 당장 내놔.”

냉동 기록원은 감정이 거세된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철을 넘겼다.

“해동은 소유권자의 의지에 따릅니다. 하지만 경고하죠. 이 사망신고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20년 전 ‘서울 기록망’의 일부가 동결된 핵입니다. 얼음을 녹일수록 정보는 선명해지겠지만, 대가는 당신의 존재 자체로 지불해야 합니다.”

“존재? 내 연봉이라도 깎겠다는 거야? 그건 좀 곤란한데.”

나는 애써 농담을 던지며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서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입이라도 털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저 냉동 서랍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하는 방어기제다.

“기록의 혼합(Contamination)입니다.”

기록원이 말을 이었다.

“諸葛(제갈) 성씨 뒤에 가려진 이름을 확인하려면 보관 온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아이 강도윤’의 잔향이 현재의 ‘강도윤’에게 흘러 들어갈 겁니다. 운이 좋으면 과거의 단서를 얻겠지만, 운이 나쁘면 당신이 누구의 기억으로 살고 있는지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자아가 얼음 녹은 물처럼 섞이는 거죠.”

그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한지율이었다.

— 도윤 씨! 서하 씨 상태가 이상해요!

“지율 씨, 진정하고 말해봐요. 체온은 올라갔잖아요.”

— 올랐었는데, 갑자기 병실 창문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어요. 바깥은 여름인데 여기만 한겨울이에요. 그리고 서하 씨가…… 잠꼬대처럼 계속 뭔가를 중얼거려요.

수화기 너머로 지율의 떨리는 숨소리와 함께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 “그 날짜…… 6월 3일…… 숨기지 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윤서하, 너까지 왜 그 날짜를 아는 거야.

“기록원, 해동해.”

내 말에 이현우가 내 팔을 붙잡았다.

“강도윤, 미쳤어? 네 기억이 섞인다고 했잖아. 네가 네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고!”

“지금 저 서랍 안 닫으면 윤서하가 냉동인간이 되게 생겼어. 그리고…….”

나는 서랍 속에서 나를 부르던 그 검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저 안에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거든. 20년 동안이나.”

기록원이 허공에 손을 짓눌렀다. 끼이익, 하는 금속음과 함께 냉동 서랍 B-12호의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4. 06. 03.]이 새겨진 체온계의 숫자가 깜빡이며 [0.0℃]를 향해 달렸다.

치익, 하고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났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사망신고서의 표면에서 물방울이 맺히더니, ‘諸葛(제갈)’이라는 글자 뒤를 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장이 갈라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졌다.

‘……미안하다.’

낮고 굵은 목소리. 박철수였다.

내 시야가 급격히 낮아졌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점멸했고, 주변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이 들렸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었다.

‘도윤아, 조금만 참아라. 이름을 지우는 것뿐이야. 그래야 네가 살 수 있어.’

내 위로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 실내인데도 우산을 쓴 남자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든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내 뺨에 닿았다. 그것은 눈물처럼 뜨거웠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서울 기록망 최초 붕괴 확인. 실험체 강도윤의 데이터를 도시 전체로 분산합니다. 대신, 보증인을 세우십시오.’

‘내가 하겠소.’

박철수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 아이의 진짜 이름은…… 내가 가져가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기분. 손등에 돋은 소름이 내 것인지, 20년 전 죽어갔던 아이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강도윤! 정신 차려! 코피 나잖아!”

이현우의 외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냉동 서랍의 모서리를 손톱이 빠져라 움켜쥐고 있었다. 사망신고서의 얼음이 조금 더 녹아 있었다.

‘諸葛(제갈)’ 성씨 바로 옆, 한 획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세로로 길게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꺾인 획. ‘현(現)’의 일부분인지, ‘혁(赫)’의 시작인지, 혹은 ‘후(厚)’의 조각인지 알 수 없는 단 한 음의 파편.

“으윽……!”

나는 본능적으로 체온계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 숫자를 강제로 고정했다. [2004. 06. 03.]

서하의 병실 온도와 이 기록물의 온도를 동기화시켜야 한다. 과거의 온도가 현재를 갉아먹고 있다면, 역으로 현재의 기록으로 과거를 묶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기록원! 이 온도로 고정해. 더 녹이지도, 얼리지도 마.”

“그건 규칙 위반입니…….”

“이 사망신고서 신고자가 ‘제갈’이라며? 그럼 소유권자도 그쪽이겠네. 신고자가 나타날 때까지 이 상태로 ‘공정 보류’ 걸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기록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접수되었습니다. B-12호의 온도를 2004년 6월 3일의 상온으로 고정합니다. 이로 인해 서울 기록망의 잠금쇠 일부가 해제됩니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복도의 냉기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스마트폰 너머 지율의 목소리가 들렸다.

— 도윤 씨! 성에가 사라졌어요! 서하 씨 체온도 36.1도까지 올라왔고요!

다행이다. 일단은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내 손에 묻은 얼음물은 여전히 기분 나쁘게 차가웠다.

사망신고서 위에 나타난 그 성씨 뒤의 한 획. 그리고 아까 들렸던 목소리.

“껍질을 열러 왔냐고 물었나.”

나는 닫히기 시작하는 냉동 서랍 안쪽을 노려보았다. 검은 우산의 그림자가 그곳에서 비웃듯 일렁이고 있었다.

— “그 성을 읽으려 하지 마라, 꼬마야.”

서랍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제3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쳤다.

— “네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네가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대답하게 될 테니까.”

철컥.

서랍이 닫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온 아이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박철수가 나를 보며 했던 마지막 말.

‘미안하다.’

그건 사과였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자의 유언이었을까.

나는 諸葛(제갈) 뒤에 남겨진 그 한 음의 잔상을 되새겼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이름. 그러나 그 한 획만으로도 서울의 지하 기록망이 진동하고 있었다.

“가자, 현우 씨.”

“괜찮겠어? 너 지금 말투가 꼭…….”

“꼭 뭐요?”

“아니, 순간적으로 꼬마애가 말하는 줄 알았어. 소름 돋게.”

나는 아무 말 없이 안치실을 나섰다.

복도 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2004년 6월 3일.

내가 죽었고, 내가 태어난 날.

그날의 해동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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