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185화. 병실 문 밖의 반송 대기와 젖은 발자국의 보호자
184-185화. 병실 문 밖의 반송 대기와 젖은 발자국의 보호자
184화. 병실 문 밖의 반송 대기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더 이상 건물의 노후화 때문이 아니었다. 601호라는 명판이 달린 병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물 컨테이너처럼 덜컹거리며 축을 틀었다. 복도의 타일들이 아스팔트처럼 갈라지고, 그 틈새로 녹슨 철제 레일이 솟아올랐다. 중력이 한쪽으로 쏠렸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몸을 지탱해야 했다.
“보호자 서명 확인. 이번에는 문태식이 아니라, 윤서하로 접수합니다.”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간호사의 안내 방송이 아니었다.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인, 거대 물류 센터의 자동화 음성. 그 선언과 동시에 문틈 아래로 빠져나온 윤서하의 손가락 마디가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투명하게 비치던 그녀의 존재감이 마모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윤서하! 정신 차려!”
나는 문을 향해 어깨를 박았다. 하지만 어깨에 닿는 감촉은 매끄러운 나무 문이 아니었다. 차갑고 단단하며, 수천 톤의 압력을 견디도록 설계된 합금 강판의 감촉. 병실 문은 어느새 S-RAIN의 반송 컨테이너 해치로 변해 있었다.
“형, 소용없어. 이미 송장이 출력됐거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검은 우산을 쓴 아이. 녀석은 여전히 일정한 박자로 우산 끝을 바닥에 ‘탁, 탁, 탁’ 두드리고 있었다. 복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아이의 우산 끝에선 검은 빗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빗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타일 위에 ‘반송 대기’라는 글자가 낙인처럼 찍혔다.
“반송은 한 번뿐이야. 형도 알지? 택배 기사님이 두 번 오지는 않잖아. 영수증 없이 물건 받으면 나중에 교환도 안 된다?”
아이는 키득거리며 나를 조롱했다. 그 말투는 어린아이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비즈니스적이었고, 동시에 잔인했다.
“무슨 병원 서비스가 이따위야? 퇴원 수속도 안 밟았는데 사람을 택배로 부친다고? 소비자 고발 센터에 신고라도 해야겠네.”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나는 억지로 농담을 뱉었다. 공포가 식도를 타고 넘어오려 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비릿한 냉소로 눌러 죽였다. 여기서 내가 겁을 먹는 순간,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논리에 완전히 먹혀버릴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도윤아, 냄새가 이상해.”
옆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던 반가온이 내 소매를 붙잡았다. 녀석의 코가 가늘게 실룩거렸다.
“문 안쪽에서 나는 냄새랑, 저 꼬맹이한테서 나는 냄새가 달라. 안쪽은… 이건 윤서하가 아니야. 아니, 서하 언니긴 한데, 알맹이가 빠진 헌 옷 같은 냄새야.”
가온의 말에 나는 문틈에 귀를 가져다 댔다. 화상 입은 손목의 KDW 표식이 불길하게 맥동했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통증과 함께, 문 너머의 잔향이 머릿속을 긁으며 지나갔다.
[수취인은 사람이고, 접수물은 이름입니다.]
[기록된 존재는 이관될 수 있으나, 기록되지 않은 육체는 폐기 처리됩니다.]
블랙코미디 같은 행정 문구들이 환청처럼 뇌를 울렸다. 수취인이 사람이고 접수물이 이름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저 안에서 ‘윤서하’라는 이름으로 호출되는 존재는 본인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녀의 권리나 기록, 혹은 ‘보호자’로서의 자격만이 분리되어 끌려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가온의 말대로였다. 일정한 박자로 반복되는 “태식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라는 말은 마치 낡은 테이프를 무한히 재생하는 듯 어긋나 있었다.
“형, 빨리 결정해. 레일이 곧 움직여. 저 방이 물류 허브로 넘어가면, 그다음엔 형이라도 못 꺼내.”
아이가 우산을 접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저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말단의 기계적인 효율성만이 비칠 뿐이었다.
나는 주머니 속을 뒤졌다. 문태식의 찢어진 장갑 조각, 그리고 아까 반송 트랙에서 챙겼던 부러진 우산 손잡이. 그리고 내 손등에 새겨진, 이 지옥 같은 시스템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화상 자국.
“반송을 하려면 물건이 확실해야지. 안 그래?”
나는 문태식의 장갑 조각을 내 손목의 화상 자국 위에 덧댔다. 그리고 부러진 우산 손잡이를 컨테이너 문고리 틈에 강제로 끼워 넣었다.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문을 벌리려는 찰나, 바닥이 크게 요동치며 601호 전체가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미친, 진짜로 가네!”
레일이 굴러가는 굉음이 병동 전체를 장악했다. 벽면의 보관함들이 제멋대로 열리고 닫히며 라벨지들을 흩뿌렸다. ‘미배송’, ‘수취거부’, ‘주소 불명’. 종이 더미들이 눈보라처럼 휘날렸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문틈 너머로 아주 짧게, 하지만 명확한 서하의 진짜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 씨… 내 이름을 부르지 마요. 내 이름을 부르면… 확정돼버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단호했다.
“내가… 내가 뭘 잡고 있는지 봐요! 이름이 아니야!”
나는 문틈 사이로 시선을 밀어 넣었다. 기울어진 병실 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문태식의 모습이 보였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그의 가슴이 위태롭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형체를 잃어가는 서하가 필사적으로 거머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침대 난간도, 문태식의 손도 아니었다.
문태식의 환자복 가슴팍에 붙어 있던, S-RAIN의 ‘반송 서명권’ 라벨이었다. 서하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그 종이 쪼가리를 손바닥에 붙인 채 놓지 않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 하나가 거칠게 맞물렸다. 시스템은 윤서하라는 사람보다, 그녀가 움켜쥔 그 라벨에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라벨이 그녀에게 붙어 있는 한, 시스템은 둘을 한 덩어리 화물로 묶어 끌고 가려 했다.
“이름이 아니라 물건이었어? 접수 품목이 잘못됐잖아!”
나는 우산 손잡이를 비틀며 내 손목의 화상 자국을 문고리의 센서에 갖다 대었다. KDW. 강도원의 이름이 박힌 그 낙인이 붉게 타올랐다. 시스템을 속여야 했다. 내가 수취인인 것처럼, 혹은 내가 이 화물의 정당한 인계인인 것처럼.
“야, 꼬맹이! 영수증 여기 있어!”
나는 문태식의 장갑 조각을 라벨지처럼 문고리에 붙이고, 내 손목의 열기로 그것을 지졌다. 가죽이 타는 냄새와 함께 문고리에서 ‘삐익-’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터졌다.
[데이터 충돌 발생. 수취인 정보 불일치. 반송 프로세스를 일시 중단합니다.]
순간적으로 레일의 움직임이 멈췄다. 급제동의 여파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강판 문이 아주 조금, 손가락 몇 개가 들어갈 만큼 열렸다.
“서하 씨! 손 잡아!”
문틈 사이로 투명하게 변해버린 서하의 손끝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차가웠다. 마치 얼음물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끌어당기자, 그녀의 몸을 묶고 있던 검은 연기 같은 줄기들이 팽팽하게 늘어나다 하나둘 끊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빼낼 수는 없었다. 그녀의 하반신은 여전히 병실 내부의 그림자에 잠겨 있었고, 침대 위의 문태식은 호흡이 가빠지며 모니터 수치가 요동쳤다. 서하를 구하려고 당길수록 문태식의 생명 신호가 꺼져갔다.
“반반이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지.”
작은 아이가 어느새 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녀석은 열린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며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근데 형, 저거 봤어?”
아이가 가리킨 곳은 침대 위의 문태식이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보호자 서명란 보관함이었다.
서하가 붙잡고 있던 라벨이 떨어져 나가며 노출된, 그 아래의 진짜 서명란.
그곳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내 형, 강도원의 이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에 의해 성씨가 거칠게 지워져 있었다. 남은 것은 이름 한 글자뿐이었다.
‘…현.’
강도현?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구? 내가 아는 이름 중에 저런 글자가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형의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 남은 그 낯선 흔적을 보는 순간,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형, 이제 진짜 보호자가 도착했어. 아, 이번에는 좀 무서울걸? 서비스 센터 직원이 직접 오는 거니까.”
복도 끝 엘리베이터에서 ‘띵-’ 하는 맑은 도착음이 울려 퍼졌다.
정적에 잠긴 복도. 레일의 가동이 멈춘 자리에 기분 나쁜 습기가 차올랐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열린 문 사이로, 젖은 발자국이 하나씩 찍히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지 않은 누군가가, 빗물에 흠뻑 젖은 발로 복도를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발자국은 일정했다. 망설임도 없었다.
서하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등의 화상 자국이 비명을 지르듯 뜨거워졌다.
“도윤아, 저거… 저 냄새… 아까 그 빗방울 냄새랑 똑같아. 아니, 훨씬 더 진해.”
가온이 내 등 뒤로 숨으며 몸을 떨었다. 나는 반쯤 열린 문을 등지고,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침입자를 향해 이를 악물었다.
진짜 보호자?
이 지옥 같은 물류 시스템의 주인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과거의 잔해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젖은 발소리를 내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185화. 젖은 발자국의 보호자
질퍽거리는 소리가 복도의 고요를 찢었다. 엘리베이터의 금속 문이 열린 채 멈춰 서 있고, 텅 빈 공간에서부터 투명한 무게감이 하나씩 바닥을 딛고 있었다.
촵, 촵.
물이 가득 고인 신발이 대리석 바닥을 짓누르는 소리.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짙은 흙탕물이 섞인 듯한 발자국만이 규칙적으로 생겨나며 병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온다. 형, 이제 진짜 보호자가 도착했어."
내 바지춤을 잡고 있던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이는 반가운 듯 웃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 뒤로 몸을 숨기며 작게 숨을 헐떡였다. 그건 기대감이라기보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공포에 직면했을 때 터져 나오는 본능적인 경련에 가까웠다.
내 손은 여전히 반쯤 열린 병실 문틈 사이, 차갑고 투명해진 윤서하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문 너머는 이미 병실이 아니었다. S-RAIN의 반송 컨테이너 내부처럼 기괴한 금속 벽과 알 수 없는 운송 라벨들이 어지럽게 붙은 비현실의 공간. 윤서하의 몸 절반이 그 기괴한 행정적 오류 속에 잠겨 있었다.
"도윤 씨, 손 놓지 마요."
윤서하의 목소리가 문틈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기계음과 섞여 들려왔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젖은 발자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저 발자국을…… 저걸 절대 병실 안으로 들이면 안 돼요. 저게 문턱을 넘는 순간, 모든 게 확정될 거예요."
"확정이라니, 뭐가요?"
내가 묻기도 전에 반가온이 내 팔을 붙들며 신음하듯 내뱉었다.
"아저씨, 냄새가…… 너무 역해요. 이건 그냥 비 냄새가 아니에요. 엄청나게 오래된 우산 보관함 밑바닥에 고인 구정물 같기도 하고…… 젖어서 글자가 다 번져버린 출생신고서나, 산부인과에서 갓 자른 신생아 팔찌 같은 냄새가 섞여 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반납되지 못한 것들이 썩어가는 냄새요."
가온이의 묘사는 지나치게 구체적이라서 소름이 돋았다. 녀석의 코는 언제나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다. 반납되지 못한 것들의 냄새라니.
나는 바닥에 찍히는 발자국 하나에 집중했다. 잔향청취의 감각이 찌릿하게 뇌를 자극했다. 젖은 신발이 바닥을 딛고 떨어질 때마다, 끈적한 소리와 함께 기괴한 안내 멘트 같은 환청이 들려왔다.
[……보호자는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반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미반납 자산에 대한 회수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명자는 대기하십시오……]
미친 소리. 여긴 병원이지 물류 창고가 아니다. 그런데 S-RAIN의 논리가 복도까지 밀고 들어온 뒤로는 상식이 먼저 퇴원해버렸다.
발자국은 이제 복도 중간까지 왔다. 한 발자국이 찍힐 때마다 복도의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발자국 주위로 아주 잠깐씩, 짙은 회색 코트 자락 같은 실루엣이 번뜩였다 사라졌다. 마치 프레임이 끊긴 필름처럼 불연속적인 존재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저 발자국이 이 문턱을 넘게 둘 순 없다. 문태식 소장님은 저 안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고, 윤서하는 반쯤 문에 끼어 있다. 저 보호자라는 존재가 들어오는 순간, 회수 절차라는 놈이 도장을 찍을 것이다.
"서하 씨, 조금만 더 버텨요!"
나는 왼손목에 남은 KDW 화상 자국을 문틀에 대고 밀어붙였다.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데이터의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문은 더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편에서 거대한 수압이 밀어닥치는 것처럼 문이 조금씩 닫히려 하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불합리한 행정 절차를 늦출 방법이 필요했다. 복도 벽면에는 간호사들이 붙여놓은 혈액형 분류 라벨지와 입원 환자 명단, 그리고 환자들이 두고 간 검은 우산 몇 개가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가온이에게 소리쳤다.
"가온아! 저기 우산들 다 가져와서 복도 바닥에 펼쳐! 그리고 라벨지들,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발자국 경로에 다 붙여버려!"
"네? 그게 무슨……."
"이건 시스템 싸움이야! 경로에 노이즈를 만들어야 해!"
가온이는 내 의도를 파악한 듯 재빨리 움직였다. 녀석은 젖은 우산 세 개를 펼쳐 발자국이 다가오는 길목에 거꾸로 세워두고, 복도 벽에 붙은 '반송 불가', '검체 주의', '폐기 예정' 같은 자극적인 라벨지들을 뜯어 바닥에 무질서하게 붙이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효과가 있었다. 다가오던 발자국이 첫 번째 우산 앞에서 멈칫했다. 우산살을 타고 검은 빗물이 역류하듯 솟구치더니, 바닥의 라벨지 위에 찍힌 '폐기 예정'이라는 글자가 젖어 들며 발자국이 잠시 방향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찰나, 병실 안쪽에서 비프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바이탈 모니터의 파형이 미친 듯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의식 없는 문태식 소장님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은 경련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쓰려는 시도 같았다.
나는 보호자 서명란을 보았다. 지워진 성씨 뒤에 남은 한 글자, …현.
소장님의 손가락이 시트 위에서 그 글자를 덧그리는 듯한 궤적을 그리자, 서명란 주위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소장님과 저 밖의 발자국, 그리고 이 '...현'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안 돼, 끊어야 해."
나는 윤서하의 손을 더 세게 끌어당겼다. 그녀가 쥐고 있던 반송 서명권 라벨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직 - !
불길한 소리와 함께 라벨지가 찢어졌다. 절반은 내 손에, 절반은 문 너머 윤서하의 손목 아래에 붙은 채로.
"아……!"
윤서하의 신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완전히 빼내지 못했다. 하지만 라벨이 찢어지면서 데이터의 연속성이 깨졌는지, 문이 닫히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접수 절차에 강제적인 지연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였다.
마지막 우산을 짓밟으며 발자국이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차가운 냉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의 털을 꼿꼿이 세웠다. 공기 중으로 축축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건조하고, 기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집요한 음성이었다.
"……0번은 아직 반납 기한이 끝나지 않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0번? 그게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천천히 손을 뻗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서명은 내가 회수한다."
그 말과 함께 내 왼손목의 KDW 화상 자국이 미친 듯이 달궈졌다. 너무 뜨거워 비명을 지를 뻔한 순간, 화상 흉터 아래로 낯선 표식이 떠올랐다. 알파벳 'H' 같기도 하고, 한글의 받침 'ㄴ'이 길게 늘어진 것 같기도 한 기괴한 형상이었다. 그것은 소장님의 서명란 옆에 남은 '...현'의 마지막 획과 일치하는 실루엣이었다.
동시에 병실 안, 소장님의 산소호흡기 옆에 놓여 있던 낡은 보호자 서류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종이는 마치 숙련된 종이접기 장인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순식간에 접히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서류는 순식간에 작고 정교한 검은 우산 모양으로 변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종이 우산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잔향인지, 아니면 실제 글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보호자 변경 승인 대기 중]
변경 승인 대기? 원래 보호자는 누구고, 새로 승인받으려는 자는 누구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복도의 젖은 발자국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그것은 내 구두 끝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축축한 코트 자락이 내 뺨을 스치는 것 같은 섬뜩한 촉감과 함께, 병동 전체의 전등이 일제히 꺼졌다.
암흑 속에서, 오직 내 팔목의 타오르는 표식과 바닥에 고인 흙탕물만이 기괴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촵.
마지막 발자국이 병실 문턱을 완전히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