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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83화. S-RAIN 물류층과 병실 문 밖의 우산 소리 일러스트

182-183화. S-RAIN 물류층과 병실 문 밖의 우산 소리

182-183화. S-RAIN 물류층과 병실 문 밖의 우산 소리

182화. S-RAIN 물류층의 첫 번째 보관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진 것은 차가운 정적이었다.

병원의 지하 층이라면 마땅히 나야 할 눅눅한 곰팡이 냄새나 환풍기 돌아가는 소음 따위는 없었다. 대신 코끝을 찌르는 것은 지독할 정도로 선명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빳빳하게 마른 종이 뭉치에서나 날 법한 건조한 향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병원이라기보다 거대한 자동화 물류 센터에 가까웠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은 은색 금속 선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것은 수만 개는 되어 보이는 금속 보관함이었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붉은색 레일이 깔려 있었으며, 그 위를 작은 운송용 기계들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비는커녕 물기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공간. 그런데도 이곳의 이름은 S-RAIN이었다.

“이거 참, 병원 지하에 이런 대형 창고를 지어놓다니. 요즘 의료 수가가 많이 낮아지긴 했나 보네. 부업으로 택배 상하차라도 하시나?”

나는 일부러 가벼운 투로 내뱉으며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손바닥에 닿은 서늘한 감촉이 떨림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

입구에 서 있던 남자는 내 농담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손목의 각인이나 눈동자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입고 확인. 인식 번호 0000-0.”

남자의 목소리는 감정이 거세된 기계음 같았다. 그는 나를 강도윤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관 예정자로 분류되어 있었으나, 직접 발로 찾아올 줄은 몰랐군. 외부 이관자의 출입은 예정에 없었다.”

“0000-0이라니, 숫자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에요? 럭키 세븐이라도 좀 섞어주지. 그리고 난 이관하러 온 게 아니라 구경하러 온 겁니다. 우산 배달 사고가 좀 있는 것 같아서요.”

“형…….”

옆에 서 있던 반가온이 내 옷소매를 꽉 쥐었다. 녀석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가온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면 코를 찡그리는 습관이 있다. 지금 녀석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코를 꾹 누르고 있었다.

“형, 여기 냄새가 너무 이상해. 사람 냄새가 나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고 시체 냄새도 아니고…… 마치, 사람을 종이로 만들어서 잔뜩 쌓아놓은 것 같은…… 행정 기록 같은 냄새가 나.”

가온의 말에 남자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가온을 향했다.

“예민한 감각이군. 이곳에 보관된 것은 단순한 물품이 아니다. ‘부재하는 이들의 권리’와 ‘남겨진 이들의 책임’이지. 그리고 오늘, 그 책임 중 하나가 이곳으로 완전히 반송될 예정이다.”

남자가 손을 들어 뒤편의 레일을 가리켰다. 그러자 멈춰 있던 자동 운송 레일이 끼릭, 하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보관함 중 하나가 레일을 타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잔향청취를 활성화했다.

웅성거리는 잡음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거대한 금속 숲 전체가 거대한 악기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앞에 멈춰 선 작은 라벨 프린터에서 흘러나오는 잔향이 내 고막을 긁었다.

[배송지는 보호자가 아니라 책임자가 받습니다.]

[반품 사유는 ‘살아 있음’입니다. 오류 수정 바랍니다.]

소름이 돋았다. 살아 있는 것이 오류라니. 이곳은 생존을 시스템의 에러로 취급하고 있었다.

“문태식 팀장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지. 윤서하 헌터의 이름 침식 역시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들이 이 시스템에서 삭제되는 순간, 그들의 모든 기록은 이곳 ‘S-RAIN’의 영구 보관함으로 이관된다.”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우산도 없는 주제에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빗물 자국 같은 검은 얼룩이 남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0000-0. 네게는 이관 권한이 있다. 네가 보관함 하나를 연다면, 그 안의 데이터를 수정해 문태식의 호흡권을 연장하거나 윤서하의 침식 속도를 늦출 수 있지.”

“와, 파격적인 제안이네. 근데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내가 뭘 열면 되는데?”

나는 가장 가까운 보관함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낡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0000-0 / 보호자 재확인 실패 / 임시 보류]

내 인식 번호와 일치하는 보관함. 그리고 그 위에는 [KDW-0]라는 낯익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강도원. 그 형의 이름이 왜 여기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나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손목의 각인은 살을 지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형, 안 돼! 열지 마!”

가온이 내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저 보관함 냄새가 이상해. 저걸 열면 안의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야. 형 안으로 들어오려고 기다리고 있어. 형을 먹어치우려고 한다고!”

가온의 경고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천장의 레일들이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어야 할 보관함들이 제멋대로 열리고 닫히며 박수 소리 같은 금속음을 냈고, 벽면의 금속 선반들이 조금씩 안쪽으로 좁혀져 들어왔다.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나를 압박하며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문태식을 살릴 것인가. 윤서하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내 기원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질 것인가.

“선택해라. 시간이 지체될수록 병실의 산소포화도는 떨어진다.”

남자의 목소리가 독촉하듯 머릿속을 울렸다. 나는 보관함의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가온이 비명을 지르듯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차가운 금속 손잡이에 닿기 직전, 나는 방향을 틀었다. 내가 잡은 것은 보관함 손잡이가 아니라, 그 옆에서 쉴 새 없이 에러 메시지를 뱉어내고 있는 라벨 프린터의 배출구였다.

“누가 열어준대? 난 원래 남이 시키는 대로 안 하거든.”

나는 [잔향청취]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보관함을 열면 위험하다? 내용물이 나를 잠식한다? 그렇다면 열지 않고 들으면 된다. 틈새로 새어 나오는 소리, 기계가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순간의 마찰음, 라벨이 인쇄될 때의 미세한 진동.

나는 이 완벽한 시스템의 ‘틈’을 노렸다.

“……미쳤군. 시스템을 직접 도청하겠다는 건가?”

남자의 눈이 경악으로 가늘어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손끝을 통해 보관함 내부의 진동이 전해져 왔다. 차가운 금속 너머, 겹겹이 쌓인 데이터의 장막 뒤에서 무언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도원의 목소리도 아니었고, 사경을 헤매는 문태식의 숨소리도 아니었다.

[……비가 오네.]

낯선 목소리였다. 아주 어린 아이의 것 같기도 하고, 변성기 전의 내 목소리 같기도 한 기묘한 음성.

[보호자 서명은 비 오는 날에만 보여, 형.]

나는 숨을 멈췄다. 잔향 속의 목소리는 보관함 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 마치 아주 먼 과거에서 현재의 나를 건너다보는 것처럼 선명했다.

[형은 나를 데려간 게 아니야. 돌려보낸 거지.]

그 순간, 내 손목의 KDW 각인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터져 나갔다.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보관함의 문이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틈을 남기고 스르르 열렸다. 그 틈새로 쏟아져 나온 것은 빛도, 어둠도 아니었다.

지독할 정도로 축축한, 진짜 빗물의 냄새였다.

“……도윤 형?”

가온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보관함의 틈새로 보이는 것은 서류 뭉치도, 유품도 아니었으니까.

그 안에는 까만 우산을 쓴 작은 아이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흐릿했지만, 아이가 쥐고 있는 우산 손잡이에 새겨진 문구만큼은 내 망막을 찌르듯 박혀왔다.

[반송 불가: 원본 소실.]

“너, 누구야?”

내 물음에 아이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보관함 문을 안쪽에서 꽉 잡았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물류층 전체의 조명이 명멸했다.

“이관 실패.”

남자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형체가 조금씩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0000-0. 너는 오늘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아니, 어쩌면 가장 끔찍한 진실을 유예한 것일지도 모르지.”

레일이 멈추고, 소독약 냄새가 다시 공간을 지배했다. 아이도, 빗물 냄새도 사라졌지만 내 손목에는 이전에 없던 선명한 화상 자국이 남았다. 아이의 손가락 모양 그대로.

그리고 내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병실에 남겨두었던 윤서하의 번호였다.

화면에는 단 한 줄의 메시지만이 떠 있었다.

병실 문이 안 열려. 그런데 밖에서 자꾸 누가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나는 고개를 들어 텅 빈 보관함들을 바라보았다. S-RAIN. 이곳은 무언가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내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가두어 두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리고 방금, 나는 그 감옥의 틈새를 열어버리고 말았다.

183화. 병실 문 밖의 우산 소리

액정 너머로 전해지는 문장의 온도는 영하에 가까웠다.

[도윤 씨, 병실 문이 안 열려. 그런데 밖에서 자꾸 누가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윤서하의 메시지. 그 짧은 텍스트가 내 망막을 긁고 지나가는 순간, 발밑의 철제 바닥이 불길한 진동을 내뿜기 시작했다. 거대한 태엽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S-RAIN 물류층의 멈춰 있던 레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가동되었다.

“형, 이거…… 소리가 이상해.”

반가온이 내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녀석의 코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보관함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던 공간은 이제 거대한 내장 기관처럼 꿈틀거리며 재편되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집게들이 빈 보관함들을 낚아채 옮기고, 바닥의 레일은 이름 모를 수하물들을 싣고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뒷목이 서늘해졌다. 이곳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다. 병동의 복도, 환자들의 기록,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육체들까지도 ‘물류’라는 이름으로 관리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이면이다.

서하가 갇힌 병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과 이 레일이 돌아가는 것이 별개의 사건일 리 없다. 시스템이 병실을 ‘폐쇄된 화물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거다.

“가자, 가온아. 여기서 나가야 해.”

나는 서둘러 들어왔던 출구를 향해 발을 뗐다. 하지만 그곳엔 아까 보았던, 우산 없는 남자의 형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진법으로 구성된 노이즈 덩어리처럼, 그의 윤곽이 뭉개지며 통로를 가로막았다. 그의 머리 위 전광판에 붉은 글자가 점멸했다.

[상태: 반송 대기 (RETURN PENDING)]

[사유: 수취인 불명 및 하차 거부]

“비켜.”

내 목소리가 서늘하게 깔렸지만, 그는 대답 대신 기괴하게 목을 꺾었다. 그의 몸에서 마른 종이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났다.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공간이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시스템상의 ‘권한’이 우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형, 잠깐만! 여기서…… 병실 냄새가 나.”

가온이 갑자기 멈춰 서서 허공을 킁킁거렸다.

“병원 냄새? 소독약 냄새 말이야?”

“아니, 그것보다 더 낡은 냄새. 서하 누나가 쓰는 로션 향기랑, 문태식 아저씨한테서 나던 그 무거운 흙냄새가 섞여 있어. 저쪽 레일 끝에서!”

가온이 가리킨 곳은 ‘반송’이라고 적힌 어두운 터널이었다. 그곳은 병원 복도로 이어지는 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온의 감각은 그곳이 실제 병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S-RAIN이 병실의 물리적 위치를 데이터화해서 이곳 물류층의 어느 좌표로 옮겨버린 걸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엔 전화였다. 발신인은 윤서하.

“서하 씨! 제 말 들려요?”

받자마자 소리쳤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지독한 화이트 노이즈와 함께 끊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 씨…… 밖에서…… 계속…… ‘탁, 탁’ 소리가 나요. 누가 우산 끝으로…… 문을 톡톡 치고 있어…… 꼭 열어달라는 것처럼…….

“절대 열어주지 마요. 내가 금방 갈 테니까, 문태식 씨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그런데…… 손끝이…… 이상해요. 아까보다 더…… 투명해져서…… 이제 침대 시트 무늬가 다 보여요…….

서하의 목소리가 젖은 솜처럼 무겁게 잦아들었다. 권한 정지. 시스템에서 그녀의 존재 자체를 ‘삭제 대상’이나 ‘유효기간 만료’로 처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완치 같은 희망적인 단어는 이 지옥 같은 물류 센터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이관과 폐기뿐.

나는 옆에 있던 모니터를 걷어찼다. 화면에는 문태식의 바이탈 수치가 그래프로 출력되고 있었지만, 그것 역시 정상적인 파형이 아니었다. 심박수가 0과 200을 미친 듯이 오가며 에러 메시지를 뿜어냈다. 죽어가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오염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발밑에 굴러다니던 라벨지 한 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보관함 틈새에서 보았던 그 기괴한 문구들이 적힌 종이였다. 나는 들고 있던, 젖지 않는 우산의 손잡이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도 똑같은 글귀가 각인되어 있었다.

[문은 잠근 사람이 아니라 열어달라고 두드린 사람이 더 위험합니다.]

블랙코미디 같은 문장이다. 잠근 사람은 보호하려고 잠근 거지만, 열어달라는 놈은 가져가려고 두드리는 거니까. S-RAIN의 규칙은 잔인할 만큼 명확했다.

“가온아, 저 레일 위로 뛰어올라.”

“뭐? 저기 무서운 소리 나는데?”

“저게 우리를 병실로 데려다줄 ‘반송 트랙’이야. 시스템이 우리를 밖으로 안 내보내 준다면, 우리가 직접 반송 물품이 되는 수밖에 없어.”

나는 우산 손잡이를 레일 옆의 바코드 스캐너에 강제로 들이밀었다. [반송 불가: 원본 소실]이라는 문구가 뜨며 경고음이 울렸지만, 나는 그 문구 위에 서하가 보낸 메시지 화면을 띄운 휴대폰을 겹쳐 눌렀다.

로그인 정보가 꼬이고, 시스템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우산 손잡이를 ‘반송 송장’처럼 역이용했다. 내 위치 정보를 ‘수취 거부된 물품’으로 조작해 레일의 흐름을 역행시킨 것이다.

“꽉 잡아!”

가온을 품에 안고 움직이는 레일 위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백 개의 검은 우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톳, 토도독!

바닥에 부딪힌 우산들이 자동으로 펼쳐지며 우리의 길을 가로막았다. 젖지도 않은 우산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펼쳐지고 접히기를 반복하며 벽을 만들었다.

“와, 이 동네는 기상예보도 안 보고 우산을 이렇게 뿌려대나?”

나는 짐짓 농담을 던지며 가온의 눈을 가렸다. 우산살들이 날카로운 이빨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팔뚝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우산들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슬픔, 누군가의 유품, 혹은 누군가가 끝내 받지 못한 비 오는 날의 마중 같은 기억들의 파편이었다.

레일이 급커브를 틀었다. 시야가 흐려지며 병원의 차가운 소독약 냄새가 물류 센터의 기름 냄새를 덮어쓰기 시작했다. 공간이 중첩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철제 레일이 아닌 병원의 딱딱한 타일 바닥 위로 미끄러졌다.

“하아, 하아…….”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익숙한 병실 문이 보였다. 601호. 문태식과 윤서하가 있는 곳. 하지만 풍경이 기괴했다. 복도의 조명은 깜빡거리며 물류층의 붉은 경고등과 교차했고, 벽면에는 보관함 라벨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우산을 쓴 작은 형체. 아까 보관함 안에서 보았던 그 아이다. 아이는 문을 등진 채, 우산 끝부분으로 병실 문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고 있었다.

탁. 탁. 탁.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금속제 우산 끝이 문틀을 정교하게 타격하는 소리. 그 소리는 마치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이라 소름이 돋았다.

“서하 씨! 안에 있어요?”

내가 문 손잡이를 잡으려 하자, 문 안쪽에서 서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 씨? 도윤 씨예요? 무서워요…… 문 밖에서 자꾸…….

도윤 씨? 도윤 씨예요? 무서워요…… 문 밖에서 자꾸…….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하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대답의 박자가 문 밖에서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와 완벽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우산 소리가 멈추면 서하의 목소리가 들리고, 서하의 목소리가 끝나면 다시 우산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누군가 서하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적절한 타이밍에 재생하고 있는 것처럼. 혹은, 안쪽에 있는 것이 진짜 윤서하가 아니라 그녀의 ‘기록’만 남은 껍데기일지도 모른다는 불쾌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온아, 뒤로 물러나 있어.”

나는 우산을 고쳐 쥐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우산을 쓴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아이의 발치에는 물기가 전혀 없는데도, 검은 우산 끝에서는 끊임없이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틈 아래의 좁은 공간으로, 물기 없는 검은 빗방울 하나가 구슬처럼 굴러 들어왔다. 그것은 액체라기보다 매끄럽게 가공된 보석 같았다. 그 빗방울이 내 발등 근처에 닿는 순간, 왼쪽 손목에 새겨진 오래된 화상 자국이 불에 데인 듯 뜨겁게 타올랐다.

“윽……!”

통증에 신음하며 주저앉으려 할 때, 문 너머에서 아주 낮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하의 목소리도, 아이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 장의 종이가 동시에 넘어가는 듯한, 거대한 시스템의 음성이었다.

“보호자 서명 확인.”

순간, 내 시야 속의 모든 라벨지가 일제히 바뀌었다. 문태식의 이름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글자들이 새겨졌다.

“이번에는 문태식이 아니라, 윤서하로 접수합니다.”

문 너머에서 서하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틈 아래로, 그녀의 투명해진 손가락 마디 하나가 스르르 빠져나오더니, 이내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미친 듯이 문고리를 돌렸다. 하지만 손잡이는 이미 차가운 고철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시스템이 선언했다. 이제 윤서하는 환자가 아니라, 배송되어야 할 ‘물건’이 되었다고.

우산을 든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우산 그림자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녀석은 입가에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형, 영수증은 필요 없어? 반송은 한 번뿐이거든.”

복도 끝에서 다시 거대한 레일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병실 전체를 통째로 실어 가려는 듯, 바닥이 통째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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