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화. 미수금 정산 구역
300화. 미수금 정산 구역
문이 열리자마자 코끝을 찔러온 것은 눅눅하게 절여진 종이 냄새, 그리고 오래된 장례식장의 향나무 타는 냄새였다.
B-04 민원실 너머의 풍경은 내가 상상한 지옥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용암이 들끓거나 뿔 달린 괴물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원초적인 참상이 아니었다. 그곳은 차라리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정교한 ‘회계실’에 가까웠다. 끝도 없이 높은 천장까지 닿은 강철 서류 캐비닛들이 성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낡은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수천 대가 비명을 지르며 종이를 뱉어내고 있었다.
지직, 지지직— 쇠를 긁는 듯한 기계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핥았다. 공기 중에는 타인의 불행을 장부에 기록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서늘한 습기가 감돌았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정산 구역의 초입으로 들어섰다.
벽면에는 수만 장의 번호표와 영수증이 부적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은 번호표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헌터들의 이름표이자,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부채 증명서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잔향청취’를 발동했다. 그러자 벽에 걸린 낡은 영수증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빛바랜 잉크 자국마다 죽은 자들의 하찮고도 절박한 유언이 농담처럼 섞여 흘러나왔다.
[C급 헌터 김철수, 미납액: 심장 1개]
— 야, 내 사망보험금은 현금 말고 마석으로 달라고 했잖아, 이 도둑놈들아…. 마석 시세가 얼만데 이걸 현금으로 쳐서 가져가?
[B급 헌터 최영희, 연체 이자: 왼쪽 시력과 15년 치의 기억]
— 장례식장 육개장이 너무 싱거웠어. 마지막 손님들한테 미안해 죽겠네. 그 집 주방 아줌마한테 소금 좀 더 치라고 전해줄 사람 없나?
[D급 헌터 박진호, 정산 완료: 육신 전체]
— 내 이름표를 누가 세탁기에 돌렸냐. 글자가 하나도 안 보이잖아. 저승사자가 나 못 찾으면 니들이 책임질 거야?
[C급 헌터 이민수, 미납액: 존재의 흔적]
— 아들 녀석 생일 선물로 사둔 검이 아직 인벤토리에 있는데…. 그거 잠금 해제 번호가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인데, 누가 좀 알려주면 안 되나.
[등급 미정 헌터, 연체 이자: 영혼의 반쪽]
— 아, 퇴근하고 치킨 시켜놨는데. 입금 확인도 안 하고 죽이는 법이 어디 있어. 억울해서 못 간다, 진짜.
잉크가 번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잔향들은 너무나도 평범해서 오히려 소름 끼쳤다. 그들은 영웅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선 그저 채무자로 분류되어 한 장의 종이로 박제되었을 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품 대상 강도윤 님.”
목소리는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천장에 달린 낡은 스피커, 바닥을 굴러다니는 수동식 전화기, 그리고 내 발치에 널브러진 문태식의 잘린 그림자 조각들이 일제히 입을 맞춘 듯 기계음을 내뱉었다.
정면의 거대한 책상 위로 잉크 같은 검은 그림자들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결코 생명은 아니었다. 헌터협회 공식 안내 방송용 아바타의 표정과 문태식의 뒤틀린 가죽, 그리고 수천 권의 낡은 회계 장부가 넝마처럼 엉겨 붙어 만들어진 괴물. 괴물은 수십 개의 검은 우산을 펼쳐 제 몸을 가린 채, 펜촉에서 검은 잉크를 뚝뚝 흘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헌터협회 사망관리국 정산 심사관입니다. 귀하의 연체 이자는 ‘존재’ 자체로 청구되었습니다.]
“사망관리국? 이름 한번 거창하네. 그냥 ‘떼먹은 목숨 수거반’이라고 하지 그래?”
내 조소에 심사관의 몸을 이루는 종이들이 파르르 떨리며 바스라지는 소리를 냈다. 웃는 것인지, 분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진동이었다. 심사관은 길게 늘어진 손가락으로 책상 위에 누런 서류 한 장을 밀어 놓았다. 거기엔 ‘계약 철회 및 대상 포기서’라는 제목이 박혀 있었다.
[선택의 시간입니다. 한희주와의 모든 연을 끊고 그녀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하십시오. 그녀를 완전히 죽음의 영역으로 반납하면, 시스템은 귀하의 결손을 처리해주겠습니다. 원래 우리 시스템은 죽은 자의 이름 하나 지우는 것쯤은 아주 익숙하니까요.]
나는 그 서류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류에서 풍겨오는 잉크 냄새가 유독 역겨웠다. 나는 다시 한번 ‘잔향청취’의 감각을 그 서류 위로 집중했다. 그러자 활자 뒤에 숨겨진 시스템의 진짜 의도가 내 귓가를 찢을 듯한 소음으로 변해 쏟아졌다.
— 이 서명은 영혼의 구속이다. 도장을 찍는 순간, 강도윤의 기억 속에서 한희주라는 존재는 영원히 삭제될 것이며, 그녀의 영혼은 시스템의 연료로 소모될 것이다. 이것은 합의가 아니라 포식이다. 기만이다. 죽음보다 더한 망각의 수렁이다.
서류의 문구 하나하나가 마치 굶주린 짐승의 이빨처럼 보였다. 나는 그 계약서를 집어 들어 심사관의 코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종이 가루가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어머니를 포기하라고? 너희는 장부 정리할 때 가족 관계도 비용으로 계산하나 본데, 내 계산법은 좀 다르거든.”
[어리석군요. 귀하가 저 보류 계약을 승계하겠습니까? 귀하의 존재를 담보로 잡고, 여기 있는 쓸모없는 동료들을 내보내는 방법도 있지요. 단, 귀하는 영원히 이 서류함 속의 한 페이지로 박제될 것입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윤서하는 떨리는 손으로 실을 꽉 쥐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실바늘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한서윤,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자 증거였다.
“서하야, 괜찮겠어?”
내 물음에 서하는 대답 대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가 실을 허공으로 던지자, 심사관의 몸을 이루고 있던 장부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실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에요. 당신들이 한서윤 감사관에게 강요했던 불법 계약의 증거죠!”
서하의 손바닥에서 지지직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스템의 거부 반응이었다. 한서윤의 실이 시스템의 장부와 충돌하자, 서하의 하얀 손가락이 숯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살이 익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서하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내 어머니는… 당신들의 추악한 계약을 끝까지 감시하던 내부 고발자였어! 이 실이 바로 그 기록이야!”
서하의 외침과 함께 붉은 실이 심사관의 장부 빈칸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계약의 일부가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는 서슬 퍼런 밑줄이 되어 장부를 가로질렀다.
이어 반가온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녀석의 이마에는 사망관리국이 찍어놓은 선명한 붉은색 ‘검수 완료’ 도장이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시스템이 가온이를 ‘소모품’으로 분류했다는 증표였다.
“가온아, 그만해! 그러다간 영혼까지 찢겨!”
내 외침에도 가온이는 멈추지 않았다. 녀석은 떨리는 손을 제 이마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손톱을 세워 자신의 살점 속에 박힌 도장 자국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정산 구역을 가득 채웠다. 살점이 투득,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갔다. 이마에서 흐르는 선혈이 가온의 눈가를 적시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단순한 외상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부여한 존재의 정의를 물리적으로 거부하는 고통이었다. 가온이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뜯어낸 도장 조각을 심사관을 향해 던졌다.
“나는… 너희들이 만든 소모품이 아니야.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한 산 증인이다! 내 가치는 내가 결정해!”
가온의 이마에서 뜯겨 나간 도장 자국이 허공에서 흩어지며 ‘증언’이라는 판정으로 변해 장부 위로 쏟아졌다. 시스템의 낙인이 시스템을 고발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심사관의 형체가 노이즈처럼 흔들리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거대한 장부의 힘을 빌려 우리를 압박했다. 놈의 본체, 즉 ‘진짜 직인’이 찍힌 원본 장부를 찾아내지 못하면 이 공간은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때, 백연이 주머니에서 깨진 카메라 렌즈 조각을 꺼냈다.
그녀의 손바닥은 이미 유리 파편에 찔려 피로 낭자했다. 백연은 그 고통을 견디며 렌즈 조각을 정밀하게 각도를 조절해 치켜들었다.
“가짜들에 속지 마. 빛은 굴절되어도 진실은 굴절되지 않으니까.”
천장의 차가운 형광등 빛이 백연이 들고 있는 렌즈 조각에 반사되었다. 그 빛은 심사관의 거대한 그림자를 뚫고, 가장 어둡고 깊숙한 곳— 수천 권의 서류 더미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작은 나무 도장을 비췄다.
“찾았어. 저게 너희들의 진짜 얼굴이지?”
백연의 나직한 목소리가 신호탄이었다. 나는 들끓는 잔향을 한데 모았다. 벽면에 걸려 농담을 던지던 수만 명의 죽은 헌터들의 목소리, 서하의 타오르는 손에서 피어난 원망, 가온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선혈의 고동, 그리고 백연이 비춘 서늘한 빛까지.
나는 그것들을 하나로 뭉쳐 내 손가락 끝에 맺힌 검은 잉크 속에 쏟아부었다.
“이건 계약 수정이 아니야. 공식적인 ‘민원 접수’지. 이제 이 기록은 너희들만의 밀실 장부가 아니게 됐어. 전 시스템에 공유되는 공식 로그다.”
나는 심사관이 숨기고 있던 ‘진짜 직인’ 위로 내 주먹을 내리꽂았다. 아니, 내 의지를 담은 ‘민원’을 때려 박았다.
[증언 접수 완료.]
[데이터 무결성 검사 실시— 치명적 오류 발견.]
[사망관리국 내부 규정 위반 감지: 장부 조작 및 자산 임의 처분.]
시스템의 경고음이 비명처럼 울렸다. 심사관의 몸을 이루던 수백만 장의 서류가 태풍에 휘말린 듯 소용돌이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심사관의 입에서 종이 가루와 시커먼 먹물이 쏟아져 나왔다.
[반품 대상 강도윤… 귀하는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습니다. 시스템은 망각하지 않습니다. 귀하를… 청산할 것입니다….]
“청산 좋아하네. 나 신용불량자라 배 째라는 식에는 도가 텄거든. 압류할 테면 해봐. 대신 그전에 니들 장부부터 압수수색당할 준비나 하시지.”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발밑의 대리석이 모래처럼 바스러지고 천장의 강철 캐비닛들이 해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료들의 손을 붙잡았다. 서하의 타버린 손, 가온의 피 섞인 손, 백연의 차가운 손이 내 손에 닿았다.
그 어둠 속에서, 아주 잠시 동안 익숙한 온기가 내 뺨을 스쳤다.
‘도윤아.’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잉크 냄새나 서류의 서늘함이 아닌, 아주 오래전 우리 집 거실에서 나던 뽀송뽀송한 빨래 냄새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섞인 진짜 잔향.
‘미안하다. 그리고… 대견하구나.’
“엄마? 잠깐만, 엄마! 가지 마!”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차가운 공기와 부서진 종이 조각뿐이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눈을 떴을 때는 딱딱하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었다.
“허억, 헉…! 으윽….”
폐부 깊숙이 고여 있던 탁한 공기를 뱉어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곳은 기괴한 회계실도, 장례식장 냄새가 나는 지옥도 아니었다. 현실의 헌터협회 본부 지하 4층, 폐쇄된 기록실 앞 복도였다. 형광등이 수명을 다해가는지 치직거리며 위태롭게 명멸하고 있었다.
“다들… 살아 있냐?”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옆을 보니 가온이가 이마를 부여잡고 웅크려 있었다. 녀석의 이마에는 실제로 깊은 찰과상이 남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검수 완료’ 도장을 뜯어내던 감각이 현실의 상처로 고착된 모양이었다.
서하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실에 타들어 갔던 손가락 끝은 짓무른 채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지 손을 떨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연은 벽에 기대어 앉아 주머니에서 깨진 렌즈 조각들을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의 손바닥 역시 유리 파편에 베여 엉망이었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상태를 살폈다.
“도윤 씨, 코피 흘려요. 괜찮아요?”
백연의 말에 손등으로 코밑을 닦으니 진득한 붉은 피가 묻어났다. 잔향청취를 한계 이상으로 끌어다 쓴 후폭풍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살아서 돌아왔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구멍 난 듯 시렸다. B-04 미수금 정산 구역은 사라졌지만, 주변의 공기는 여전히 납처럼 무거웠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오른손 바닥에는 아까 그 짧은 찰나에 느꼈던 미세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시스템 장부에서 ‘반품 보류’라는 잔인한 단어는 분명 사라졌을 것이다. 대신 내가 억지로 쑤셔 넣은 ‘증언 보존’과 ‘내부 감사 청구’라는 문구가 그 자리를 흉터처럼 대신하고 있겠지.
“씨발… 진짜 힘들어서 못 해 먹겠네.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라겠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징— 징—
강렬한 진동이 복도의 정적을 깼다. 내 바지 주머니 속 헌터 전용 스마트폰이었다. 평소라면 스팸 메시지나 인근 던전 발생 알림이 떴을 화면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보라색 공식 문양이 박힌 알림창이 떠 있었다.
[사망관리국 감사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설마 실패한 건가? 시스템의 보복인가? 나는 침을 삼키며 알림을 눌렀다.
[내용: 귀하가 접수한 내부 고발 및 증언이 정식으로 수리되었습니다. 해당 건은 시스템 중대 위반 사항(장부 조작 및 자산 임의 처분)으로 분류되어 전면 감사 절차에 착수합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의도한 바였다. 하지만 그 밑에 덧붙여진 문장이 내 사고를 완전히 정지시켰다.
[참고인 강도윤 님은 아래의 기일에 출석하여 주십시오. 본 출석 요구서는 시스템 권한에 의해 강제 집행됩니다. 거부 시 존재 가용성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발신자: 검은 우산 감사관 한희주]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화면 속에서 빛나는 이름은 분명 ‘한희주’였다.
어머니는 소멸한 것도, 그저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시스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그 썩어빠진 심장부 안으로 직접 파고 들어간 것이다. 정산 심사관의 목을 치기 위해 스스로 감사관의 우산을 집어 든 채로.
“…엄마, 진짜 농담치곤 너무 하드보일드하잖아.”
나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스마트폰을 부서질 듯 꽉 쥐었다.
미수금 정산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내가 낸 민원은, 협회 전체를 불태울 불씨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