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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235화. 원본 불명의 고정된 시간 일러스트

234-235화. 원본 불명의 고정된 시간

234화. 반품 사유 : 원본 불명

04:59.

붉은 숫자가 망막을 할퀸다.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불쾌함이다. 폭탄은 터지면 죽고 끝나지만, 이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벌어질 일은 ‘처리’다. 인격이 말소되고, 데이터로 분해되어, 물류 창고의 한구석으로 영원히 소속되는 유통기한 만료의 절차.

“아저씨…… 나, 아저씨랑 같이 집에 가고 싶어.”

내 코트 자락을 붙잡은 M-17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녀석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꼭 내 발등에 떨어진 뜨거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나를 살리면 이 애가 죽고, 이 애를 살리면 내가 죽는다.

전형적인 신파극의 클라이맥스 같은 상황이지만, 여긴 무대 위가 아니라 차가운 검사실 바닥이다. 관객도 없고 박수갈채도 없다. 오직 반투명한 벽 너머에서 스탬프를 치켜들고 대기 중인 검은 우산의 그림자들뿐.

[시스템 메시지: 귀가 권한은 단 1개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742일 전의 감정 결과에 의거, 두 샘플 중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미선택 시 ‘동시 폐기’ 절차에 착수합니다.]

“미친 새끼들. 1+1 이벤트는 좋아하면서 왜 1-1은 못 봐주겠다는 거야?”

나는 잇새로 욕설을 뱉으며 벽면의 감정 결과서를 노려보았다. 742일 전. 내가 처음으로 각성하고, 헌터라는 이름의 노예 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의 시점이다. 그날의 나(Origin)와 이 꼬맹이(M-17)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판정.

머리가 지끈거렸다. 문태식 점장님이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 떠올랐다.

도윤아, 물류는 정직해. 하지만 시스템은 겁쟁이지. 논리가 꼬이면 에러를 뱉고 멈춰버린단 말이야. 그럴 땐 매뉴얼을 읽지 말고, 매뉴얼을 쓴 놈의 뒷조사를 해라.

나는 가온이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이미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검사실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가온아, 뭐 잡히는 거 없어? 비린내나 곰팡이 냄새 말고, 이 판정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증거 같은 거.”

가온이가 으르렁거리며 벽 하단의 틈새를 앞발로 긁었다.

“킁, 킁! 아저씨, 여기…… 오래된 종이 냄새랑 오존 냄새가 섞여 있어. 그런데 하나가 아니야. 밑바닥에 뭔가 하나 더 깔려 있어!”

가온이의 발톱이 강철 벽면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그 틈새에서 툭, 하고 낡은 서류 뭉치 하나가 떨어졌다.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금박으로 된 물류 센터의 구형 로고가 박혀 있었다.

동시에 윤서하가 비틀거리며 벽면의 판독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이 기분 나쁜 보랏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마력이 역류하는지 그녀의 입술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강도윤 씨…… 저 벽면에 남은 ‘보관자 서명’…… 그거 제 마력 파동이에요.”

“뭐? 서하 씨가 2년 전에 여기 있었다고?”

“기억에는 없어요. 하지만 이 명찰이…… 자꾸 그날의 기록을 해킹하려고 해요. 제가 이 기록을 강제로 개방할게요. 시스템이 ‘선택’을 강요하기 전에, ‘판정’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야 해요!”

윤서하가 떨리는 손으로 명찰을 판독기에 찍었다.

[치익—! 권한 없는 접근입니다.]

[경고: 보관자 ‘윤서하’의 직무 정지 상태가 감지되었습니다.]

“닥쳐, 이 고철 덩어리야!”

윤서하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마력을 명찰 속으로 쑤셔 넣었다. 명찰이 과부하로 비명을 지르고, 그녀의 코에서 핏방울이 뚝 떨어졌다. 나는 급히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가온이가 찾아낸 서류 뭉치가 내 손끝에 먼저 닿았다.

그 순간, ‘잔향청취’가 터져 나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가 흑백으로 반전되었다. 742일 전의 검사실 풍경이 홀로그램처럼 펼쳐졌다.

— “이게 정말 같은 뿌리라고 생각합니까?”

낯선 목소리였다. 차갑고 건조한, 마치 기계가 내뱉는 것 같은 목소리.

— “대상 A와 B는 파동이 일치합니다. 하지만 ‘원본’의 코어는 비어 있습니다. 이건 분리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추출한 흔적입니다.”

— “추출? 그럼 원본(Origin)은 어디에 있나?”

— “그건…… 이 서류에 기재할 수 없습니다. 상부의 지시입니다.”

깡!

누군가 서류 위에 거대한 스탬프를 찍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건 도장이 아니었다. 낙인이었다.

— [판정 완료: 두 샘플을 ‘동일 출처’로 묶어 관리할 것. 단, 한쪽이 회수될 때까지 나머지는 가짜(Dummy)로 취급한다.]

나는 눈을 떴다.

03:12.

시간은 여전히 가차 없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서류 뭉치의 마지막 장, ‘원산지 증명서’ 칸에는 믿을 수 없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품목명: 강도윤의 귀가]

[원산지: NULL (데이터 말소)]

[비고: 해당 품목은 ‘반품 불가’ 상품임. 사유: 원본 소유주가 아직 입고되지 않았음.]

머릿속이 번쩍했다.

시스템은 지금 나와 M-17을 두고 ‘누가 진짜냐’를 묻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둘 다 ‘원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둘 중 하나를 폐기해서 증거를 인멸하려는 수작이었다.

“서하 씨, 멈춰! 명찰 해킹하지 마!”

나는 윤서하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창백한 안색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시간이…….”

“시간은 충분해. 우리가 틀린 문제를 풀고 있었던 거야.”

나는 벽 너머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검은 우산의 그림자들을 향해 서류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아직 손에 쥐고 있던, 233화에서 챙긴 ‘미발행 영수증’ 뭉치를 검사실 중앙의 단자 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경고: 승인되지 않은 종이 송장 삽입.]

[시스템: 처리반의 즉각 투입을 개시합…….]

“시끄러워. 물류 논리로 한 판 붙어보자고.”

나는 화면에 뜬 ‘대상 A 선택’, ‘대상 B 선택’ 버튼을 무시하고, 강제 입력창을 띄웠다. 잔향으로 들었던 그 기계적인 목소리의 톤을 흉내 내며, 나는 단숨에 코드를 입력했다.

“이건 오배송이 아니야. 애초에 ‘미입고 상품’에 대한 허위 분류지.”

[입력: 전 품목 검사 결과 무효화 신청.]

[사유: 원본(Origin) 부재에 따른 샘플링 오류.]

검사실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붉은 카운트다운 숫자가 제멋대로 뒤섞이며 99:99와 00:00 사이를 오갔다.

반투명한 벽 너머, 검은 우산을 든 그림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로봇처럼 일제히 고개를 꺾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 부분에 해당하는 유리 렌즈에서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아저씨, 저들이 오고 있어!”

M-17이 내 허리를 꽉 껴안았다. 가온이는 털을 곤두세우고 낮은 으르렁거림을 내뱉었다.

“강도윤 씨, 대체 뭘 한 거예요?”

윤서하의 물음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비명처럼 쏟아졌다.

[치이익— 오류 발생! 오류 발생!]

[감정 결과서 742-A호의 논리적 결함 발견.]

[재검수 결과: 대상 A(M-17)와 대상 B(강도윤)는 모두 ‘대체품(Substituted)’으로 재분류됨.]

[새로운 상태값: 반품 대기 -> 조사 보류.]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카운트다운이 멈췄다.

02:15.

어정쩡한 시간에서 멈춘 숫자가 검사실을 고요하게 비췄다. 벽 너머의 그림자들도 동작을 멈췄다. 시스템이 이 초유의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하지만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검사실 중앙의 거대한 모니터에, 내가 입력한 적 없는 새로운 텍스트가 한 자 한 자 느릿하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알림: ‘진짜 주인’의 접속이 확인되었습니다.]

“주인? 그게 무슨…….”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멈춰 있던 검은 우산들이 일제히 접혔다. ‘타다닥’ 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우산들이 바닥에 꽂혔고, 그림자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그 길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헌터 슈트를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에 찌든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은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 건, 그의 손목에 감긴 낡은 카시오 시계였다.

내가 3년 전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유품과 똑같은 모델.

남자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정확히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내 퇴근길에 방해물이 좀 많네.”

그의 목소리는 내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아니, 그가 내뱉는 말의 ‘잔향’은 내 것보다 훨씬 더 짙고 무거운 농담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 원본 코드 ‘강도윤-Prime’이 접속했습니다.]

[명령: 모든 샘플은 원본의 소유물로 귀속됩니다.]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 이제 내 물건 돌려받아야지? 가짜 강도윤.”

그의 손끝이 내 이마에 닿으려는 찰나, 내 품 안에서 M-17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아저씨는 가짜가 아니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끊겼던 742일 전의 마지막 기억이 폭발하듯 되살아났다.

그날, 내가 서명했던 건 헌터 계약서가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앞에 선 ‘원본’이라 주장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너…… 742일 전 그 사고 현장에서, 누구랑 계약했어?”

남자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가 굳어졌다.

그리고 검사실의 모든 조명이 꺼지며, 암흑 속에서 단 하나의 메시지만이 점멸했다.

[경고: 해당 계정은 ‘이미 사망한 사용자’에 의해 조작되고 있습니다.]

235화. 고정된 시간의 향기

어둠은 순식간이었다. 검사실의 모든 전등이 수명이 다한 필라멘트처럼 단번에 끊겨 나갔다. 망막에 잔상으로 남았던 붉은 경고문만이 허공에 부유하는 유령처럼 깜빡였다.

[경고: 해당 계정은 ‘이미 사망한 사용자’에 의해 조작되고 있습니다.]

그 기괴한 광막함 속에서, ‘강도윤-Prime’이라 자칭한 남자의 형체가 일렁였다. 형광등 아래에선 그토록 선명하던 헌터 슈트의 질감과 아버지의 유품인 카시오 시계가, 조명이 꺼지자마자 불량한 홀로그램처럼 지직거리며 왜곡되었다.

“……사망한 사용자?”

나는 떨리는 숨을 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다. 눈앞의 남자가 진짜라면, 시스템이 그를 ‘사망자’로 분류할 리가 없다.

“야, 프라임인지 옵티머스인지 하는 친구야. 죽은 사람이 로그인하는 건 요새 트렌드인가? 저승에도 와이파이가 잘 터지나 봐?”

방어기제처럼 농담이 튀어 나갔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남자가 웃었다. 아니, 그건 웃음이라기보다는 성대 근육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수축하며 내는 기계적인 마찰음에 가까웠다.

“도윤아, 넌 여전하구나. 무서울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그 습관.”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만은 기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퇴근이란 건 말이야, 단순히 사무실 문을 나서는 게 아니야. 존재의 무게를 내려놓는 거지. 나는 이미 퇴근한 강도윤이야. 너처럼 지저분한 미련을 덕지덕지 붙이고 야근 중인 가짜와는 격이 다르다고.”

그의 목소리는 나와 똑같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미세한 수치심,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말의 긴장감. 그의 농담은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처럼 매끄러웠지만, 그 안에는 텅 빈 공동(空洞)이 느껴졌다.

“아저씨…….”

내 등 뒤에서 M-17이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아이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평소라면 ‘진짜 아빠’ 혹은 ‘원본’을 만났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해야 할 아이가, 지금은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저거, 아저씨 아니야. 아빠도 아니야…….”

“M-17? 무슨 소리야.”

“냄새가…… 폐기실 냄새가 나. 기계가 멈추고, 기름이 굳고, 쓸모없어진 것들을 쌓아둔 그 창고 냄새…….”

M-17의 말에 가온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녀석의 털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가온이의 낮은 으르렁거림이 어둠을 갈랐다.

“도윤아, 조심해. 이 녀석, 사람 냄새가 안 나. 아까 그 영수증에 묻어 있던 검은 우산 잉크 냄새랑…… 장례식장 매점 냉장고에서 나는 그 서늘하고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어.”

장례식장 냉장고 냄새.

그건 신선한 음식이 아니라, 죽음을 곁에 둔 물건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무취에 가까운 악취였다.

“서하 씨, 명찰!”

내가 외치자,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윤서하의 가슴팍에서 파란 빛이 번쩍였다. 해킹 시도로 먹통이 되었던 그녀의 명찰이 시스템 재부팅과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이다.

[데이터 복구 중…… 742일 전 보관자 서명 로그 재생.]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서하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윤서하보다 훨씬 더 지치고, 날이 서 있는 목소리.

『……이걸로 정말 끝인가요? 강도윤의 신변 확보를 제가 서명하는 걸로 확정 짓는다고요?』

녹음 속의 윤서하가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서명 패드에 펜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잠깐, 이 명찰…… 제 건 맞지만, 서명 주체가 ‘윤서하’가 아니라 ‘대리인’으로 뜨는데요? 이건 규정 위반……!』

메시지는 거기서 끊겼다.

내 옆의 윤서하가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명찰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아니야…….”

“네?”

“그날, 난 사고 현장에 없었어요. 분명히 기억해요. 나는 본부에 보고서를 올리고 있었고…… 누군가 내 명찰을 빌려 갔던 것 같아요. 미래의 내가 아니라, 내 이름을 빌린 누군가가 그날 강도윤 씨를 ‘보관’ 처리한 거예요!”

그럼 742일 전, 내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를 대체품으로 분류한 건 윤서하가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 그녀의 권한을 도용해 나를 시스템의 미아로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강도윤-Prime’을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정교해서 소름이 돋았다.

“잔향청취(殘響聽取).”

나는 속삭였다.

이 녀석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가 몸에 두르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읽어야 했다.

내 시선이 남자의 손목에 채워진 카시오 시계에 머물렀다. 아버지가 주셨던,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초침을 굴리던 내 보물.

집중하자 시계의 태엽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틱, 틱, 틱.

아니, 그건 초침 소리가 아니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 그리고 742일 전의 그 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굉음과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23시 59분 59초.]

시계에서 들려온 것은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시간이 ‘멈춘’ 소리였다.

그 시계는 흐르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 742일 전, 내가 죽었어야 할 그 찰나의 순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계 자체가 거대한 닻이 되어, ‘강도윤’이라는 존재를 그날의 사고 현장에 묶어두고 있는 형국이었다.

“너…… 원본이 아니지?”

내 물음에 남자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입꼬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졌다.

“이제야 눈치챘니? 하긴, 나도 내 얼굴을 보는 건 꽤 오랜만이라 좀 어색하긴 해.”

“넌 강도윤이 아니야. 넌 그 시계 속에 고여 있는 ‘강도윤의 사망 시각’ 그 자체야. 시스템이 나를 회수하려고 보낸…… 일종의 회수 담당자(Collector)겠지.”

남자의 슈트 위로 검은 잉크 같은 액체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가온이가 맡았던 그 냄새의 근원이었다.

“정답이야, 도윤아. 넌 742일 전에 이미 죽었어야 했어. 그런데 누군가 시스템 영수증을 위조해서 널 이 세상에 방치했지. 나는 그 누락된 품목을 창고로 되돌리러 온 거야.”

남자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닿는 곳마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미 사망한 사용자’라는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네. 너, 누구랑 손을 잡은 거니? 죽은 사람의 계정을 깨워서 시스템을 속이다니. 꽤나 불량한 짓을 저질렀구나?”

“글쎄, 난 그냥 퇴근하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이 날 안 보내주네.”

나는 품 안에서 ‘미발행 영수증’ 조각을 꽉 쥐었다. 시스템은 여전히 보류 상태다. 하지만 이 ‘회수 담당자’는 시스템의 공식 절차를 무시하고 나를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그때였다.

남자의 손목에 있던 카시오 시계의 액정 조명이 파랗게 점멸했다.

23:59:58.

23:59:59.

그리고 시계가 다음 숫자로 넘어가는 대신, 기괴한 기계음을 내뱉었다.

[회수 대상: 강도윤(대체품-00).]

[회수 사유: 원본 소멸 및 보관 기간 만료.]

[특이사항: 해당 개체는 ‘사망한 사용자’의 의지를 상속받음.]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더 굵고, 따뜻하면서도 엄격했던, 기억 속 저편에 묻어두었던 목소리.

“도윤아.”

아버지가 나를 부를 때의 그 목소리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앞의 가짜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빌려 내 이름을 불렀다.

“시계, 잘 간직하고 있니?”

그는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내뱉는 압도적인 무게감에 무릎이 꺾일 뻔했다.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내 목등덜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회수 조건을 갱신한다.”

카시오 시계의 초침이 마침내 한 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로 가는 한 칸이 아니었다.

[00:00:00]

시계의 숫자가 0으로 초기화됨과 동시에, 검사실 바닥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폐기실로 연결되는, 돌아올 수 없는 통로였다.

“지금부터 1분. 네가 진짜라면, 네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그 ‘영수증’을 직접 증명해 봐.”

남자가 내 목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얼음 송곳이 목줄기를 뚫고 들어오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못 하겠다면, 오늘이 정말 네 퇴근일이다.”

나는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영수증 조각이 미친 듯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경고: ‘사망한 사용자’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망막에 떠오른 마지막 문구는, 회수 담당자의 손길보다 더 차갑고 날카로웠다.

[메시지 내용: 아들아, 시계 뒷면을 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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