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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237화. 죽은 자의 보증과 역무원이 없는 정거장 일러스트

236-237화. 죽은 자의 보증과 역무원이 없는 정거장

236화. 죽은 자의 보증

숨이 막힌다. 목을 움켜쥔 ‘강도윤-Prime’의 손가락은 생명체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동고에 처박혀 있던 강철 파이프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기도가 짓눌리고 시야가 붉게 점멸했다.

발밑에서는 거대한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검사실 바닥이 액체처럼 흐물거리며 무너져 내리더니, 그 너머로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폐기실로 연결된 통로가 보였다.

[경고: ‘사망한 사용자’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 내용: 아들아, 시계 뒷면을 열지 마라.]

망막에 박힌 메시지는 경고라기보다 비명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 하지만 나는 안다. 하지 말라는 짓에는 이유가 있고, 보통 그 이유는 ‘그게 정답이라서’인 경우가 많다는 걸.

“질식사로 퇴근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나는 억지로 입술을 달싹여 쉰 소리를 냈다. Prime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홀로그램의 노이즈처럼 그의 이목구비가 지직거리며 위치를 바꿨다.

“1분이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검사실 안의 모든 사물이 타이머로 변했다.

벽면의 화이트보드에 붉은 숫자 ‘60’이 새겨졌다. 윤서하의 하얀 명찰 위로, M-17의 은색 금속 손등 위로,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 동공이 확장된 가온이의 눈동자 위로도 똑같은 숫자가 흐르기 시작했다.

57….

“서하 씨! 명찰!”

내 외침에 윤서하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명찰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742일 전의 로그를 역추적하려는 시도였다.

“대리인 서명을… 누가 했는지 확인해야…!”

윤서하의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역추적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녀의 마력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가 Prime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로그를 읽으려 할수록 그녀의 생명력이 제물의 양식으로 쓰이는 꼴이었다.

“안 돼, 서하 씨! 멈춰요!”

“찾았… 어요….”

윤서하가 이를 악물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녀의 코에서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코드네임이… 제 이름이 아니에요. ‘YSH-EMPTY’…. 비어 있는 보관자라고… 되어 있어요.”

비어 있는 보관자. 윤서하라는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 그녀의 신분이라는 ‘그릇’만 빌려 나를 보관 처리했다는 뜻이다.

그때, 발밑의 구멍에서 강력한 인력이 뿜어져 나왔다.

“아, 아빠! 몸이…!”

M-17의 다리가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발목에 채워진 인식표가 붉게 점멸하며 ‘폐기 등급 확정’이라는 문구를 내뿜었다. 놈은 Prime이 아니라 이 검은 구멍을 진짜 ‘관리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목이 잡힌 채로 주머니 속의 미발행 영수증 조각을 낚아챘다. 손가락 끝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내 물건에 손대지 마.”

나는 영수증 조각을 채찍처럼 휘둘러 M-17의 발목을 감싸고 있던 빛의 사슬을 쳐냈다. ‘찌익’ 하는,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불쾌한 소리와 함께 M-17의 발목에 붙어 있던 회수용 라벨이 종이 조각처럼 찢겨 나갔다.

“도윤 아저씨, 저거…!”

가온이가 내 목을 옥죄고 있는 Prime의 손목, 그 위의 카시오 시계를 가리켰다. 가온이의 코가 실룩거렸다.

“저거 아저씨 아빠 냄새 아니에요. 아까는 장례식장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맡아보니까… 물류창고에서 쓰는 봉인 테이프 냄새예요. 아주 질 나쁜 화학 약품 냄새.”

물류 봉인재.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 아니라, 아버지가 만졌던 ‘포장지’를 시계 모양으로 빚어놓은 가짜라는 소리다.

Prime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시간이 다 됐다. 영수증은 어디 있지?”

남은 시간 15초.

아버지는 시계 뒷면을 열지 말라고 했다. 그건 역설적으로 시계 뒷면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직접 건드리면 이 시스템의 함정에 빠질 게 분명했다.

나는 Prime의 손목을 잡는 대신, 시계 줄의 낡고 해진 틈새를 향해 내 고유 스킬, [잔향청취]를 우회해서 꽂아 넣었다.

본체인 시계 뒷면이 아니라, 그 본체를 지탱하고 있는 ‘소모품’인 시계 줄의 흠집. 거기라면 시스템의 감시가 덜할 터였다.

[스킬: 잔향청취(殘響聽取)가 발동됩니다.]

[대상의 상태가 불안정하여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지지직!

귓가를 찢는 듯한 소음과 함께 742일 전의 환영이 뇌를 헤집고 들어왔다.

—도윤아, 정신 차려라! 제발!

피 냄새. 차가운 비 냄새. 그리고 타오르는 엔진오일의 악취.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하지만 환영 속의 아버지는 나를 죽이려 하는 사신이 아니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시스템 콘솔 앞에 매달려 있었다. 내 상태창 위로 ‘사망 확정’이라는 붉은 글자가 떠오를 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의 계정 정보를 뜯어내어 그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내 계정을 담보로 걸겠다. 내 등급, 내 권한, 내 존재 전부를 시스템에 공탁할 테니… 이 아이의 사망 처리를 유예해!

아버지는 나를 죽인 게 아니었다.

나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시스템의 ‘담보’로 집어넣은 것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Prime이라는 괴물은, 아버지가 공탁한 그 ‘담보물’에서 기어 나온 찌꺼기이자, 시스템이 내 아버지를 흉내 내어 만든 회수 담당자에 불과했다.

“거짓말치곤 꽤 정성스러웠어.”

나는 피 섞인 웃음을 흘리며 Prime의 손목을 비틀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카시오 시계 줄에 이딴 냄새나는 본드를 칠할 분이 아니거든. 그 양반은 결벽증이었단 말이다.”

[경고: ‘사망한 사용자’가 당신에게 두 번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망막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메시지 내용: 뒷면을 열면 내가 아니라 네가 봉인된다. 하지만 핀을 뽑으면 놈의 심장이 멈추겠지.]

남은 시간 3초.

나는 시계 뒷면을 여는 대신, 시계 줄과 본체를 연결하는 작은 금속 핀, ‘바네바’를 향해 마력을 집중했다. 잔향청취로 읽어낸 가장 약한 연결 고리.

‘깡!’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과 함께 시계 줄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시계 본체가 뒤집히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Prime의 눈이 처음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나를 쥐고 있던 손을 풀고 허공으로 떨어지는 시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하지만 늦었다. 시계는 이미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뒤집힌 시계 뒷면, 거기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무언가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시계의 일련번호가 아니었다.

[수신처: 제3폐기구역 / 발송자: Administrator-K]

[내용물: 미결제 영혼 (담보물: 강성훈)]

“강성훈….”

내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시계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Prime의 몸이 먼지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대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찾아와라, 도윤아. 네 아버지는 아직 ‘퇴근’하지 못했다.”

암흑이 걷히고 검사실의 조명이 치익거리며 다시 돌아왔다.

바닥의 구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내 손바닥에는 시계 줄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금속 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핀 끝에는, 방금 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배송지 코드가 아주 미세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L-742-GHOST-STATION]

나는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 코드를 노려보았다. 고스트 스테이션. 742일 전, 모든 것이 멈췄던 그 역의 이름이었다.

237화. 역무원이 없는 정거장

암흑이 걷히고 검사실의 조명이 치익거리며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빛은 안도감을 주기엔 너무도 창백했고, 형광등의 파들거리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 비닐봉지를 계속 구기는 것처럼 신경을 긁었다.

벽 너머에서 우리를 조여 오던 검은 우산들의 그림자는 사라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라 ‘접혀’ 있었다. 벽면 여기저기에 검고 긴 막대기 같은 것들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장례식장에 방치된 상주들의 물건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정적은 소음보다 무거웠다. 나는 손바닥을 폈다. 시계 줄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금속 핀 하나가 내 살갗을 따끔하게 찌르고 있었다.

[L-742-GHOST-STATION]

핀 끝에 새겨진 그 코드를 훑으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단순한 장소의 이름이 아니었다. 물류 라인의 폐기 노선이자, 동시에 742일 전 세상의 시간이 한 번 멈췄던 그 구역의 암호였다.

“……도윤 씨.”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윤서하가 겨우 몸을 일으키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얼굴은 마력 고갈로 인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얼른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부축했다.

“괜찮아요? 마력 포션이라도…….”

“아니요, 포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시스템이 제 권한 자체를 갉아먹은 거라서.”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Prime에게 빨려 들어가던 로그의 흔적이 아직도 명찰 테두리에 가느다란 노이즈로 남아 있었다.

“YSH-EMPTY……. 이게 단순히 제 이름을 비워둔 게 아니었어요.”

“무슨 뜻입니까?”

“누군가 제 권한의 ‘껍데기’를 복제해서 쓰고 있다는 증거예요. 이 로그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저를 본떠 만든 가짜가 접속했을 때 남는 잔여물이에요. 제 권한이 살아 있는 한, 그 ‘누군가’는 저인 척하며 시스템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이죠.”

윤서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기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의 ‘빈집’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헌터에게 죽음보다 더한 모욕이자 공포다.

그때, 내 다리에 매달려 있던 M-17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 하나를 가리켰다. 아까 내가 미발행 영수증으로 찢어냈던, 아이의 발목에 붙어 있던 그 회수 라벨이었다.

“……이거, 무서워.”

“이제 괜찮아. 떼어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꼭 그거 같아. 아빠가 예전에 보여줬던 거.”

M-17이 작은 손가락으로 라벨의 절단면을 만지작거렸다.

“고스트 스테이션 승차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본질을 꿰뚫는다. 물류 회수 라벨과 지하철 승차권.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는 물건 같지만, ‘누군가를 강제로 어디론가 이동시킨다’는 목적은 동일하다.

“가온아, 뭐 좀 느껴지는 거 없어?”

나는 옆에서 코를 킁킁거리고 있던 가온이에게 물었다. 가온이는 검사실 벽면의 특정 지점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도윤 형, 여기서 아주 구린 냄새가 나요. 그냥 구린 게 아니라, 10년 동안 빨지 않은 군대 양말을 락스 물에 담갔다가 물류창고 구석에 처박아둔 것 같은 냄새요.”

“……표현 참 구체적이어서 고맙네. 그래서 그게 어디야?”

가온이가 벽면의 한 패널을 발로 툭툭 찼다.

“여기요. 여기가 이 방에서 가장 ‘반품’이 많이 된 냄새가 나요.”

나는 가온이가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겉보기엔 평범한 벽체였지만, 자세히 보니 미세한 틈새가 있었다. 나는 손끝에 마력을 집중해 그 틈을 억지로 벌렸다.

치이익―.

압력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벽면의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것은 ‘반송구(返回口)’, 혹은 ‘분실물 보관함’처럼 보이는 작은 공간이었다. 병원의 검사실에 있을 법한 구조가 전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먼지 쌓인 물건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오래된 지하철 승차권 조각이었다. 요즘은 쓰지도 않는 노란색 종이 승차권. 그리고 그 옆에는 물류 봉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서류 한 뭉치가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서류를 꺼냈다. 가장 윗장에 적힌 글자를 본 순간, 내 호흡은 멎을 것만 같았다.

[공탁 접수증 (일부)]

[대상물: 계정 및 존재 권한 일체]

[공탁자: 강성훈]

[피공탁자: 강도윤]

[발송자: Administrator-K]

“……아버지.”

접수증은 중간중간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고, 결정적인 부분들은 읽을 수 없게 훼손되어 있었다. 특히 ‘Administrator-K’라는 서명에서 K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시스템에 ‘저당’ 잡혔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내가 아직 이 세상에 헌터로 살아남아 ‘퇴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것이다.

“도윤 씨, 이거…….”

윤서하가 내 손에 든 접수증을 같이 보며 신음하듯 말했다.

“강성훈 헌터님은 아직 시스템 내부에 묶여 계신 거예요. ‘미결제 영혼’이라는 건, 공탁된 담보물이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당장이라도 이 코드가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742번 노선, 고스트 스테이션.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뒤에는 마력이 바닥난 윤서하와, 아직도 겁에 질려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M-17이 있었다. 그리고 가온이 역시 방금 전의 전투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선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헌터로서의 이성적 판단은 ‘일단 후퇴 후 재정비’를 외치고 있었지만, 아들로서의 본능은 ‘지금 당장’을 외치고 있었다.

“……일단 나갑시다. 여기 계속 있다간 뭐가 더 튀어 나올지 몰라요.”

나는 결국 이성을 택했다. 아버지가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 존재까지 걸었다면, 내가 여기서 객기를 부리다 죽는 건 아버지가 가장 원치 않는 일일 테니까.

나는 윤서하를 부축하고 M-17의 손을 잡았다. 가온이가 앞장서서 검사실 출구로 향했다. 아까 Prime이 나타나면서 잠겼던 문이 이제는 스르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

가온이가 문앞에서 멈춰 섰다. 나 역시 문 너머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분명 우리가 들어왔던 곳은 병원의 차가운 복도였다. 하지만 지금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전혀 달랐다.

습하고 눅눅한 공기.

코를 찌르는 녹슨 철길의 비릿한 냄새.

그리고 어두컴컴한 터널 너머로 드문드문 켜진 노란색 안전등.

그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낡고 오래된, 세상에서 잊힌 지하철 플랫폼이었다.

치익―. 치이이익―.

어디선가 스피커 터지는 듯한 잡음이 들려오더니, 낮고 기계적인 여성의 안내방송이 플랫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알립니다.]

[잠시 후, L-742 고스트 스테이션행 반품 전용 열차가 진입합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돌아갈 길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니, 시스템이 우리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안내방송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이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본 열차에는 승객 강도윤 님의 보호자, 강성훈 님이 이미 탑승 중입니다.]

쿠우웅―.

어둠 저편에서 거대한 쇠뭉치가 선로를 긁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바람과 함께 피 냄새 섞인 돌풍이 우리를 덮쳤다.

[반품 기한이 만료되었습니다. 지금 승차하지 않으면 담보물은 강제 폐기됩니다.]

나는 내 손바닥에 박힌 금속 핀을 꽉 쥐었다. 살이 찢겨 피가 흘렀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열차가 온다.

아버지를 태운, 결코 타서는 안 될 열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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