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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281화. 회수 진행률 1퍼센트와 문태식의 마지막 기록 일러스트

280-281화. 회수 진행률 1퍼센트와 문태식의 마지막 기록

280화. 회수 진행률 1퍼센트

지지직, 단말기 화면이 비명을 질렀다. 낡은 액정 너머로 튀어 오르는 노이즈가 내 망막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그 불쾌한 파동은 내 손이 아니라 내 옆, 언제나 단단한 지지대처럼 서 있던 윤서하의 손목이었다.

그녀의 팔찌가 불길한 빛을 내뿜으며 수축하고 있었다. 살점을 파고드는 금속의 마찰음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내 안쪽 깊은 곳에서 울렁거리는 기묘한 갈증이었다.

[대상 윤서하의 기록을 가온에게 통합합니다]

[회수 진행률: 1%]

단 1퍼센트. 그 미미한 숫자가 뜨는 순간, 내 손끝이 떨렸다. 본능이었다. 서하를 향해 뻗으려던 내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그녀의 기운을, 그녀라는 존재의 조각들을 빨아들이려 비틀거렸다.

“도윤 씨, 오지 마세요.”

서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은, 억지로 짓누른 음색이었다. 그녀는 내 손이 닿기도 전에 뒤로 물러섰다. 아니, 나를 밀어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그녀의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검집을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손바닥을 털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와, 이거 보게. 내가 평생 남의 편의점 포인트도 탐내본 적 없는 사람인데, 이제는 동료 기록까지 가져가게 생겼네? 서하 씨, 이거 나중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 같은 거 걸면 안 돼요. 나 변호사 선임할 돈도 없으니까.”

말끝이 보기 좋게 갈라졌다. 농담으로라도 이 상황의 무게를 덜어보려 했지만, 서하의 팔찌 아래로 번지는 푸르스름한 글자 조각들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녀의 하얀 손목 피부 위로 정체 모를 획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칼날로 문장을 새겨넣는 것처럼.

서하는 신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꽉 깨물어 터뜨린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반대쪽 소매 속으로 필사적으로 감추며 내게서 멀어졌다.

“제 걱정… 하지 마세요. 별거 아닙니다.”

거짓말이다. 검을 쥔 그녀의 팔이 진동하듯 떨리고 있었다. 헌터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가 이정도로 흔들리는 건 결코 ‘별거 아닌’ 일이 아니다.

“별거 아닌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합니다. 백연 씨, 보고만 있을 거야?”

내 외침에 백연이 무표정하게 카메라 렌즈를 돌렸다.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멈춰 있는 건 내 체질이 아니라서요.”

백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서늘했지만, 그녀가 쥐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에는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그 금은 조금씩 더 깊고 넓게 번져나갔다. 단말기 속 1퍼센트라는 숫자가 찰나의 순간 멈칫하며 흐릿해졌다.

“기록을 찍는 게 아니라, 찢어지는 기록을 억지로 꿰매는 중입니다. 오래 못 버텨요. 카메라가 먼저 박살 나든, 윤서하 씨의 존재가 먼저 저 단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든 둘 중 하나겠지.”

“말을 참 예쁘게도 하네.”

나는 이를 악물며 다시 서하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손을 뻗는 대신, 눈을 감고 내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잔향청취. 이 공간에 머물러 있는, 그리고 내 몸속에서 날뛰는 이질적인 목소리들을 붙잡아야 했다.

웅성거리는 소음 너머로, 아주 오래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태식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훨씬 더 고집스러운 기운이 서린 그의 목소리.

― 회수자는 타인의 이름을 빼앗는 놈이 아니라, 빼앗긴 이름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놈이어야 한다.

그 목소리에 대답하는 또 다른 존재의 웃음소리가 섞였다. 비릿하고, 축축한 웃음이었다.

― 그 애가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 빼앗는 맛을 한 번 보면, 돌려놓는다는 게 얼마나 시시한 일인지 깨닫게 될 텐데.

―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그놈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태식 영감님의 목소리가 점차 흐려졌다. 나는 눈을 떴다. 내 안에서 서하를 끌어당기던 그 굶주린 감각은 ‘회수’의 본질이 아니었다. 그건 이 시스템이, 혹은 문태식이 설계한 이 기괴한 연극이 내게 강요하는 역할일 뿐이었다.

이름을 돌려놓는 놈.

그게 회수자라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도 분명했다.

“서하 씨, 나 좀 봐요.”

나는 서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가 움찔하며 나를 밀쳐내려 했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손바닥을 통해 서하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뺏는 건 질색이야. 내가 남한테 주는 건 잘하거든요. 특히 빚 같은 거.”

나는 내 안의 잔향을 역류시켰다. 서하의 기록을 빨아들이려던 흐름을 억지로 틀어막고, 대신 내 안에 쌓여 있던 무겁고 축축한 기운들을 서하의 팔찌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가온’이라는 이름표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파동이 내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순간, 눈앞의 풍경이 뒤틀렸다.

비릿한 쇠 냄새와 눅눅한 습기. 나는 차가운 금속 보관함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좁고 어두운 공간. 밖에서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고, 나는 숨을 죽인 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보관함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빛 사이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름 없는 놈이 여기 숨어 있었구먼.”

문태식이었다. 그의 손에는 낡고 해진 담요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담요에서는 묘하게도 맵싸한 라면 냄새가 났다. 방금 전까지 자기가 먹던 컵라면 김이라도 쐰 모양이었다. 그는 투덜거리며 그 담요를 내 머리 위로 던지듯 덮어주었다.

“이거라도 덮고 있어라. 네 이름 찾을 때까지는 뒈지지 말고.”

다정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말투였지만, 그 담요에서 전해지는 미지근한 온기가 너무나 이질적이라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동시에 느껴지는 찜찜함. 그가 내민 담요는 마치 나를 보호하는 막인 동시에, 나를 이 좁은 보관함 속에 가두는 봉인 같기도 했다.

그 기억의 조각이 서하의 팔찌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아…!”

서하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더니, 이내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 속에 망설임이 스쳤다. 나를 부르려는 입술이 달싹였다.

‘도윤 씨’라고 부르려던 그녀의 의지가, 내 안에서 흘러 들어간 ‘가온’이라는 이름의 잔상과 충돌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내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회수 진행률: 0.8%... 0.4%...]

숫자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연의 카메라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듯 플래시를 터뜨렸다.

콰직!

카메라 렌즈가 완전히 박살 나며 파편이 바닥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 찰나에 찍힌 인화지 위에는 뒤틀린 잔상이 남았다. 서하의 등 뒤로 드리워진 검은 우산 모양의 얼룩.

이전 사진에서는 ‘접근 금지’라고 적혀 있던 그 자리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접근 허가: 회수자 동행 시]

우산의 그림자가 서하를 집어삼키려던 손길을 멈추고, 마치 호위하듯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회수 진행률: 0%]

[시스템 간섭 해제. 대상 윤서하의 기록 보존 완료.]

단말기의 붉은 빛이 사라지고 평온한 녹색등이 들어왔다. 서하의 팔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그녀는 맥이 풀린 듯 비틀거렸고,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거봐요. 내가 안 뺏는다고 했잖아. 난 돌려주는 거 전문이라니까.”

농담을 던졌지만 내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방금 그 기억, 보관함 속의 나. 그건 그냥 환각으로 넘기기 어려웠다. 내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었다. 라면 냄새 나는 담요의 감촉까지도.

하지만 안도할 틈은 없었다. 0%가 된 단말기 화면이 다시 한번 발작하듯 깜빡였다.

[회수 대상 변경]

[원본 조각 위치 확인]

[대상: 문태식의 마지막 기록]

화면 속 글자가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우리가 서 있던 공간, 굳게 닫혀 있던 보관함 중 하나가 쇳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해서, 내 심장을 그대로 얼려버릴 것 같았다.

“늦었구나, 도윤아.”

문태식. 죽었다고 믿었던, 혹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의심했던 그 영감님의 목소리가 보관함 안쪽에서 울려 퍼졌다. 인공적인 기계음이 섞인, 차갑고도 건조한 자동 안내 방송 같은 어조였다.

나는 이름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보관함의 어둠이 우리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281화. 문태식의 마지막 기록

철컥, 하고 고장 난 기계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의 금속 보관함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틈새로 쏟아져 나온 것은 빛이 아니라, 지독하게도 익숙한 어둠이었다.

“늦었구나, 도윤아.”

보관함 안쪽, 아무도 없을 그 좁은 공간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기계적인 자동 안내음처럼 건조했다. 하지만 그 울림만큼은 내 폐부를 정확히 찔렀다. 문태식. 나를 이 바닥으로 끌어들이고, 내 등에 ‘회수자’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증발해버린 그 영감탱이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까지 들렸다. 손바닥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가온’의 이름표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저 어둠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야, 아저씨. 늦었다고 타박할 거면 최소한 셔틀버스라도 보내놓고 말하시지? 여기가 무슨 홍대 입구인 줄 아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숨기려 일부러 더 빈정거렸다. 하지만 발끝은 이미 보관함의 문턱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뒤에서 옷깃을 잡아당기는 묵직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안으로 고꾸라졌을지도 모른다.

“강도윤 씨, 혼자 가게 안 둬요.”

윤서하였다. 방금까지 기록이 통째로 뜯겨 나갈 뻔한 사람치고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돌아본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동자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 위로 작은 흉터 같은 글자 조각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긁힌 듯한 형상이었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윤 헌터님, 지금 본인 몸 상태가 ‘오늘 내일’ 수준인 건 아시죠? 가서 짐만 될 텐데 그냥 여기서 좀 쉬지 그래요?”

“내 기록을 지켜준 건 도윤 씨예요. 그러니까 그 기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나도 봐야겠어요.”

서하의 고집에 혀를 찼다. 그때,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연이었다. 그녀는 금이 간 카메라 렌즈를 조심스럽게 외투 주머니에 넣더니, 남은 인화지 몇 장을 손에 쥐었다.

“렌즈는 죽었지만, 기록자의 감각은 남아 있어. 강도윤, 조심해. 이 안쪽은 단순한 기록 저장소가 아니야.”

“그럼 뭔데요? 설마 저 아저씨가 숨겨놓은 비상금 창고라도 됩니까?”

“편집본이지.”

백연이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 담았거나, 혹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덧칠한 공간일 가능성이 높아. 네가 보는 모든 게 진실이라고 믿지 마.”

백연의 경고는 늘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보관함의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공간이 뒤틀렸다. 좁고 답답한 금속 상자 안이어야 할 공간이 기괴하게 팽창했다. 차가운 금속 벽면 위로 누런 벽지가 덧씌워지고, 곰팡이 냄새 섞인 낡은 사무실의 풍경이 겹쳐졌다.

오래전 헌터 협회 감식반 사무실.

기억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풍경이 현실이 되어 발밑에 깔렸다. 바닥에는 누군가 흘린 게 분명한 컵라면 국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재떨이 대신 쓴 종이컵에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여긴…….”

서하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낡은 출입증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은 지금보다 훨씬 젊고, 눈빛이 살아 있는 문태식이었다. 그리고 그 책상 한구석, 마치 낙인처럼 찍힌 검은 우산 모양의 물때 자국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치직, 소리와 함께 허공에 먼지 낀 모니터 하나가 떠올랐다. 아니, 모니터라기보다는 허공에 고정된 잔상에 가까웠다. 그 화면 속에서 젊은 시절의 문태식이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네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내가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화면 속 문태식이 입을 열었다. 실시간 대화가 아니다. 녹화된 영상,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이 박제된 잔향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실패고 뭐고, 설명부터 좀 해봐! 왜 나한테 이딴 일을 맡긴 건데? 왜 가온이라는 이름표를 나한테 남긴 거냐고!”

하지만 문태식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도윤아. 사람들은 나를 배신자라고 부를 거다. 아니,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억해라. 어떤 진실은 악역의 탈을 써야만 보존되는 법이니까.”

뻔뻔한 소리. 나를 버려두고 사라진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고결한 희생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꼴이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내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금속 보관함에 갇혀 떨던 내게 컵라면 냄새가 밴 담요를 덮어주던 그 투박한 손길이 기억났다. 그때 그 아저씨의 눈빛은 지금 화면 속의 차가운 모습과는 달랐다.

“웃기지 마. 실패했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무슨 똥배짱이야…….”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평소처럼 농담으로 받아치고 싶었지만, 자꾸만 목이 메어 말이 꼬였다.

그때였다. 백연이 내 어깨를 짚으며 화면 뒤쪽을 가리켰다.

“강도윤, 저걸 봐. 소리에 집중해.”

그녀가 인화지를 화면 가까이 가져다 대자, 지직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다른 소리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문태식의 목소리 너머, 아주 가느다란 숨소리. 그리고 딱, 딱, 하고 딱딱한 물건이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

검은 우산의 손잡이가 책상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누군가 문태식이 이 기록을 남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이즈가 심해지는 틈을 타, 아주 짧게 잘려 나간 음성이 내 고막을 긁었다.

[……원본 조각을 회수자에게 넘기지 마.]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문태식의 기록은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었고, 그 편집된 틈새로 진실의 파편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

서하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손목을 감싸 쥐었다. 그녀의 팔찌에 새겨진 흉터 같은 글자 조각이 화면 속 노이즈와 공명하듯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윤 헌터님, 괜찮아요?”

“이 느낌…… 알 것 같아요. 나, 아주 오래전에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사무실, 이 냄새…….”

서하의 기억 역시 이 절차 어딘가에 얽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화면 속 문태식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도윤아. 시간이 없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연기나 녹화된 영상이 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절박함이었다.

“네가 찾아야 할 원본 조각은 사람이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아이가 아니란 말이다.”

“뭐? 그럼 뭔데? 가온이가 아니면 대체 뭔데!”

“그건…… 네 첫 번째 사망 플래그다.”

사망 플래그.

내가 이 지옥 같은 게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나를 괴롭혀온 그 빌어먹을 단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꺼졌다. 동시에 정면에 있던 낡은 책상의 서랍이 소름 끼치는 금속음을 내며 저절로 열렸다.

나는 홀린 듯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서랍 안에는 덩그러니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영수증이었다.

손을 떨며 영수증을 집어 들었다. 그 하단에는 날짜와 함께 믿기 힘든 문구가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사망 예정자: 강도윤]

[결제자: 검은 우산]

영수증의 날짜는 내가 문태식을 처음 만났던 날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내가 이미 죽기로 되어 있었다고?”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점의 날짜. 그 위에 적힌 내 이름과 ‘검은 우산’이라는 세 글자.

그때, 등 뒤에서 닫혀 있던 보관함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기 직전, 나는 보았다. 영수증 뒷면에 휘갈겨 적힌 문태식의 진짜 마지막 필적을.

‘이건 네가 산 게 아니라, 누군가 대신 지불한 목숨이다.’

발밑의 바닥이 꺼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영수증을 움켜쥔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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