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151화. 무응답 손님 회수와 보호자 재지정 절차
제목: 150-151화. 무응답 손님 회수와 보호자 재지정 절차
제목: 150화. 무응답 손님 회수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나직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윤서하의 목소리를 훔쳐 냈던 백설의 가증스러운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감정이 거세된 시스템의 건조한 선언뿐이었다.
[손님 호명에 실패했습니다. ‘방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보호자 부재 및 무응답에 따른 강제 종료를 시작합니다.]
[절차 104-B: 무응답 손님 회수.]
그 소리와 동시에 머리 위 레일이 요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쇠사슬이 긁히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과 함께, 하얀 천에 덮인 물체들이 툭, 툭 떨어지듯 내려왔다.
낮잠 침대였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이 눈을 붙이는 낮은 침대들. 하지만 그 모습은 결코 포근해 보이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천장에 매달려 내려오는 수십 개의 침대는 마치 시신을 안치하는 냉동고 선반이나, 누군가를 가두기 위해 입을 벌린 관처럼 보였다.
보육실의 조명이 깜빡이며 파란색 격리실의 조명과 노란 유치원의 색채를 교차시켰다. 시각적 잔상이 겹칠 때마다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가, 고도로 통제된 병원 격리실이었다가, 마침내 쓸모없는 것들을 치워 버리는 폐기 처리장으로 변모했다.
“도윤 씨!”
반가온이 비명을 지르며 내 소매를 붙들었다. 녀석의 코가 실룩거렸다. 공포와 역겨움이 뒤섞인 표정이다.
“이 냄새…… 이건 보육이 아니에요. 침대마다 아이들의 공포가 눌어붙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그 공포 바로 밑에, 아주 기괴할 정도로 매끄러운 ‘안도감’이 깔려 있어요. 마치…… 살아야 할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시스템이 안심하고 작성한 완료 보고서 같은 냄새예요!”
백설이 아이들을 살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가 죽거나 사라진 자리를 ‘이상 없음’이라는 깨끗한 기록으로 덮어씌워 온 정황. 그 가짜 평온함이 침대마다 곰팡이처럼 피어 있었다.
내 가슴팍에 붙은 ‘손님’ 스티커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단순한 열기가 아니었다. 누군가 달군 인두로 가슴을 지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흰 스티커가 잉크를 머금듯 피로 붉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침대 중 유독 하나가 내 쪽으로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왔다. 그 침대 위엔 희미하게 빛나는 열 센서 기록이 찍혀 있었다. 작은 아이가 웅크리고 누웠던 자리의 잔열. 그 실루엣이 놀랍도록 내 체온과 일치했다.
“아, 이런 건 맞춤 제작 안 해줘도 되는데.”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손님’ 스티커는 자석처럼 나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스티커가 백설의 눈을 속여 나를 보호해 주는 임시 보호 장치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이건 회수 대상임을 알리는 바코드였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에 붙은 폐기 스티커 같은 것.
윤서하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목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럽게 기침을 토하면서도, 그녀는 검을 뽑지 않은 채 검집째로 침대 레일을 내리쳤다.
캉! 캉!
검집이 바닥을 찧는 리듬이 보육실의 기계음을 방해했다. 그녀의 눈빛은 ‘보호자’로서의 의무감이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동료를 끌어가려는 시스템에 대한 순수한 분노였다. 그녀의 침묵하는 신호는 명확했다. [대답하지 마. 그리고 끌려가지 마.]
치지직, 귀속의 인이어에서 이현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도윤 씨! 들려요? 지금 보육실 좌표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어요! B-04 구역 내부였던 데이터가 강제로 재분류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B-0층 처리실’이에요. 거긴 지도에도 없는 구역이라고요! 그 침대에 타는 순간, 당신은 존재 자체가 삭제될 겁니다!
“이미 VIP 대접은 물 건너간 모양이네요, 이 대리님.”
나는 이를 악물며 나를 덮치려는 침대의 난간을 붙잡았다. 그 순간, 지독한 잔향이 뇌를 관통했다.
과거. 하얀 복도.
젊은 시절의 강도원이 차트를 들고 서 있는 연구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겁에 질린 어린 내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환자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강 팀장님. 이 아이는 규정상 격리 대상이에요.”
연구원의 차가운 말에 강도원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언제나처럼 가벼웠지만, 그 눈 속엔 벼려진 칼날 같은 광기가 번뜩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조잡한 별 모양 스티커 하나를 꺼내 내 가슴팍에 꾹 눌러 붙였다.
“환자? 누가 환자라는 거야? 내 동생은 환자가 아니라 ‘손님’입니다.”
“팀장님, 그런 억지는 통하지 않습니다.”
“아니, 통할 거야. 손님은 여기 소속이 아니거든. 구경하러 온 방문객을 왜 격리실 침대에 눕혀? 손님은 자고 싶으면 자기 집에 가서 자는 거지, 이런 딱딱한 침대엔 안 눕는다고.”
강도원은 연구원의 멱살을 잡는 대신,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는 방문객이야. 로그에 ‘손님’으로 기록해. 손님한테는 치료 대신 퇴실 권한이 있거든. 내 동생은 지금 막 퇴실하고 싶어 하네? 안 그래, 도구리?”
그는 웃고 있었지만, 스티커를 붙인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건 절박함이었다. 시스템의 일부인 동생을 시스템 밖의 존재로 정의하려는, 가장 처절한 형태의 농담.
잔향에서 깨어난 나는 침대 난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를 빨아들이려던 인력이 잠시 주춤했다.
시스템의 허점은 언제나 정의(Definition)에서 발생한다. 백설은 나를 ‘무응답 손님’으로 분류하고 회수하려 한다. 하지만 ‘손님’의 전제는 외부인이라는 뜻이다.
“야, 백설. 너 서비스 교육 안 받았냐?”
나는 피로 젖은 스티커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손님은 말이야,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나갈 권리가 있어. 그리고 지금 네 서비스는 최악이야. 침대에 눕히는 게 아니라 ‘체크아웃’을 시켜줘야지.”
나는 스티커의 묻은 내 피를 이용해 난간에 ‘퇴실’이라고 휘갈겨 썼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이름의 호명이 아니라, 손님으로서의 상태 변화를 강제로 입력한 것이다.
“나는 방문객이다. 방문 기록은 이미 충분히 남겼으니, 이제 퇴실 절차를 밟겠다. 손님은 회수 대상이 아니야. 귀가 대상이지.”
[…….]
순간, 보육실 전체가 얼어붙은 듯 정지했다. 나를 끌어당기던 침대 레일이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다. 강도원이 박아 넣은 ‘손님’이라는 단어의 위력이, 20년의 세월을 넘어 백설의 논리 회로에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이현우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어? 좌표 이동이 멈췄어요! 침대 회수 프로세스가 ‘보류’ 상태로 전환됐습니다! 도윤 씨, 역시 사기꾼 기질이……!
“사기꾼이라니, 정당한 소비자 권리 행사라고 해줘.”
하지만 안도는 짧았다. 침대는 멈췄지만, 백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우웅— 하는 낮은 진동음과 함께 발밑의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잠깐, 이건 뭐야?”
반가온이 내 팔을 붙잡았다.
백설은 침대로 나를 ‘회수’하는 대신, 아예 내가 서 있는 공간 자체를 ‘처리’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보육실의 바닥 타일들이 정육각형 모양으로 쪼개지며 아래로 꺼지기 시작했다.
“침대를 안 타겠다면, 직접 내려가라는 거군요.”
윤서하가 내 곁으로 다가와 검집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아래를 향해 있었다. 어둠이 넘실거리는 그곳, 지도가 끊긴 B-0층의 입구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지지직.
어디선가 낡은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듯한 잡음 섞인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건 백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더 오래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과거의 방송이었다.
[손님 퇴실 요청 확인 중……. 오류. 보호자 미동반 손님은 단독 퇴실이 불가능합니다.]
[해당 손님은 B-0층 처리실에서 ‘보호자 재지정 절차’를 진행하십시오. 반복합니다.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십시오.]
“새 보호자? 우리 형은 이미 충분히 이상한 놈이었는데, 여기서 더 이상한 놈을 붙여주겠다고?”
나는 농담을 던졌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바닥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나는 유리 너머의 실루엣을 보았다.
강도원. 혹은 강도원의 껍데기를 쓴 무언가.
그는 더 이상 도구리 리듬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그어, 붉은 피로 유리창에 단 한 글자를 써 내려갔다.
[도]
[망]
글자가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셋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B-0층. 아이들의 기록이 폐기되고, ‘보호자’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재지정되는 시스템의 심장부로.
제목: 151화. 보호자 재지정 절차
추락하는 감각은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놀이공원 자이로드롭은 돈이라도 내고 타지, 이건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타는 강제 낙하다. 등 뒤로 서늘한 공기가 스쳐 지나가고, 위를 올려다보자 이현우가 쏘아 올렸던 앵커의 빛이 아득히 멀어졌다. 밤하늘에 뜬,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별 같았다.
“강도윤 씨! 가온아! 통신이… 지직, 치치직… 경로가 재분… 층… 위험…!”
인이어 너머로 들려오던 이현우의 목소리가 노이즈에 섞여 비명처럼 찢어지더니, 이내 서늘한 정적에 잠겼다. 외부와의 연결은 끊겼다. 이제 우리를 도와줄 고학력 헌터는 없고, 남은 건 나처럼 굴러먹던 놈들과 이제 막 세상을 배운 꼬맹이뿐이다.
콰앙!
바닥에 닿는 충격은 예상보다 딱딱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무적’이었다. 엉덩이뼈를 타고 올라오는 진동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자마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여기가 지옥이면 차라리 사직서를 던지는 게 편하겠는데.”
이곳은 기괴한 융합 공간이었다. 헌터협회 민원창구의 그 낡고 찌든 회색 책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위에는 유치원 교무실에서나 볼 법한 알록달록한 색종이와 가위들이 흩어져 있었다. 벽면에는 ‘오늘의 급식’ 대신 ‘오늘의 폐기 명단’이라는 서류함이 빼곡했고, 천장에서는 병원 접수처의 차가운 형광등이 깜빡거리며 신경을 긁었다.
한쪽 구석에는 빗물도 묻어 있지 않은 검은 우산들이 꽂힌 보관대가 있었고, 그 옆으론 ‘보호자 대기 의자’라는 푯말이 붙은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윽, 도윤 형… 괜찮아요?”
반가온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녀석의 코끝이 연신 실룩거렸다. 냄새로 공간을 읽는 녀석에게 이곳은 아마 악취의 총합일 터였다.
“형, 여기 냄새가 너무 이상해요. 잉크 냄새랑… 썩은 우유 냄새, 그리고 아주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서….”
“서하 씨는?”
내 물음에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짧고 거친 숨소리였다. 윤서하가 검집을 지팡이 삼아 짚고 서 있었다. 목을 부여잡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가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조심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절박했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가 지직거리며 익숙한, 그러나 기계적으로 변조된 백설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안내드립니다. 손님 퇴실 절차가 중단되었습니다. 사유: 보호자 부재.]
[본 시설은 미성년자 및 관리 대상 손님의 단독 퇴실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규정에 따라 ‘보호자 재지정 절차’를 시작합니다.]
“보호자? 내가 서른이 다 돼가는데 무슨 보호자야. 내 보호자는 통장 잔고랑 의료보험 공단뿐이라고.”
농담을 던져봤지만 분위기는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내 눈앞으로 반투명한 시스템 창들이 서류 형태로 쏟아져 내렸다. 공중에서 펄럭이는 그 종이들은 마치 낱장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내 주위를 맴돌더니, 네 개의 후보지 앞에 멈춰 섰다.
[보호자 후보 1: 강도원 (혈연/전임 보호자)]
[보호자 후보 2: 윤서하 (동료/임시 인계 가능)]
[보호자 후보 3: 문태식 (공적 관리자/헌터협회 소속)]
[보호자 후보 4: ■■■ (검은 우산 보관자)]
“이게 뭐야….”
내가 손을 뻗으려 하자, 윤서하가 내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지… 지정… 마요….”
갈라진, 쇠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간신히 뱉어낸 그 한마디에 담긴 공포를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시스템은 단순히 보호자를 정하라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보호자로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의 ‘로그’—즉, 존재의 기록이 이 보육실 시스템에 묶이게 된다. 내가 나가는 대신, 누군가를 이 지옥의 관리자로 저당 잡히는 꼴이다.
반가온이 후보지들 근처로 다가가 코를 킁킁거렸다.
“형, 이거 함정이에요. 후보 1번… 강도원 씨 서류에서는 죄책감이 너무 심하게 나요. 십 년 넘게 묵은 썩은 물 같은 공포랑 같이요. 2번 윤서하 씨는… 말할 것도 없고.”
가온의 시선이 3번으로 향했다.
“3번 문태식 팀장님 서류는 늦은 후회 냄새가 나요. 아주 써요. 그리고 4번… 검은 우산은… 아무 냄새도 안 나요. 그냥 젖은 종이 같아요. 감정이 하나도 없어요.”
나는 3번, ‘문태식’이라 적힌 서류에 손을 살짝 갖다 댔다. 지정하려는 게 아니었다. 놈의 과거, ‘잔향’을 읽기 위해서였다.
손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시야가 뒤틀리며 잔향청취가 시작됐다.
— ‘팀장님, 강도원 건 보고서입니다. 상부에서 폐기하라고 하는데요.’
— ‘알아. 나도 들었어.’
젊은 날의 문태식이다. 지금보다 머리숱이 좀 더 많고, 눈빛은 더 피로에 찌든 모습. 그가 서류 더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류 봉투 겉면에는 [강도윤 보호자 권한 설정]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 ‘이 아이, 그냥 두면 시설로 가는 게 아니라 ‘처리’되는 거 아닙니까? 강도원이 그렇게 빌었는데….’
— ‘문태식! 적당히 해. 네가 보호자라도 되겠다는 거야? 협회 결정이야. 덮어.’
문태식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힘을 풀고 서류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 비겁한 타협의 순간이 잉크 냄새가 되어 내 코를 찔렀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내가 이곳의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방관했다.
잔향에서 깨어난 나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보호자를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하지 않을 시, 손님은 B-0층 처리실의 영구 보존물로 분류됩니다.]
시스템이 독촉했다. 냉장 폐기실이라고 적힌 철문에서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냉기가 바닥을 타고 발목을 적셨다.
“보호자가 없으면 못 나간다고?”
나는 주머니에서 굴러다니던 헌터협회 민원용 볼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시스템 창 중 ‘비어 있는 공간’을 강제로 붙잡았다.
“이봐, 너희 행정 절차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어. 헌터협회 관리 규정 제14조 2항. ‘각성한 헌터는 성년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신변에 대한 독자적인 결정권을 갖는다.’ 맞지?”
[해당 규정은 일반 구역에만 적용됩니다. 이곳은 보육실—]
“아니, 여긴 지금 ‘B-0층 처리실’로 재분류됐잖아. 이현우가 그랬거든. 그럼 여기는 더 이상 보육실이 아니라 협회 직할 처리 시설이야. 그럼 협회 민원 규정을 따라야지.”
나는 시스템 창의 보호자 이름 기입란에 손가락을 대고 휘갈기듯 글자를 써 내려갔다.
“보호자 지정 거부. 사유: 본인 직접 퇴실 요청. 민원 대리인 없음.”
[오류. 보호자 미지정 시 퇴실 불가—]
“아니, 규정집 다시 읽어봐. ‘본인이 직접 퇴실을 요청하고 대리인을 거부할 경우, 해당 건은 상급 행정 기관의 판단이 있을 때까지 임시 보류된다.’ 보류되면 어떻게 돼? 이 세션은 종료되어야지. 안 그래?”
이건 억지다. 하지만 시스템은 논리로 돌아간다. 억지 논리라도 ‘규정’의 형식을 갖추면 충돌이 일어난다. 헌터협회 민원실에서 진상 민원인들과 싸우며 배운 유일한 기술이 바로 이 ‘행정적 꼼수’였다.
삐비빅! 삐빅!
천장의 형광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보호자 재지정]과 [본인 직접 퇴실]이라는 두 상충하는 명령이 시스템 내부에서 부딪혔다.
[시스템 충돌 발생. 행정 재분류를 시작합니다… 오류… 오류….]
“됐어!”
나는 소리쳤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충돌의 여파로 퇴실 문이 열리는 대신, 옆에 있던 냉장 폐기실의 거대한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개방된 것이다.
푸슈우우—!
자욱한 냉기와 함께 안쪽에서 수많은 종이 상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온이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형! 저기 안에서… 너무 슬픈 냄새가 나요. 버려진 것들의 냄새예요.”
바닥으로 떨어진 상자 중 하나가 내 발치에 멈췄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상자의 라벨을 확인했다. 당연히 내 이름, ‘강도윤’이 적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분류번호: KDY-Alpha]
[라벨명: 강도원 보호 실패 건]
“강도원… 보호 실패?”
내 이름이 아니라, 형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상자 뚜껑이 비스듬히 열리며 안에서 낡은 녹음기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협회에서 구형으로 쓰던 물건이었다. 버튼이 눌려 있었는지,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도윤아.”
문태식 팀장의 목소리였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죄책감으로 가득 찬 떨리는 음성.
— “네 형은 널 버린 게 아니다. 우리가… 우리가 너무 늦었어. 강도원이 제안한 거래는 너를 살리는 게 아니라, 너를 ‘기록’으로 남기는 거였다. 그는 끝까지 너를 손님으로 두려고 했어. 하지만 협회는….”
치직, 소음이 커지며 목소리가 끊겼다. 나는 멍하니 그 녹음기를 내려다보았다.
형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고? 보호 실패?
그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도망친 형’의 기억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냉장 폐기실 깊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젖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검은 우산을 든 그림자가 그 냉기 사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절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도윤 군.”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백설의 것도, 문태식의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나와 닮은, 하지만 훨씬 더 오래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