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15
눈을 뜬다.
메모가 세 장이다.
기본, 어제, 그리고 한 장 더. 제목이 적혀있다: '이상한 것들'.
[이상한 것들]
1. 이 아파트에 전신 거울이 없다.
2. 신발장 옆 사진. '첫 번째 봄'. 유나에게 물었더니 "비슷해"라고 했다.
3. 나는 밖에 혼자 나간 적이 없다. 항상 유나랑 같이.
4. 배가 안 고프다. 먹을 수는 있는데, 안 먹어도 괜찮다.
5. 잠이 오는 게 아니라, 꺼지는 느낌이다.
이건 매일 가지고 있어.
내일의 네가 이어서 적어.
— 지난 며칠간의 너
세 번째 메모를 읽고 나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배가 안 고프다? 잠이 꺼진다?
밖에 혼자 나간 적이 없다?
진짜?
생각해본다. 배. 지금 고프나? 아침인데. ...모르겠다. 고프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부엌으로 간다.
유나가 있다. 커피.
"일어났어?"
"응."
"..."
오늘은 유나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 내 얼굴을 보고 있다. 뭔가를 읽고 있는 것 같다.
"메모 읽었지?"
"응. 세 장 다."
"..."
"유나."
"응."
"나 배고픈 거 맞아?"
유나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뭐?"
"아침이잖아. 배고파야 하잖아. 근데 모르겠어. 배고프다는 게 어떤 건지."
"..."
"밥은 먹을 수 있어. 맛도 알아. 근데 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
유나가 의자에 앉는다. 천천히.
"하루야."
"응."
"사람은 원래 그래. 아침에 안 고픈 날도 있어."
"그런 거야?"
"응."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유나의 눈을 본다. 눈이 안 웃는다. 입도 안 웃는다. 오늘은 아예 안 웃는다.
"...알겠어."
커피를 마신다. 따뜻하다. 맛있다. 맛있다는 건 안다. 근데 '필요하다'는 건 모르겠다.
오후. 유나가 잠깐 나갔다. 장 보러 간다고.
혼자 남았다.
아파트를 돌아다닌다. 천천히. 처음 보는 것처럼. 매일 처음이니까.
옷장을 연다. 내 옷이 있다. 반팔 티셔츠 다섯 벌. 긴팔 세 벌. 바지 네 벌. 전부 비슷한 색. 검정, 회색, 네이비.
유나 옷은 다양하다. 색도 많고, 모양도 다르고. 내 옷은 유니폼 같다.
서랍을 뒤진다. 양말. 속옷. 그리고 — 바닥에 뭔가 있다. 서랍 맨 밑. 종이.
꺼낸다.
접힌 종이. 내 글씨. 근데 메모지가 아니다. 다른 종이. 좀 더 낡았다.
이상하다.
나는 사람인가.
한 줄. 그것뿐이다.
날짜도 없다. 이름도 없다. 언제 쓴 건지 모르겠다. 근데 내 글씨다.
나는 사람인가.
가슴이 차가워진다.
종이를 서랍에 다시 넣는다. 접어서. 원래 있던 자리에.
유나에게 말해야 하나. 모르겠다.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유나는 뭐라고 할까.
"사람이지"라고 할까. 아니면, 또 "비슷해"라고 할까.
유나가 돌아왔다. 장바구니를 든다.
"뭐 했어?"
"...아무것도."
"그래?"
"응."
저녁을 먹는다. 유나가 만든 카레. 맛있다. 맛있다는 건 안다.
근데 숟가락을 드는 이 손은, 배가 고파서 드는 건지, 유나가 만들었으니까 드는 건지, 모르겠다.
밤. 메모를 쓴다.
[메모 — 어제]
서랍 맨 밑에 종이가 있다. 내 글씨.
"나는 사람인가."
언제 쓴 건지 모르겠다.
유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배고픔을 모르겠다. 먹을 수는 있는데,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잠도 '자는' 게 아니라 '꺼지는' 느낌이다.
유나에게 물었더니 "원래 그래"라고 했다.
원래 그런 건지, 나만 그런 건지.
[이상한 것들] 업데이트:
6. 옷이 유니폼 같다. 전부 비슷한 색.
7. 서랍 밑 종이. "나는 사람인가."
8. 유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생겼다. 처음으로.
— 오늘의 너
볼펜을 놓는다.
유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생겼다. 이 메모에는 적었다. 내일의 나에게는 말한다.
근데 유나에게는 안 했다.
왜?
모르겠다. 무서워서인 것 같다. 대답이.
유나가 자고 있다. 숨소리가 고르다. 오늘은 열도 없다.
이 사람 옆에 누워있는 내가 사람이 아니면.
아니다. 그 생각은 하지 말자.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