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30
눈을 뜬다.
메모가 세 장. 그리고 서랍 밑에 종이가 하나 더 있다고 적혀있다.
읽는다. 전부.
기본. 어제. 이상한 것들. 열 개가 넘는다.
다 읽고 나서 천장을 본다.
이 메모들을 쓴 게 전부 나라는 게 이상하다. 같은 글씨인데, 온도가 다르다. 어떤 날의 나는 담담하고, 어떤 날의 나는 무섭다고 적었다. 같은 사람인데 매일 다른 사람 같다.
아닌가. 매일 다른 사람인 게 맞나.
부엌. 유나. 커피.
"일어났어?"
"응."
"유나."
"응?"
"나 병원에 가고 싶어."
유나가 커피를 쏟을 뻔한다. 잔을 잡는 손이 하얘진다.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메모에 적혀있어. 계속 이상한 게 늘어나고 있다고."
"..."
"뇌 문제라고 했잖아. 의사가. 그 의사한테 가고 싶어."
유나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양손으로.
"하루야."
"응."
"그 병원 없어졌어."
"없어졌어?"
"응. 작년에."
"다른 병원은?"
"..."
"유나?"
"다른 병원은... 소용없어."
"왜?"
유나가 나를 본다. 오래. 진짜로 오래.
"네 상태는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말이 부엌에 떨어진다. 커피 냄새 사이로. 무겁게.
"...알고 있었어?"
"응."
"처음부터?"
"응."
"왜 안 말해줬어?"
"네가 안 물어봤으니까."
맞다. 안 물어봤다. 매일 새로 시작하니까. 매일 모르니까. 매일 "괜찮아"로 시작하니까.
근데 어제의 나는 물어봤다. 메모에 적혀있다. 여러 번.
유나가 매번 이렇게 대답한 건가. "고칠 수 없어"라고?
아니면 오늘이 처음인가?
오후. 유나가 방에 들어갔다. 오래 안 나온다.
문 밖에서 소리가 난다. 작게. 유나가 울고 있는 것 같다.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코 푸는 소리 같기도 하다.
노크하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겠다. 잔상 때문인 것 같다. 유나가 울 때는 혼자 두는 게 맞다는 걸 몸이 아는 것 같다.
혼자 서랍 밑 종이를 꺼낸다.
"나는 사람인가."
이걸 언제 적었을까. 메모 시스템이 생기기 전? 그 전에도 나는 있었나?
종이를 들고 세면대 앞에 선다. 거울을 본다. 작은 거울. 얼굴만 비친다.
얼굴을 본다. 눈. 코. 입. 피부. 사람 같다.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손을 본다. 손등에 핏줄이 보인다. 손가락을 접었다 편다. 자연스럽다.
왼쪽 손목 안쪽. 뭔가 있다. 작은 점. 아니, 점이 아니다. 흉터 같은데 흉터가 아니다. 매끈하다. 피부색이랑 살짝 다르다.
만져본다. 살짝 볼록하다. 단단하다.
뭐지 이거.
심장이 빨라진다. 아니, 심장인가? 가슴에서 뭔가가 빨라진다.
유나가 방에서 나왔다. 눈이 빨갛다.
"유나."
"응?"
"이거 뭐야?"
왼쪽 손목을 보여준다. 작은 점.
유나가 본다. 얼굴이 하얘진다.
"...모기 물린 자국이야."
"모기?"
"응. 가을에 한 번 물렸어."
"볼록한데."
"원래 그래. 체질이야."
거짓말이다.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다. 근데 안다. 유나가 거짓말할 때 목소리가 반음 올라간다. 그걸 어디서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잔상이다. 아마.
"...알겠어."
유나가 웃는다. 못 웃는 웃음을.
밤. 메모를 쓴다. 오래 쓴다.
[메모 — 어제]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유나가 "없어졌어"라고 했다.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유나가 울었다. 방에서. 혼자.
노크하지 않았다. 혼자 둬야 하는 걸 몸이 알았다.
왼쪽 손목 안쪽에 뭔가 있다. 작은 점. 볼록하다. 단단하다.
유나는 모기 물린 거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유나가 거짓말할 때 목소리가 반음 올라가는 걸 안다. 잔상이다.
[이상한 것들] 업데이트:
9. 병원이 없어졌다. 다른 병원도 소용없다.
10. 왼쪽 손목 안쪽. 볼록한 점. 모기 아님. 확인 필요.
11. 유나가 거짓말을 한다. 나를 위해서인 것 같다.
12. 유나가 운다. 나 때문인 것 같다.
내일의 나에게.
무서워도 계속 찾아.
메모가 없으면 너는 매일 속는다.
— 오늘의 너
마지막 줄을 쓸 때 손이 떨렸다.
매일 속는다. 내가 쓴 말인데 잔인하다.
유나가 속이는 거라면. 이유가 있겠지. 나를 지키려는 거겠지.
근데 지켜지는 게 '나'인지, '유나가 원하는 나'인지, 모르겠다.
유나가 잠들었다. 오늘은 등을 돌리고 잤다. 처음인 것 같다. 기억은 없지만.
등이 작다. 이 등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잔상이 말한다. 이 등을 안아본 적 있다고.
손을 뻗다가 멈춘다.
자격이 있나. 거짓말을 의심하면서 안을 자격이.
손을 거둔다.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