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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0 일러스트

DAY 10

눈을 뜬다.

메모가 두 장이다. 익숙하다. 아니, 익숙한 게 아니라 메모에 "메모는 두 장이다"라고 적혀있으니까 그런 거다. 아마.

읽는다.

[메모 — 기본]

네 이름은 하루. 유나라는 사람과 산다.

기억이 매일 사라진다. 뇌 문제다.

메모를 읽고, 하루를 보내고, 메모를 쓴다.

잔상이라는 게 있다.

기억은 아닌데, 몸이 아는 것. 감정의 그림자.

놀라지 마. 네 거다.

[메모 — 어제]

유나랑 편의점에 갔다. 유나가 푸딩을 골랐다.

너도 하나 골랐다. 커스터드.

유나가 "또 그거야"라고 했다. 또?

잔상이 늘고 있다.

어제는 유나 이름을 안 물어봤다. 일어나자마자 알았다.

기억이 아닌데 아는 거.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섭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 어제의 너

메모를 내려놓는다.

유나 이름을 안 물어봤다고 적혀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은?

생각한다. 까만 머리. 커피 냄새. 너무 큰 티셔츠.

유나.

알고 있다. 메모를 읽기 전부터. 눈 뜨자마자 이미.

이건 뭐지.

부엌으로 간다. 유나가 있다.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일어났어?"

"응."

"메모 읽었어?"

"응."

"오늘은?"

뭘 묻는 건지 안다. 누군지 물어봤냐고 묻는 거다.

"안 물어봐도 알았어."

유나가 멈춘다. 커피 내리던 손이. 1초. 다시 움직인다.

"...그래?"

"응."

유나가 커피를 건넨다. 아무 말 없이. 나도 아무 말 없이 받는다.

이 침묵이 편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오후. 유나가 일하러 방에 들어갔다. 재택근무.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볼까 하다가 안 물어봤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물어보면 유나가 또 그 얼굴을 할 것 같아서. 입꼬리만 올라가는 얼굴.

거실에 혼자 앉아있다.

아파트를 둘러본다. 여기저기.

신발장 옆에 사진이 하나 있다. 유나랑 나. 나인 것 같다. 같은 얼굴이니까.

근데 이상하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는데, 이 웃음이 낯설다. 내가 이렇게 웃나? 거울을 본다. 같은 얼굴인데, 사진 속의 그 사람과 지금의 내가 같은지 모르겠다.

사진을 뒤집는다. 뒷면에 뭔가 적혀있다.

'첫 번째 봄'

유나 글씨인 것 같다. 내 글씨랑 다르다.

첫 번째 봄. 언제? 뭐가 처음이었는데?

메모에는 안 적혀있다.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이 아파트에 거울이 하나뿐이다. 세면대 위에. 작은 거. 전신 거울이 없다.

왜?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모르는 게 너무 많으면 피곤하다. 메모에 적어놓으면 된다. 내일의 내가 이어서 생각하겠지.

저녁. 유나가 방에서 나왔다.

"하루야, 저녁 뭐 먹을까."

"유나."

"응?"

"사진 봤어. 신발장 옆에."

"..."

"첫 번째 봄이 뭐야?"

유나가 나를 본다. 오래.

"...우리가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한 봄."

"내가 기억을 잃기 전이야?"

"..."

유나가 웃는다. 이번에도 입꼬리만.

"비슷해."

비슷하다. 그 전도 아니고 그 후도 아니고. 비슷하다.

이상한 대답이다.

밤. 메모를 쓴다.

[메모 — 어제]

오늘도 유나 이름을 안 물어봤다. 잔상이 더 강해지고 있다.

신발장 옆에 사진이 있다. 유나랑 나. 뒷면에 '첫 번째 봄'이라고 적혀있다.

유나한테 물었더니 "비슷해"라고 했다. 이상한 대답이다.

이 아파트에 전신 거울이 없다.

왜인지 모르겠다. 내일의 네가 좀 더 생각해봐.

점점 이상한 게 늘어나고 있다.

메모에 적혀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메모에 안 적혀있는 것들이 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 오늘의 너

볼펜을 놓는다.

처음으로, 메모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내가 남긴 건 어제 하루다. 그 전의 나는? 그 전의 전의 나는? 메모는 어제만 남긴다. 과거 전체가 아니라. 매일의 내가 매일의 하루만 남기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나는 매일의 메모를 이어붙인 존재인가. 아니면 매일 새로 태어나는 건가.

모르겠다.

유나가 이불 속에서 뒤척인다.

"안 자?"

"...조금만."

"뭐 써?"

"메모."

"오늘은 뭐 적었어?"

"이상한 것들."

유나가 웃는다. 이불 속에서. 소리만 들린다.

"이상한 거 많지?"

"응."

"천천히 알아가면 돼."

천천히. 근데 내일이면 다 잊는데.

메모가 기억해주겠지. 이상한 것들을. 내일의 내가 이어서 찾겠지.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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