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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일러스트

DAY 5

눈을 뜬다.

메모가 두 장이다.

한 장은 기본 정보. 이름, 사는 곳, 유나. 다른 한 장은 어제 있었던 일.

[메모 — 기본]

네 이름은 하루. 유나라는 사람과 산다.

기억이 매일 사라진다. 뇌 문제다.

메모를 읽고, 하루를 보내고, 메모를 쓴다.

그게 너의 일상이다.

[메모 — 어제]

비가 왔다. 유나가 우산을 하나만 가져왔다.

같이 썼다. 어깨가 젖었다. 유나 쪽이.

유나가 재채기를 했다.

네가 "감기 걸리겠다"고 했더니 유나가 웃었다.

"네가 걱정해주는 거 처음이다."

처음이 아닐 텐데. 매일 처음이니까.

— 어제의 너

메모를 내려놓는다.

매일 처음이니까. 어제의 내가 쓴 말이다. 웃긴 말인데, 씁쓸하다.

부엌에 간다. 유나가 없다.

이상하다. 유나는 항상 부엌에 있었다. 아니, 기억은 없지만, 메모에 그렇게 적혀있었으니까.

방으로 간다. 유나가 이불 속에 있다.

"...유나?"

"으응..."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 코가 막힌 소리.

"감기야?"

"응... 미안, 오늘 좀..."

"괜찮아."

괜찮다고 했다. 근데 괜찮지 않다. 커피를 누가 타주지? 가 아니라. 유나가 아프다. 그게 괜찮지 않다.

부엌에 선다. 뭘 해야 하지.

죽. 죽을 끓이면 되지 않나.

냉장고를 연다. 손이 움직인다. 참기름이 어디 있는지 안다. 위 선반, 왼쪽 끝. 열어본 적 없는데.

아니. 열어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는 거다.

쌀을 씻는다. 물을 맞춘다. 손이 알고 있다. 머리는 모르는데, 손이 안다.

냄비가 끓는다. 젓는다. 이 리듬도 안다. 천천히,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이건 뭐지. 기억이 아닌데. 기억 같은 거. 몸이 기억하는 거.

잔상.

그런 단어가 떠오른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죽을 퍼서 들고 간다. 유나가 반쯤 일어나 있다. 이불을 끌어안고.

"...너 죽 끓였어?"

"응."

"어떻게?"

"모르겠어. 손이 알더라."

유나가 나를 본다. 오래. 눈이 젖어있다. 감기 때문인지 다른 건지 모르겠다.

"...맛있다."

"다행이다."

"하루야."

"응?"

"고마워."

고맙다고 한다. 죽 한 그릇에. 근데 그것 이상인 것 같다. 뭔지는 모르겠다.

저녁. 유나가 약 먹고 잠들었다. 메모를 쓴다.

[메모 — 어제]

유나가 감기에 걸렸다.

죽을 끓여줬다. 어떻게 끓이는지 몰랐는데, 손이 알았다.

참기름 위치도. 불 세기도. 젓는 리듬도.

기억은 없는데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잔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유나가 울었다. 감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닌 것 같았다.

— 오늘의 너

볼펜을 놓는다.

유나가 자고 있다. 숨소리가 조금 거칠다. 열이 있는 것 같다.

이마에 손을 올린다. 뜨겁다.

이 손도 잔상일까. 기억 없이도, 이 사람의 이마에 손을 올리는 것. 매일 잊어도, 매일 다시 하는 것.

내일의 나는 이걸 모른다.

근데 손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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