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DAY2 일러스트

DAY2

눈을 뜬다.

또 모르는 천장이다. 아닌가. 어제도 이 천장이었나. 모르겠다. 어제가 없다.

메모.

침대 옆에 있다. 어제도 여기 있었겠지. 읽는다.

[메모]

네 이름은 하루.

유나라는 사람이 있다.

오늘 같이 산책했다. 가을이었다. 젤리를 먹었다. 곰 모양.

유나가 말했다.

가끔은 기억 없이도 아는 것 같을 때가 있다고.

어제의 네가 그랬대.

나도 오늘, 그런 것 같았다.

기억은 없는데. 가슴이 따뜻했다.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 오늘의 너

어제의 내가 산책을 했다. 젤리를 먹었다. 가슴이 따뜻했다.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 기억은 없지만.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어제도 이랬을까.

나간다.

까만 머리. 너무 큰 티셔츠. 맨발.

"일어났어?"

이 목소리를 안다. 아니, 모른다. 근데 듣는 순간 긴장이 풀린다. 이상하다.

"...유나?"

"응."

웃는다. 어제의 메모에 적혀있지 않은 웃음이다. 근데 처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커피를 받는다. 머그잔이 따뜻하다.

TV가 켜져 있다. 뉴스.

『— 가정용 안드로이드 리콜 관련 소식입니다. H사의 코어 시리즈 일부 모델에서 장기 메모리 유지 불량이 보고되어, 제조사 측은 해당 모델의 자발적 리콜을—』

유나가 리모컨을 집는다. 채널이 바뀐다.

"뭐 볼래?"

"...아무거나."

유나가 예능을 튼다. 누군가가 떠들고, 누군가가 웃는다. 나는 커피를 마신다.

조금 전 뉴스가 머릿속에 남아있다. 안드로이드. 메모리 유지 불량.

"유나."

"응?"

"나 왜 기억이 없어?"

유나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천천히.

"뇌에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잘 때 장기기억이 저장이 안 돼. 의사가 그랬어."

"...고칠 수 있어?"

"모르겠어."

유나가 웃는다. 아까와는 다른 웃음이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안 웃는다.

"근데 괜찮아. 메모 있잖아."

"...응."

"그리고 나 있잖아."

유나가 내 머그잔에 커피를 더 따른다. 손이 조금 떨린다. 근데 모른 척한다. 나도 모른 척한다.

왜 모른 척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저녁. 유나가 씻으러 들어갔다.

메모를 쓴다. 내일의 나에게.

쓰다가 멈춘다.

이상한 생각이 든다. 유나가 없으면 나는 뭐지? 메모 한 장이랑 모르는 방이랑 모르는 몸뚱이. 그게 나인가.

무섭다. 조금.

근데 샤워 소리가 난다. 유나가 있다. 내일도 있을 거다. 아마.

쓴다.

[메모]

네 이름은 하루.

유나라는 사람이 있다.

네 기억이 없는 건 뇌 문제라고 한다. 의사가 그랬다고 유나가 말했다.

고칠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근데 괜찮다.

메모가 있고, 유나가 있다.

TV에서 안드로이드 리콜 뉴스를 했다. 메모리 유지 불량이래.

유나가 채널을 돌렸다.

오늘은 조금 무서웠다.

유나가 없으면 나는 메모 한 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근데 유나가 말했다.

"메모 있잖아. 그리고 나 있잖아."

그 말이 아직 따뜻하다.

— 오늘의 너

볼펜을 내려놓는다.

쓰다 보니까, 안드로이드 리콜 뉴스를 적어놨다. 왜 적었을까. 모르겠다. 그냥, 적어야 할 것 같았다.

내일의 내가 읽으면 뭘 느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유나가 나온다. 젖은 머리에 너무 큰 티셔츠.

"다 썼어?"

"응."

"잘 썼어?"

"...모르겠어."

유나가 웃는다. 이번엔 눈도 웃는다.

"내일 읽어보면 알겠지."

맞다. 내일의 내가 읽겠지. 이 글을. 이 하루를. 이 두려움을.

근데 따뜻함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