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94-96화 합본. 하인 통로의 접힌 발자국에서 동문 앞 잿가루 마차까지

94화. 하인 통로의 접힌 발자국

좁고 습한 하인 통로의 공기는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이네스가 든 랜턴 빛이 바닥을 훑자, 기괴하게 뒤틀린 흔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발자국은 마치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편 것처럼 중간이 움푹 패어 있었고, 보폭 또한 인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일정하지 않았다.

“발자국이…… 접혀 있어요.”

피핀이 이네스의 옷자락을 꽉 쥐며 속삭였다. 아이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네스는 즉시 한 손을 뻗어 피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로웬과 모르그의 접근을 제지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흔적이 섞이면 곤란합니다.”

이네스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녀는 통로 바닥에 남은 기괴한 형상을 가만히 응시했다. 초자연적인 저주나 유령의 발자국이라기엔, 흙먼지가 눌린 깊이가 너무도 정교했다. 이네스는 피핀을 안심시키듯 어깨를 다독이며 등을 밀어주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이가 공포를 이겨내고 기억을 갈무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피핀, 아까 들었다는 소리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겠니?”

피핀은 눈을 감았다. 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들려오던 불쾌한 소음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가죽 벨트를 조이는 것 같은 달각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버클이 부딪히는 소리요. 그러더니 곧바로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가 났고…… 아, 맞아요. 경첩이 녹슬어서 끼익거리는 것 같은 소리도 섞여 있었어요.”

피핀의 설명에 로웬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귀신치고는 참 요란한 소리를 내고 다녔군. 유령이라면 모름지기 발소리 정도는 소거하고 다녀야 예의 아닌가? 무릎 관절이라도 안 좋았던 모양이지.”

로웬의 건조한 농담에도 모르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이미 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뒤틀린 원령의 보행 흔적’이라고 적으려다, 피핀의 증언을 듣고는 미련 없이 그 문구에 줄을 그었다.

이네스가 랜턴을 바닥 가까이 밀어 넣었다. 빛이 비스듬하게 비치자, 접힌 발자국 옆으로 미세한 금속 긁힘 자국이 보였다. 그녀는 장갑을 낀 손으로 발자국 끝부분에 떨어진 작은 나사 하나를 집어 올렸다.

“기적이 아니군요. 위장용 신발틀입니다.”

이네스의 말에 모르그의 펜촉이 멈췄다. 그는 안경을 치켜쓰며 이네스가 발견한 물건을 관찰했다.

“신발틀이라고요?”

“네. 발자국 모양을 왜곡해서 추적을 피하거나, 침입자의 신체 조건을 숨기려고 사용하는 도구죠. 접이식 경첩이 달린 틀을 신발 밑창에 덧대면, 보행 시 발자국이 꺾이거나 겹쳐지게 됩니다. 피핀이 들은 경첩 소리는 이 틀이 접히며 나는 소리였을 겁니다.”

모르그는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수첩에 적힌 괴담식 기록들을 거침없이 지워버렸다. 대신 그는 ‘위장용 신발틀(Folding Shoe Frame)’이라는 건조하고 명확한 단어를 적어 넣었다. 그에게 있어 신비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정확한 사실의 기록이었다.

“결국 유령 소동을 빌미로 내부를 활보하던 자의 소행이로군요. 이 성의 구조를 잘 알고, 하인 통로의 사각지대를 이용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로웬이 벽면의 먼지를 훑으며 덧붙였다.

“그 위장용 도구라는 거, 꽤 비싸겠는데? 전문적인 장비잖아. 단순한 하인의 장난질로 치부하기엔 예산 규모가 안 맞아.”

이네스는 대답 대신 앞장서서 통로 안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피핀을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흔적을 밟지 않도록 세심하게 경로를 통제했다. 통로 끝, 더 이상 발자국이 이어지지 않는 막다른 벽 근처에서 이네스는 멈춰 섰다.

그곳에는 버려진 듯한 넝마 더미가 쌓여 있었다. 이네스가 구두 끝으로 넝마를 살짝 들춰내자, 검은 가죽으로 감싸인 기계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핀이 말한 대로 금속 버클과 경첩이 복잡하게 얽힌, 조잡하면서도 효율적인 형태의 신발틀이었다.

“여기 있었군.”

로웬이 다가와 장치를 살펴보다가, 신발틀 안쪽에 끼어 있는 작은 종이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이네스에게 건넸다.

그것은 아주 얇은 양피지 조각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상단에 찍힌 인장은 선명했다.

“이건…… 보증서군요. 접힌 신발틀의 품질 보증서.”

이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증서 하단에는 구매자의 이름 대신 특정 기호와 함께 짧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 14번 의자 밑. ]

네 사람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하인 통로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단순한 위장 도구를 넘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했을 명확한 지시 사항이 그곳에 있었다.

“14번 의자라…… 이 성에서 번호가 매겨진 의자가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지.”

로웬의 시선이 통로 너머, 대강당 방향을 향했다.

“연회장입니까?”

모르그의 질문에 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보증서를 갈무리하며 피핀의 손바닥을 가볍게 쥐었다. 이제 아이의 기억은 두려움이 아닌, 확실한 단서가 되어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가시죠. 누가 14번 의자에 앉아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확인해야겠습니다.”

접힌 발자국이 끝난 지점에서, 새로운 추적의 실마리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이네스는 랜턴의 불빛을 더욱 높게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진실의 윤곽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95화. 14번 의자의 보증인

손가락 끝에 닿은 가죽의 감촉은 서늘했다. 피핀이 내민 것은 평범한 구두 수선용 도구가 아니었다. 교묘하게 겹쳐지고 깎여나간 신발틀, 그 안쪽에 숨겨져 있던 종이는 오랫동안 습기를 머금었다 말랐는지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로웬은 14번이라 적힌 낡은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성소의 기물이라기엔 지나치게 투박하고, 작업대의 부속품이라기엔 묘하게 위압적인 위치였다.

“성스러운 계시라도 적혀 있을 줄 알았는데.”

로웬이 헛웃음을 삼키며 종이를 펼쳤다. 그 위에는 신성한 구절 대신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숫자와 암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물건의 품목, 인수 시기, 그리고 보증인의 서명 대신 찍힌 기괴한 인장까지.

“이건 기도문이 아니야. 물류 인수증이지.”

피핀이 마른침을 삼키며 로웬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눈은 여전히 신발틀의 틈새를 쫓고 있었다.

“그거, 소리가 두 번 났어요.”

피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로웬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피핀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며 기억을 더듬었다.

“신발틀을 접을 때요. 보통은 한 번만 ‘딱’ 소리가 나면서 고정되거든요? 그런데 이건 아니었어요. 처음 접힐 때랑 완전히 끝까지 밀어 넣을 때, 소리가 두 번 들렸단 말이에요. 마치 안에 뭔가를 가두는 것처럼요.”

로웬이 다시 신발틀을 살폈다. 피핀의 말대로였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이중으로 맞물리는 구조였다. 한 번은 틀을 고정하기 위해, 또 한 번은 그 내부의 비밀 칸을 봉인하기 위해. 기술적인 숙련도가 없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교묘한 조작 지점이었다.

“잘했다, 피핀. 너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어.”

로웬의 칭찬에도 피핀은 웃지 못했다. 오히려 몸을 움츠리며 이네스의 옷자락 뒤로 숨어들었다. 이네스는 말없이 피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피핀에게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숨을 고를 시간을 주며, 시선은 어두컴컴한 통로 뒤쪽을 향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고 있지는 않은지, 공기 중의 미세한 흐름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기민함이었다. 이네스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신뢰 덕분인지, 피핀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그 틈을 타 모르그가 깃펜을 꺼내 들었다. 그의 눈은 광기 어린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14번 의자에 앉은 자,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리라’…… 아니, 이건 너무 전설적이군. ‘성자의 좌석 아래 감춰진 비밀의 서판’…….”

모르그는 중얼거리며 종이 위에 문장을 적어 내려가다가, 이내 짜증스럽게 선을 그어 지워버렸다. 방금 발견한 것은 성스러운 유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뒤를 봐주는 추잡한 거래의 증거였다.

그는 결국 미사여구를 포기했다. 대신 기록자 본연의 건조한 문체로 돌아가 눈앞의 광경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의자 등받이 하단, ‘14’라는 숫자가 각인됨. 날카로운 도구로 판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마찰로 인해 새겨진 것으로 추정. 신발틀 내부에서 발견된 보증서는 양질의 피혁 거래를 증명함. 하단에 보라색 잉크 번짐 확인. 이는 보증인이 서명을 급히 마쳤거나, 보관 중 습기에 노출되었음을 의미함.]

모르그의 깃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을 채웠다. 로웬은 보증서의 내용을 다시금 뜯어보았다.

“14번 의자는 이 통로를 드나드는 놈들의 체크포인트였던 거야. 성소라는 껍데기를 쓰고, 실제로는 이 안에서 금지된 물건들을 보증하고 넘겼던 거지. 이 좁고 지저분한 곳이 그들의 ‘안전가옥’이었던 셈이고.”

로웬이 의자를 가볍게 걷어찼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려 퍼졌다.

“신성한 계시를 기다리던 신도들이 알면 통곡을 하겠군. 자기들이 헌금한 돈이 이런 구두틀 속에 숨겨진 뇌물이 됐다는 걸 알면 말이야.”

로웬은 짐짓 실무적인 농담을 던졌지만, 눈빛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던 ‘보증인’은 단순한 잡범이 아닐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물류를 세관의 눈을 피해 돌리려면, 내부의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보증서 곳곳에 남은 지시 사항들은 특정 인물의 습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짧고 간결한 명령조, 그리고 숫자를 쓸 때 끝을 길게 빼는 특유의 필체.

로웬은 보증서의 가장 뒷면을 넘겼다. 그곳에는 앞선 내용보다 훨씬 더 최근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날카롭게 눌러 쓴 글귀가 있었다.

다른 기록들과 달리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접혔던 것인지, 반대편 종이에 글자가 흐릿하게 배어 나와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알아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로웬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건 단순한 거래 장부가 아니군.”

이네스가 검 손잡이를 쥔 채 로웬의 곁으로 다가왔다. 모르그 역시 기록하던 손을 멈추고 로웬의 손에 들린 종이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마지막 작업 지시가 마치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잿가루 배달 마차, 동문 전에 회수.]

단 한 문장이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아직 배달은 끝나지 않았고, 그들의 ‘물건’은 여전히 이동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로웬은 종이를 구겨 쥐며 어둠 너머 동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부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96화. 동문 앞 잿가루 마차

성벽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동문 앞,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멈춰 선 마차는 기괴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부석은 비어 있었고, 말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밤공기를 타고 넘어오는 것은 고요함이 아니라, 코끝을 찌르는 매캐하고 텁텁한 잿가루 냄새였다.

"회수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마부는 온데간데없군. 손님을 기다리는 우직한 마부치고는 지나치게 예의가 없어."

로웬이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를 툭툭 치며 건조하게 내뱉었다. 농담조였으나 눈은 이미 마차 주변의 바닥과 성문 안쪽의 어둠을 훑고 있었다.

이네스가 앞장서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은 마부석 너머, 활짝 열린 채 방치된 동문의 육중한 철문에 고정되었다.

"멈추세요."

이네스의 낮은 목소리에 뒤따르던 피핀과 모르그가 급히 발을 멈췄다. 이네스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지도 않은 채, 오직 기세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짓눌렀다.

"문이 열려 있고 마부석은 비었습니다. 유인책일 수도, 혹은 이미 볼일을 끝내고 도주한 흔적일 수도 있겠군요. 피핀, 모르그 씨. 제 뒤로 물러나십시오."

이네스의 단호한 보호 아래, 로웬이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 마차 짐칸에는 거칠게 짠 포대들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그 틈새로 고운 회색 가루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핏 보면 종교적인 정화 의식에 쓰이는 신성한 재처럼 보일 법도 했다.

모르그가 품 안에서 기록용 수첩과 깃펜을 꺼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순교자의 남겨진 흔적을 운반하는 경건한 수레는 고요 속에서 눈물을 흘리듯 잿가루를 흩뿌리며…….'

습관적으로 미사여구를 적어 내려가던 모르그의 손끝이 멈췄다. 그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더니, 방금 쓴 문장 위로 굵은 가로줄을 그어버렸다. 지금 이 마차에서 풍기는 것은 신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수첩의 새 장을 넘겨 차갑고 실무적인 문장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특이사항: 마차 바퀴 폭 1.4m. 진흙 묻음 없음. 봉인용 끈은 교황청 규격이 아닌 민간 작업장용 마사. 마부석 아래 버려진 가죽 장갑 한 짝 확인.]

"이건 의식용이 아니야."

로웬이 포대 하나를 단검 끝으로 툭 찔러 터뜨리며 말했다. 쏟아져 나온 재는 너무나도 입자가 고왔고, 그 안에는 채 타지 않은 검은 덩어리들이 섞여 있었다.

"증거를 덮으려는 거지. 냄새든, 흔적이든. 이 정도 양의 잿가루면 마차 바닥에 무엇을 깔아두었든 외부에서는 절대 알아채지 못해. 이동식 쓰레기통이나 다름없군."

그때, 이네스의 뒤편에서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피핀이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피핀은 이네스의 옷자락등을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냄새가 나요."

"잿가루 냄새 말이냐? 그건 우리도 맡고 있다만."

로웬의 말에 피핀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요, 그 아래요. 아주 깊은 곳에서 나는 냄새요. 그…… 지하 작업장에서 났던 냄새예요. 구두 신발틀을 닦을 때 쓰는 가죽 기름 냄새랑, 쇠를 달굴 때 나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어요. 틀림없어요. 제가 매일같이 맡으며 떨었던 그 냄새란 말이에요."

피핀의 감각은 정확했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 공포가 오히려 기억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내고 있었다.

이네스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그녀는 로웬에게 눈짓했고, 로웬은 망설임 없이 마부석 안쪽의 가죽 가림막을 젖혔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대신 무거운 철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마부는 이미 '회수자'를 만나러 간 모양이군. 흔적만 남기고 말이야."

로웬이 상자 틈새에 단검을 밀어 넣어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그 안에는 정갈하게 정리된 서류 몇 장과 함께, 낡은 금속 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모르그가 다가와 그 금속 표를 살폈다. 그의 깃펜이 수첩 위를 바쁘게 움직였다. 금속 표의 표면에는 거칠게 새겨진 글자와 숫자가 박혀 있었다.

"이건…… 단순한 화물표가 아닙니다."

모르그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묻어났다.

"특정 구역의 출입 허가와 물품 회수를 동시에 증명하는 표식입니다. 여기 적힌 시간을 보십시오. 그리고 장소도요."

이네스가 금속 표를 건네받아 읽었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곳에 새겨진 문구는 이 기괴한 잿가루 마차가 향하려 했던, 혹은 이 모든 은폐 작업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서문 납골 작업장, 셋째 종 울기 전.]

"셋째 종이라."

로웬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밤은 깊었고, 서쪽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욱 서늘해져 있었다.

"서두르는 게 좋겠군. 기도문이나 읊고 있을 시간은 지났어."

이네스는 대답 대신 검집을 고쳐 쥐었다. 동문의 열린 틈 사이로 밤의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잿가루가 흩날리는 마차를 뒤로한 채, 일행의 그림자가 서문을 향해 길게 뻗어 나갔다. 셋째 종이 울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