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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0화 합본. 거꾸로 흐르는 순례강 하류에서 용의 이빨 방앗간 재가동까지

49화. 거꾸로 흐르는 순례강 하류

순례강은 더는 바다를 향해 눕지 않았다. 산맥의 품에서 태어나 낮은 곳을 향해 겸손히 흐르던 물줄기가 돌연 자존심이라도 세우듯 허리를 꺾어 상류로 치솟았다. 수면 위로는 하류로 내려가려던 뗏목들이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고, 물결은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바위를 할퀴었다.

강변 나루터에는 뒤집힌 이정표가 박혀 있었다. 본래 ‘바다 방면’을 가리키던 화살표가 젖은 진흙 속에 처박힌 채, 하늘을 향한 뒷면에는 ‘반송지: 성자의 발치’라는 문자가 조잡하게 갈겨써 있었다. 나루터 곳곳에는 물에 젖어 떡이 된 짐표들과 강세(江稅) 영수증이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로웬 일행이 발을 들이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혼란이었다. 상류로 끌려 올라가는 나룻배 위에서 난민들이 짐 꾸러미를 붙들고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여길 어떻게 빠져나왔는데 다시 돌아가라는 거야!”

“이보쇼! 배가 제멋대로 움직인다니까! 밧줄을 잡아!”

그 아수라장의 중심, 강가에 놓인 낡은 궤짝 위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강물이 뒤집히든 사람이 물에 빠지든 관심 없다는 듯, 오로지 자기 앞에 놓인 돈통과 장부만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로웬이 나룻배에 올라타려 발을 내딛는 순간,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잉크 묻은 깃펜을 창처럼 내밀어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요. 하류행은 폐쇄됐습니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배를 띄우는 건 사공의 마음 아닌가요?”

로웬의 물음에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젖은 장부의 페이지를 거칠게 넘기며 돈통을 툭툭 쳤다.

“사공 마음이 아니라 강물 마음이죠. 지금 강물은 반송 승인서로 가득 찼단 말입니다. 굳이 상류로 가시겠다면 말리진 않겠는데, 하류행 배삯 대신 ‘상류 반송 축복세’를 내셔야겠어요. 아, 거기다 ‘성자 회수 기적 확인료’도 포함입니다.”

“셀린 도르 서기관님! 이쪽 장부가 또 젖어서 글자가 거꾸로 박히고 있습니다!”

멀리서 짐꾼 하나가 그녀를 부르자,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말린 장부를 가져오라고 했잖아! 거꾸로 박히면 거꾸로 읽으면 될 거 아냐!”

그녀는 빛바랜 감색 관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소매 끝단은 수천 번은 젖었다 말랐는지 딱딱하게 굳어 소금기가 하얗게 피어올라 있었다. 잉크와 구리 때가 찌든 손가락은 돈통의 동전을 세는 데에만 최적화된 기계처럼 보였고, 움푹 팬 눈동자에는 신비로운 기적에 대한 경외심 대신 야근에 찌든 실무자의 불쾌함만이 가득했다. 로웬은 그녀가 사람의 얼굴보다 젖은 영수증 모서리를 먼저 살피는 눈길을 보고, 강물에 떠밀린 이들의 사정이 저 눈 안에서는 이미 세목 하나로 접혀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리춤에 매달린 묵직한 열쇠 꾸러미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를 내며 주변의 비명 섞인 물소리를 신경질적으로 끊어놓았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꽂아 누른 것은 비녀가 아니라 깎다 만 나무 펜이었다.

셀린은 로웬을 빤히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로웬의 품 안에서 삐져나온 종이 뭉치, 그가 직접 쓴 ‘성자 부정문 전단’을 본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거군요. 강물이 먹고 있는 거. 당신들이 뿌린 전단이 지금 강바닥에 깔려서 반송 승인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강물은 정직하거든요. ‘나는 성자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성자가 보낸 것이 아니니 반송하라’는 명령으로 읽고 있는 거라고요.”

로웬이 전단 한 장을 꺼내 강물에 던졌다. 종이는 물에 닿자마자 젖어 가라앉는 대신, 마치 기름종이처럼 물 위를 미끄러지며 상류를 향해 화살처럼 솟구쳤다. 로웬이 그것을 낚아채 반으로 찢어버렸다. 그러자 찢긴 조각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푸른 빛을 내뿜었다. 강물은 그 빛에 반응해 더욱 거세게 상류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이거 봐, 또 승인하네. 찢으면 ‘분할 반송’이거든요.”

셀린이 무심하게 덧붙이며 장부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도와줘요! 밧줄이!”

강물에 휩쓸려 배에서 떨어진 노인이 허우적거렸다. 이네스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녀는 강가에 말뚝처럼 박힌 밧줄 뭉치를 움켜쥐고, 상류로 끌려가는 나룻배의 고리를 낚아챘다.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그녀의 발이 진흙 깊숙이 박혔다.

“이네스, 사람부터!”

로웬의 외침에 이네스는 한 손으로 밧줄을 고정하고, 다른 한 손을 뻗어 물에 빠진 이들의 뒷덜미를 짐짝처럼 낚아 육지로 내던졌다.

피핀은 셀린이 내민 영수증 문구를 소리 내어 읽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류행 환불 불가, 상류 반송 축복세, 성자 회수 기적 확인료…… 야, 이건 진짜 예술이네. 아줌마, 기적을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기적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데 돈을 받는다고요? 난민들 주머니 터는 솜씨가 우리 동네 소매치기들보다 지독한데?”

“세금은 공평한 거예요, 꼬마야. 강물이 저러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저 성자 사칭범 전단 탓이니까.”

모르그는 셀린이 던져둔 젖은 장부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장부 위를 훑자, 잉크가 번진 자국 사이로 기묘한 흔적이 드러났다.

“날짜가…… 거꾸로 흐르고 있어. 증언의 순서도, 기록된 시간도 기록된 순간부터 과거로 회귀하고 있군. 이건 단순한 역류가 아니야. 물류망 자체가 시간을 역행하려고 해.”

엘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강물에 떠밀려가는 어린아이의 짐 꾸러미를 보며 로웬을 보았다.

“로웬, 전단의 마력을 억지로 끊으면 안 되네. 저들 중 일부는 실제로 상류로 돌아가야만 살 수 있는 이들이 있어. 고향이 타버렸어도, 돌아가서 잿더미라도 확인해야 하는 사람들의 짐까지 막아선 안 되네.”

로웬은 셀린의 장부와 강물에 뜬 짐표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성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 셀린의 옆에 놓인 행정 보조용 인장을 집어 들었다.

“서기관님, 이 장부의 수취인은 ‘바다’로 되어 있군요.”

“그렇죠. 원래는 하류로 가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 강물이 읽고 있는 전단에는 ‘배송지’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강은 그저 성자의 이름이 적힌 물건을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반송’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죠. 이건 행정 오류입니다.”

로웬이 전단지 뒷면에 빠르게 글을 적어 내려갔다.

“성자 로웬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짐들의 반송 사유는 ‘수취인 불명’이 아니라 ‘배송처 오기’다. 모든 하류행 물자는 ‘성자의 발치’가 아니라 ‘세상의 끝’으로 배송되는 것이 원칙이다. 반송 세목에서 이 물건들을 제외하고, 정당한 하류행 배송물로 재분류해.”

로웬이 인장을 전단지에 쾅 찍어 강물에 던졌다. 그러자 거칠게 역류하던 물줄기가 순간 멈칫하며 소용돌이쳤다. ‘반송’이라는 거대한 논리 체계 안에서 ‘정당한 배송’의 명분이 만들어지자, 강물은 갈 길을 잃은 듯 부르르 떨었다.

하류행 배들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셀린 도르는 그제야 장부에서 고개를 들어 로웬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처음으로 기묘한 흥미가 서렸다.

“행정 절차로 기적을 비트네. 제법이군요, 가짜 성자님?”

그 순간, 멈춰 선 강물 아래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강바닥에는 모래 대신 거대한 흰 암석들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거대했다. 물이 빠진 틈을 타 드러난 그것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었다. 거대한 맷돌이었다.

쿠구궁—

강바닥 깊은 곳에서 거대한 방앗간이 돌아가는 듯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물줄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이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기계 장치가 톱니를 맞물려 억지로 물을 밀어내는 소리였다.

로웬은 강바닥에서 번뜩이는 흰 이빨 같은 맷돌의 회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순례강 하류는 이제 막 그 거대한 입을 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50화. 용의 이빨 방앗간 재가동

강물이 양옆으로 밀려나며 드러난 것은 진흙 바닥이 아니었다. 거대한 맷돌이었다. 희고 거친 화강암이 아귀를 맞물리며 강바닥을 짓이기자,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육중한 석조 건물이 젖은 이끼를 털어내며 솟아올랐다. 하류 분쇄소. 사람들은 이곳을 ‘용의 이빨 방앗간’이라 불렀다.

물기 머금은 공기 속에 비릿한 곡물 냄새와 눅눅한 뼛가루 향이 뒤섞여 진동했다. 방앗간 입구에는 누런 삼베 포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포대 더미 위로 한 남자가 발을 내디뎠다. 그는 로웬 일행을 향해 시선을 던지지도 않은 채, 품에서 텅 빈 포대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통행료는 선불이다. 빈 포대를 채울 만큼의 서약서, 혹은 그 무게에 합당한 뼈를 내놓아라.”

그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대신 일행이 걸치고 있는 옷감의 재질과 소지품의 무게를 가늠하듯 허공에 손가락을 까닥거릴 뿐이었다. 그때 안쪽에서 누더기를 걸친 일꾼 하나가 달려나오며 그를 불렀다.

“브렌 하그 관리관님! 3번 맷돌의 축이 어긋났습니다. 서약서 뭉치가 너무 딱딱해서 갈리질 않아요!”

관리관이라 불린 사내, 브렌 하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오래된 장부 뒷면처럼 푸석하고 창백했으며, 눈가에는 잉크 얼룩과 구별되지 않는 깊은 다크서클이 웅덩이처럼 패어 있었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옷깃은 먼지와 뼛가루에 절어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펜대를 하도 오래 쥐어 굳은살이 기괴한 혹처럼 솟아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제때 처리해야 할 서류 뭉치를 대하듯 로웬을 건조하게 훑어내렸다. 그의 목소리는 맷돌 사이에 낀 모래알이 굴러가는 듯 불쾌하고 금속성 짙은 소리를 냈다.

“서약이 부족하면 몸으로 때우면 된다. 저기 쌓인 포대 밑에 깔린 놈들도 처음엔 비명이라도 질렀지. 지금은 아주 훌륭한 군량 가루가 되고 있군.”

그의 말대로 포대 더미 아래에선 가느다란 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네스가 안색을 굳히며 달려 나갔다. 그녀는 거대한 포대들을 한 팔로 밀어내며 그 아래 깔려 있던 노인과 아이를 끌어냈다. 아이의 손에는 ‘배급권’이라 적힌 낡은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먹을 것을 구하러 온 사람들을 자재 취급하다니요!”

이네스의 외침에도 브렌 하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피핀이 바닥에 떨어진 배급권을 주워 들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이것 좀 봐. 문구가 아주 예술인데? ‘배고픔은 미납된 신앙이다’, ‘서약 한 줌당 빵 한 조각’, ‘빈 포대는 죄악이다’. 성하, 여기는 식당이 아니라 채무 이행소인데요?”

피핀의 조롱 섞인 분석은 정확했다. 이곳의 배급은 자비가 아니라 거래였다. 불멸왕에 대한 충성을 종이에 적어 넣거나, 그럴 힘조차 없다면 제 몸의 일부라도 갈아 넣어 무게를 맞춰야만 빵 한 조각이 나오는 구조였다.

모르그가 방앗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벽면에 붙은 커다란 장부를 살폈다.

“형식이 낯익군. ‘불멸왕 하류 군량 분쇄소’. 배급량 칸과 충성 서약 확인란이 동일한 선상에 있어. 즉, 서약의 강도가 높을수록 배급되는 가루의 질이 달라진다는 뜻이야. 이건 방앗간이 아니라 신앙의 질량을 측정하는 저울이군.”

엘드가 무거운 검자루를 쥐며 낮게 읊조렸다.

“이곳을 통째로 부숴버리면 사악한 분쇄는 멈추겠지. 하지만 성자여, 당장 저들의 손에 들린 빈 배급권은 어찌합니까? 방앗간이 멈추면 저들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을 겁니다.”

방앗간의 거대한 맷돌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우드득, 소리를 내며 포대 속에 담긴 ‘이름표’들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브렌 하그는 장부를 펼치며 로웬에게 펜을 내밀었다.

“자, 성자라고 불리는 자여. 네 이름을 적어라. 네 이름의 가치라면 이 근방 난민들 수천 명을 먹일 가루가 나올지도 모르지. 물론, 네 존재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겠지만.”

로웬은 펜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맷돌의 회전축과 장부의 기록 방식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방앗간의 마법 체계는 ‘재료’와 ‘수취인’을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오류를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관리관. 규칙을 수정해야겠군.”

로웬이 장부의 페이지를 넘겼다.

“이 포대에 담긴 것은 ‘갈릴 재료’가 아니다. ‘수취인 미등록 배급물’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름표와 서약서를 맷돌에 넣는 것은 ‘분쇄 명령’이다. 하지만 이름을 포대 바깥에 적는 것은 ‘배급 명령’이지. 너희는 지금까지 재료의 이름과 먹을 사람의 이름을 한 칸에 적어 관리했다. 그래서 사람이 재료가 된 거다.”

로웬의 손가락이 장부의 칸을 가로질러 선을 그었다. 성자의 권능이 아니라, 시스템의 틈새를 파고드는 명료한 선언이었다.

“지금부터 이 포대들에 담긴 것은 ‘이름 없는 뼈’가 아니라 ‘주인에게 돌아갈 식량’으로 재분류한다. 분쇄 프로세스를 반려하고, 저장고의 잠금을 해제해라. 항목이 ‘미등록 배급물’로 변경되었으니, 맷돌은 갈 재료가 없으므로 공회전해야 한다.”

콰아앙!

방앗간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거세게 돌아가던 흰 맷돌이 불꽃을 튀기며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맷돌 사이에 끼어 있던 서약서 뭉치들이 가루가 되는 대신, 온전한 종이 뭉치가 되어 튕겨 나왔다. 동시에 저장고의 문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그동안 쌓여 있던 진짜 밀가루 포대들이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밀가루 포대로 달려들었다. 브렌 하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헛손질을 하며 멈춰 선 맷돌을 바라보았다.

“이, 이럴 리가… 장부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다니…!”

로웬은 대답 대신 멈춰버린 맷돌 틈새를 바라보았다. 맷돌의 거친 단면 사이에 무언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밀가루도, 사람의 뼈도 아니었다.

희게 말라붙은 사슴뿔 모양의 물건. 그 위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이 있었다. ‘장례 통행증’.

그 순간, 멀리 강 상류 쪽에서 낮게 깔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흰 천을 머리에 쓴 행렬이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방앗간의 소음이 잦아든 자리에,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고요한 발자국 소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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