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48화 합본. 묵주 계단의 정산소에서 잠자는 갑옷들의 여관까지
47화. 묵주 계단의 정산소
멈춰선 회전판의 화살표가 가리킨 곳은 가파른 절벽을 깎아 만든 수직의 계단이었다. 잿불이 섞인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와중에도 계단은 비릿한 냄새와 축축한 열기로 가득했다. 그곳은 신을 향한 고해의 통로가 아니라, 미납된 감정을 수거하는 거대한 장부였다.
찰랑, 찰랑.
계단 옆으로 늘어선 구리 함에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다. 참회하는 이들의 눈물이었다. 순례객들은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놋쇠로 만든 함에 눈물을 받아냈고, 상인들은 그 함의 수위를 저울에 달아 무게를 쟀다.
“눈물 한 방울당 세 칸입니다. 참회문 분량이 모자라니 다음 구역 통행은 불허합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계단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상인들은 순례객의 얼굴을 보는 대신 그들의 눈 밑에 바짝 들이민 함을 살폈다. 죄책감은 그들에게 훌륭한 화폐였고, 회한의 깊이는 거리 요금표에 적힌 숫자로 환산되었다.
로웬이 첫발을 내디디려던 찰나, 누런 양피지 장부와 좁고 깊은 구리 함 하나가 그의 앞가로를 막아섰다.
“통행세 미납입니다. 이 구간은 지난 세 번의 성절(聖節) 동안 누적된 연체 이자가 붙었습니다.”
장부를 든 여자는 로웬의 눈을 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로웬의 가슴팍에 머문 채, 장부에 깃펜을 휘갈기며 함의 수위를 확인했다.
“이름은? 아니, 이름은 필요 없겠군요. 이 정도 영압(靈壓)이면 납부해야 할 체납액이 산더미 같을 텐데.”
“세라핀 도르님, 이분은…….”
뒤따르던 보조 상인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세라핀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로웬을 바라보았다.
딱딱하게 풀을 먹인 검은 사제복 위로 겹쳐 입은 가죽 앞치마에는 잉크 자국과 눈물 자국이 뒤섞여 얼룩져 있었다. 잿빛 머리카락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뒤로 넘겨 묶은 그녀의 이마에는 신경질적인 주름이 잡혀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생명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산해야 할 물건을 분류하는 수집가의 그것처럼 서늘하게 번뜩였다. 소매 끝은 오래된 눈물 자국 때문에 반들거렸고, 그녀가 구리 함을 조금 기울일 때마다 로웬은 사람의 슬픔이 술잔처럼 계량되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잘 연마된 금속판이 맞닿는 소리처럼 차갑고 건조했으며,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허리춤에 매달린 수십 개의 열쇠꾸러미와 인장들이 기괴한 금속음을 내며 그녀가 인간이라기보다는 걸어 다니는 금고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로웬은 불쾌한 감각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내야 할 세금도, 이곳에 바칠 눈물도 없다. 나는 성자도 아니고, 당신들이 찾는 보증인도 아니니까.”
그 순간, 계단 난간에 박힌 굵직한 묵주 알들이 일제히 붉은 빛을 내뿜으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산소 장치들이 끼리릭 소리를 내며 로웬의 말을 기록했다.
[신청 확인: '성자 본인 감면 신청' 접수.]
[오류: 보증인 자격 미달. 미납 통행세 전액을 신청자 '로웬'에게 소급 적용합니다.]
“뭐?”
로웬의 당혹감 섞인 목소리에도 장부는 가차 없었다. 묵주 계단에 쌓인 수백 년 치의 미납금 수치가 장부 위로 쏟아져 내렸다.
“성자 본인이라 주장하시면서 감면을 신청하셨군요. 하지만 증빙이 없으니 이 계단 전체의 연체금이 당신 앞으로 묶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로웬 씨. 당신은 이제 이 길에서 가장 거대한 채무자입니다.”
세라핀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장부를 로웬의 코앞까지 밀어붙였다.
그 옆에서 이네스는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는 노인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난간을 부수려다 멈칫했다. 계단 바닥에 새겨진 기도문들이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질반질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착취의 장치를 부수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에 매달려 고백할 곳을 찾던 이들의 길조차 끊겨버릴 터였다.
“……함부로 손댈 수도 없겠어. 이 장치가 멈추면 저 사람들은 갈 곳을 잃어.”
피핀은 난간에 붙은 거리 요금표를 소리 내어 읽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진심 어린 참회문 10페이지당 가파른 구간 50미터 면제’? ‘눈물 한 방울 추가 납부 시 가중치 적용’? 장사가 아주 예술이네. 죄책감을 팔아먹는 놈들은 봤어도, 그걸 미터법으로 계산하는 놈들은 처음 봐.”
모르그는 허리를 숙여 묵주 알 안쪽과 난간 밑면을 살폈다. 그곳에는 육안으로 간신히 보일 만큼 미세한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로웬, 이 문장들…… 죽은 태양 장부에서 봤던 징수 문구와 일치해. ‘빛을 빌린 자, 그림자로 갚으리라.’ 이건 종교적인 계단이 아니야. 거대한 세금 징수 기계지.”
엘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장치를 끊어내는 것은 정의일지 모르나, 고백할 곳이 사라진 사람들의 침묵도 결국 비용으로 돌아올 걸세. 저들은 울기 위해서라도 이 요금을 내고 싶어 하니까.”
세라핀은 로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잉크병을 열었다. 로웬은 그녀의 손등에 찍힌 붉은 인장과 장부의 빈칸들을 훑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잠깐, 정산이 잘못됐군.”
로웬이 세라핀의 장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거리 산정 기준이 엉망이야. 이 구간은 직선거리가 아니라 곡선 거리로 계산되어 있어. 중복 징수지. 게다가 여기, ‘수취인’ 란이 비어 있잖아? 성자가 부재중이라면 이 통행세는 누구에게 귀속되는 거지?”
세라핀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건…… 관례에 따라 정산소에서 보관…….”
“보관은 납부가 아니지. 그리고 여기, 내 앞으로 묶인 채무에 ‘성자 대리 보증’ 칸이 비어 있어. 성자 본인 감면 신청이 오독되었다면, 역설적으로 이 장부는 나를 성자로 인정한 셈이야. 안 그래?”
로웬은 세라핀의 손에서 인장을 낚아챘다. 그리고 장부의 ‘중복 감면’ 도장과 ‘수취인 불분명’ 항목에 사정없이 낙인을 찍어 눌렀다.
“성자의 권위로 깎아달라는 게 아니다. 이 장부 자체가 가진 행정적 결함을 지적하는 거지. 수취인이 없으니 채무는 성립되지 않고, 중복 계산된 거리는 소거한다. 남은 연체료는 ‘보증인 부재’로 무효화한다.”
끼이익, 쿠구궁!
계단을 지탱하던 묵주 알들이 역회전하며 멈춰 섰다. 붉은 빛이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정지 신호가 계단 전체에 퍼졌다. 상인들의 저울이 수평을 맞추며 굳어버렸고, 세라핀의 장부에서는 그동안 기록된 숫자들의 잉크가 번져 흐르기 시작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세라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로웬은 이미 그녀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냥 심부름꾼이다. 미납된 고지서를 처리하러 온.”
계단의 끝에 다다랐을 때, 차가운 석조 난간 위로 잿불이 스미며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다음 숙박: 잠자는 갑옷들의 여관]
로웬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선 정산되지 못한 눈물들이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48화. 잠자는 갑옷들의 여관 재개장
묵주 계단의 난간이 꺾여 가리킨 곳은 성소라기엔 지나치게 비대하고, 요새라기엔 기분 나쁠 정도로 정적인 회색 건물이었다. 수백 년간 먼지를 먹고 자란 이끼가 외벽을 털 가죽처럼 덮고 있었으나, 그 틈으로 비어져 나온 강철 가로대들은 여전히 날카로운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여관…… 이라고요? 저게?”
이네스가 방패 손잡이를 고쳐 쥐며 물었다. 뒤따라오던 순례객들은 이미 한계였다. 그들에게 이곳이 구원의 안식처인지, 거대한 쇠창살 감옥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비를 피할 지붕과 누울 바닥만 있다면 독이 든 성수라도 마실 기세였다.
로웬이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밀고 들어선 순간, 매캐한 금속 냄새와 오래된 기름 향이 코를 찔렀다. 로비라기보다는 병참 창고에 가까운 넓은 홀에는 수십 개의 판금 갑옷들이 벽을 따라 기괴한 각도로 서 있었다.
“입소 절차가 늦었다. 성문 폐쇄 30분 전인데 이제야 기어 들어오다니.”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누군가가 로웬의 가슴팍에 딱딱한 양피지 뭉치를 들이밀었다.
“방어 병력 입소 보증서다. 우물쭈물할 시간 없으니 이름 적고 경계근무표 수령해. 방패 벽난로에 불 피우는 건 2조 몫이니까 착각하지 말고.”
로웬의 길을 막아선 여자는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눈이 아니었다. 그녀는 로웬의 얼굴을 보는 대신, 그의 어깨너비와 팔다리의 길이를 가늠하며 어떤 규격의 갑옷이 어울릴지 계산하는 병참 장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뒤편 주방에서 “올가 바스 점장님! 3번 솥에 기름이 부족합니다!”라는 외침이 들려오고 나서야 여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올가는 잿빛 머리칼을 거칠게 뒤로 묶어 넘겼는데, 그 사이로 드러난 목줄기에는 마치 갑옷의 이음새처럼 깊고 선명한 흉터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빛바랜 감청색 제복은 소매 끝이 해져 실밥이 터져 나왔음에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주름이 잡혀 있었고,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죽 장화에서는 말린 핏자국이 바스라지는 듯한 건조한 소리가 났다. 앞치마에는 쇠가루와 오래된 기름때가 눌어붙어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은 손님에게 방 열쇠를 건네는 손이라기보다 갑옷 관절의 녹슨 핀을 뽑아내는 공구처럼 마디마다 굳어 있었다. 초점이 흐릿하면서도 집요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는 눈앞의 생명체를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제자리에 끼워 넣어야 할 부속품이나 수선해야 할 갑옷 관절쯤으로 여기는 피로와 강박이 뒤섞인 기묘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저희는 병력이 아닙니다. 그저 하룻밤 묵어갈 순례객일 뿐이죠.”
로웬이 보증서를 밀어내며 차갑게 대꾸했다.
“병력이 아니라니? 잿불길 숙박망이 가동됐다는 건 전시 상태라는 뜻이다. 이 안방에 발을 들인 이상 너희는 숙박객이 아니라 임시 방찰병이야.”
“성자님, 저길 보세요!”
피핀의 외침에 로웬의 시선이 벽면으로 향했다. 벽에 걸려 있던 투구들이 기계적인 마찰음을 내며 일제히 입을 벌렸다. 그것은 열쇠였다. 투구 안쪽에 새겨진 톱니들이 맞물리며 벽면의 거대한 판금 갑옷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앞방향으로 꺾였다.
철컥, 철컥!
갑옷의 가슴받이가 열리고 그 안쪽으로 두툼한 모직 안감이 드러났다. 그것은 침대였다. 하지만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이 그 안에 눕는 순간, 갑옷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숙박객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를 강제로 무장시키는 폐쇄형 병동으로 변하는 구조였다.
“잠자는 갑옷들의 여관…….”
모르그가 먼지 쌓인 숙박 장부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 장부의 병참 명령 하달 방식, 죽은 태양의 장부와 문법이 같습니다. 여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동 병참 기지로 설계되었군요.”
순간, 겁에 질린 순례객 중 한 명이 열린 갑옷 안으로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그러자 갑옷의 팔다리 관절이 자석처럼 들러붙으며 순례객의 사지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으악! 이게 뭐야! 안 빠져요!”
“비상 상황 발생! 탈영병 저지 및 강제 무장 실시!”
천장에서 경보음이 울리자 올가가 차갑게 소리쳤다. 로웬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한 걸음 나섰다.
“나는 성자도 아니고, 지휘관도 아니다! 이 장치를 당장 멈춰!”
그의 단호한 부정이 홀 안에 공명했다. 하지만 여관의 중앙 제어 장치는 로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말을 해석했다.
[식별 완료: 최고 권한자의 겸양어 인식. ‘성자 일행’ 방어 병력 입소 최종 확인. 전 객실 개방 및 숙박/징집 약관 강제 적용.]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니까!”
로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든 빈 갑옷들이 입을 벌리며 순례객들을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이네스가 신속하게 방패를 휘둘러 갑옷 속에 갇히려는 노인을 낚아챘고, 엘드는 불길을 일으키려다 멈칫했다.
“형씨, 이거 함부로 태우면 안 돼! 감금 장치를 녹여버리면 오늘 밤 이 사람들 죄다 길바닥에서 얼어 죽는다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피핀이 갑옷 옆에 붙은 동판 문구를 빠르게 낭독했다.
“‘숙박 중 야간 경계 자동 동의’, ‘투구 열쇠 분실 시 복무 기간 무기한 연장’, ‘성자 일행 보증란 공백 시 연대 책임 적용’…… 아니, 이건 숙박업이 아니라 사기 징집이잖아요! 잠드는 순간 군인이 된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약관이야!”
올가는 이미 당연하다는 듯 로웬에게 야간 경계표를 내밀고 있었다.
“서명해라. 아니면 네 동료들도 저 갑옷 안에 처박혀서 평생 경비나 서게 될 테니까.”
로웬은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성자로 떠밀린 권한을 내세워 이 기계를 멈추라고 우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엘드의 말대로 이곳을 부수면 갈 곳 없는 순례객들은 잿불길의 추위 속에 던져진다. 그는 성자의 권위가 아니라, 이 여관이 신봉하는 그 고리타분한 ‘법칙’을 파고들기로 했다.
로웬이 올가의 손에서 숙박 장부를 낚아채 빠르게 넘겼다.
“올가 바스 점장. 이 여관의 병참 규정 제 4조 12항을 기억하나?”
올가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병력 배정표상의 객실 번호와 실제 투입 병력의 군번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입소는 원천 무효로 하며 보급물 수령권은 박탈된다.’ 맞나?”
로웬이 장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 이 사람들은 ‘순례객’이지 ‘방어 병력’ 군번을 부여받지 않았어. 그런데 여관 장치는 이들을 병력으로 오인해 객실(갑옷)을 배정했지. 이건 명백한 병참 관리 오류다. 또한, 여기 보증서를 봐. 성자 일행의 보증란이 공백인데 어떻게 최종 승인이 났지?”
“그건 네가 방금…….”
“난 ‘아니다’라고 했지 서명하지 않았다. 경계근무 시간표도 중복이야. 1조와 2조의 교대 시간이 15분이나 겹쳐 있어. 폐쇄된 병참 창고의 수취인 명단도 300년 전 인물들이고. 이 모든 건 행정적 결함이다. 즉, 현재의 입소 절차는 전부 무효야.”
여관 내부의 톱니바퀴 소리가 잦아들었다. 논리적인 오류를 발견한 장치가 연산을 멈춘 것이다.
“점장, 당신도 이 미친 짓을 멈추고 싶어 했잖아. 갑옷 관절이나 닦으며 평생을 보낼 게 아니라면, 이 ‘서류상의 구멍’을 받아들여.”
올가는 한참 동안 로웬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 서려 있던 지독한 피로감이 한 줌의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로웬이 내민 장부를 거칠게 덮어버렸다.
“……병참 오류 인정. 전원 입소 취소. 하지만 숙박객으로서의 권리는 유지한다. 갑옷은 침대로만 사용해. 구속 장치는 내가 수동으로 잠그지.”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옷들이 다시 얌전한 가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순례객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갑옷 침대에 몸을 뉘었다.
로웬은 잠시 숨을 고르며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문가에 놓인 낡은 물받이 그릇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흔들리는 수면 위로 기괴한 문자가 비쳤다. 로웬의 눈에만 보이는, 다음 여정의 이정표였다.
[다음 하류: 거꾸로 흐르는 순례강]
로웬은 지팡이를 짚으며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았다. 잿불길의 여관은 다시 문을 열었으나, 그 길의 끝에는 여전히 차가운 강물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