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02화 합본. 세 번째 목격자는 아직 울지 않았다에서 울음 보관 장부까지
100화. 세 번째 목격자는 아직 울지 않았다
세 번째 목격자는 아직 울지 않았다.
그 사실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공을 가로막았다. 피핀이 들고 있던 바구니의 모서리가 문턱의 기묘한 홈에 닿기 직전이었다.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던 이네스의 검 손잡이가 가볍게 달랑거렸고, 로웬은 반사적으로 뒤를 따르던 이들의 어깨를 짚어 멈춰 세웠다. 정지 화면처럼 굳어버린 일행의 시선 끝에는 낯선 소녀가 서 있었다.
빛바랜 잿빛 원피스는 마치 누군가 억지로 찢어 발긴 것처럼 밑단이 불규칙하게 너덜거렸고, 그 사이로 드러난 발목은 뼈마디가 도드라질 만큼 앙상했다. 소녀는 숨을 쉬고 있었으나 그 움직임이 지나치게 규칙적이어서 오히려 태엽을 감아둔 인형 같은 위질감을 풍겼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로웬의 심장 부근을 꿰뚫는 듯 고정되어 있었는데, 아이의 눈가에 맺힌 것은 슬픔이 아니라 오랫동안 건조하게 말라붙어 버린 어떤 의무감에 가까워 보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은 문턱의 함정을 가리킨 채 굳어 있었고, 아이의 목덜미를 따라 흐르는 팽팽한 긴장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로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로웬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대신, 소녀의 발치와 피핀의 바구니 사이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했다. 바구니 안의 내용물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문턱 아래 설치된 정밀한 압력판이 기분 나쁜 금속음을 냈다. 로웬은 허리를 숙여 바닥의 이음새를 살폈다.
“이거, 단순히 밟으면 터지는 구조가 아니군. 소리나 진동이 일정 데시벨을 넘기면 트리거가 당겨지는 방식이야. 정확히는 ‘파동’이 문제겠지.”
로웬이 무심하게 덧붙였다. 평소라면 ‘애들 장난치고는 제법 공을 들였네’라는 농담을 던졌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품 안에서 작은 금속 막대를 꺼내 바닥의 진동을 억제하며 피핀의 바구니를 조심스럽게 뒤로 끌어당겼다.
“이봐, 꼬마야. 거기서 여기까지 안전거리가 얼마나 되지? 네가 손짓한 걸 보면 최소한 이 선 밖으로는 나오지 말라는 뜻인 것 같은데.”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로웬을 응시할 뿐이었다. 피핀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이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네스가 조용히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네스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기 이전에, 이 거대한 기계 장치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그는 숨을 죽인 채 수첩을 꺼내 들었다. 기록자로서의 윤리가 그에게 침묵을 강요했지만, 눈앞의 광경은 그가 보아온 어떤 역사적 비극보다 잔혹했다. 소녀의 목에 채워진 얇은 금속 칼라에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마법 회로가 각인되어 있었다.
“로웬 님, 저 아이는…… 울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니, 울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울 수 없게 설계되었어요.”
“설계라니, 말이 심하군. 하지만 상황을 보니 틀린 말은 아니야.”
로웬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이제 소녀의 이름을 묻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았다. 이 보관실의 보안 체계는 침입자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침입자가 발생했을 때, 목격자인 소녀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모든 출입구가 영구적으로 폐쇄되도록 만들어진 자폐적인 감옥이었다.
소녀는 울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울음이라는 감정을 소모하여 보관실의 빗장을 잠그는 ‘생체 열쇠’로 길러진 것이다. 만약 아이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린다면, 그 진동은 목의 회로를 타고 증폭되어 이 방의 모든 기계 장치를 폭주시키고 입구를 무너뜨릴 터였다.
“고생이 많네. 우는 법을 잊어버려야만 문을 열어둘 수 있다니. 우리 고용주도 참 성격 뒤틀린 구석이 있어.”
로웬은 짐짓 가벼운 말투로 말하며 안전거리를 확인했다. 소녀의 발치에서 정확히 세 걸음 뒤. 그곳이 함정이 작동하지 않는 임계점이었다. 로웬은 천천히 아이의 시선을 맞추며 손을 내밀었으나, 아이는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서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에는 로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인격적 교류도 담겨 있지 않았다.
피핀이 울먹이는 소리를 내자, 아이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작은 떨림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윙윙거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네스가 즉각 피핀의 입을 막고 뒤로 물러섰다. 팽팽한 침묵이 보관실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로웬은 소녀의 뒤편, 반쯤 열린 수납함 선반 위에서 빛나는 작은 금속 조각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를 자극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것처럼 다가가 그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누군가 급하게 휘갈겨 쓴 쪽지가 각인된 얇은 납판이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흘렀다. 로웬은 그 위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 내려갔다.
[ 울음은 열쇠가 아니라 자물쇠다. ]
101화. 울지 않아도 되는 방
‘울음은 열쇠가 아니라 자물쇠다.’
금속 조각에 새겨진 문장이 로웬의 손끝을 타고 차갑게 스몄다.
로웬은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웅크린 아이를 보았다. 세 번째 목격자.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이 지하실의 부품처럼 박혀 있던 생명체였다. 아이의 가느다란 목에는 기괴한 금속 칼라가 채워져 있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잘게 떨리는 어깨가 아이의 공포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아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못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려 할 때마다 목의 칼라가 웅웅거리며 기분 나쁜 진동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로웬 님, 아이가…….”
피핀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녀는 아이의 떨리는 손가락을 차마 잡지도 못한 채 곁바구니만 꼭 쥐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지금 이 방 전체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반응하고 있어.”
로웬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금 읽은 문장이 머릿속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울음이 자물쇠라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이곳의 모든 장치는 영구히 폐쇄될 것이다. 혹은, 울음이라는 진동 자체를 연료로 삼아 더 끔찍한 무언가를 가동하거나.
이네스가 검집을 쥔 채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혹시 모를 기습이나 함정에 대비하는 몸짓이었으나, 그녀의 시선만큼은 아이의 짓물러진 발목에 머물러 있었다.
“소리를 막아야 합니까? 밀랍이나 천으로 입을 막으면…….”
“안 돼.”
로웬이 이네스의 말을 잘랐다. 그는 바닥에 흩어진 납판과 태엽 부속들을 빠르게 훑었다.
“이 장치는 침묵을 원하는 게 아냐.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는 걸 억제하려 들수록 봉인은 더 촘촘하게 조여들 거다. 억지로 입을 막았다간 저 칼라가 아이의 목을 부러뜨릴지도 몰라.”
실제로 아이의 목을 감싼 금속 칼라는 물리적인 압박보다 ‘공명’에 반응하고 있었다. 아이가 울음을 삼키느라 꺽꺽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벽 너머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요된 침묵은 해법이 될 수 없었다. 이곳은 아이를 보호하는 방이 아니라, 아이의 슬픔을 동력으로 삼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로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실무적인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아이를 심문해서 정보를 얻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지금 상태로는 입을 떼기도 전에 상황이 끝날 터였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피핀의 바구니를 가리켰다.
“피핀, 네 바구니에 있는 거 다 꺼내 봐.”
“네? 아, 네!”
피핀이 허둥지둥 바구니를 뒤졌다. 부드러운 헝겊 조각, 먹다 남은 빵을 싼 거친 종이 포장지, 그리고 행운을 빈다며 챙겨온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로웬은 그것들을 아이의 앞에 나란히 놓았다. 그러고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마치 혼잣말을 하듯 건조하게 내뱉었다.
“골라 봐. 네 입술을 가릴 부드러운 천이 좋을지, 아니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줄 종이가 좋을지. 네가 고르는 방식으로 도와줄 테니까.”
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로웬과 피핀을 번갈아 보았다. 로웬은 아이에게 다가가거나 강제로 무언가를 쥐여주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여지를 남겨두었을 뿐이다.
긴 침묵 끝에 아이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떨리는 손끝이 향한 곳은 의외로 거친 종이 포장지였다.
피핀이 조심스럽게 종이를 집어 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아이는 종이를 품에 안고서야 아주 조금 어깨의 힘을 뺐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아이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덮었다.
로웬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바닥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배 부분이 움푹 파인 조잡한 종 인형이었다.
“울음소리가 문제라면, 그 소리가 갈 곳을 만들어주면 되지.”
로웬은 단검 끝으로 종 인형의 빈 배를 정교하게 긁어냈다. 납판의 파편을 덧대고, 아이의 목에 걸린 칼라와 비슷한 파형을 그리도록 구리선을 꼬아 넣었다. 현대적인 마법 공학 용어는 필요 없었다. 이건 그저 떨림을 우회시키는 단순한 공명통에 불과했다.
“이 인형의 배 안쪽은 비어 있다. 네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하면, 이 쇠 울림 속으로 숨결을 불어넣어.”
로웬이 종 인형을 아이의 무릎 앞에 놓았다.
“그럼 벽 너머의 기계들은 네가 우는 줄 알 거야. 실제로는 이 인형이 대신 소리를 받아내고 있는데도 말이지.”
아이는 조심스럽게 종 인형을 만졌다. 차가운 금속과 납의 질감이 손가락등에 닿았다. 로웬이 만든 임시 안전 공간 안에서, 아이의 호흡은 점차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모르그가 이 광경을 기록하려다 멈칫했다. 기록관으로서의 윤리와 눈앞의 비인간적인 장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로웬은 냉정했다.
“기록은 나중에 해. 지금은 이 방의 진짜 용도를 알아내는 게 먼저다.”
로웬의 말대로였다. 아이가 진정되자 벽면의 진동이 잦아들었다. ‘자물쇠’가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방 안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로웬이 준 종 인형의 배를 아주 작게,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 타악, 탁.
그건 단순한 두드림이 아니었다. 종 인형 내부의 구리선이 울리며 벽면의 특정 지점과 공명했다. 아이의 시선이 한쪽 벽의 가려진 틈새를 향했다.
그곳은 육안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이 거대한 지하 미궁의 비밀 기록실이 숨겨진 위치였다.
로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 울지 않아도 길은 열리는 법이지.”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작은 울림이, 굳게 닫혀 있던 벽면의 거대한 석판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102화. 울음 보관 장부
석판이 옆으로 밀려나며 틈이 벌어지자, 수백 년간 갇혀 있던 공기가 무겁게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성스러운 향내보다는 오래된 도서관의 묵은 먼지, 그리고 차가운 납 냄새에 가까웠다.
로웬이 코를 찡그리며 먼저 발을 들였다. 램프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벽면을 훑었다. 그곳은 성물 보관소라기보다 차라리 지독하게 정돈된 회계실 같았다. 벽면 가득 짜인 선반에는 가죽 장부들이 번호순으로 꽂혀 있었고, 모든 책등은 붉은 실로 꼼꼼히 묶인 채 하얀 봉인 기름이 두껍게 발라져 있었다.
“성물치고는 꽤나 사무적이군. 기도를 올리기보다는 세금 계산서를 두드려야 할 판이야.”
로웬이 장부 하나를 가리키며 건조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농담에는 평소와 같은 여유가 없었다. 램프 불빛에 비친 장부들 위로 빼곡한 손때가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차가운 기록들을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서 뒤적였다는 증거였다.
모르그가 장갑을 낀 손으로 가장 두꺼운 장부 하나를 꺼냈다. 봉인 기름이 바스러지며 바닥으로 하얀 가루가 떨어졌다. 책장을 넘기자 납 활자로 찍어낸 듯한 글자들이 나타났다.
[보관 번호 402번. 기능: 신성 증폭. 상태: 소진 후 폐기.]
모르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깃펜을 꺼내 들었지만, 장부에 적힌 단어를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그의 수첩에는 대신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들이 ‘기능’이라 명명한 희생자 402번. 신성을 착취당한 뒤 버려짐.’
모르그는 가해자의 언어를 자신의 기록에 섞지 않으려 애쓰며, 장부의 폭력적인 문구들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다시 썼다. 그것은 기록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피핀은 그 장부들 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선반의 중간쯤, 유독 손때가 많이 탄 구역에 머물렀다. 저 수많은 번호 중 하나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름을 찾고 싶다는 갈망과, 이름 대신 번호로 적힌 자신을 마주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충돌했다.
이네스는 그런 피핀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등을 떠밀지도, 그렇다고 멀찍이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저 피핀이 스스로 손을 뻗거나 고개를 돌릴 수 있을 때까지,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줄 뿐이었다.
“피핀, 네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내가 보마.”
이네스의 낮은 목소리에 피핀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장부의 가죽 표면을 쓸어내렸다. 차가운 납 냄새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아니요, 기사님. 제가 봐야 해요. 누군가는… 여기 적힌 사람들이 그냥 숫자가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하니까요.”
그때, 일행 뒤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 목격자였다. 소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품에 안은 종 인형을 부서질 듯 움켜쥐고 있었다. 인형에 달린 작은 종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가냘픈 소리를 냈다.
소녀의 시선은 모르그가 펼쳐 든 장부의 특정 페이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목을 감싼 빳빳한 칼라가 소녀의 경련하는 호흡을 따라 파르르 떨렸다. 소녀는 장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쉬는 법을 잊은 듯했다.
로웬이 소녀의 곁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목격자는 뒷걸음질 치며 장부의 뒷부분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르그가 급히 장부의 뒷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희생자들의 명단이 아니라, 내부 고발자 혹은 감시 대상자로 추정되는 명단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명단의 마지막 줄, 세 번째 목격자의 이름이 있어야 할 칸에 이르렀을 때 모두의 숨이 멎었다.
그 칸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리한 칼날로 도려낸 듯, 종이가 사각형 모양으로 파여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녀의 흔적을 지워버린 것이다.
“이건… 단순히 기록을 삭제한 게 아니야.”
이네스가 도려낸 단면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잘려 나간 종이 조각의 뒷면, 즉 다음 장의 여백을 훑었다.
도려낸 구멍 사이로 뒤 페이지의 일부분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앞선 기록들과 달리 거칠고 급하게 휘갈겨진 문구들이 있었다. 굳어버린 하얀 봉인 기름을 잉크 삼아 그려진 기묘한 문양, 그것은 이 지하 시설의 숨겨진 구조도였다.
그리고 지도의 중심부,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는 화살표 옆에 서늘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울음을 돌려주는 방(室). 모든 기록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도려낸 이름의 주인, 세 번째 목격자의 눈에서 마침내 굵은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종 인형의 종소리가 적막한 기록실 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