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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6화 합본. 겸손한 성자의 부정문에서 기도 마차 공동차고까지 일러스트

44-46화 합본. 겸손한 성자의 부정문에서 기도 마차 공동차고까지

44화. 겸손한 성자의 부정문

전표에는 ‘견본품: 겸손한 성자의 부정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로웬은 그것이 일종의 암호이거나,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악의적인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쇄소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거창한 음모보다는 거대한 물류 사고 현장에 가까웠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잉크의 비릿한 냄새, 그리고 종이가 쏟아지는 파찰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성자가 아니다! 방금 입 모양, 아주 좋았어요. 활자 수정해!”

누군가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육중한 인쇄기가 덜컥거리며 멈췄다. 갓 찍혀 나온 전단 수천 장이 허공에서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로웬은 발치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주워 들었다.

[겸손한 성자의 세 가지 부정]

나는 성자가 아니다. (지극한 겸양)

수령 거부합니다. (세속의 공양을 거절하는 청렴함)

받지 않겠습니다. (기적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욕)

“……이게 대체 뭡니까?”

로웬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라기보다는, 자신의 말이 전혀 다른 궤도를 돌아 엉뚱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의 당혹감이었다. 그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거절이 어떻게 ‘개정판 원문’으로 둔갑하여 활자판에 박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거기! 원문 검수 중에 끼어들지 마세요. 지금 잉크 마르기도 전이니까.”

작업대 너머에서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납빛 그림자가 진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손가락 끝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는데, 마치 수만 개의 비밀을 목 졸라 죽인 뒤 그 흔적을 남긴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로웬의 얼굴 전체를 보는 대신 오직 입술의 움직임만을 집요하게 쫓았으며, 그 입에서 나올 탄식을 갈무리하기 위해 필요한 납활자의 너비를 계산하는 듯한 기괴한 정밀함을 띠고 있었다. 기계 레버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는 그녀의 몸짓에는 어떤 경외심도 섞여 있지 않았고, 메마른 칼날로 종이를 자르는 듯한 목소리는 인간을 그저 활자판에 끼워 맞출 지저분한 초고 정도로 취급하는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원장님, 이분이 바로……!”

옆에서 달려온 견습공이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불렀다.

“알고 있다. 입 모양이 활자와 일치하는군. 마르타 빈델이다. 이곳의 인쇄와 검열을 책임지고 있지.”

마르타는 로웬의 항의를 ‘상품에 대한 클레임’처럼 무심하게 넘기며 다시 인쇄기로 고개를 돌렸다.

인쇄소 밖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로웬은 처음에 이들이 광신도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달랐다.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는 병원 대기 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전단을 가슴에 품었고, 누더기를 걸친 노인은 배급소 검문관에게 보여줄 ‘성자의 보증’을 얻기 위해 전표를 흔들었다. 그들에게 이 부정문은 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가혹한 행정의 파도를 버티게 해줄 값싼 구명조끼였다.

“뒤로 물러나세요! 밀지 마십시오! 출구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이네스가 활자판보다 먼저 군중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성검을 휘두르는 대신 방패로 공간을 가르며 압사 사고를 막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이 성자의 이름을 연호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눈은 오직 군중의 흐름과 퇴로만을 쫓았다.

한편, 피핀은 쌓여 있는 전단더미 하단의 깨진 글씨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본 전단은 성자의 기운을 담고 있으나 효능은 미보장함’, ‘검문소별 관리자의 성향에 따라 적용 범위 상이’, 특히 이게 걸작이네. ‘성자 본인이 부인할수록 신성력이 상승하므로 효력 강화됨’…… 와, 진짜 장사 잘한다. 이 정도면 사기가 아니라 예술 아냐?”

피핀의 비아냥은 전단을 쥔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법망과 신성 사이의 빈틈을 찾아내 수익 구조를 짜 올린, 이 기괴한 인쇄소의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었다.

모르그는 마르타가 들고 있는 검열 원장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에 비친 문장 구조는 낯익은 것이었다.

“……구조가 닮았군. 죽은 태양의 장부에서 본 ‘회수 및 재배포 명령서’와 문법이 일치해. 이건 단순한 종교 홍보물이 아니야. 사람들의 신원을 성자의 이름 아래 묶어 관리하려는 행정 체계의 일부다.”

로웬은 성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이 기계들을 다 부수고 거짓된 문장들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엘드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전부 불태우면 오늘 밤 저 사람들은 성을 나가지 못합니다. 통행증 대신 저 종이를 쥔 사람들에게는 저게 유일한 법이니까요.”

엘드의 말은 차가웠지만 사실이었다. 신화는 이미 로웬의 손을 떠나 도시의 부품이 되어 있었다. 로웬은 분노를 억누르며 마르타 빈델에게 다가갔다. 그는 성자로서 명령하는 대신, 장부를 빼앗아 쥔 채 차갑게 선언했다.

“전단은 더 찍지 마십시오. 하지만 지금 가져온 사람들의 것은 회수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당신들이 쓰고 있는 이 납활자판과 검열 원장, 그리고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 장부 전체를 압수하겠습니다.”

“그건 영업 방해…….”

“‘성자가 거절했다’는 문구를 다음 쇄에 넣고 싶지 않다면 제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겁니다.”

로웬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마르타는 잠시 로웬의 입술을 쳐다보더니, 이내 흥미가 가셨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났다.

군중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굉음을 내던 인쇄기가 멈췄다. 로웬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는 성자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진실을 말했지만, 세상은 그 진실을 가공하여 더 큰 거짓의 성벽을 쌓는 재료로 삼았다.

성자라는 이름의 신화는 이제 없앨 수 있는 종양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도시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되어 있었다. 남은 문제는 이 신화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이 든 이 힘을 누가, 어떻게, 어떤 의도로 휘두르게 할 것인가 하는 지독한 운영의 문제였다.

로웬은 잉크 냄새가 진동하는 인쇄소를 나서며 자신의 손등에 튄 검은 자국을 닦아냈다. 지워지지 않는 납빛 얼룩이 마치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45화. 잿불길 첫 이정표

인쇄소 골목을 메운 것은 갓 찍어낸 종이의 비릿한 향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 내몰린 이들이 뿜어내는 절박한 악취였다. 성자의 출현이라는 헛된 소문은 이미 조잡한 전단지가 되어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겨지고 있었다. ‘성자는 자신을 부정했다’는 역설적인 문구는 그들에게 오히려 신성한 신탁처럼 받아들여졌고, 그 기만적인 문장을 이정표 삼아 모여든 순례객들은 가짜 안내인이 가로막은 차단봉 앞에서 앞다투어 동전 주머니를 풀었다.

“길값 내야지, 젊은이. 이 전단지도 한 장 사고. 성자님 본인이 직접 본인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건 그분의 겸손이 담긴 가장 확실한 복음서나 마찬가지라고.”

길목을 틀어막은 사내의 손에는 투박한 나무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로웬이 입을 열기도 전에 사내는 옆구리에 낀 장부를 툭툭 치며 거스름돈을 챙겼다. 로웬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비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찾는 성자가 아닙니다.”

“옳지! 바로 그거야! 그 부정이야말로 우리가 파는 전단의 핵심 가치거든. 자, 여기 ‘성자 본인 부인 시 10% 특별 할인’ 보이지? 젊은이도 방금 그 말을 했으니 요금에서 딱 한 닢 깎아줄게.”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밀던 그때, 저 멀리 짐수레를 끌고 지나가던 잡상인 하나가 목청을 높여 그를 불렀다.

“브란 토벨 씨! 여기 주문한 추가 배포용 전단이 아직 안 왔단 말이오! 손님들이 줄을 섰는데 이정표가 안 열리면 어쩌자는 거야!”

상인의 호명에 고개를 까딱거린 브란 토벨은, 잿불길 안내조합의 임시 징수원이라는 직함이 적힌 완장을 고쳐 차며 그제야 눈앞의 로웬을 산 사람이 아닌 움직이는 화폐 단위로 분류하듯 음험하게 훑어 내렸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가죽 코트 위로 덧대어진 녹슨 금속 단추들은 그가 지금까지 뜯어낸 통행료의 역사를 과시하는 흉측한 훈장처럼 덕지덕지 매달려 있었고, 움푹 팬 눈가 너머에서 기계적으로 번들거리는 안광은 생명의 생기보다는 장부상의 소수점 아래 숫자를 계산하는 데 최적화된 서늘한 탐욕을 투영했다. 땀구멍마다 찌든 때와 잿가루가 뒤섞여 곰팡이처럼 눅눅한 기운을 내뿜는 그의 피부는 마치 죽은 자의 가죽을 덧씌운 듯 불쾌한 감촉을 연상시켰으며, 그가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비어져 나오는 가래 섞인 목소리는 사람의 언어라기보다 녹슨 금전등록기의 톱니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맞물리는 소음과 흡사했다.

“거 참, 재촉하기는. 이정표 근처에서 성자님 성함이나 한 번 더 외쳐들 보라고! 그럼 이 돌덩어리들도 감복해서 길을 열어줄 테니까.”

브란 토벨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로웬의 가슴팍을 차단봉으로 밀어붙였다. 그 순간, 길가에 버려진 채 덩굴에 뒤덮여 있던 낡은 군수 이정표가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진동했다. 지면을 타고 흐르는 낮은 울림과 함께 이정표 상단의 수정구가 시뻘건 빛을 뿜어냈다.

[명령어 인식: ‘나는 성자가 아니다’]

[부정문 확인 완료 - 통행 권한 승인. 군수용 돌문 개방.]

바닥에 박혀 있던 발자국 모양의 석판들이 일제히 떠오르며 허공에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길을 가로막던 거대한 바위벽이 비명을 지르며 양옆으로 갈라졌고, 그 너머로 시커먼 터널이 아가리를 벌렸다. 기적이라며 울부짖는 순례객들이 무질서하게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석판에 닿을 때마다 ‘통행객 1, 2, 3……’이라는 숫자가 붉게 명멸했다.

“멈춰요! 이건 기적이 아닙니다!”

로웬의 외침은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의 환호에 묻혔다. 그들에게 이 길은 신의 인도가 아니라, 당장의 추위와 배고픔을 피할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다. 터널 안쪽에서 불길한 증발음이 들려오자 이네스가 즉시 거대한 방패를 뽑아 들었다. 그녀는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는 육중한 돌문 틈새에 방패를 박아 넣고 근육이 찢길 듯한 힘으로 문을 버텼다.

“모두 정지하십시오! 이 구조물은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군사 시설입니다!”

이네스가 비명을 지르는 문을 지탱하는 사이, 피핀이 브란 토벨의 손에서 전단 뭉치를 낚아챘다. 피핀은 전단 하단에 깨알같이 적힌 문구들을 읊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와, 이것 봐. ‘통행료 환불 불가’, ‘길을 잃거나 사고 발생 시 효능 미보장’. 아저씨, 이쯤 되면 이건 종교가 아니라 그냥 악질 사채 계약서 아냐? 절박한 사람들 사지로 밀어 넣고 돈까지 챙기다니, 참 창의적으로 비겁하시네.”

이정표 뒷면의 장치 제어반을 살피던 모르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로웬, 이 제어 구조는 우리가 ‘죽은 태양 장부’에서 확인했던 구 제국군의 군수 이동 명령 체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건 성자의 길이 아니라, 전쟁 당시 병사들을 소모품처럼 사지로 몰아넣던 자동 진격로예요.”

엘드가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주워 들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이 전단지들이 독이 될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걸 놓지 못하겠지요. 당장 이 사기꾼을 잡는 것보다, 시스템에 입력된 목적지 자체를 뒤틀어야 합니다.”

상황이 불리해진 것을 눈치챈 브란 토벨이 장부를 챙겨 달아나려 했으나, 로웬의 서늘한 목소리가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브란 토벨 씨, 당신이 발행한 이 전단의 하단 직인과 길값 영수증의 발행처 코드가 일치하지 않더군요. 게다가 이 이정표가 가리키는 배송지 설정은 30년 전 폐쇄된 군수 차고지로 되어 있습니다.”

“무, 무슨 소리야! 일개 여행자 주제에 영수증 직인이니 뭐니……!”

“심부름꾼은 화물의 배송지와 환불 규정 위반에 아주 민감하거든요. 허가받지 않은 지점으로 민간인을 유도하고 통행료를 횡령한 사실이 정식 제소되면, 당신이 벌어들인 금화는 전부 몰수 대상인 거 아십니까? 영수증의 유효기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로웬은 이정표 옆의 징수함 제어 패널에 손을 올렸다. 성력을 주입하는 대신, 그는 전단의 일련번호를 역추적해 시스템에 ‘반품 및 경로 수정’ 명령을 강제로 입력했다.

삐비빅—!

고막을 찢는 경고음과 함께 이네스를 압박하던 돌문이 완전히 열리며 고정되었다.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가던 순례객들이 당황하며 걸음을 멈추자, 로웬은 그들을 본길로 유도하며 징수함의 잠금장치를 과부하시켰다. 브란 토벨은 징수함에 손이 묶인 채 쏟아지는 정산 오류 메시지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푸른 빛으로 정화된 이정표의 수정구가 새로운 문자를 띄웠다.

[1차 이정표 통과 완료.]

[다음 정산 지점: 기도 마차 공동차고.]

로웬은 잉크와 먼지가 묻은 장갑을 털어내며 멀리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를 응시했다. 잿불길의 첫 번째 단추는 비정상적인 영수증을 처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46화. 기도 마차 공동차고

잿빛 매연과 향로의 연기가 뒤섞인 공기는 폐부를 홧홧하게 긁어댔다. 이정표가 가리킨 ‘다음 정산: 기도 마차 공동차고’는 예배당이라기보다 거대한 기계식 축사에 가까웠다. 족히 수백 대는 되어 보이는 마차들이 거대한 톱니바퀴에 맞물려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기름때 묻은 레일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가장 기이한 것은 소리였다. 마차 바퀴가 느릿하게 구를 때마다 규칙적인 파열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마차 바퀴살 사이사이마다 빳빳하게 접힌 종이들이 끼워져 있었다. 돈 대신 낸 기도문 영수증이었다.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영수증 종이가 구동축을 때리며 쇳소리 섞인 소음을 냈다. 그 소리는 찬송가라기보다, 마디마디가 끊어지고 비틀린 비명처럼 들렸다.

"멈추십시오. 정산되지 않은 업보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로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손때가 시커멓게 탄 ‘성자 보증 미납 주차비’ 장부를 넘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번호표 뭉치를 들이밀었다.

"차고 번호 402번부터 511번까지. 보증인이 오지 않아 삼 일째 출발이 지연됐습니다. 성자님께서 직접 서명하신 보증 확인서가 없으면 이 마차들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여기, 미납된 기도 영수증 분량만큼의 체납 증명서입니다."

"나는 보증을 선 적도 없고, 당신이 찾는 성자도 아니오."

로웬이 차갑게 대꾸하며 남자를 밀쳐내려 했다. 그제야 장부 너머로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은 사람의 피부라기보다 오래된 관청의 서류 봉투처럼 메마르고 푸석했다.

마테오 그린은 잉크 자국이 문신처럼 박힌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눈앞의 살아 있는 인간을 정산해야 할 숫자의 나열로만 본다는 듯 메마른 시선을 보냈다. 그의 어깨 위에는 수십 년간 쌓인 장부의 무게가 내려앉은 듯 구부정했고, 낡은 검은 조끼의 단추마다 닳은 번호표 끈이 감겨 있어 걸을 때마다 작은 쇳소리가 났다. 입술은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를 요금 단위로 환산해 읊조리는 일에만 익숙해진 것처럼 얇게 마모되어 있었다. 그는 잿불길 위에서 피어나는 신앙의 열기조차 기화된 구리스 기름 정도로 여기는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그가 내뱉는 숨결에서는 종이 먼지와 눅눅한 지전의 냄새가 났다.

"부정(否定) 확인. 보증인 본인 확인 완료."

마테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고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증기압 소리가 터져 나왔다. 로웬의 부정은 차고 장치 안에서 기묘하게 뒤틀려 '본인 확인'의 신호로 입력되었다. 끼익, 쇠 긁는 소리와 함께 정지해 있던 무인 마차들이 일제히 출발 대기선을 향해 구르기 시작했다.

"안 돼! 멈춰!"

이네스가 반사적으로 뛰어들어 가장 앞선 마차의 차축을 방패로 찍어 눌렀다. 그녀는 발로 제동목을 걷어차 바퀴 사이에 끼워 넣으며 이를 악물었다. 마차의 육중한 무게가 방패 너머로 손목까지 밀려왔다. 부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이 마차들은 돈 없는 순례객들이 평생을 모은 기도 영수증을 바치고 얻어낸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마차를 파괴하는 것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을 박살 내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게 뭐야? '요금 부족 시 기도문 대납 가능', '보증란 공백 불가'?"

피핀이 마차 옆면에 붙은 요금표를 소리 내어 읽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번호표 분실 시 순례 한 바퀴 추가? 기도문 환불 불가? 야,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신한테 가는 길이라면서 장사는 아주 야무지게 하시네. 사람 간절한 마음을 무슨 마차 바퀴 굴리는 땔감으로 쓰고 있잖아!"

모르그는 바닥에 떨어진 기도문 영수증 한 장을 주워 들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손가락이 종이 위의 문장들을 훑었다.

"문장 배열이 이상해요. 기도가 아니야. 이건 죽은 태양 장부에 기록되던 세금 징수 문구의 변칙적인 나열이에요.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영혼에 매기는 과세 증명서 같은 구조라고요."

"태워버리면 그만이지만……."

엘드가 타오르는 손을 들어 올렸다가 씁쓸하게 내렸다.

"저 마차들이 멈추면, 저기 밖에서 떨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평생 이 차고 앞을 떠나지 못하겠지. 사기극을 끝내는 게 오히려 그들의 다리를 불태우는 꼴이 되다니. 고약한 설계군."

로웬은 마테오가 들이민 장부를 낚아챘다. 마차들은 여전히 이네스를 밀어붙이며 위태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로웬의 눈이 장부의 세세한 항목들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성자라는 이름의 권위가 아니라, 이 탐욕스러운 시스템이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을 찾아야 했다.

"마테오 그린 씨. 이 보관료 청구서의 수취인 주소가 '성자 거처'로 되어 있군. 하지만 이 번호표가 발급된 시각은 오늘 오전 8시다. 우리가 이 구역에 진입하기도 전이지."

로웬이 장부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게다가 여기, 405번 마차부터는 중복 도장이 찍혀 있어. 이미 정산이 끝난 마차를 미납 목록에 끼워 넣었단 소리지. 결정적으로, 당신이 본인 확인이라며 들이민 '성자 보증란'은 비어 있어. 이름이 적히지 않은 보증은 법적으로도, 이 차고의 규칙으로도 효력이 없다."

로웬이 장부를 마테오의 가슴팍에 거칠게 되돌려주었다.

"허위 청구에 의한 강제 출고는 차고 운영 원칙 위반이다. 당장 멈춰. 안 그러면 이 장부 전체를 상급 정산소에 허위 보고서로 제출하겠다."

마테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로웬과 장부를 번갈아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레버를 잡아당겼다. 콰르릉, 소리를 내며 마차를 밀어붙이던 동력이 끊겼다. 이네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패를 거두었다.

"……행정상의 착오였던 모양이군요. 하지만 다음 정산소에서도 이렇게 운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마테오는 분하다는 듯 웅얼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차들이 멈춰 선 차고 바닥의 거대한 회전판이 느릿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육중한 석재 바닥이 맞물리며 새로운 글자를 조합해냈다.

로웬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다음 정산: 묵주 계단 정산소 ]

성자를 사칭한 대가는 점점 더 세속적이고 집요한 계산서가 되어 그들의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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