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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화 합본. 까마귀 우편국에서 피 묻은 성배 경매장까지 일러스트

9-10화 합본. 까마귀 우편국에서 피 묻은 성배 경매장까지

성자 후원 영수증.

로웬은 손에 쥔 종이 쪼가리를 당장이라도 짓이기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늪가 귀족들이 성찬의 기적을 보았다며 내민 것은 금화가 아니라,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하늘이 기억할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로웬의 이름이 적힌 영수증이었다. 약초값, 식초값, 심지어 은수저와 촛대를 닦는 데 들어간 노동력까지 전부 '사후 천국 적립금'으로 치환되어 있었다.

"죽어서 받는 돈이 무슨 소용이야. 당장 신발 밑창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로웬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일행의 눈앞에 검은 첨탑이 솟아올랐다.

까마귀 우편국.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비명을 지르며 첨탑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건물의 외벽은 오랜 세월 덧칠된 검은 봉랍 냄새와 눅눅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입구 위에는 거대한 까마귀장이 매달려 있었고, 그 안의 새들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기보다 박제된 기록관처럼 기괴한 눈초리로 방문객을 훑었다.

우편국 내부로 들어서자, 천장까지 닿을 듯한 분류함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류함에는 각각 '산 사람', '죽은 사람', 그리고 가장 불길하게 번들거리는 '죽을 예정인 사람'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록과 운명의 보관소에."

분류함 사이에서 한 남자가 스르륵 나타났다. 까마귀 우편국장, 사일러스였다. 로웬에게 그는 돈을 내줄 사람이라기보다, 돈이 될 수도 있었던 편지를 관 속에 넣고 못질할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햇빛을 평생 보지 못한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를 가졌고, 그 위로는 모세혈관 같은 잉크 자국들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편지칼을 오래 쥔 손가락은 길고 날카로워 봉투보다 사람의 숨통을 먼저 따도 이상하지 않았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허공의 먼지 부스러기를 쫓듯 쉴 새 없이 굴러다녔다. 낡은 관복의 깃 장식마다 까마귀의 젖은 깃털이 촘촘히 박혀 있어, 그가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종이 사이로 밤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다.

"후원 영수증의 현금화라니요. 성자시여, 이곳은 운명을 배달하는 곳이지 금전을 세탁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일러스가 로웬의 영수증을 편지칼 끝으로 툭 치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로웬은 인상을 찌푸리며 영수증을 다시 뺏어 들었다.

"돈이 안 되면 반송이라도 해줘요. 보낸 놈들한테 이 영수증이 얼마나 무례한 건지 똑똑히 적어서."

"반송이라…. 좋지요. 하지만 그전에, 성자님 앞으로 온 '긴급 통지'가 하나 있습니다."

사일러스가 '죽을 예정인 사람'의 칸에서 붉은 봉랍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냈다. 로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은 사망 통지서였다. 수신인은 로웬. 하지만 가장 중요한 칸이 비어 있었다.

[ 사망 예정일: 년 월 일 ]

공란이었다.

"이게 뭐야? 날짜가 비었잖아. 서류 미비라고."

로웬의 항의에 주변에 있던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편국에 죽은 자의 명복을 빌러 왔던 신도들과 기록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날짜가… 비어 있어?"

"오오, 성자시여! 죽음마저 감히 당신을 구속하지 못하는군요!"

"순교의 날을 스스로 결정하시려는 미봉인 예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자의 증거가 아닌가!"

사람들은 공포 섞인 경외감을 담아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죽은 가족의 편지를 품고 있던 여자는 그 봉투를 이마에 댄 채 숨을 삼켰고, 기록원 하나는 펜촉을 부러뜨린 줄도 모르고 빈 장부 위에 계속 선을 그었다. 사일러스의 눈에도 광기 어린 열망이 서렸다. 이곳 사람들은 내일을 믿는 대신, 누군가 적어 준 운명을 붙잡고 버텨 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행정 착오라니까! 이거 보낸 놈 누군지 찾아서 반송하라고요!"

로웬이 소리쳤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로웬이 가지고 있던 '성찬 기적문'과 사일러스가 들고 있던 '사망 통지서', 그리고 그 순간 우편망을 타고 흘러 들어온 '죽은 태양의 우편 기록'이 한 공간에서 충돌했다.

첨탑 전체가 진동했다. 천장의 까마귀장들이 일제히 열리며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쏟아져 나왔다. 까마귀들의 깃털은 딱딱하게 굳어 봉랍처럼 붉은 칼날이 되었고, 우편물들은 회오리치며 칼날 깃털과 섞였다.

"이... 이 문법은?"

모르그가 허공에 흩날리는 종이 조각들을 낚아채며 중얼거렸다.

"우편국의 기록 단위가 '죽은 태양의 장부'와 공명하고 있어. 산 자의 언어가 아니라, 이미 죽었거나 죽어야만 하는 자들의 논리로 기록이 재편되고 있군. 성자여, 당신의 사망 통지서가 이 거대한 기록 장치의 중심축이 되어버렸네."

"아저씨, 왕궁에서는 편지보다 칼이 먼저 오곤 했거든요?"

피핀이 단검을 꺼내 들며 농담조로 덧붙였다.

"근데 이건 좀 너무하네. 우체국장이 칼날 편지를 수만 통이나 쏘고 있잖아!"

사일러스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로웬의 사망 통지서에 억지로 봉랍을 찍어 날짜를 확정하려 들었다. 그것이 우편국의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 믿는 듯했다.

"성자시여! 당신의 순교를 이 장부에 박제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이 폭주를 멈출 유일한 기록입니다!"

칼날 같은 깃털들이 로웬을 향해 쏟아졌다. 이네스가 성검을 뽑아 들고 로웬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날짜 없는 사망 통지서. 그것을 성물처럼 받들어 보존하고 싶은 기사로서의 충동이 그녀를 찔렀다. 하지만 그녀는 로웬의 짜증 섞인 옆얼굴을 보았다.

"성자님, 길을 열겠습니다. 저 기록들에 먹히지 마십시오!"

이네스의 검기가 까마귀 떼를 갈랐다. 로웬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성검을 휘두르는 대신, 바닥에 굴러다니던 커다란 우편 자루를 집어 들었다.

"기적? 예언? 다 집어치워. 이건 그냥 오배송이야!"

로웬은 첨탑 계단의 구조를 훑었다. 나선형으로 솟은 계단은 거대한 환풍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편지칼을 던져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우표 저울의 균형을 깨뜨렸다. 저울추가 떨어지며 분류함의 잠금장치를 부수고, 그 반동으로 강한 상승 기류가 솟구쳤다.

로웬은 우편 자루를 낙하산처럼 펼쳐 기류를 탔다. 그리고 품 안에서 '반송' 도장을 꺼냈다.

"잘 봐, 사일러스! 서류 미비는 수취 거부다!"

로웬은 공중에서 흩날리는 자신의 사망 통지서에 거대한 반송 도장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폭주하는 까마귀 떼의 중심, 즉 '미배달함'의 입구로 정확히 차 넣었다.

순간, 모든 소음이 멎었다.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던 기록들이 '반송'이라는 명확한 행정적 명령에 따라 미배달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칼날 깃털들은 다시 부드러운 종이가 되어 바닥으로 추락했다.

잠시 후, 정적이 감도는 우편국 내부에 사일러스의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음의 편지를… 되돌리셨어. 성자께서 명부의 기록을 거부하고, 운명을 통째로 반송함에 처넣으셨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군중들이 다시금 환호성을 질렀다.

"죽음을 반송한 기적이다!"

"성자 로웬께서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을 되돌려주셨다!"

로웬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험악했다. 사일러스가 경외감에 찬 얼굴로 다가와 떨리는 손으로 고지서 한 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 항목: 초자연적 현상에 따른 우편물 대량 반송 처리 수수료 ]

[ 금액: 금화 10잎 ]

"뭐? 수수료? 내가 니들 목숨을 구해줬는데 돈을 내라고?"

"아, 기적은 기적이고 행정은 행정이니까요. 규정상 반송 수수료는 발송인 혹은 대리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로웬의 고함이 까마귀 우편국을 가득 채웠다. 결국 그는 현금화하려던 영수증마저 수수료 담보로 저당 잡힌 채 쫓기듯 우편국을 나와야 했다.

일행이 떠난 뒤, 엉망이 된 미배달함 깊숙한 곳에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왔다.

피 묻은 손자국이 선명한 '성배 경매 초대장'. 그리고 그 옆에는 로웬이 반송 처리했던, 하지만 여전히 날짜가 비어 있는 사망 통지서 사본이 기분 나쁜 빛을 내뿜으며 겹쳐 있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와 그 종이들을 부리로 쪼았다. 마치 아직 배달되지 않은 운명이 남아있다는 듯이.

초대장 뒷면에는 조잡한 금박이 입혀진 글귀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기증자: 성자 로웬 바스티. 본 초대장은 입장 보증금 500디나르를 대체하며, 경매 성사 시 기증자에게는 총 낙찰가의 0.5%가 '성무 활동비'로 지급됨.]

로웬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었다. 성무 활동비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명의 도용에 대한 정정, 지난번 까마귀 우편국에서 입은 손가락 상처에 대한 치료비 청구,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말도 안 되는 ‘피 묻은 성배’라는 물건을 반송하는 것이었다.

“나는 성배를 기증한 적이 없어. 애초에 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로웬 님, 이미 이 초대장은 전 대륙의 큰손들에게 뿌려졌습니다. 당신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들은 ‘성자가 약속을 어겼다’며 신성 모독죄로 고발할 기세더군요.”

피핀이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그는 예의 그 가벼운 몸짓으로 품 안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흔들었다.

“왕궁에 있을 땐 초대장보다 참수 명단이 먼저 도착하곤 했죠. 그거에 비하면 이건 아주 정중한 편이라니까요? 뭐, 이름이 적힌 순서대로 목이 날아가는 건 비슷하지만 말입니다.”

로웬은 대답 대신 앞장섰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도시의 가장 깊은 지하, ‘붉은 촛대’라 불리는 비밀 경매장이었다.

육중한 철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것은 눅눅한 지하의 냉기와 뒤섞인 봉랍 탄내였다. 수백 개의 붉은 촛대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녹아내린 촛농이 마치 선혈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려 굳어 있었다.

단상 위에는 경매사 발레리우스가 서 있었다. 로웬에게 그는 초대장을 보낸 장본인이자, 남의 이름을 금박으로 싸서 팔아먹는 데 아무 죄책감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비대하게 부푼 몸집을 보랏빛 벨벳 코트에 억지로 끼워 넣은 사내였다. 기름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채 금박 단안경 너머로 탐욕스러운 눈빛을 번뜩였고, 목덜미에서는 비싼 라벤더 향유와 땀 냄새가 섞인 기묘한 악취가 풍겼다. 손가락마다 낀 반지는 촛불을 받을 때마다 피 묻은 이빨처럼 번쩍였으며, 그가 로웬 일행을 향해 웃을 때마다 턱살이 경매 망치보다 먼저 흔들렸다. 그는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처럼 허리를 굽히더니, 곧 돼지 같은 웃음을 흘리며 망치를 두드렸다.

“오셨군! 오늘 경매의 주인공, 자비로운 성자께서 직접 강림하셨습니다!”

귀족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들의 눈에는 신앙보다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기적’에 대한 갈망이 더 진하게 배어 있었다.

경매 품목들이 하나둘 공개되었다. 까마귀 우편국에서 로웬이 버리고 온 ‘성자 후원 영수증 원본’, 그가 반송하려 했던 ‘날짜 없는 사망 통지서 사본’, 심지어 그가 지난 여정에서 대충 갈겨쓴 ‘성찬 기적문 묶음’(실제로는 식단표와 여비 계산서였다)이 성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전시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미, 성자 로웬 바스티께서 직접 피를 흘려 봉인하셨다는 ‘피 묻은 성배’의 파편입니다!”

발레리우스가 비단 천을 걷어내자, 낡고 녹슨 청동 조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웬은 황당함에 실소했다. 저건 그저 뼈 풍차 근처 쓰레기 더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철 조각에 불과했다.

“이것이 진품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자님의 피 한 방울을 청하고자 합니다.”

흰 사제복을 입은 감정관 줄리안이 다가왔다. 그는 경매장의 권위를 신앙으로 포장해 주는 사람, 그러니까 로웬의 피를 값표로 바꿔 줄 위험한 증인이었다. 매의 부리처럼 날카로운 코 아래로 얇은 입술이 단단히 닫혀 있었고, 움푹 팬 눈동자는 사람보다 물건의 흠집을 먼저 찾는 눈빛으로 로웬의 손을 훑었다. 은색 감정 접시를 받친 팔은 지나치게 말라 소매 속에서 뼈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으며, 접시 가장자리에는 이전 감정에서 닦이지 않은 붉은 얼룩이 바늘 끝처럼 남아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는 차가운 성유 냄새가 났고, 목소리는 성가를 부르는 사제보다 가격을 부르는 장물아비 쪽에 가까웠다.

“성자시여, 당신의 피가 이 성배에 닿는 순간, 진실의 빛이 인도할 것입니다.”

로웬은 거절하려 했으나, 줄리안은 이미 준비해둔 바늘로 로웬의 손가락 끝을 따버렸다. 까마귀 우편국에서 입었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며 선명한 핏방울이 맺혔다.

옆에 서 있던 이네스의 눈동자가 일순간 흔들렸다. 그녀는 로웬의 피가 맺히는 것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그 피를 성물처럼 받들고 싶은 거센 충동에 휩싸였다. 그것은 기사의 충성심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운 갈구였다. 하지만 이네스는 자신의 허벅지를 강하게 찔러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숭배하는 대신, 로웬의 상처를 거칠게 눌러 지혈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로웬의 피 한 방울이 감정 접시를 거쳐 성배 조각에 닿았다.

그 순간, 기적이 아니라 폭주가 시작되었다.

지지직!

성배 조각이 시커멓게 타오르는가 싶더니, 경매장 곳곳에 진열된 가짜 성유 단지들이 일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혈관처럼 벽면을 타고 번져 나갔다.

“이, 이게 무슨…!”

경매사가 당황해 망치를 휘둘렀으나, 망치가 울릴 때마다 허공에 떠 있던 입찰 번호표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경매 계약서들이 스스로 펼쳐지며 낙찰되지도 않은 귀족들의 이름을 피의 글씨로 새기기 시작했다. 계약의 결계가 폭주하고 있었다.

“로웬 님, 이 문서들의 문법….”

모르그가 낮게 읊조렸다. 그는 혼란 속에서도 바닥에 떨어진 우편 사본과 계약서를 대조하고 있었다.

“죽은 태양의 장부, 그리고 지난번 우편국의 기록과 문법 구조가 일치합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착각’을 문서화하여 힘을 부여하고 있어요.”

로웬은 통증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대로 두면 경매장의 모두가 강제로 체결된 피의 계약에 영혼이 묶일 판이었다. 성자의 기적?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로웬이 붙잡을 수 있는 건 약관 위반뿐이었다.

“중단해!”

로웬이 소리쳤다. 그는 날아오는 번호표를 피해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이 경매는 원천 무효다! 기증자인 나의 동의 없는 감정 절차는 관리 규약 제 14조 위반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성유들은 전부 위조품이며 미납된 감정료가 5천 디나르에 달한다!”

그는 발레리우스의 손에서 경매 망치를 뺏어 들고, 비상용 낙찰종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댕! 댕! 댕!

“강제 휴정이다! 와인통을 가져와! 저 끓어오르는 성유에 쏟아부어!”

로웬의 지시에 피핀이 근처에 쌓여 있던 거대한 와인통들을 발로 차 터뜨렸다. 시큼한 포도주가 쏟아지며 마력의 전도율을 떨어뜨렸고, 로웬은 붉은 커튼을 잡아당겨 폭주하는 성배 조각을 덮어씌웠다. 촛대들이 로웬의 발길질에 넘어지며 결계의 축을 무너뜨렸다.

광란의 도가니였던 경매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채 가라앉았다.

“살았… 나?”

귀족들이 바닥을 기며 숨을 헐떡였다. 그들의 눈에는 이제 공포와 경외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광경은 성자가 피 한 방울로 타락한 성유 시장과 탐욕스러운 경매장을 심판한 거룩한 분노로 보였다.

“기록해라….”

사제 감정관 줄리안이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성자께서 피의 기적으로 거짓된 성물을 파괴하시고, 포도주의 축복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노라고….”

로웬은 그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기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봐, 경매사. 내 치료비랑 아까 그 성무 활동비 소급해서 당장 내놔. 그리고 이 계약서 봐. 명의 도용에 따른 정신적 위자료도 청구할 거니까.”

로웬이 내민 계약서 끄트머리에는 피의 글씨가 채 마르지 않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차기 경매 예정 품목: 고대 납골당의 봉인된 관. 입장 시 ‘납골당 출입증 도장’ 필수 지참.]

로웬은 한숨을 내쉬었다. 쉬고 싶었지만, 다음 배달지가 정해진 모양이었다.

“도장이라니… 이번엔 또 어느 미친 우체국으로 가야 하는 거야?”

그의 분노 섞인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성자의 심판에 감격해 통곡하는 귀족들의 찬송가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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