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합본. 재봉된 성녀의 관과 검은 빵의 시장
로웬은 그 문구가 정직한 기술자의 자부심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코끝을 찌른 것은 비린내 섞인 향취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였다. 그곳에서 로웬을 맞이한 것은 이 수도회의 주임 사제이자, 로웬이 수선비를 깎기 위해 반드시 구슬려야 할 협상의 대상인 엘리아 신부였다.
엘리아 신부는 퀭한 눈동자 주변으로 검붉은 실핏줄이 터져 있어 마치 누군가 그의 눈가에 억지로 붉은 자수라도 놓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 어깨 위로 흘러내린 누더기 가사에는 수만 번의 바느질 흔적이 흉터처럼 덧대어져 있었고, 그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옷감끼리 쓸리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뼈마디가 불거진 그의 손가락 끝은 끊임없는 바느질의 훈장인 듯 굳은살과 바늘구멍으로 가득했으며, 입을 열 때마다 폐부 깊은 곳에서 긁어 올린 듯한 쉰 목소리가 젖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로웬의 찢어진 망토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상처를 보듯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오, 위대한 헌신을 감내하신 성자시여. 그대의 의복에 새겨진 이 파열음이 나의 가슴을 찢는구려.”
엘리아 신부가 로웬의 손을 부여잡고 통곡하듯 외쳤다. 로웬은 그저 수선비 견적을 내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예배당 중앙에 놓인 거대한 물체 때문에 말을 삼켜야 했다. 그것은 ‘재봉된 성녀의 관’이라 불리는 기괴한 장치였다. 관 뚜껑은 수천 개의 은바늘이 촘촘히 박힌 채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실타래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는 광신도들이 자신의 상처를 봉합해달라며 바친 핏물 든 붕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저 관이 성녀님의 부패를 막고 계시지. 실이 끊기면 성녀님의 육신도 흩어지고, 우리 구원도 끝이 난다네.”
엘리아의 말과 동시에 천장에서 ‘끼익’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렸다. 도르래가 헛돌며 천장에 매달린 젖은 실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실 중 하나가 로웬의 찢어진 망토 자락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그의 그림자와 바닥의 카펫을 꿰매버렸다.
“앗, 내 망토!”
로웬이 당황해 망토등을 잡아당겼지만, 실은 마치 굶주린 거머리처럼 로웬의 살점 근처까지 파고들었다. 기이하게도 그 순간 로웬의 가슴팍에 있던 오래된 흉터가 불에 덴 듯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흉터의 모양이 마치 방금 누군가 바느질을 마친 봉합 자국처럼 울퉁불퉁하게 솟아올랐다.
“보십시오! 성녀의 고통이 성자님의 육신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신도들이 경악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이네스는 성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몰려드는 실들을 방패로 쳐내면서도,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는 로웬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로웬이 타인의 죄와 상처를 대신 짊어지는 이 성스러운 광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희생을 강요하는 수도회의 광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그 옆에서 피핀은 이 아수라장을 구경하며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를 띠었다.
“왕궁 지하 감옥에서도 이런 풍경을 봤지. 죽은 후궁의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게 입술을 낚시줄로 꿰매어 전시하곤 했거든. 교회나 왕궁이나, 죽음을 예쁘게 포장해서 전시하고 싶어 하는 욕심은 똑같단 말이야. 안 그래, 성자 나으리?”
피핀의 농담은 냉소적이었지만 뼈가 있었다. 로웬은 그의 농담을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실타래는 이제 로웬의 팔을 타고 올라와 목을 조를 기세였다. 성스러운 치유의 기적이라기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로웬의 눈은 본능적으로 천장을 향했다.
천장의 보에 걸린 도르래에는 검은 촛불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고, 젖은 천들이 매달린 방향은 일정하게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저것은 신성한 의지가 아니라, 습기에 불어 터진 가죽 끈과 무게 중심이 무너진 도르래의 오작동이었다.
‘저 매듭만 타버리면…!’
로웬은 품속에서 불씨가 남은 작은 화로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찢어진 망토 조각 하나를 미끼로 던져 실타래들이 그것을 칭칭 감게 유도했다. 실들이 망토 조각에 집중된 틈을 타, 로웬은 기름을 먹여 매끄럽게 닦아놓은 천장 고리 쪽으로 화로의 불씨를 던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기름 묻은 매듭을 집어삼켰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엉켜 있던 실들이 방향을 잃고 요동쳤다. 로웬은 마지막 힘을 다해 천장 반대편에 걸린 보조 갈고리를 낚아채 반대 방향으로 힘껏 당겼다. 무게 중심이 역전되자, 미친 듯이 실을 뱉어내던 관의 장치가 거꾸로 돌아가며 흩어졌던 실들을 제 몸체 안으로 무섭게 되감기 시작했다.
성녀의 관은 거친 기계음을 내뱉으며 다시 단단히 봉인되었다. 예배당을 가득 채웠던 긴장감이 일순간에 정적 속에 가라앉았다.
“성자께서… 성녀의 상처를 직접 본인의 몸으로 받으시고, 분노한 관을 잠재우셨다!”
엘리아 신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광신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로웬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렸다. 로웬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떨어진, 이제는 수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타버린 망토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수선비를 아끼려다 옷을 완전히 날려 먹었다는 상실감에 로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창백함을 거룩한 탈진으로 해석했다.
수도회는 이 사건을 ‘성자의 봉헌’으로 명명하며 로웬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다음 날, 로웬이 버리고 간 불탄 천 조각과 그가 먹다 남긴 딱딱한 검은 빵 조각은 어느새 영험한 성물로 둔갑하여 인근 시장의 암거래 상인에게 흘러들어갔다. 그것이 어떤 폭풍을 불러올지, 로웬은 아직 알지 못한 채 텅 빈 지갑을 쥐고 다음 행선지로 향할 뿐이었다.
"사라졌어."
로웬은 허탈하게 빈 포대 자루를 뒤집었다.
수선 수도회에서 성녀의 관을 잠재우고, 찢어진 망토를 기워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정작 그 대가로 받은 소중한 식량, 딱딱하게 굳어 톱밥 냄새가 나는 검은 빵 세 덩어리가 감쪽같이 증발해 있었다. 심지어 수선하고 남은 망토의 자투리 천 조각들마저 사라졌다. 그것들은 나중에 덧댈 때 쓰거나, 정 안 되면 신발 깔창으로라도 쓸 요량이었는데 말이다.
"성자시여, 무엇을 그리 애타게 찾으십니까? 잃어버린 성유물이라도 있으신지요."
이네스가 강철 장갑을 낀 손으로 방패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로웬의 당혹감이 '성물을 도둑맞은 분노'로 보였을 것이다. 로웬은 차마 빵 세 덩이와 헝겊 조각 때문에 심장이 저리다고 말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계산이 좀 틀려서."
"계산이라니요! 성자의 행보에 오차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분명 사악한 무리가 주님의 흔적을 탐낸 것이 분명합니다."
이네스의 목소리가 커지자 주변의 공기가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세 사람은 성문 밖, 성수 저장고와 수도회 사이의 비탈길에 형성된 임시 시장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쉰내 나는 채소와 비쩍 마른 고기가 거래되던 이곳은, 지금 기묘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보시오! 성자가 직접 축복한 검은 빵! 한 입만 먹어도 영혼의 허기가 가시고 죄 사함을 받는다는 기적의 성체!"
시장 한복판, 급하게 짠 가판대 위에 올라선 사내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로웬은 그 사내를 보자마자 뒷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내의 이름은 갈트. 로웬이 수도회로 향하던 길목에서 짐을 잠시 맡아주겠다며 접근했던 뜨내기 장사꾼이었다.
갈트는 로웬의 돈을 떼어먹으려던 사기꾼에서, 이제는 성자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대담한 도둑으로 거듭나 있었다. 기름기 번들거리는 갈색 가죽 갑옷을 걸친 그는 돼지 비계처럼 두툼한 목살을 출렁이며 군중을 휘어잡았고,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누런 이 사이로 고약한 마늘 냄새와 탐욕스러운 침방울이 튀어나왔다. 뱀처럼 가늘고 교활한 눈동자는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주머니 무게를 가늠하며 쉴 새 없이 굴러갔으며, 솥뚜껑 같은 손으로는 로웬이 잃어버린 그 투박한 검은 빵을 마치 성궤에서 꺼낸 보물마냥 조심스레 치켜들고 있었다. 그가 거칠게 소리를 지를 때마다 목에 걸린 굵은 구리 목걸이가 짤랑거리며 불쾌한 금속음을 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지옥의 회계사가 장부를 넘기는 소리처럼 시장통에 울려 퍼졌다.
"저건 내 빵인데."
로웬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가격표를 보니 빵 한 덩이에 은화 다섯 닢이었다. 로웬이 샀던 가격의 스무 배가 넘는 폭리였다.
"오호, 장사가 아주 활기차군요."
피핀이 광대 모자의 방울을 흔들며 비죽거렸다.
"왕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폐하께서 드시다 남은 포도 찌꺼기를 성물이라고 속여 팔던 내관들이 있었거든요. 결국 그들은 자기들이 팔던 '성물'을 목구멍에 가득 채운 채 교수형에 처해졌지만요. 지금 저 풍경도 그때만큼이나 향기롭네요. 시체 썩는 냄새와 돈 냄새가 적절히 섞여서 말이죠."
그때, 한 순례자가 전 재산을 털어 산 검은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아아아...!"
순례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눈동자가 뒤집히고 입가에는 거품이 일었다. 주변 사람들이 경악하며 물러섰지만, 갈트는 당황하지 않고 외쳤다.
"보십시오! 죄업이 씻겨 내려가는 과정입니다! 성자의 고결함이 육신의 죄악과 충돌하며 발생하는 거룩한 경련입니다!"
로웬의 미간이 좁아졌다. 거룩한 경련 같은 게 아니다. 저 빵은 로웬이 올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곰팡이가 피기 직전의 눅눅한 밀가루에, 수도회의 그을음 냄새가 배어들었다. 배고픈 사람이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저 환각은 죄책감이 아니라 '지독한 허기'의 반작용이었다.
로웬은 이네스가 검을 뽑기 전에 먼저 가판대로 다가갔다.
"이 빵, 어디서 났지?"
갈트가 로웬을 보더니 잠시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로웬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온 뜨내기기에 성자의 은총을 의심하나? 이건 수도회에서 직접 수거해온, 성자께서 남기신 자취다!"
로웬은 대답 대신 가판대 아래를 살폈다.
바닥에는 검은 빵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빵가루는 기름칠이 덜 된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굴러가 있었다. 로웬은 코를 킁킁거렸다. 매캐한 그을음 냄새, 그리고 수도회 수선실에서 쓰던 저가형 보존용 소금의 짠맛이 느껴졌다.
"이 빵가루, 그리고 이 가격표의 잉크."
로웬이 손가락으로 가격표를 훑었다.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아 검게 묻어났다.
"수도회에서 가져온 거라면 잉크가 이렇게 번질 리가 없지. 네 놈, 아까 시장 입구 서기에게서 잉크와 양피지를 빌렸지? 그리고 이 빵 포대, 뒤집어보니 라벨이 붙어 있군. '성수 저장고 폐기용 밀가루'. 이걸로 빵을 부풀렸나?"
갈트의 안색이 변했다. 로웬은 가판대 구석에 놓인 환불 장부를 낚아챘다. 필체가 조잡했다.
"이 장부에 적힌 이름들, 전부 네 패거리들이군. 바람잡이를 써서 가짜로 사고파는 척을 했어."
"이, 이놈이 무슨 소리를! 감히 성자의 이름을 모독하다니!"
주변 순례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네스가 방패를 바닥에 쾅 찍었다.
"입을 닥쳐라, 도둑놈아. 네놈이 들고 있는 것이 성자의 소유라면, 어째서 내 눈앞의 이분이 분노하고 계시는가!"
이네스의 선언에 시장의 공기가 일변했다. 그녀가 버티고 선 자리가 마치 보이지 않는 성벽처럼 갈트와 군중 사이를 갈라놓았다.
로웬은 배가 고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다. 저 빵은 그가 오늘 밤을 버틸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로웬은 증거를 확정 짓기 위해 가판대 위에 놓인 빵 조각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성자께서 직접 시식하신다!"
누군가 외쳤다.
로웬은 빵을 씹었다. 젠장, 생각보다 더 딱딱했다. 톱밥과 뼛가루가 섞인 듯한 거친 식감이 식도를 긁고 내려갔다. 순간, 머릿속이 핑 돌았다. 지독한 허기가 환각이 되어 눈앞을 가렸다. 굶주려 죽어간 자들의 아우성이 귓가를 스치는 듯했다.
하지만 로웬에게 그것은 영적인 체험이 아니라, 단지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의 전형적인 식중독 증상'이었다.
"윽..."
로웬이 신음하며 가판대를 짚었다. 사람들은 로웬이 세상의 모든 굶주림을 대신 짊어지고 고통받는 줄 알고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성자시여!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받으시는군요!"
로웬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그냥 너무 맛이 없어서 그래!'
로웬은 떨리는 손으로 포대 자루를 확 뒤집었다. 쏟아져 나온 것은 성물이 아니라, 바닥을 구르는 빵가루와 먼지였다. 그는 가격표를 묶고 있던 줄을 낚아채 유도선처럼 시장 입구까지 이어진 수레 바퀴 자국 위로 내던졌다.
"이 선을 따라가면 네놈들이 숨겨둔 진짜 포대와 뼛가루 섞인 밀가루가 나오겠지."
로웬의 차가운 목소리에 갈트는 주저앉았다. 이네스가 검을 뽑아 갈트의 목에 겨누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자백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냥 성자님이 지나가시는 걸 보고 돈이 될 것 같아서...! 빵은 시장 뒤편 창고에 다 있습니다!"
결국 시장의 소동은 로웬이 '거짓 성물을 거두어 정화한'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상인들은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보셨습니까! 성자께서 직접 가짜를 가려내시고, 오염된 빵을 몸소 드셔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제 로웬이 빵가루를 털어낸 빈 자루를 '기적의 성포'라 부르며 다시 경매에 붙이려 들었다. 로웬은 기가 차서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그는 되찾은 검은 빵 세 덩이를 품에 소중히 안았다. 비록 침이 묻고 먼지가 앉았지만,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해결해야 했다.
시장 구석으로 물러난 로웬은 빵 포대를 정리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갈트가 가짜 빵을 만들 때 썼다던 밀가루 포대의 라벨 뒷면이었다. 거기에는 뼛가루 냄새가 진동하는 밀가루의 출처가 적혀 있었다.
[반품처: 북쪽 협곡, 풍차 마을. 사유: 원료 불분명(인골 성분 의심)]
"풍차 마을이라..."
피핀이 로웬의 어깨 너머로 라벨을 읽으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 풍차는 바람이 아니라 비명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있죠. 성자님, 다음 목적지는 맛있는 밀가루가 있는 곳인가요?"
로웬은 대답 대신 딱딱한 검은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빨이 나갈 것 같았지만, 다음 여정을 위해서는 이 지독한 현실의 맛을 견뎌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