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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준비 일러스트

각자의 준비

수업 후. 훈련 시설.

장석현이 기본 도술 훈련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무 훈련 봉을 거치대에 걸고,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훈련복 소매에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훈련 시설은 넓었다.

천장이 높고, 벽면에 방호 패드가 붙어 있었다.

이 시간이면 대부분의 학생이 빠지고

장석현 혼자 남는 게 일상이었다.

편입생은 기초 훈련 시간이 따로 배정되니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두 명.

규칙적이지 않은 걸음. 훈련을 마친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잠깐."

장석현이 고개를 들었다.

2학년. 교복 상의에 명문가 가문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금실로 수놓은 가문 휘장.

한 명은 팔짱을 끼고 있었고, 앞에 선 쪽이 장석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석현이 인사했다.

"선배님."

"너, 모의전 때 B반 팀이었지?"

"네."

"편입생이 모의전에서 눈에 띄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장석현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등 뒤로 거치대가 닿았다.

"저는 팀 임무를 수행했을 뿐"

"팀 임무?"

2학년이 거치대에서 훈련 봉을 집어 들었다.

장석현이 방금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벽면의 방호 패드에 소리가 울렸다.

"편입생 주제에 나대서

선도부한테 걸리면 귀찮아지는 거, 모르냐?"

장석현이 입을 열지 못했다.

뒤에 있던 2학년이 출입구를 등지고 섰다.

누가 들어오더라도 안쪽이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봉이 어깨를 쳤다. 세게는 아니었다.

정확히 타박상 정도의 힘. 하지만 분명한 가해였다.

장석현이 비틀거렸다.

거치대에 손을 짚었다.

왼팔에 통증이 번졌다.

근육이 아니라 뼈 위를 맞은 느낌이었다.

"다음에 눈에 띄면 이 정도로 안 끝나."

2학년이 봉을 내려놓고 갔다.

뒤따르던 쪽이 출입구를 비켰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졌다.

장석현이 바닥에 앉았다. 왼팔을 잡았다. 타박상.

소매를 걷어보니 빨갛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훈련 도구로 맞았으니 흔적이 남아도 증명하기 어렵다.

CCTV가 있어도 훈련 시설 내부는 '훈련 중 접촉'으로 분류된다.

교칙 7조. 살상이 아닌 한 교사 개입 불가.

이건 살상이 아니다. 그냥 '훈련 중 접촉'이 된다.

장석현이 소매를 내리고 일어섰다.

의무실로 갔다.

의무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침대 두 개. 캐비닛 하나.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의무실 선생이 팔에 파스를 붙여주었다.

파스 위를 손으로 꾹 눌렀다.

장석현이 얼굴을 찡그렸다가 참았다.

"훈련 중에 다쳤어?"

"네. 실수했습니다."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는 얼굴이었다.

신고 기록에는 '훈련 중 부상'이라고 적혔다.

장석현의 이름 옆에 같은 분류의 기록이 세 개 더 있었다.

은명이 의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점심에 장석현이 훈련 시설에서 안 나온다는 걸

통신기 로그로 확인했다. 그리고 의무실에 있다는 걸 봤다.

장석현이 은명을 봤다.

파스를 붙인 팔을 무의식적으로 뒤로 숨겼다.

"아, 홍은명 학생."

"팔."

은명이 장석현의 왼팔을 봤다.

숨기려 했지만 소매 위로 파스 모서리가 보였다.

파스 밑으로 멍이 번지고 있었다. 어제는 없던 색이다.

"괜찮아요. 원래 이래요."

또 그 말. 원래 이래요.

전에도 들었다. 그 전에도.

은명의 손이 떨렸다.

태블릿을 꽉 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원래가 아니잖아. 원래 이런 게 어딨어.

문이 열렸다.

전태산이 들어왔다.

뛰어온 것 같았다. 숨이 가빴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장석현의 팔을 보고 이가 물렸다.

턱 근육이 움직였다.

"누가 했어?"

장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태산 학생, 괜찮아요"

"괜찮지 않잖아."

전태산의 목소리가 낮았다.

평소의 쾌활한 톤이 아니었다.

의무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장석현이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였다.

은명이 태블릿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벽' 폴더.

사례 7.

'훈련 시설 가해.

대상: 장석현.

가해자: 2학년 명문가.

처리: 교칙 7조 — 선도부 자동 분류 기각.'

7건. 전부 기각.

피해자도 다르고, 가해자도 다르고, 장소도 다른데

결과는 전부 같았다.

은명이 전태산을 봤다.

전태산이 은명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야간. CCTV 사각지대. 운동장 뒤편.

달빛이 내리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이라 그림자가 선명했다.

운동장 뒤쪽의 잔디밭은 낮에는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밤이면 CCTV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된다.

전태산이 은명에게 통신을 보냈다.

'훈련하자.'

답이 오기까지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뭘?'

'모르겠어. 근데 이대로는 안 되잖아.'

곧바로 답이 왔다.

'사각지대 3번. 10시.'

전태산이 씩 웃었다.

CCTV 사각지대를 번호까지 매겨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거다.

역시.

운동장 뒤편.

달빛이 풀밭을 비추고 있었다.

벌레 소리가 낮게 깔렸다.

풀잎 위에 이슬이 맺혀서 발에 축축한 감각이 전해졌다.

전태산이 먼저 와 있었다.

교복을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상태.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있었다.

발소리.

은명이 왔다.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화면 밝기를 최저로 낮춰놓은 상태.

빛이 새지 않도록 신경 쓴 흔적이었다.

전태산이 손목시계를 봤다.

"늦었어?"

"딱 맞았어."

"3분 지났는데."

은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3분은 오차 범위야."

"내 사전에는 지각이야."

"네 사전은 좁아."

전태산이 하하 웃었다.

웃음이 밤 공기에 울려서 은명이 손을 올렸다.

"소리 줄여. 사각지대라도 소리는 잡혀."

전태산이 입을 손으로 막으며 킥킥 웃었다.

은명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앉지도 않았다.

전태산이 권법 기본 자세를 잡았다.

테무진한테 진 뒤로 기초부터 다시 하고 있었다.

오늘 의무실에서 장석현의 팔을 본 뒤로 주먹에 힘이 더 들어갔다.

좌권. 우권. 도약. 착지.

반복.

풀밭에서 연습하니 착지할 때마다 흙이 밀렸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은명이 태블릿으로 전태산의 동작을 녹화했다.

슬로우 모션 분석 앱을 켜고 프레임 단위로 잡았다.

5분 뒤 은명이 화면을 봤다.

프레임을 되감으며 특정 구간을 멈췄다.

"발이 느려."

전태산이 멈췄다. 숨이 가빴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뭐가?"

"도약 전 0.3초 딜레이가 있어.

무릎이 굽혀지고 나서 발이 떨어지기까지.

그 틈에 렌한테 걸린 거야."

전태산이 자기 발을 봤다.

풀밭에 찍힌 발자국을 봤다.

도약 전에 발이 한 번 더 밀린 흔적이 있었다.

"0.3초? 그걸 어떻게 줄여?"

"축지법 원리를 도약에 적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

은명이 태블릿에서 분석 화면을 넘겼다.

슬로우 모션 영상 위에 궤적선을 그려놓았다.

"축지법의 핵심은 도약 직전 선행동작을 최소화하는 거야.

보통 도약은 무릎 굽힘→발바닥 압력→이탈 3단계인데

축지법은 내공으로 지면 반발을 압축해서 2단계로 줄여.

이론상으로는 딜레이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야 해.

아직 이론뿐이지만."

전태산이 은명을 봤다.

"이론이면 해봐야 아는 거잖아."

"이론이 맞는지 먼저 데이터를 모아야 해."

"그러면 내가 때릴 테니 니가 분석해."

전태산이 주먹을 날렸다.

은명이 태블릿으로 궤적을 잡았다.

분석. 수정 포인트 전달. 다시 날렸다.

은명이 말했다.

"무릎을 덜 굽혀. 지금은 너무 깊어."

전태산이 깊이를 줄이고 다시 뛰었다.

착지했다. 풀밭이 패였다.

"어때?"

"거의 같아. 무릎 각도 문제가 아니야.

내공 압축이 안 되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

전태산이 혀를 찼다. 다시 도약. 다시 분석.

반복.

딜레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 시간.

운동복이 땀에 젖었다.

달이 위치를 바꿔서 그림자 방향이 달라져 있었다.

전태산이 풀밭에 누웠다.

이슬이 등에 스며들었지만 일어나기 싫었다.

"안 되네."

은명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첫날이니까."

"위로야?"

"데이터가 부족할 뿐이야. 반복하면 패턴이 보일 거야."

은명이 잠깐 데이터를 봤다.

그래프를 확대했다. 마지막 시도 세 번의 수치를 비교했다.

"……다만."

전태산이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세 번은 선행동작이 미세하게 짧아졌어.

0.3초가 0.28초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갔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어도 방향은 맞아."

전태산이 누운 채 웃었다.

"그걸 위로라고 안 하면 뭐라고 해?"

"관측 결과야."

전태산이 일어나 앉았다.

풀잎이 등에 붙어 있었다. 손으로 턱턱 털었다.

"매일 오자."

은명이 태블릿을 접었다.

"……데이터가 쌓이려면 반복이 필요하니까."

전태산이 씩 웃었다.

"그거 매일 온다는 뜻이잖아."

은명이 고개를 돌렸다.

태블릿을 접는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하지만 일어서면서 내일 시간을 정하고 있었다.

"10시."

"10시 정각?"

"당연하잖아."

"알겠어~"

둘이 각자의 방향으로 걸었다.

풀밭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남았다.

전태산의 것은 깊고, 은명의 것은 얕았다.

달빛이 길었다.

심야. 은명의 방.

훈련 후 돌아온 은명이 태블릿을 열었다.

운동화에 묻은 풀과 이슬을 닦아내고 나서

침대에 앉아 화면을 켰다.

위노나 메시지.

'야간 전력 이상 패턴을 찾았어.

매주 수요일 새벽 2시~3시,

D동 지하에서 비정상 전력 소비가 발생해.

소비 패턴이 서버급이야.

일반 시설에서 나올 수준이 아니거든.'

은명이 패턴을 확인했다.

수요일 새벽. 모의전 데이터 유출 시점과 겹쳤다.

전력 그래프를 겹쳐보니 스파이크가 완전히 일치했다.

은명이 메모를 열었다.

'수요일 새벽. D동 지하.

전력 스파이크 — 서버급.

다음 주 확인 필요.'

은명이 태블릿 화면을 정리했다.

폴더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 — 사례 7개.

커서를 올리자 가장 최근 사례가 떴다.

장석현. 훈련 시설. 오늘.

파스 밑으로 번지던 멍의 색이 떠올랐다.

'바깥에서 보는 눈' — 추적 진행 중.

위노나의 새 메시지가 미읽음 상태로 걸려 있었다.

D동 지하. 수요일 새벽. 처음으로 물리적 위치가 특정됐다.

그리고.

은명이 새 폴더를 만들었다.

폴더 이름을 치는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가 움직였다.

'비공식 훈련 로그.'

전태산의 전투 데이터가 첫 번째 파일이 됐다.

'도약 전 0.3초 딜레이.

무릎 굽힘→발바닥 압력→이탈 3단계 중 1단계 과잉.

축지법 적용 가설 — 도약 선행동작 단축에 유효할 가능성.

1일차 — 유의미한 감소 없음(0.28초 순간 관측, 비재현).

방향성은 확인. 반복 필요.'

은명이 세 개의 폴더를 봤다.

안의 벽. 바깥의 눈.

둘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이 학원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방향.

그리고 세 번째 폴더는.

은명이 화면을 닫으려다 멈췄다.

전태산의 전투 데이터 파일.

슬로우 모션 영상의 섬네일이 걸려 있었다.

도약 직전. 무릎이 굽혀진 채 멈춘 프레임.

어제 옥상에서 들은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근거 없어도 진짜인 것도 있잖아.'

은명이 태블릿을 닫았다.

어두운 방. 천장을 봤다.

창밖에서 벌레 소리가 들렸다.

아까 풀밭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소리.

인정하면 지는 거라고 했잖아.

……근데 이미 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은명이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잠들었다.

옥상의 라면 냄새 같은 게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D-2. 수요일 새벽까지.

작가의 말

3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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