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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라면 일러스트

옥상의 라면

다음 날 저녁. 기숙사 옥상.

해가 기울고 있었다.

저녁 하늘이 주황에서 보라로 바뀌는 사이

옥상 콘크리트 위로 긴 그림자가 비스듬히 누웠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철제 난간이 바람을 받아 가늘게 울렸다.

전태산이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찰칵 소리와 함께 파란 불꽃이 피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냄비 뚜껑이 덜그럭거렸다.

라면 두 개가 봉지째 놓여 있었다.

하나는 자기 거.

하나는.

……오겠지.

매점에서 사올 때 두 개 집은 건 무의식이었다.

거짓말이다. 의식적으로 두 개 집었다.

계산대 앞에서 하나를 내려놓을까 잠깐 고민했다가

그냥 들고 나왔다.

딱히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옥상은 넓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철제 난간.

난간 너머로 기숙사 중정이 내려다보였다.

저녁을 먹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의 실루엣이 점처럼 움직였다.

바람 소리.

쉬이

전태산은 혼자라고 생각했다.

냄비 속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만 옥상에 울렸다.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렸다.

은명이 서 있었다.

교복 소매를 손목까지 내린 채, 태블릿을 들고 있지 않았다.

처음 보는 거다. 태블릿 없는 은명.

양손이 비어 있으니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전태산이 씩 웃었다.

"어, 왔네?"

은명이 옥상으로 나왔다.

문이 경첩에 끌려 천천히 닫혔다.

쿵, 하는 소리가 옥상에 울렸다.

"답장을 안 한 건 안 간다는 뜻이 아니야."

"그래? 근데 라면 두 개인데?"

전태산이 냄비를 가리키며 웃었다.

물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은명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

시선이 라면 봉지 두 개를 스치고 지나갔다.

"……알고 있었으면서."

"알고 있었으면 뭐~"

전태산이 봉지를 뜯어 면을 넣었다.

건더기 스프를 뿌리자 국물이 붉게 물들었다.

분말 스프를 섞으니 매운 냄새가 바람에 실려 퍼졌다.

은명이 난간 옆에 앉았다.

콘크리트 바닥에 다리를 뻗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태블릿이 없으니 손이 갈 곳이 없었다.

손가락을 한번 구부렸다 폈다. 결국 주머니에 넣었다.

라면이 끓었다.

국물이 넘칠 듯 부글거리자 전태산이 불을 줄이고 냄비째 가져왔다.

은명 옆에 앉았다.

어깨 사이로 팔 하나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젓가락 두 쌍. 하나를 은명에게 건넸다.

은명이 받았다. 손끝이 잠깐 스쳤다.

냄비 하나에 젓가락 두 쌍.

먹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 사이로 면 먹는 소리가 섞였다.

후루룩.

국물이 따뜻했다.

저녁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김이 유독 하얗게 올라왔다.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하늘이 보라에서 남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첫 번째 별이 하나 떴다.

전태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너도 가끔 그래?

남의 집에서 자란 느낌."

은명의 젓가락이 멈췄다.

면이 젓가락 끝에 걸린 채 바람에 흔들렸다.

"……지금 진지한 거야?"

"응. 근데 진지한 거 싫으면 안 해도 돼."

전태산의 목소리에 평소의 장난기가 빠져 있었다.

진지한 전태산. 이것도 자주 보는 건 아니다.

은명이 냄비를 봤다. 면이 불고 있었다.

"왜 갑자기."

"어제 테무진한테 맞고 옥상에서 혼자 있었거든.

그때 생각난 거야."

전태산이 하늘을 봤다. 별이 하나 더 떴다.

"전씨세가 후손인데 홍씨세가에서 자랐잖아.

가끔 이상하지 않아?"

은명이 대답하지 않았다.

젓가락을 냄비 안에 내려놓고 국물 위의 기름막을 봤다.

기름이 냄비 벽에 닿았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 한참 보고 있었다.

전태산이 계속 말했다.

"나도 그래.

홍씨세가 사람인데 전씨세가에서 컸어.

가족은 저쪽인데 피는 이쪽이야.

가끔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어."

바람이 불었다. 라면 국물에서 김이 올라왔다.

은명이 라면을 먹다 멈췄다.

이 사람도 같은 걸 느끼고 있었어.

데이터가 아니라 감각으로.

분석해서 알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닌데

이 사람은 그냥 입에 올렸다. 아무렇지 않게.

은명이 입을 열었다.

"전씨세가에서 자랄 때,

사람들이 날 볼 때마다 홍씨세가 장손이라고 했어."

전태산이 면을 씹다 멈추고 은명을 봤다.

"원래 이쪽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를 안 내서 몰랐을 뿐이지, 시선은 항상 있었어."

은명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면

앉을 자리가 항상 구석이었어.

아무도 나쁜 말을 하진 않는데

대화에 끼지 못하는 건 매번 같았지."

전태산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은명을 봤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게 편한 건가."

"……편한 건 아니야. 익숙한 거지."

바람이 멈췄다. 잠깐의 정적.

옥상 위로 하늘만 넓게 빈 채 남아 있었다.

어디선가 기숙사 출입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 다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전태산이 다시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나는 반대야.

홍씨세가에서 자랐는데

거기 사람들은 전부 규율이 빡세거든.

밥 먹는 순서, 말하는 순서, 앉는 순서.

전부 정해져 있어.

난 맞질 않았어. 근데 가족이잖아."

씩 웃었다. 웃음인데 씁쓸했다.

"이상하지. 맞지 않는 곳이 가족이라니."

두 사람이 동시에 침묵했다.

냄비 안의 국물이 식으며 소리가 잦아들었다.

은명이 말했다.

"500년의 맹약 때문이래."

전태산이 고개를 돌렸다.

"뭔데 그거?"

"몰라. 아직.

아버지가 얘기를 안 해줘.

때가 되면 알려준다고만."

전태산이 턱을 괴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

물어볼 때마다 어른들이 입을 다물어.

……그래서 그냥 기다리는 거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준비하는 거야.

데이터가 모이면 답이 나올 거니까."

전태산이 씩 웃었다.

"너답다."

"뭐가."

"데이터가 모이면 답이 나온다니까.

난 그냥 부딪히면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은명이 전태산을 봤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전태산의 표정이 보였다.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근데 안 나왔잖아. 테무진한테 맞고서."

전태산이 라면을 씹다 멈췄다.

젓가락이 냄비 모서리에 부딪혔다. 탁, 작은 소리.

"……그건 아프다."

잠깐의 침묵. 바람이 다시 불었다.

난간 너머로 기숙사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전태산이 말했다.

"안 나왔으니까 다시 부딪힐 거야. 근데."

은명을 봤다.

"네가 보고 있으면 좀 달라질 것 같아."

은명의 시선이 국물 위에 멈췄다.

젓가락을 든 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데이터에 근거가 없는 주장이야."

"근거 없어도 진짜인 것도 있잖아."

은명이 라면에 시선을 내렸다.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라면이 식어가고 있었다.

국물에 기름이 엷은 막을 쳤다.

김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전태산이 말했다.

"다 식었다. 빨리 먹어."

은명이 젓가락을 들었다.

남은 면을 먹었다.

면이 불어서 식감이 달랐지만 은명은 남기지 않았다.

냄비가 비었다. 국물만 조금 남았다.

전태산이 냄비를 들고 일어섰다.

은명이 일어섰다.

옥상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등이 희미하게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각자의 방으로. 아무 말 없이.

전태산이 문 앞에서 한 번 뒤를 봤다.

은명은 이미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등이 보였다가 문이 닫혔다.

전태산이 씩 웃었다.

"오긴 왔네."

방에 들어갔다.

냄비를 세면대에 놓고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남은 국물을 밀어냈다.

창밖으로 하늘을 봤다.

별이 꽤 떠 있었다.

내일도 오려나.

물어보면 안 온다고 할 거니까 물어보지 말자.

은명이 방에 돌아왔다. 불을 켜지 않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바닥에 사선을 그었다.

침대에 앉았다. 태블릿을 열었다.

화면이 켜지자 어둠에 익은 눈이 찡그려졌다.

밝기를 낮추고 메모장을 열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근거 없어도 진짜인 것도 있잖아.

그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라면 먹는 동안에는 무시할 수 있었는데

혼자 돌아오니까 다시 떠올랐다.

……데이터에 근거가 없는 주장. 그건 사실이야.

근데.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표정은 진짜였다.

은명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이불 위에 올려놓고 천장을 봤다.

다시 태블릿을 들었다. 화면을 봤다.

커서만 깜빡거렸다.

닫았다.

어딘가.

모니터 앞에 앉은 존재가 화면을 봤다.

모니터 불빛이 어둠 속에서 윤곽만 비추고 있었다.

기숙사 옥상 CCTV 로그.

위노나가 발견한 유출 경유 노드와

같은 경로를 거쳐 접근한 로그였다.

두 사람이 라면을 먹는 장면이

타임스탬프와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19:42:07. 도착.

19:43:22. 착석.

20:31:54. 퇴장.

약 48분간의 접촉.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데이터가 갱신됐다.

'파트너십 형성 진행도: 37%.

행동 패턴·대화 빈도 기반 산출.

핵심 변수 "신뢰도" 항목 추가.'

작가의 말

3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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