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건, 0건
아침. 기숙사 복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의무실로 향하는 들것 위에 편입생 하나가 누워 있었다.
왼팔이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다. 골절.
장석현이 들것 옆에서 따라 뛰고 있었다.
"형, 괜찮아? 형!"
편입생이 이를 악물었다.
대답 대신 신음이 새어 나왔다.
복도에 서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떤 놈은 혀를 찼고, 또 어떤 놈은 보지 못한 척 걸어갔다.
들것이 복도를 꺾을 때 바퀴가 삐걱거렸다.
그 소리 말고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뒤쪽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또야?"
그 한마디에 장석현의 등이 굳었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의무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흰 벽, 흰 침대, 흰 커튼. 전부 흰색이었는데
그 안에 누운 편입생의 팔만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의무교관이 팔에 부목을 대면서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번엔 골절이네."
"실전 적응 훈련 중 접촉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석현이 대신 보고했다.
겨우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의무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고 기록에 '훈련 중 부상'이라고 적혔다.
장석현이 기록을 봤다.
같은 분류의 기록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세 번째다. 전부 같은 네 글자 — 훈련 중 부상.
피해자가 장석현의 소매를 잡았다.
손가락에 힘이 없었다.
"선생님은요?"
"……응?"
"교관님은요? 누군가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장석현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할 말이 없었다.
소독약 냄새만 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장석현이 의무실을 나선 발걸음이 교관실로 향했다.
보고서 양식은 이제 외울 정도였다.
세 번째 작성이니까.
복도 창으로 오전 햇살이 들어왔다.
발밑에서 운동장 쪽 함성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평범한 하루. 누군가에게는.
운소하가 보고서를 받았다.
읽었다. 한숨이 섞였다.
"확인하겠다."
장석현이 봤다.
운소하의 한숨이 처음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보고서를 내려놓는 손의 위치도 달랐다.
처음에는 책상 가운데, 두 번째는 구석, 이번에는 서랍 위.
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교관님."
"응."
"이번엔 뼈가 부러졌어요."
운소하가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석현아."
"네."
"……교칙 7조. 살상이 아닌 한 교사 개입 불가.
알지?"
"네."
골절은 살상이 아니다.
규칙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석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누가 해요?"
운소하가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장석현을 봤다.
입을 열려다 닫았다. 장석현과 같은 표정이었다.
장석현이 교관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전태산을 만났다.
"형."
"석현아, 괜찮아?"
전태산이 다가오며 장석현의 얼굴을 훑었다.
다친 건 장석현이 아닌데, 전태산의 눈은
장석현의 상태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근데 형, 또예요. 이번엔 뼈가 부러졌어요."
전태산의 표정이 굳었다.
턱 근육이 움직이고, 주먹이 쥐어졌다.
"누가 했어?"
"2학년이요.
근데 증거가 없어요. 훈련 중 접촉이라고"
"접촉? 뼈가 부러졌는데?"
전태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복도를 지나던 학생 하나가 슬쩍 시선을 주고는 빠르게 돌아갔다.
장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교칙 7조예요, 형. 뭘 해도 기각이에요."
"알고 있어. 씨"
전태산이 벽을 쳤다.
벽에 금이 갔다. 먼지가 가루처럼 떨어졌다.
장석현이 놀라서 물러섰다.
전태산이 손을 내렸다.
손마디에 벽 먼지가 묻어 있었다.
"……미안."
"괜찮아요. 벽이 고소하겠지만."
장석현이 작게 웃었다.
전태산은 웃지 못했다.
복도가 다시 조용해졌다.
균열이 간 벽만 남아 있었다.
밤. 기숙사. 홍은명의 방.
태블릿 화면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지만
방 안을 채우는 빛은 화면뿐이었다.
은명이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의무실 기록, 학생회 공지, 익명 제보 로그 —
3월부터 6월까지 수집 가능한 모든 피해 사례를 입력했다.
날짜, 장소, 피해자, 가해자, 부상 정도, 처리 결과.
스크롤을 내렸다.
줄이 스물세 개다.
은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리 결과 열을 훑었다.
전부 같은 단어들이 줄줄이 반복되고 있었다.
기각. 증거 불충분. 훈련 사고. 조사 종결.
은명이 집계를 돌렸다.
비명문가·편입생 피해 보고, 23건.
학생회 조치, 0건.
선도부 조치, 0건.
교관 조치, 0건.
23건, 0건.
23건의 보고. 어느 것 하나 조치된 적이 없다.
이게 체제의 답이야.
은명이 태블릿을 세워 놓고 패턴을 분석했다.
4월, 타박상 세 건.
5월, 염좌 네 건.
6월, 골절.
에스컬레이션이 보였다. 점점 세지고 있다.
다음 달은 뭘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프는 거짓말을 안 한다.
통신 알림이 울렸다.
위노나 메시지.
'은명, 익명 게시판 데이터 봤어?
피해자 정보가 외부에서 유입되고 있어.'
은명이 익명 게시판을 열었다.
오늘 골절 사건 피해자의 데이터가 올라와 있었다.
시간표, 훈련 시설 이용 시간, 약점 분석.
게시 일자를 확인했다. 사건 3일 전이다.
정보가 먼저 뿌려지고, 그 뒤에 가해가 일어났다.
우연이 아니었다. 타이밍이 맞아.
은명이 IP를 추적했다. 교내 서버가 아니었다. 외부 경유.
은명이 키보드를 멈췄다.
누군가 밖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어.
지난번 데이터 유출과 같은 패턴이야.
은명이 위노나에게 답신했다.
'오리진이 같아.
바깥에서 교내 갈등을 키우는 누군가가 있어.'
위노나: '증거는?'
'아직 부족해. 하지만 패턴은 확실해.'
은명이 통신을 닫고 스프레드시트로 돌아왔다.
화면 위에서 통신 알림이 한 번 더 깜빡였다.
익명 게시판 갱신 알림.
새로운 피해자 정보가 또 올라와 있었다.
은명의 손이 멈췄다.
벌써?
……아직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은명이 이를 악물었다.
23건, 0건.
세 달 동안 보고서가 올라갔다.
전부 돌아왔다. 같은 답과 함께.
바깥의 누군가가 이 갈등을 키우든 안 키우든.
체제가 방관한 건 사실이야.
은명이 태블릿 메모를 열었다.
며칠 전에 적어둔 한 줄이 떠올랐다.
'규칙이 못 지키면, 규칙 밖에서 지킨다.'
은명이 그 줄을 오래 봤다.
화면의 불빛이 눈에 반사되어 떨렸다.
메모가 아니야. 이건 이제 계획이야.
새 파일을 만들었다.
'비공식_조직_구상.txt'
빈 화면. 커서가 깜빡였다.
은명이 타이핑을 시작했다.
첫 줄에 '목적'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체제가 못 지키는 사람을 지킨다'고 적었다.
두 번째 줄. '필요 인원'. 최소 3명.
전투, 정보, 전략.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은명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무렵,
자정이 가까운 체육관 뒤편에서는
전태산이 샌드백을 때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세게.
둥. 둥. 둥둥.
스물세 번.
아무도 안 움직인 게 스물세 번.
전태산이 주먹을 멈췄다.
손마디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테이프를 감지 않은 주먹이었다.
하늘을 봤다. 별이 보였다.
바람이 없는 밤이었다.
때리면 내가 걸려.
안 때리면 또 당해.
그러면 뭘 해야 하지?
주머니가 진동했다. 태블릿.
은명 메시지.
'내일 점심 옥상. 할 말 있어.'
전태산이 화면을 봤다.
"……옥상?"
주먹에 남은 열기가 식기도 전에 답장을 쳤다.
'라면은?'
은명: '라면 아니야. 진지한 거야.'
전태산이 씩 웃었다.
'진지한 건 라면 한 그릇이 한계라며.'
은명: '한계 넘는 얘기야.'
전태산이 태블릿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샌드백 앞에 섰다.
주먹을 올렸다.
이번에는 리듬이 달랐다.
분노가 아니었다.
둥. 둥.
규칙적이고 단단한 박자.
준비하는 리듬이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선명해졌다.
첫 번째 모집 대상 — 장석현.
✦ 작가의 말
3차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