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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 일러스트

포석

체육대회 1일차. 개인 대련 예선.

경기장이 열기로 가득했다.

관람석을 채운 학생들의 목소리가

결계 벽을 타고 울렸다.

출력 제한 결계가 바닥에 푸른빛으로 깔려 있고,

중재 교관 두 명이 링 양쪽에 대기 중이었다.

전태산. 예선 1라운드.

상대는 A반 중위권. 검술 계열.

이름보다 검이 먼저 기억나는 부류였다.

시작 신호가 울렸다.

상대가 검을 뽑았다. 빠른 찌르기.

궤적이 깔끔했다.

태산이 왼쪽으로 빠졌다.

하산의 말이 떠올랐다.

왼쪽 하단에 빈틈이 있다.

공격을 버리지 못해서 생기는 틈.

1학기였으면 봤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치고 들어갔을 것이다.

태산이 공격을 참았다.

먼저 치지 않았다.

상대의 2격째가 빗나갔다.

그 순간, 금강불괴의 오른손이

상대 검의 측면을 쳤다.

둥.

검이 튕겼다.

상대의 자세가 무너졌고,

쓸어내리는 발차기 한 방.

끝.

깔끔했다.

1학기의 태산이 아니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돌파가 아니라

기본기가 체계적으로 자리잡은 전투.

관람석에서 운소하가

태블릿을 한 번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이 헛되진 않았군."

관람석 중간쯤에서 속삭임이 돌았다.

"활빈당 전태산이 저렇게 바뀌었어?"

"1학기엔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놈이었는데."

"기본기가 달라졌어. 아예 다른 사람 같아."

태산이 경기장을 나왔다.

주먹을 내려다봤다. 쥐는 감각이 달랐다.

참는 게 이렇게 효과가 있었어.

하산 선배가 말한 대로다.

치려는 순간, 지키는 걸 잊는다.

오늘은 안 잊었다.

태산의 예선이 끝난 직후,

2라운드 대진표가 전광판에 올라왔다.

올가 볼코바. 예선 2라운드.

상대는 B반 상위권. 권법 계열.

눈빛이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주먹을 풀며 링에 올라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시작 신호.

상대가 달려왔다.

올가는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수호벽.

투명한 빛이 반원 형태로 펼쳐졌다.

상대의 주먹이 벽에 닿았다.

퉁.

주먹이 튕겼다.

한 번 더. 기합과 함께. 더 세게.

벽이 안 깨졌다.

다시. 다시.

상대의 주먹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손마디에 피가 배어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5분이 지났다.

상대가 숨을 몰아쉬었다.

무릎에 손을 짚었다.

올가는 서 있었다.

이마에 땀줄기가 하나 흘렀지만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시간 초과. 올가 승리.

올가가 수호벽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무표정.

"공격은 안 했어."

한 박자.

"지킨 것뿐이야."

체제파 관람석이 동요했다.

"저 1학년이 올가 볼코바?"

"수호 계열이 저 수준이면

깃발 쟁탈전이 까다로워지겠군."

테무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팔짱을 낀 채 올가의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옆에서 이자벨라가 말했다.

"볼코바 올가. 슬라브 수호술의 계승자."

한 박자.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활빈당에 들어간 이유가 궁금했는데.

실력을 보니 이해가 돼."

한 박자.

"보호할 것을 찾은 거야."

개인 예선의 열기가 채 식기 전, 오후.

장애물 돌파 예선이 시작됐다. 4인 1조.

활빈당 A조. 은명. 리오. 카이. 아르준.

출발선에서 은명이 코스를 훑었다.

결계 미로, 이동 표적 타격,

지형 변동 구간, 최종 방어벽 돌파.

네 구간을 순서대로 통과하는 방식이었다.

은명이 세 명을 돌아봤다.

"정찰이야. 기록보다 상대 팀 데이터 수집이 우선이니까

무리하지 마."

A조 편성 자체가 그 의도를 담고 있었다.

분석 조(은명+아르준)와

변수 대응 조(리오+카이)를 한 팀에 몰아넣은 것.

예선에서 체제파의 반응 패턴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출발.

결계 미로.

은명이 전자부적으로 결계 패턴을 분석했다.

부적의 빛이 벽면을 스치며 데이터를 읽어냈다.

"우측 3번째 교차로. 가짜 벽이야."

리오가 벽을 뚫고 지나갔다.

가짜 벽이 흩어지며 빛 입자가 뿌려졌다.

이동 표적.

나무 인형 3개가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은명이 아르준을 봤다.

아르준이 잠시 눈을 감았다.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계산 중이었다.

눈을 떴다.

"흔들림 패턴, 약 2초 주기.

다음 노출 타이밍, 곧이야."

"리오."

"오케이!"

리오가 뛰었다.

카포에라 스텝으로 낮게 접근하며

세 개를 연달아 맞혔다.

나무 인형이 뒤로 넘어가며 녹색불이 들어왔다.

통과.

지형 변동 구간.

바닥이 요동쳤다.

불규칙하게 올라가고 내려갔다.

카이가 바닥에 손을 댔다.

마나가 손바닥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Kia ora! 바닥은 내 거야!"

바닥의 요동이 미세하게 안정됐다.

카이가 팀의 경로 앞을 평탄하게 만들어갔다.

그때 뒤쪽 바닥이 다시 솟아올랐다.

카이가 한 발 늦게 뒤를 돌아봤다.

"아 잠깐, 저쪽도!"

리오가 뒤에서 소리쳤다.

"카이! 앞만 봐! 뒤는 내가 뛴다!"

리오가 솟아오른 바닥을 발판 삼아 도약했다.

착지하며 뒤쪽 인형까지 발로 차 넘겼다.

실수가 아니라 적응이었다.

관람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둘 진짜 사고뭉치네."

"근데 결과적으로 되잖아."

팀 전원이 최적 경로로 이동했다.

아르준이 실시간으로 계산하며 은명에게 전달했다.

"다음 구간, 우측으로 약간만.

속도가 조금 빨라집니다."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았어. 리오, 표적 2번 먼저."

최종 방어벽.

은명의 전자부적이 방어벽의 결계 코드를 읽어냈다.

취약점이 떠올랐다. 부적 빛이 한 점에 집중됐다.

"리오, 여기."

리오의 화염 발차기가 취약점에 꽂혔다.

벽이 갈라졌다.

결과. 예선 상위권 통과.

하지만 체제파 팀이 1위였다.

제갈린의 드론 진법이 코스 전체를 조감도로 장악하며

전 구간 최단 동선으로 돌파한 것이다.

은명이 결과판을 봤다. 눈이 좁아졌다.

제갈린의 진법.

모의전 때보다 확실히 빨라졌어.

드론 제어가 정밀해졌다.

깃발전에서도 저 방식으로 올 거야.

밤. 활빈당 아지트.

은명과 위노나가

예선 데이터를 태블릿에 펼쳐놓고 있었다.

위노나의 토템 드론이 수집한 영상이

화면 위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체제파의 깃발 쟁탈전 진형.

제갈린의 팔진도 배치와 비슷해.

드론이 핵심이야."

위노나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팔진도의 약점은 중앙 제어 노드.

제갈린 본인이야.

제갈린을 흔들면 진이 흔들려."

아르준이 팔짱을 풀며 말했다.

"하지만 테무진이 제갈린 앞을 막고 있습니다.

정면 돌파로는 테무진을 뚫어야 해요."

은명이 태블릿을 내려놨다.

"정면으로 가지 않아."

한 박자.

"태산에게는 다른 역할이 있어."

위노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뭘 생각하고 있어?"

은명이 대답하지 않았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다.

태산이 벽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물었다.

"다른 역할이 뭔데?"

"내일 알려줄게."

"……또 그러네."

같은 시간. 학생회실.

제갈린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활빈당 7인의 능력치 차트.

카이나보아의 지형 조작에 빨간 표시.

올가 볼코바의 수호벽에 빨간 표시.

손가락이 화면 위를 움직였다.

데이터를 하나씩 넘겼다.

"홍은명.

모의전 때 전태산의 이탈을 실시간 수정했어.

정석이 아니라 변수 활용."

안경을 올렸다. 렌즈에 화면 빛이 반사됐다.

"이번엔 변수까지 시뮬레이션했어."

"지형 조작은 진법으로 상쇄 가능."

한 박자.

"수호벽은."

침묵. 손가락이 멈췄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깨뜨릴 수 있어."

문이 열렸다.

이자벨라가 서 있었다.

코트 자락을 여미며 안으로 들어왔다.

"준비는 됐어?"

제갈린이 일어섰다.

"전략은 완료했습니다."

한 박자.

"하지만 홍은명은

전략 밖에서 움직이는 놈이에요."

이자벨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준비를 더 했잖아."

한 박자.

"내일 보여줘."

제갈린이 고개를 숙였다.

문이 닫혔다.

화면 위에 홍은명의 이름이 깜빡이고 있었다.

체육대회 2일차 아침. 깃발 쟁탈전 경기장.

하늘이 맑았다.

바람이 차가워진 10월의 아침이었다.

경기장 위로 깃발 시스템의 결계가

반투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양 팀이 입장했다.

활빈당 7인이 왼쪽, 체제파 7인이 오른쪽.

관람석이 가득 찼다.

학년 구분 없이 서서 보는 학생들까지 있었다.

3학년 관람석 한쪽에 하산의 모습이 보였다.

팔짱을 낀 채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명과 제갈린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작하자.

끝내주겠어.

주심 교관이 호각을 들었다.

정적.

바람 소리만 경기장을 스쳤다.

그때, 경기장 외곽 결계에서

미세한 노이즈가 흘렀다.

짧았다. 눈 깜빡할 사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도, 위노나만 빼고.

위노나의 눈이

경기장 동쪽 결계선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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