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면
호각이 울렸다. 깃발 쟁탈전 시작.
양 팀 7인이 움직였다.
야외 전투 필드. 중앙에 장애물 지형이 놓여 있고,
양 끝에 각 팀의 깃발이 서 있었다.
제갈린이 손을 올렸다.
드론이 날았다.
은색 비트가 필드 전체에 퍼지며
결계 진법이 형성됐다.
팔진도 2.0.
빛의 선이 바닥 위에 그어졌다.
체제파 7인이 진법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야.
팔진도.
하지만 이번엔 드론이 더 많다.
모의전 때의 두 배.
"카이."
은명이 외쳤다.
"바닥."
"오케이!"
카이가 바닥에 손을 댔다.
마나가 손바닥을 타고 흘렀다.
필드 중앙의 바닥이 미세하게 변형됐다.
드론 3기의 비행 경로가 틀어졌다.
진법의 한 구간이 흔들렸다.
제갈린의 눈이 움직였다.
"재배치."
드론이 경로를 수정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진법이 복구됐다.
카이가 소리쳤다.
"어? 금방 돌아와? 이거 귀찮은데!"
빠르다. 제갈린.
진법 제어 속도가 올랐어.
전선.
태산이 돌파를 시작했다. 정면.
쁘아카오가 막아섰다.
갈색 팔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노 강화 코팅이 빛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였다.
"전태산."
쁘아카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예선 봤어. 달라졌더라."
태산이 주먹을 올렸다.
"그래? 좋아. 재밌어졌어."
쁘아카오의 무릎이 올라왔다.
빠르다.
태산이 왼팔로 막았다.
금강불괴가 반응했다.
충격이 팔을 타고 울렸다.
1학기라면 밀렸을 타이밍이었다.
지금은 버텼다.
태산의 오른주먹이 나갔다.
쁘아카오가 팔꿈치로 쳐냈다.
교환. 교환. 교환.
어느 쪽도 밀리지 않았다.
쁘아카오가 뒤로 물러섰다.
숨을 고르며 태산을 다시 봤다.
"달라졌네, 전태산."
태산이 숨을 골랐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정도면 아직 시작이야."
그 사이 리오가 측면에서 유격 돌파를 시도했다.
왼쪽 루트, 빠른 기동.
마르쿠스의 중거리 공격이
리오의 경로를 막았다.
리오가 몸을 틀었다. 1발은 피했다.
2발째가 어깨를 스쳤다.
"근접으로 못 가!"
전반전은 탐색이야.
제갈린의 진법 범위. 드론의 반응 속도.
마르쿠스의 견제 사거리.
데이터를 모아야 돼.
전반전 종료 신호.
양 팀 깃발 건재.
하지만 활빈당이 밀리는 양상이었다.
제갈린의 진법이 활빈당의 기동을 제한하고 있었다.
정비 시간.
은명이 팀에게 말했다.
"전반전은 탐색이야."
한 박자. 7인의 얼굴을 돌아봤다.
"후반전에 진짜를 보여줘."
후반전. 호각.
은명이 전략을 전환했다.
"태산."
태산이 봤다.
"정면 가지 마."
"뭐?"
"우측 3시 방향.
결계 진법의 이음새가 있어. 거기로."
태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우측으로 가라고?"
은명이 말했다.
"그냥 달려.
부딪히는 건 네가 잘하잖아."
태산이 씩 웃었다.
"오케이."
은명이 위노나를 봤다.
"위노나. 지금."
위노나가 눈을 감았다.
손가락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토템 드론의 시야가 위노나의 눈에 겹쳤다.
드론 통신 채널의 암호 패턴을 읽기 시작했다.
은명이 카이를 봤다.
"카이. 동시에."
"뭘?"
"바닥 전부."
카이가 웃었다.
"전부? 장난 아닌데. 좋아!"
동시 투입.
카이가 바닥에 양손을 댔다.
필드 전체의 지형이 흔들렸다.
드론의 비행 경로가 요동쳤다.
동시에 위노나의 해킹이 드론 3기의 통신을 차단했다.
짧았다. 1초도 안 됐다.
드론의 자동 우회 프로토콜이 작동하며
암호를 재생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틈이면 충분했다.
제갈린의 눈이 넓어졌다.
"지형 변형과 통신 차단을 동시에?"
진법의 한 구간이 끊겼다.
"이건 시뮬레이션에 없었어!"
그 틈으로 태산이 달렸다.
우측 3시 방향. 진법의 이음새.
돌파.
변수를 시뮬레이션했다고?
변수의 변수까지는 못 했겠지.
태산이 진법을 뚫었다.
제갈린을 향해 접근하는 찰나.
테무진이 움직였다.
빠르다.
진법의 틈을 포착하고 수비 위치를 전환.
태산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까지야."
테무진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태산이 멈추지 않았다. 주먹을 올렸다.
테무진이 장을 내밀었다.
충돌.
금강불괴와 초원의 철기가 부딪혔다.
충격파가 바닥을 갈랐다.
태산이 밀렸다. 반 걸음.
1학기라면 일방적으로 날아갔을 타격이었다.
지금은. 반 걸음.
태산이 이를 악물었다. 반격.
오른 주먹이 나갔다.
테무진이 손바닥으로 막았다.
하지만 테무진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맞았다.
한 대.
정확히 한 대가 테무진의 손바닥을 울렸다.
"성장했군."
테무진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테무진의 장이 태산의 가슴을 밀었다.
태산이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 사이 리오가 유격 경로로
체제파 깃발에 접근했다.
마르쿠스의 견제가
태산과 테무진의 교전에 빨려 늦어진 것이다.
리오의 손이 깃발에 닿으려는 찰나,
에이단의 서포트 결계가 리오를 튕겨냈다.
"으앗!"
리오가 미끄러졌다.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지만 곧바로 일어났다.
반대편. 활빈당 깃발.
체제파가 투입한 에이단과 A반 2학년 2인이
올가에게 달려들었다.
3인 동시 공격이었다.
올가가 수호벽을 전개했다.
투명한 빛의 반원이 깃발 앞에 섰다.
1격. 막았다.
2격. 막았다.
3격째. 세 명이 동시에.
올가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끝이 떨렸다. 극저온 에너지가 피부 위로 스며 나왔다.
하지만.
"여기는."
올가가 말했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안 지나가."
벽이 버텼다.
깃발 쟁탈전 종료. 타임 오버.
양 팀 깃발 건재.
주심 교관이 결과를 발표했다.
"포인트 판정. 체제파 팀 승리."
판정 기준 세 항목이 전광판에 떴다.
진법 제어 우위 40점. 유효 타격 수 30점. 구역 장악률 30점.
체제파가 세 항목 모두에서 앞섰다.
활빈당이 졌다.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관람석이 술렁거렸다.
활빈당이 졌는데도.
"활빈당이 체제파를 저 정도로 몰았어?"
"전태산이 테무진 선배를
정면에서 버텼다고?"
운소하가 관람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미소.
"졌군."
한 박자.
"하지만 1학기 모의전과는 다른 패배야."
피에르 드 마르시야크가 관람석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올가의 수호벽.
3인 공격을 막아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호. 기사의 본분.
저 1학년은 기사도를 배우지 않았을 텐데.
기사보다 더 기사답다.
시선이 활빈당으로 갔다.
각자 다른 힘을 가진 자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연대라면.
체제는 무엇을 위해 연대하고 있지?
테무진을 봤다.
테무진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게 그의 강점이자.
어쩌면 약점이다.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의문은 더 깊어졌다.
경기 종료 후. 복도.
태산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주먹을 보고 있었다.
테무진 선배.
1학기엔 손도 못 댔는데.
오늘은 한 대 맞췄다.
한 대.
은명이 다가왔다.
"졌네."
"졌지."
한 박자.
"근데 기분은 나쁘지 않아."
은명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복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뻗어 있었다.
은명의 태블릿이 진동했다.
화면에 알림 하나.
'[선도부 감찰실]
홍은명, 전태산 소환 통보. 내일 오전.'
은명이 화면을 봤다.
미소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