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회 전야
율도고 강당. 10월 첫째 주.
전교생이 모여 있었다.
강당 안은 소란스러웠다.
여름이 지나고 첫 번째 큰 행사.
학생들의 얼굴에 기대와 긴장이 섞여 있었다.
교장 레오나르도가 단상에 섰다.
마이크를 잡았다. 소란이 한 박자 늦게 잦아들었다.
"2학기 체육대회를 공지합니다."
강당이 웅성거렸다.
"종목은 세 가지."
화면이 떴다.
"하나. 깃발 쟁탈전. 학년에 관계없이 7인 팀전.
상대 깃발을 빼앗는 팀이 승리."
"둘. 개인 대련. 토너먼트 방식."
"셋. 장애물 돌파. 4인 1조 협동 종목."
운소하가 교관석에서 말했다.
"체육대회는 성적에 반영된다.
장난치면 알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은 목을 움츠렸다.
운소하의 '알지?'는 경고문이었다.
은명이 강당 뒤쪽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깃발 쟁탈전. 7인 팀전.
모의전과 비슷하지만
이번엔 활빈당이라는 이름으로 나간다.
1학기 때는 이름도 없던 팀이 공식 경기에 선다.
시선이 움직였다.
학생회 석. 이자벨라가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차분한 얼굴.
무대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시선은 강당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선도부 석. 테무진이 팔짱을 끼고
시선으로 활빈당 7인을 하나씩 훑고 있었다.
학예제 이후 시작된 감찰의 시선이었다.
……감찰 대상. 시선이 그래서 저런 거야.
옆에서 아르준이 태블릿을 보여줬다.
"팀 구성 보셨습니까?
체제파가 혼성팀을 꾸렸어요.
선도부 추천과 전투 성적 기준으로
선발한 것 같습니다."
화면에 체제파 팀 라인업이 떠 있었다.
테무진. 제갈린. 쁘아카오. 마르쿠스. 에이단. A반 2학년 2인.
"테무진이 직접 들어갑니다."
은명이 화면을 봤다.
"예상했어."
한 박자.
"문제는 제갈린이야."
방과 후. 훈련장 뒤편.
전태산이 기본기연습을 하고 있었다.
둥. 둥.
리듬이 1학기보다 안정됐다.
불필요한 동작이 줄었다.
타격봉이 흔들리는 폭이 작아졌다.
같은 힘을 쓰면서 흔들림이 적다는 건 정확도가 올랐다는 뜻이다.
발소리가 들렸다.
멈췄다. 돌아봤다.
3학년. 장신. 건장한 몸.
갈색 피부에 짧은 수염.
눈이 달랐다. 보는 방식이 달랐다.
위에서 내려보는 게 아니라 재고 있었다.
거리, 자세, 빈틈. 전부.
태산의 직감이 반응했다.
이 사람은 강하다. 보기만 해도 알았다.
하산 쉬라지. 3학년. 불사대 후예.
"……뭐 보세요?"
하산이 대답했다. 차분하게.
"전태산.
금강불괴의 그릇에 율도국 체술을 담는 놈이라고 들었다."
"소문이 빠르시네요."
"소문이 아니야.
내일 체육대회 참관할 예정이라
네 기본기를 미리 보러 온 거다."
하산이 태산의 자세를 봤다.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발끝에서 시작해 손끝까지.
"왼쪽 하단에 빈틈이 있다."
태산이 굳었다.
"공격을 버리지 못해서 생기는 틈이야.
너는 항상 치려고 해.
치려는 순간 지키는 걸 잊어."
태산이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하산이 말했다.
"불사대는 빈틈으로 죽는다.
빈틈을 찾는 건 생존 기술이야."
한 박자. 눈이 진지했다.
"강한 것과 살아남는 것은 다르다."
한 박자.
"강한 놈은 많이 봤어.
그 중에 살아남은 놈은 적었다."
바람이 불었다.
……무겁다.
이 사람의 말은.
테무진 선배와 다르다.
위에서 내려보는 게 아니라
전장에서 살아남은 놈이 하는 말이다.
하산이 돌아섰다.
"체육대회에 나온다고?"
어깨 너머로.
"기대하겠다. 살아남아라."
하산이 떠났다.
태산이 서 있었다. 주먹을 봤다.
강한 것과 살아남는 것은 다르다.
주먹을 쥐었다.
쥐는 방식이 달랐다.
전에는 치기 위해 쥐었다.
지금은 지키기 위해 쥐었다.
본인은 아직 그 차이를 모르고 있지만.
밤. 활빈당 아지트. 7인 전원.
은명이 태블릿을 켰다.
화면에 체제파 팀 분석이 떠 있었다.
"체제파 7인."
하나씩 짚었다.
"테무진. 전위. 선도부 수장. 피지컬 최상위."
"제갈린. 지휘. 팔진도 진법. 드론 제어."
"쁘아카오. 돌파. 무에타이. 태산과 동급."
"마르쿠스. 중거리 견제.
에이단. 서포트.
A반 2학년 2인. 보조 전력."
아르준이 덧붙였다.
"핵심은 테무진과 제갈린입니다.
테무진이 전장을 지배하고,
제갈린이 전장을 설계합니다."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포지션 재확인."
"나. 전술 총괄. 도술 지원. 상대 지휘부 교란."
"태산. 전위 돌파. 테무진 상대."
태산이 끼어들었다.
"그냥 앞에 있는 놈 때리면 되는 거 아냐?"
은명이 한숨을 쉬었다.
"……그게 안 되니까 전략을 짜는 거야."
"위노나. 정보. 실시간 해킹. 상대 통신 방해."
"리오. 기동 타격. 유격대."
리오가 웃으며 말했다.
"유격대. 간지 나는데."
카이가 옆에서 손을 들었다.
"나는?"
"카이. 지형 서포트. 바닥 조작."
카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바닥 조작이면 내가 제일 먼저 경기장에 들어가야 되는 거 아냐?"
은명이 잠깐 생각했다.
"……맞아. 너 선발 진입이야."
카이가 두 손을 들었다.
"오예, 선발!"
올가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선발이라 좋아하는 건지
먼저 맞는 건지 구분해."
"아르준. 전략 분석. 실시간 데이터."
"올가. 수호. 깃발 수비 핵심."
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은명이 전원을 봤다.
목소리가 달라졌다.
"하나만 기억해."
한 박자.
"우리는 이기러 가는 거 아니야.
증명하러 가는 거야.
활빈당이 뭔지."
7인이 조용해졌다.
카이까지.
태산이 씩 웃었다.
"그건 주먹으로도 증명할 수 있어."
은명이 태산을 봤다.
"……그래. 네 주먹도 필요해."
작전회의가 끝났다.
6인이 나갔다. 은명이 홀로 남았다.
태블릿.
화면에 제갈린의 과거 경기 데이터가 떠 있었다.
팔진도 2.0.
모의전 때보다 진화했어.
드론 배치 패턴이 바뀌었다.
반응 속도가 올랐다.
제갈린. 너도 멈추지 않았구나.
은명이 손가락으로 데이터를 넘겼다.
드론 궤적을 하나씩 추적했다.
패턴이 보였다. 아직은 희미하게.
같은 시간. A반 학생회실.
제갈린이 활빈당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화면에 홍은명의 전술 패턴 분석.
홍은명.
변수를 전략으로 쓰는 놈.
모의전에서 전태산의 이탈을 실시간 수정했다.
정석이 아니라 변수 활용.
안경을 올렸다.
이번엔 변수까지 계산했어.
두 개의 화면이 같은 밤에 빛나고 있었다.
바깥에서 율도고의 깃발 시스템이 시험 가동됐다.
내일을 위한 마지막 점검.
점검 로그에 경고가 하나 찍혔다.
'[깃발 시스템]
통신 지연: 0.4초.
원인: 미분류.
재점검 권장.'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