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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일러스트

흔적

모의전 데이터를 파고든 지 닷새째.

은명의 태블릿에는

'바깥에서 보는 눈'이라는 폴더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네트워크 전송 로그. 교내 서버 경유 노드.

삭제된 패킷의 잔해.

하나하나 복원할 때마다 흔적은 중간에서 끊겼다.

의도적인 절단.

누군가가 증거를 지우고 있다.

은명의 시선이 태블릿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관전 감사합니다. — ■■'

그 메시지가 떴던 건 찰나였다. 스크린샷은 실패했다.

증거는 없고, 확신만 남았다.

……증거 없는 확신은 내 방식이 아닌데.

방과 후.

A반 교실은 비어 있었다.

은명이 태블릿을 접고 일어섰다.

서버실.

물리적 로그라도 확인해야 한다.

네트워크에서 지워도 하드웨어 접속 기록까지는 완벽히 지울 수 없다.

이론상 그렇다.

도서관 지하 1층. 서버실 복도.

형광등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은명이 서버실 문 앞에 섰다.

잠겨 있었다. 학생 출입 금지.

그건 알고 있었다.

태블릿을 꺼내 전자 잠금장치에 접근하려는 순간.

"여기서 뭐 해?"

은명이 멈췄다.

복도 끝. 벽에 기대 서 있는 여학생.

긴 갈색 머리. 손목에 가죽 팔찌.

그 위로 독수리 모양의 작은 드론이 떠 있었다.

위노나. A반.

수업 시간에 거의 말을 안 하는 애. 자리도 창가 구석.

은명이 시선을 좁혔다.

"서버실은 학생 출입 금지인데."

위노나가 씩 웃었다.

"그건 나도 알아.

근데 네가 여기 있는 것도 출입 금지잖아."

은명이 대답하지 않았다.

위노나가 벽에서 등을 떼고 한 발짝 다가왔다.

독수리 드론이 그녀의 어깨 위에서 빙글 돌았다.

"바람이 말하길, 네 추적 경로가 엉성하던데?"

은명의 손이 멈췄다. 추적을 알고 있었다.

"바람?"

"독수리가 높이 날면 바람이 다 보이거든."

위노나가 손목의 팔찌를 만졌다.

드론이 반응했다. 소형 홀로그램이 떴다.

교내 CCTV 배치도. 그 위에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사각지대. 서버실 주변에 네 군데.

은명이 홀로그램을 봤다.

"이건 네가 직접 매핑한 거야?"

"당연하지.

학교 CCTV 사각지대는 입학 첫 주에 다 파악했어."

위노나의 눈이 빛났다.

"난 감시당하는 게 싫거든."

은명이 위노나를 봤다.

자유분방하고 반항적. 하지만 눈은 진지했다.

"왜 여기 있는 건데?"

위노나가 드론을 손등 위에 앉혔다.

"나도 추적 중이야.

2주 전부터 야간에 비정상 전력 소비가 잡혀.

서버실 부근에서."

은명이 잠깐 멈췄다.

야간 전력 이상.

모의전 데이터 유출 시점과 겹칠 가능성이 있다.

"데이터 있어?"

"있지. 근데 먼저 네 걸 보여줘.

그다음에 내 것도 보여줄게."

은명이 위노나를 봤다.

정보의 교환.

태블릿을 열었다. '바깥에서 보는 눈' 폴더.

위노나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표정이 달라졌다.

"……이거, 나도 같은 걸 봤어."

위노나의 드론이 홀로그램을 바꿨다.

야간 서버 접속 기록.

CCTV 사각지대에서 포착된 비정상 전력 소비 패턴.

두 데이터가 나란히 놓였다.

교내에 외부 접속 경로가 숨겨져 있다는 가설.

은명이 서버실 잠금장치를 봤다.

"물리적 로그를 확인하면

경유 노드의 하드웨어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위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봐."

은명이 전자 잠금장치에 태블릿을 연결했다.

관리자 세션의 잔여 토큰이 만료 전이었다.

그 틈으로 인증을 우회했다.

잠금 해제.

서버실 안에 들어갔다.

서버 랙이 줄지어 있었다. 냉각팬 소리.

은명이 접속 포트에 태블릿을 꽂았다.

하드웨어 로그를 불러오는 순간 화면이 깜빡였다.

로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시간 삭제.

은명의 손이 빨라졌다.

복사 명령을 걸었다. 로그 헤더 일부를 잡으려 했다.

늦었다.

접근한 순간 트리거가 발동한 거다.

"누가 지우고 있어."

위노나가 뒤에서 봤다.

"아니, 사람이 아니야.

자동 삭제 트리거.

접근하면 발동하게 설정돼 있어."

은명이 태블릿을 뽑았다.

화면에 남은 건 삭제 직전에 캡처한 조각 하나.

교내 서버 → 중간 노드 → [삭제됨]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은명이 서버실을 나왔다.

……자동 삭제 트리거.

접근하면 증거가 사라지는 구조.

이걸 설치한 건 교내 시스템을 완벽히 장악한 존재다.

은명보다 한 수 위.

복도에서 위노나가 말했다.

"뭔가 한 수 위인 게 있어. 이 학교 안에."

은명이 복도를 걸었다.

위노나의 말이 자기 생각과 정확히 겹쳤다.

그게 약간 불쾌했다. 동시에 약간 안심이 됐다.

같은 날 밤. 기숙사 뒤편.

전태산이 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권법 300회. 발차기 200회.

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풀 냄새. 그리고 그 사이에 섞인 이상한 냄새. 금속.

전태산이 걸음을 멈췄다.

학교 뒤편 숲. 나무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붉은 점. 두 개.

눈?

전태산이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였다. 숲이 깊어졌다. 바람이 풀을 흔들었다.

붉은 점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풀만 바스락거렸다.

전태산이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땅을 봤다.

풀 사이에 금속 파편이 있었다.

작았다. 손톱만 한 크기.

은빛이었지만 표면에 얇은 회로 같은 무늬가 있었다.

기계 부품?

전태산이 파편을 집어 들었다.

가벼웠다. 차가웠다.

학교 장비는 아닌 것 같았다.

훈련 도구도 아니고, 교내 시설물의 조각도 아니다.

……뭐지 이건.

주머니에 넣었다.

기숙사로 돌아갔다. 방에 누워도 잠이 안 왔다.

붉은 점.

눈 같은 건데. 뭔지 모르겠다.

다음 날 점심. 식당.

전태산이 은명 앞에 앉았다.

은명은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전태산이 주머니에서 금속 파편을 꺼냈다.

탁.

은명 앞에 놓았다.

"이거 뭔지 알아?"

은명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파편을 집어 들었다. 돌려봤다.

태블릿 카메라로 확대. 표면의 회로 패턴을 분석.

"……어디서 났어?"

"어제 밤에 숲에서 주웠어."

"숲?"

"학교 뒤편.

눈이 빨갛게 빛나는 게 있었거든."

은명이 전태산을 봤다.

"눈이 빛났다고?"

"응. 붉은 점 두 개.

다가가니까 사라졌어."

"증거는?"

전태산이 파편을 가리켰다.

"이거."

"이건 파편이야. 눈이 빛났다는 증거가 아니잖아."

"내 눈으로 봤어."

은명이 파편을 태블릿에 올렸다.

스캔. 제어 회로 내장.

코드가 암호화되어 있었다.

학교 장비가 아닌 건 확실했다.

"출처 불명이야. 교내 등록된 장비 목록에 일치하는 게 없어."

"그러니까 밖에서 온 거잖아."

"가능성은 있지만

네가 본 '빨간 눈'이랑 이 파편이 연결된다는 증거가 없어."

전태산이 은명을 봤다.

"내 눈으로 봤는데 그게 증거 아냐?"

"증거 없는 건 데이터가 아니야."

문장이 끝나자 공기가 팽팽해졌다.

전태산이 먼저 시선을 풀었다.

그때 식당 천장 위로 드론 한 대가 스쳤다.

교내 순찰용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낮은 고도. 경로도 달랐다.

전태산이 고개를 올렸다.

"저거."

은명도 봤다. 드론은 이미 창밖으로 사라졌다.

잠깐의 침묵.

"……알았어. 근데 그 파편은 분석해봐."

"그럴 생각이었어."

전태산이 일어섰다. 밥판을 들고 갔다.

은명이 파편을 봤다.

……이 사람은 데이터 없이도 뭔가를 감지해.

직감? 육감? 그게 가능한 거야?

은명이 파편을 주머니에 넣었다.

태블릿을 열었다.

'바깥에서 보는 눈' 폴더에 새 메모를 추가했다.

'정체불명 금속 파편.

발견 장소: 학교 뒤편 숲 — 남쪽 경사면 인근(서버실 외부 접속 노드 추정 위치와 동일 구역).

발견자: 전태산.

제어 회로 내장, 코드 암호화.

교내 장비 아님. 외부 유래 확정적.

추가 정보: 붉은 발광체 두 개 목격(전태산 단독 — 물적 증거 미확보).'

은명이 그 마지막 줄을 봤다.

……물적 증거가 없다고 썼지만

전태산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그 인간이 거짓말을 할 정도로 영리하지도 않고.

태블릿을 닫았다.

방과 후. 도서관.

은명이 구석 자리에서 파편의 암호화 코드를 해독하고 있었다.

삼중 암호화.

하나를 풀면 다음 레이어가 나왔다.

세 번째 레이어에서 막혔다.

은명이 이마를 짚었다.

"그거, 나도 비슷한 거 본 적 있어."

위노나가 옆에 앉았다. 언제 온 건지도 몰랐다.

손목의 독수리 드론이 은명의 태블릿 화면을 스캔했다.

"2주 전에 내 드론이 비슷한 금속 조각을 촬영한 적 있어.

교내 순찰 중에."

위노나가 드론의 메모리에서 사진을 꺼냈다.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금속 파편.

표면의 회로 패턴이 전태산이 가져온 것과 유사했다.

은명이 비교 분석을 돌렸다.

유사도 87%. 같은 출처일 가능성이 높았다.

"같이 추적할래? 혼자보다 두 명이 나으니까."

은명이 잠깐 멈췄다.

또 누군가와 같이.

전태산도 그렇고, 이번에도.

혼자서 하는 게 빠른데.

……정말로?

서버실에서 자동 삭제를 당했을 때

위노나가 없었으면 트리거의 존재조차 몰랐을 수 있다.

"……조건이 있어. 내가 리드해."

"리드? 데이터는 나도 있는데?"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분석의 방향이야."

위노나가 씩 웃었다.

"재밌네. 좋아."

은명이 태블릿을 닫았다.

돌아가는 길에 위노나가 옆에서 걸으며 말했다.

"근데 너, 전태산이랑도 뭐 하고 있지?"

은명이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닌데."

"바람이 말하길, 넌 거짓말할 때 대답이 늦던데."

"……바람 좀 조용히 시켜."

위노나가 웃었다.

은명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둘이 나란히 도서관을 나왔다.

서로의 데이터가 합쳐졌고, 증거는 아직 부족하고, 적은 한 수 위에 있었다.

그리고 전태산이 본 '붉은 눈'은 여전히 물적 증거가 없었다.

두 방향의 추적이 아직 합쳐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은명은 알아챘다.

파편 발견 좌표와 서버 외부 접속 노드의 추정 위치가

같은 구역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아직은 가설이다.

하지만 가설이 두 번 같은 곳을 가리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작가의 말

3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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