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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 속으로 일러스트

진법 속으로

호루라기.

소리가 필드 전체를 갈랐다.

은명의 손이 태블릿 위에서 움직였다.

"외곽 2번. 가."

쁘아카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전태산, 같이!"

전태산이 출발선을 찼다.

은빛 광택이 양 발목을 스쳤다.

지면이 갈라지며 흙이 튀었다.

은명의 시선이 멈췄다.

은빛 광택. 피부 위를 흐르는 금속성 기운.

……금강불괴.

전씨세가에서 자랄 때 이름은 들어봤다.

세가 간 교류에서 몇 번 기록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저게 저 녀석한테 갔구나.

홍씨세가에서도 희귀한 체질만 익힐 수 있는 호신강기.

실물은 달랐다.

발목을 스친 은빛이 지면을 갈랐다.

출력이 거친데 밀도가 높다.

제어가 엉망인데 위력은 진짜다.

……이 녀석답네.

쁘아카오가 웃으며 뒤따랐다.

"빠르네, 형제!"

리오가 카포에이라 특유의 회전 보폭으로 좌측을 돌았다.

장석현이 맨 뒤에서 뛰었다.

은명은 후방에 남았다.

태블릿으로 필드 데이터를 수신했다.

모의전 시스템이 각 팀의 위치를 실시간 홀로그램으로 전송한다.

은명의 화면에 점 다섯 개가 움직였다.

아군.

그리고 맞은편에서 확산하는 점 다섯 개.

A반 3팀. 키무라 사쿠라 팀. 외곽 2번 거점 수비를 맡은 팀.

은명이 입을 열었다. 통신기로 전방에 전달.

"키무라 팀은 좌측 방어가 두꺼워.

우측 돌파. 2시 방향 결계석 터치."

전태산의 통신.

"2시가 어디야?"

"네 오른쪽 앞."

"아, 그거!"

쁘아카오가 먼저 접촉했다.

키무라 팀의 전열이 외곽 2번 거점 앞에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다.

세 명이 좌측에 물려 있었다.

쁘아카오의 로우킥이 선두를 스쳤다. 정면 교란.

키무라 팀의 시선이 좌측으로 쏠렸다.

그 사이.

전태산이 우측을 뚫었다.

어깨를 낮추고 수비 한 명의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비켜!"

수비가 밀려났다.

결계석이 보였다.

투명한 반구형 방어막에 둘러싸인 주먹만 한 푸른 돌.

장석현이 뒤에서 달려왔다.

"장석현! 결계석 방어막에 기초 도술!"

은명의 지시.

장석현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양손을 모아 결계석을 향해 기초 도술을 쐈다.

파란 빛이 방어막에 닿았다.

균열. 작게, 얇게, 하지만 확실히.

"전태산, 지금!"

전태산의 주먹이 균열을 찔렀다.

방어막이 깨졌다. 결계석에 손바닥이 닿았다.

삐이

시스템 알림.

'외곽 2번 거점 — B반 쁘아카오팀 점령.'

쁘아카오가 소리쳤다.

"이겼다! 다음!"

리오가 회전 착지하며 엄지를 올렸다.

장석현이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골랐다.

은명은 태블릿을 봤다.

작전이 거의 그대로 실행됐다.

……거의.

전태산이 우측 돌파 각도가 지시보다 15도 넓었다.

결과적으로 됐지만,

저건 작전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 놈 체질이 세서 된 거야.

됐어. 다음.

"다음은 외곽 1번. 중앙은 마지막."

은명이 통신기로 말하다 멈췄다.

태블릿 화면에서 전태산의 위치 점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외곽 1번이 아니라. 중앙.

"……저 사람, 지금 중앙으로 가고 있어."

쁘아카오가 돌아봤다.

"태산 형제! 어디 가!"

전태산의 통신.

"중앙이 빠르잖아! 이긴 김에 밀어!"

은명이 눈을 감았다.

잠깐.

열었다.

알고 있었어. 이 자식이 작전대로 할 리가 없으니까.

중앙 거점. 필드의 한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넓고, 가장 많은 포인트를 주는 거점.

그리고 제갈린이 기다리고 있는 곳.

은명의 태블릿에 전태산의 점이 중앙 거점 영역에 진입했다.

3초 후.

전태산의 통신이 바뀌었다.

"야, 이상해. 길이 없어."

은명이 태블릿을 봤다.

중앙 거점 주변의 데이터가 왜곡되었다. 위치 좌표가 흔들린다.

이건.

"팔진도."

은명이 중얼거렸다. 제갈린의 진법.

드론 12대가 정해진 진형으로 배치되면

내부에 결계 필드가 생성된다.

들어간 사람은 방향 감각을 잃는다.

좌우전후가 뒤바뀌고,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전태산의 통신.

"야, 똑바로 걸어가는데 자꾸 원래 자리로 돌아와.

이게 뭐야?"

은명이 태블릿을 쥐었다.

A반 시절.

전술 수업과 시뮬레이션 훈련 때

제갈린이 드론을 배치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

공개된 실습에서 축적한 패턴 데이터가 머릿속에 있었다.

제갈린은 완벽주의자다.

드론 간격, 진입 각도, 결계 범위.

전부 밀리미터 단위로 맞춘다.

하지만 완벽하니까 패턴도 있다.

은명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움직였다.

12대 드론의 예상 배치도를 그렸다.

3번 드론. 12시 방향. 진형의 앵커.

이걸 부수면 30도 방향에 틈이 생긴다.

"전태산."

통신.

"12시 방향. 드론 3번. 부숴."

"12시? 어디가 12시야!

방향을 모르겠다고!"

"앞이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정면. 눈 감아."

"뭐?"

"눈 감고 정면으로 주먹을 질러."

통신이 잠깐 조용해졌다.

전태산이 눈을 감았는지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충격음.

전태산의 주먹이 드론 3번을 관통했다. 파편이 흩어졌다.

은명의 태블릿에 진형 데이터가 흔들렸다.

균열.

하지만 제갈린이 즉시 재배치를 시작했다.

남은 11대가 위치를 조정한다.

"7번도. 동시에 두 개 빠지면

재배치에 전체가 재정렬되기까지 시간이 걸려.

그 틈에 탈출할 수 있는 공백이 0.8초야."

"0.8초?"

"충분해. 뛰면 돼."

"7번이 어디야?"

"뒤로 돌아서 왼쪽. 점프해서 쳐."

전태산이 몸을 돌렸다. 도약. 높이 2미터.

공중에서 왼손이 뻗었다.

드론 7번이 부서졌다.

진법이 무너졌다.

12대 중 2대가 동시에 빠지자

결계 필드에 0.8초의 공백이 생겼다. 방향 왜곡이 풀렸다.

전태산의 눈이 열렸다.

앞이 보인다. 진법 밖의 빛이 보인다.

"뛰어!"

은명의 목소리.

전태산이 뛰었다. 0.8초. 진법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숨을 크게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

쁘아카오가 달려왔다.

"형제! 살아 있어?"

"미로가 진짜 미친 거더라!"

리오가 웃으며 등을 쳤다.

"은명이 형이 빼줬잖아!"

뒤에서 제갈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배치."

남은 10대 드론이 새로운 진형을 짰다.

하지만 전태산은 이미 밖이었다.

제갈린이 은명이 있는 방향을 봤다.

필드 후방. 태블릿을 든 사람.

"……홍은명. A반 드론 배치를 알고 있었어."

아르준이 제갈린 옆에서 말했다.

"같은 반이었으니까."

제갈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같은 반이었으니까 우리 진법의 패턴을 알고 있다.

그걸 B반에서 쓰고 있어."

아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차 배정이 이런 식으로 작동할 줄은."

제갈린은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 아니라 분석.

읽혔다. 속은 게 아니라 읽힌 거다.

"남은 드론 재편. 각도를 바꿔.

같은 패턴을 두 번 쓰면 바보라는 뜻이야."

아르준이 고개를 돌렸다.

"제갈린, 그래도 외곽 2번은 이미 빼앗겼어."

"외곽 하나로 결판나지 않아. 중앙이 관건이야."

제갈린이 드론 제어 태블릿에 손을 올렸다.

"중앙은 내가 지킨다."

은명의 태블릿.

전태산이 탈출한 경로가 데이터로 기록되어 있었다.

3번과 7번이 동시에 빠졌을 때 0.8초의 공백.

다음에는 안 통한다.

제갈린은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은명이 태블릿을 잡은 손을 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A반 학생인데 A반을 상대로 진법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교관이 넣어줬으니까.

내가 원한 건 아니니까.

전태산의 통신이 들어왔다.

"야, 다음은 어디야?"

숨이 차 있었다.

진법 안에서 드론 두 대를 맨손으로 부순 직후라

팔이 무거울 텐데. 그런데 목소리는 가볍다.

은명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잠깐 떠 있었다.

"……외곽 1번. 3시 방향. 뛰어."

"알겠어!"

발소리가 멀어졌다.

은명이 태블릿을 봤다.

전태산의 점이 외곽 1번을 향해 움직인다.

이번에는 지시대로 가고 있다.

……아까 진법 안에서 내 말대로 눈을 감고 주먹을 질렀잖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내 목소리만 듣고 때렸다.

그게 뭐지.

태블릿 화면을 전환했다.

외곽 1번 거점의 배치도.

A반 2팀, 마르쿠스 팀이 수비 중.

은명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르쿠스 팀의 포메이션. 약점. 진입 경로.

태블릿에 작전이 그려졌다.

깔끔하게. 정확하게. 은명답게.

하지만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태블릿 화면에 빨간 점이 깜빡였다.

전태산의 점이 외곽 1번 거점 반경에 진입하고 있었다.

접촉이 임박했다.

은명은 통신 채널을 전환했다.

팀 공용 채널이 아니라 개별 우선순위 채널.

쁘아카오, 리오, 장석현, 전태산 순으로 음성 지시를 분배했다.

"전태산, 속도 줄이지 마.

외곽 1번 우측 펜스 따라 진입. 정면 교전 금지."

"오케이."

"쁘아카오, 정면 20미터에서 소리만 크게. 진입은 하지 마."

"오! 페이크! 좋아!"

"리오, 쁘아카오 반 박자 뒤. 발만 보여주고 빠져."

"알겠어, 그림자처럼 갈게."

"장석현, 너는 마지막.

결계석 방어막 뜨면 바로 교란.

이번에도 3초면 충분해."

장석현의 숨소리가 짧게 떨렸다.

"네. 해볼게요."

은명은 태블릿 화면을 확대했다.

외곽 1번 거점 수비 패턴.

마르쿠스 팀은 정석 근접 방어형.

기동이 빠르진 않지만 한 번 붙으면 단단하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시간이 새고 체력이 먼저 무너진다.

시간 단축 공지가 뜬 지금, 체력 손실은 곧 패배였다.

필드 스피커로 다른 팀 교전 알림이 겹쳐 들렸다.

'중앙 거점 교전 개시.'

'외곽 2번 재탈환 시도.'

모든 팀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이 급해진다.

급해질수록 실수가 늘고, 실수가 늘수록 규칙은 강한 쪽 편을 든다.

은명은 혀끝으로 입술 안쪽을 눌렀다.

감정이 올라오면 판단 순서가 엉킨다. 숫자부터 본다.

거리 83미터. 예상 접촉 12초.

태산의 점이 예측선보다 1.2초 빨랐다.

……또 빨라. 지시보다 항상 반 박자 먼저 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튀지는 않았다.

오른쪽 펜스 라인을 거의 그대로 탔다.

은명은 화면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듣고 있네.

완전히는 아니어도 핵심은 듣고 움직이고 있다.

은명은 바로 다음 지시를 넣었다.

"태산, 10미터 앞에서 몸 한 번 낮추고 가속해.

첫 충돌은 어깨로. 주먹 쓰지 마."

"왜?"

"소리 때문에. 주먹 쓰면 위치 들켜.

어깨면 한 번에 밀고 지나가."

"알겠어."

짧은 답. 주저함이 없었다.

반대편 시야에서 제갈린의 드론 두 대가

잠깐 외곽 1번 쪽으로 고도를 낮췄다.

중앙만 보던 시선이 분산되는 신호.

은명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제갈린은 이미 읽고 있다.

외곽 2번에서 진법을 깬 팀이 다음 어디로 갈지.

그럼 더 빨라야 한다.

"리오, 지금. 펜스 그림자 타고 진입. 소리 내지 마."

리오의 호흡이 웃음기 섞여 들어왔다.

"그건 내가 제일 잘하지."

카포에이라 스텝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리오 점이 태산 옆으로 붙었다.

둘의 궤적이 겹쳤다가 갈라졌다.

쁘아카오는 정면에서 일부러 발 구르는 소리를 크게 냈다.

"이쪽이다! 받아!"

저건 연기다.

하지만 쁘아카오가 하면 연기 같지 않다.

진짜로 들이박을 것 같은 소리.

수비가 시선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은명은 그 틈에 장석현 채널을 열었다.

"장석현, 손 떨려도 괜찮아. 각도만 맞춰. 힘은 약해도 돼."

"각도…… 기억했어요.

결계석 기준 2시, 4시 교차로."

은명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기억했네.

"좋아. 그걸로 돼."

필드 바람이 한 번 세게 불었다.

안개가 옆으로 밀리며 외곽 1번 거점 실루엣이 드러났다.

반구형 결계, 수비 셋, 후방 지원 둘. 마르쿠스 팀의 전형적인 배치.

태산이 속도를 더 올렸다.

"보인다!"

은명은 마지막으로 작전 경로를 확인했다.

우측 진입, 페이크 분산, 결계 교란 3초, 터치 점령.

이론은 완벽하다.

문제는 항상 사람이다.

그때 은명 통신기에 짧은 잡음이 튀었다.

0.2초. 바로 복구.

중앙에서 제갈린이 채널 간섭을 시작한 신호였다.

같은 패턴을 두 번 허용하지 않는 사람. 예상대로다.

은명은 즉시 압축 채널로 바꿨다.

음성 지시를 짧게 줄였다.

"태산, 접촉 후 5초 내 결론. 안 되면 즉시 이탈."

"오케이."

"쁘아카오, 태산 막히면 바로 몸으로 열어."

"맡겨!"

"리오, 뒷각 교란 우선. 점령보다 시간 벌기."

"좋아."

"장석현, 네 타이밍이 핵심이야. 무조건 첫 시도에 맞춰."

잠깐 정적.

"……네."

태산 점이 수비선 8미터 앞에 닿았다.

은명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태블릿 화면 위로 시간 카운트가 붉게 점멸했다.

45:00에서 시작한 숫자는 이미 빠르게 깎이고 있었다.

은명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변수는 만들지 않는다. 필요한 변수만 쓴다.

전태산이 마지막 한 번 발을 찼다.

은빛이 발목을 감쌌고, 지면이 짧게 울렸다.

마르쿠스 팀 수비 셋이 동시에 몸을 돌렸다.

시선이 맞물렸다.

충돌까지, 3초.

은명은 태블릿을 더 가까이 당겼다.

수비선의 발 간격, 전태산의 어깨 각도, 리오의 진입 속도.

세 개의 선이 한 점에서 겹치면 점령 가능성이 열린다.

실패하면 즉시 후퇴. 성공하면 중앙 전환.

오늘은 판단을 미루는 쪽이 먼저 진다.

은명은 통신기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태산. 멈추지 마. 하지만 지나치지도 마."

전태산의 짧은 웃음이 들어왔다.

"그게 제일 어렵거든."

은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의 빨간 점을 끝까지 따라갔다.

필드 저편에서 제갈린의 드론 하나가 고도를 낮췄다.

읽고 있다는 신호.

은명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번엔 먼저 읽힌 쪽이 아니라

읽고도 뚫는 쪽이 되기로 했으니까.

카운트는 계속 내려가고, 선택은 이제 미룰 수 없었다.

작가의 말

3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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