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남은한자리 일러스트

남은한자리

A반 교실. 모의전 3일 전. 방과 후.

교실에는 아직 스무 명이 남아 있었다.

팀장 네 명이 홀로그램 명단 앞에 섰다.

제갈린, 마르쿠스, 키무라 사쿠라, 에이단 맥피.

운소하가 교단 위에 반쯤 걸터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

팀장들, 남은 인원 중에 가져갈 사람 선택해."

홀로그램에 이름이 네 개 남아 있었다.

은명은 맨 뒷자리에서 태블릿을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모의전 맵 데이터가 띄워져 있었다.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제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르준 싱."

아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린 옆으로 갔다.

마르쿠스.

"소피아."

키무라 사쿠라.

"이시스."

에이단.

마지막 한 명을 홀로그램에서 확인했다. 턱선이 굳었다.

에이단이 입을 열었다.

"……패스합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은명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운소하가 에이단을 봤다.

"이유는?"

"도술 성적은 높지만 단체 훈련 참여율이 제로입니다."

에이단의 목소리에 악의는 없었다. 사실이니까.

"팀에 넣으면 소통이 안 됩니다. 리스크가 큽니다."

운소하가 다른 팀장들을 둘러봤다.

"다른 팀장은?"

제갈린.

"동의합니다."

마르쿠스.

"같은 의견입니다."

키무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그램 명단. 이름 하나가 남아 있었다.

홍은명.

A반 20명 중 유일한 미배정.

교실 안의 시선이 제각각이었다.

은명을 보는 사람. 보지 않으려는 사람.

은명은 둘 다 의식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운소하가 느릿하게 일어났다.

발소리 없이 은명의 자리까지 다가왔다. 바로 앞에 섰다.

"홍은명."

은명이 고개를 들었다.

"너 팀 없지?"

"없습니다."

"그럼 B반 가."

교실이 조용해졌다.

제갈린이 먼저 반응했다.

"교관님. A반 학생을 B반에 넣는 건 규정상."

"모의전 운영 규정 14조.

'교관은 전력 균형을 위해 반 간 교차 배정을 할 수 있다.'

읽어 봤지?"

제갈린의 입이 닫혔다.

운소하가 빙긋 웃었다.

"반 대항전인데 적이 우리 편에 있으면 불리하잖아.

그것도 실전이야~"

제갈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반박할 조항이 없었다.

은명이 태블릿을 닫았다.

……또야. 깃발탈환전에 이어 두 번째.

운소하가 은명 얼굴을 흘끗 봤다.

"쁘아카오 팀에 합류. 내일 B반 운동장. 늦지 마~"

은명이 가방을 들었다.

교실을 나서는 동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투명인간의 유일한 장점. 이별 인사가 필요 없다.

은명이 B반 운동장 끝에 나타났을 때 태블릿을 든 채였다.

남궁현이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운소하한테 연락 받았다.

홍은명, 쁘아카오 팀 합류."

쁘아카오가 보호대를 감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오! 새 팀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냄새가 독특해!"

"……냄새?"

"A반 냄새! 시설이 좋은 데 냄새!"

은명은 대답을 포기했다.

전태산이 스트레칭을 멈추고 은명을 봤다. 눈을 깜빡였다.

"……너, 왜 여기 있어?"

"교관 재량. 내가 원한 게 아니야."

전태산이 씩 웃었다.

"아, 그래? 근데 좋은데?"

"좋을 이유가 뭔데."

"저번에 깃발전에서도 이겼잖아."

"그건 상대가 약했으니까."

전태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런데, 또 같은 팀이잖아.

이 정도면 운명 아니야?"

"운명이 이 모양이면 신한테 항의 넣을 거야."

전태산이 빵 터졌다.

"하하! 은명아, 센스 있어!"

"칭찬 아니거든."

리오가 다가왔다.

갈색 피부에 곱슬머리. 카포에이라 특유의 가벼운 스텝.

"새 팀원? 환영이야! 나는 리오!"

장석현이 은명 옆으로 왔다.

작은 체구에 조심스러운 눈빛.

"저, A반이시죠?

B반은 좀 시끄러운데……"

"알고 있어."

장석현이 작게 웃었다.

은명이 팀원 다섯을 봤다.

쁘아카오. 전태산. 리오. 장석현. 그리고 자기.

……이게 팀이라고?

남궁현이 팔짱을 풀며 돌아섰다.

"내일부터 훈련이다. 감정은 접어."

은명은 아무 말 않고 태블릿을 켰다.

모의전 맵을 다시 열었다.

B반 빈 교실. 모의전 전날 밤.

은명이 홀로그램 칠판에 모의전 맵을 띄웠다.

거점 세 개. 외곽 1번, 외곽 2번, 중앙 거점.

은명이 손끝으로 중앙을 가리켰다.

쁘아카오, 전태산, 리오, 장석현.

네 명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제갈린의 팔진도."

칠판에 드론 배치도가 떴다.

"A반 수업 때 공개된 전술 실습에서 봤어.

드론 12대로 결계를 형성하면

안에 들어간 사람은 방향 감각을 잃어."

전태산이 눈을 깜빡였다.

"팔진도? 그거 그 미로 같은 거?"

"비슷해. 들어가면 나올 수 없어.

좌우전후가 뒤바뀌거든."

"오, 무섭네."

……무서운 게 아니라 위험한 거야.

은명이 외곽 2번을 가리켰다.

"제갈린은 중앙에서 기다릴 거야.

중앙이 가장 크고, 가장 많은 포인트를 줘."

쁘아카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중앙이 제일 크잖아? 거기를 먼저."

"크니까 함정이야. 제갈린은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쁘아카오가 등을 다시 의자에 붙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중앙은 나중에. 외곽 2번부터 취해."

리오가 손을 들었다.

"나는 뭐 해?"

"키무라 팀이 외곽 2번을 수비할 확률이 높아.

좌측 방어 밀도가 높으니까 우측 돌파야."

칠판을 두 번 터치했다. 2시 방향에 빨간 점이 찍혔다.

"쁘아카오가 정면에서 전열을 흔들면

넌 카포에이라로 남은 수비를 교란해."

쁘아카오가 주먹을 쥐며 끄덕였다.

"장석현."

장석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네?"

"결계석 방어막에 기초 도술로 균열을 낼 수 있어?"

"아, 그건…… 이론적으로는 되는데……"

"이론이면 돼. 실전은 전태산이 해."

장석현의 눈이 커졌다.

전태산이 끄덕였다.

"균열 내면 내가 부숴?"

"아니, 균열 나면 전태산이 결계석 터치.

부수는 게 아니라 점령이야."

"아, 터치! 쉽네."

"한 가지만 기억해."

은명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외곽 2번 점령에 실패하면

중앙 돌파 전력이 부족해.

시간도 체력도 한 번이야. 한 번."

빈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은명이 중앙 거점을 다시 가리켰다.

"중앙은 마지막이야.

팔진도를 깨는 방법은 내가 현장에서 찾아.

A반 전술 실습 때 축적한 드론 배치 패턴 데이터가 있으니까."

은명이 칠판을 끄려는데.

전태산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참 천장을 올려다봤다.

"됐고, 가자."

은명은 손가락을 화면 위에 멈춘 채 돌아봤다.

"뭐가 됐다는 거야. 다 안 들었잖아."

"핵심은 들었어.

중앙 나중에, 외곽 먼저.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잖아."

"……."

이 사람은 작전을 신뢰하는 건가.

나를 신뢰하는 건가.

아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쁘아카오가 주먹을 쥐었다.

"알겠어! 외곽 먼저! 간단해!"

"간단하지 않거든."

리오가 웃었다.

"은명이 형이 뒤에서 봐주니까

앞에서 뛰면 되는 거지!"

"형 아니거든. 동갑이거든."

은명이 칠판을 끄지 않은 채 돌아섰다.

……왜 다 이런 반응이야.

그때 장석현이 작게 말했다.

"저, 진짜로 결계석 교란 할 수 있을까요?"

은명이 장석현을 봤다.

"기초 도술이면 3초 버텨. 3초면 충분해."

전태산이 장석현의 어깨를 툭 쳤다.

"3초 안에 내가 터치하면 되잖아. 걱정 마."

장석현이 눈을 깜빡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명은 빈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작전은 완성이야.

문제는 실행하는 놈들이 작전대로 할지.

……아니, 전태산이 작전대로 할 리가 없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A반 건물 앞을 지날 때 불빛이 보였다.

A반 1팀 작전실.

유리창 너머로 홀로그램 3D 맵이 떠 있었다.

제갈린이 드론 배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열두 대의 드론이 정밀하게 진형을 그리고 있었다.

진입로 차단. 타이밍 배분. 수비-공격 전환 타이밍.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었다.

아르준의 목소리가 유리 너머로 새어 나왔다.

"홍은명이 쁘아카오 팀이야. 은명은 A반 사정을 알아."

제갈린이 답했다.

"그래서 뭐. 아는 것과 막는 것은 다르지."

잠깐의 간격을 두고 한 문장이 더 나왔다.

"변수를 자처하는 건 전략이 없다는 고백이야."

은명의 턱선이 굳었다.

……변수를 자처하는 건 전략이 없다는 고백.

틀린 말은 아니다.

제갈린의 팔진도는 완성도 높은 시스템이고,

은명의 팀은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의 판단에 기대는 구조.

은명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걸었다.

기숙사 건물이 보였다.

전태산의 말이 머릿속에서 안 지워졌다.

'됐고, 가자.'

……됐긴 뭘.

내일이 모의전이야.

모의전 출발선. 아침 7시.

안개가 필드 위에 얇게 깔려 있었다.

쁘아카오 팀 다섯이 나란히 섰다.

쁘아카오가 맨 앞에서 주먹을 쥐고 눈을 빛냈다.

리오가 가볍게 무릎을 구부려 준비했다.

장석현이 손을 오므렸다 폈다.

은명은 맨 뒤에 섰다. 태블릿을 들고.

전태산이 앞에서 돌아봤다.

"야, 준비됐어?"

"……네가 작전대로만 하면."

전태산이 씩 웃었다.

그 웃음이 대답이었다.

은명의 손에 태블릿이 쥐어져 있었다.

A반의 전력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

B반의 팀에 넣어진 사람.

자발적이 아니야. 갈 데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호루라기가 울리려는 순간.

필드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터졌다.

『모의전 운영 안내.

금일 시간 제한이 60분에서 45분으로 단축됩니다.

— 교관부 결정.』

전태산이 은명을 돌아봤다.

은명은 태블릿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했다.

시간이 줄었다. 외곽 점령에 쓸 시간이 빠듯해졌다.

은명의 시선이 필드 건너편에 멈췄다.

제갈린이 A반 1팀을 이끌고 반대편 출발선에 서 있었다.

드론 열두 대가 제갈린의 등 뒤로 일렬로 떠 있었다.

제갈린이 이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0.3초.

은명이 시선을 돌렸다.

태블릿 화면을 켰다.

모의전 맵. 거점 위치. 드론 배치 예측 경로.

데이터는 충분해.

은명이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변수를 자처하는 게 전략이 없다는 고백이라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두고 봐.

작가의 말

3차수정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