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시간의 끝
48시간 마감일, 아침.
교실.
은명이 활빈당 멤버를 모았다.
체육관 뒤편이 아니었다. 교실 구석.
더 이상 숨어서 모이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선택을 해야 해."
전태산이 팔짱을 꼈다.
"선택? 안 해체한다는 거 아니야?"
"해체하지 않으면 선도부가 물리적으로 온다."
은명의 목소리가 낮았다.
"정학 가능성도 있어."
위노나가 눈을 떴다.
"정학까지?"
"학생회 칙령 위반은 중징계 대상이야.
이자벨라가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어."
리오가 무릎을 감싸 안았다.
"……그러면 어떡하는데."
은명이 네 명을 봤다.
"두 가지 길이 있어."
손가락 하나.
"하나,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비공식으로 계속한다."
손가락 둘.
"둘, 정면으로 거부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전태산이 바로 말했다.
"비공식은 숨는 거잖아."
"아니, 전략적 후퇴야."
"후퇴는 싫어."
은명이 쓸쓸하게 웃었다.
"나도. 근데 전멸보다는 나아."
침묵이 내려앉았다.
위노나가 입을 열었다.
"은명."
"응."
"나는 네 결정을 따를게. 어떤 쪽이든."
리오가 손을 들었다.
"나도~ 근데 숨는 건 재미없긴 해."
전태산이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로 해체해야 해?"
은명이 창밖을 봤다.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대답하려는 순간——
위노나의 태블릿이 울렸다.
경보음. 은명이 직접 설정했던 긴급 알림이었다.
"잠깐!"
위노나가 태블릿을 펼쳤다.
화면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다들 멈춰. 이거 봐."
은명이 다가왔다.
화면에 드론의 학교 외곽 스캔 결과가 떠 있었다.
비정상 에너지 패턴.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이 패턴……"
위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번에 포착한 것과 같아.
인위적인 정보 유출의 흔적이야."
은명이 화면 속 주파수 곡선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규모는?"
"이전 건은 흔적 수준이었어."
위노나가 손가락으로 데이터를 넘겼다.
"이건……
누군가 학교 결계 외곽을 탐색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교실이 조용해졌다.
전태산이 팔짱을 풀었다. 리오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은명의 표정이 굳었다.
"활빈당이든 학생회든 —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야."
은명이 짧게 숨을 끊었다가 판단을 내렸다.
"위노나. 이 데이터를 학생회에 보내."
전태산이 돌아봤다.
"학생회에? 우릴 해체시키려는 쪽에?"
"학교가 위험하면 해체고 뭐고 의미 없어."
은명이 전태산을 봤다.
"지금은 — 같은 편이야."
전태산이 은명을 한참 봤다.
그리고 끄덕였다.
"……오케이. 네 머리를 믿을게."
위노나가 데이터를 정리했다.
학생회 서버로 전송. 수신자: 제갈린.
은명이 데이터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회실의 태블릿이 울렸다.
제갈린의 태블릿. 발신자: 위노나 (활빈당).
데이터 패키지.
읽었다.
제갈린의 얼굴이 굳었다.
"……이자벨라 회장님."
"뭐."
"활빈당이 데이터를 보냈습니다."
이자벨라가 다가왔다.
화면을 봤다.
외부 침투 징후.
결계 외곽의 비정상 에너지 패턴.
스캔 결과, 수치, 좌표.
이자벨라의 손가락이 멈췄다.
"……외부 침투 징후."
길게 화면을 내려다보던 이자벨라가 입을 열었다.
"교관단에 확인 요청해."
제갈린이 끄덕였다.
"그리고——"
이자벨라가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손가락 끝이 화면 가장자리를 두 번 두드렸다.
"칙령 집행을 일시 보류해.
비상상황 대응 조항 3조에 따라
외부 위협 감지 시 내부 행정 절차는 잠정 정지야."
제갈린이 올려다봤다.
"보류요? 48시간이 지나면——"
"학교가 위험한 상황에서
내부 분열을 키우는 건——"
이자벨라가 창밖을 봤다.
"합스부르크가 가장 경계하는 실수야."
제갈린이 입을 다물었다.
……활빈당이 데이터를 보냈다.
자신들을 해체시키려는 우리에게.
왜?
학교가 위험하니까.
자존심보다 학교를 우선시한 거야.
……그래. 네가 그런 사람이구나, 홍은명.
"칙령 보류. 전달하겠습니다."
제갈린이 나갔다.
이자벨라가 혼자 남았다.
화면의 데이터를 다시 봤다.
……활빈당이 없었으면 이 데이터를
우리가 포착했을까.
대답은 알고 있었다.
아니.
위노나급 정보 전문가는 학생회에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해.
소식이 퍼졌다.
칙령 일시 보류.
학교 반응은 갈렸다.
활빈당 지지파.
"봤지? 활빈당이 먼저 정보를 보냈어.
학교를 위해서."
체제 지지파.
"일시 보류일 뿐이야.
위협이 끝나면 칙령은 다시 유효해."
중립파의 누군가가 뒷자리에서 중얼거렸다.
"외부 위협이라니…… 뭐가 오는 거야?"
편입생 몇 명이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명문가 쪽에서는 고개를 젓는 학생도, 입술을 다무는 학생도 있었다.
보류라는 단어가 동맹이 아니라 임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복도.
전태산이 은명에게 물었다.
"해체 안 당한 거야?"
"보류된 거야. 끝난 게 아니야."
"보류면 일단은 살아남은 거잖아."
"응. 근데 — 지금은 다른 게 먼저야."
"그 바깥의 뭔가?"
"응."
은명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그게 뭔지…… 아직 몰라."
전태산이 멈췄다.
"모르는 게 왜 무서운 건데."
"적이 뭔지 모르면 대비를 못 해.
대비를 못 하면 지는 거야."
전태산이 은명을 한참 봤다.
"근데 너 아까 학생회에 데이터 보냈잖아.
그건 대비 아니야?"
은명이 웃었다.
"그건 대비가 아니야. 동맹이야."
전태산이 고개를 긁적였다.
"어제까지 적이었는데?"
"어제까지 적이었어도
오늘 같은 위협이 오면 같이 싸워야 해.
그게 현실이야."
"……복잡하다."
"응. 복잡해."
선도부.
테무진이 부원을 소집했다.
"외부 위협에 대비한다. 경계를 강화해."
부원이 물었다.
"활빈당은요?"
테무진의 턱이 한 번 당겨졌다가 풀렸다.
"……일단은 내버려둬."
부원이 나갔다.
테무진이 혼자 남았다.
……활빈당이 외부 위협을 먼저 포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인정하기 싫지만—— 정보력은 인정해야 해.
하지만.
위협이 끝나면.
규율은 규율이다.
이 소식이 교내를 한 바퀴 돌 무렵,
옥상에서는 인티 유팡키가 학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강했다.
피부의 문양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체제와 반체제가 같은 적을 마주보고 있다.
역사에서—— 그걸 뭐라고 불렀더라.
아, 맞다. 동맹.
……이 동맹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인티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양이 구름 사이로 빛을 쏟고 있었다.
태양은 모두에게 빛을 내린다.
강한 자에게도. 약한 자에게도.
적에게도. 아군에게도.
……지켜보겠다.
아직은.
같은 시각.
학교 외곽, 결계 밖.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떠 있었다.
소형 드론. 검은 금속 외피.
표면에 빨간 코드가 흘렀다.
제어부적형 코드 —— 이전에 위노나가 포착한 노드 서명과 동일한 패턴이었다.
천기의 정찰 유닛.
드론이 결계를 스캔했다.
데이터가 전송되었다.
수신자는 존재하지 않는 서버 주소.
'1차 탐색 완료.
결계 구조 70% 파악.
학교 내 분열 확인. 내부 갈등 진행 중.
2차 침투 — 시험 기간이 적합.
학교의 관심이 분산될 때.
예상 개시: 기말 첫날, 동틀 무렵.'
드론이 자취를 감추었다.
바람이 불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시계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