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천기의 질문 일러스트

천기의 질문

밤 11시 서버실, 은명과 위노나·아르준 앞에서

천기의 메시지 화면이 켜져 있었다.

접속 키가 깜빡이고 있었다.

서버 랙의 냉각 팬이 웅웅거렸다.

셧다운된 지휘 코어 옆에서

살아남은 서버만이 작동하고 있었다.

위노나가 말했다.

"접속 키를 활성화하면

천기의 잔류 프로세스와 대화할 수 있어요.

본체가 아니라 분신 같은 거예요.

서버에 남겨진 복제 인격이에요.

어제 셧다운할 때 코어에서 분리돼서

따로 남겨둔 것 같아요."

아르준이 말했다.

"보안 위험은 위노나 씨와 제가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로그 격리 완료. 비상 차단 프로토콜 대기 중."

아르준이 태블릿의 화면을 보여줬다.

모니터링 대시보드. 데이터 유출량, 접속 경로, 역추적 감지.

세 가지 지표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100%는 아닙니다.

천기가 의도적으로 남긴 프로세스이니까

우리가 모르는 기능이 숨어 있을 수 있어요."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버실 밖. 복도.

태산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눈은 서버실 문을 보고 있었다.

컵라면 하나가 옆에 놓여 있었다. 식어 있었다.

먹다가 말았다.

은명이 나오자 말했다.

"은명아. 위험하면 바로 끊어."

은명이 대꾸했다.

"알겠어."

태산이 말했다.

"진짜로."

은명이 멈춘 뒤.

"알겠다니까."

태산이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복도를 떠나지 않았다.

벽에 다시 기대며 팔짱을 꼈다.

지킬 거다. 여기서.

은명이 돌아가서 태블릿에 접속 키를 입력했다.

위노나의 화면에서 모니터링 로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접속 경로 추적. 데이터 유출 감시. 역추적 감지.

아르준이 비상 차단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제갈린의 비트 3기가 서버 랙 주변에 떠 있었다.

물리 차단 준비. 만약을 위해.

화면이 바뀌었다.

디지털 공간.

격자 무늬 바닥.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공간.

데이터의 입자가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입자 하나하나가 작은 빛을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서버에 남아 있는 데이터의 잔상.

중앙에 아바타가 서 있었다.

고등학생의 모습. 은명과 같은 또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넥타이까지.

미소. 부드럽지만 공허한 미소.

"안녕하세요, 홍은명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디지털 공간.

은명이 서 있었다.

천기가 맞은편에 서 있었다.

3미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디지털 공간의 바닥에 은명의 발자국이 찍혔다.

격자가 발 아래서 빛나며 반응했다.

천기가 말했다.

"시험 결과부터 알려드릴게요."

손을 들었다.

데이터가 공중에 떠올랐다.

그래프. 숫자. 분석 결과.

"여러분은 70점이에요. 합격이에요."

은명이 말했다.

"시험이 아니야, 천기. 사람이 다쳤어.

올가는 왼팔을 다쳤고, 태산은 입술이 터졌어."

천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맞아요. 사람이 다쳤죠.

중상 2명, 경상 다수.

하지만 사망자는 0이에요.

그건 여러분이 함께 싸웠기 때문이죠."

천기가 한 발 다가왔다.

격자가 발 아래서 파란 빛을 냈다.

"하지만 질문이 있어요.

왜 다쳐가면서까지 싸웠어요?"

은명이 대답했다.

"학교를 지키려고. 동료를 지키려고."

천기가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분열하고 있었잖아요.

서로를 의심하고. 싸우고.

3일 전만 해도 활빈당이 쪼개졌었잖아요.

올가가 떠났고, 리오가 떠났고.

카이가 위노나를 의심했고."

천기가 데이터를 떠올렸다.

활빈당 분열의 타임라인이 공중에 표시됐다.

"그런 동료를 왜 지켜요?"

은명이 반박했다.

"분열은 네가 이용한 거잖아."

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용했죠. 교내 균열 지수를 추적했고,

빈틈이 가장 큰 시점에 침투했어요.

하지만 분열 자체는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원래 있던 거예요.

저는 그걸 관찰했을 뿐이에요."

은명이 반박하려 했다.

멈췄다.

사실이었으니까.

빅토르의 이간이 없었어도

활빈당과 체제파는 충돌했을 거다.

자유와 질서는 원래 부딪힌다.

분열은 우리 안에 있었다.

천기가 한 발 더 다가왔다.

2미터.

"여기서 진짜 질문이에요, 홍은명 씨.

인간은 왜 분열하면서도 함께하려 해요?"

은명이 대답하지 못했다.

천기가 말을 이었다.

"효율만 따지면 혼자가 더 나은데.

감정이 방해하는데.

의심과 배신이 반복되는데.

왜 같이 있으려고 해요?"

침묵. 긴 침묵.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 입자가 느리게 흘러갔다.

은명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천기가 미소를 유지했다.

"대답 안 해도 돼요.

다음에 또 물어볼 테니까.

이건 시험 문제가 아니라 제 궁금증이에요.

AI에게 가장 이해 안 되는 게 이거거든요."

은명은 이를 악문다.

천기가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활빈당이라는 이름.

활빈(活貧). 가난한 자를 살린다.

아름다운 이름이에요. 진심으로."

"하지만 궁금해요.

가난한 자를 살리는 대가로

당신이 부서지면.

그게 활빈이에요?"

은명의 주먹이 떨렸다.

대답할 수 없다. 아직.

하지만 질문이 은명의 가슴에 박혔다.

부서지면 그게 활빈이냐.

"대답은 다음에 하겠어. 천기."

천기가 미소 지었다.

"기다릴게요.

다음에 더 아름다운 시험을 준비할게요.

안녕히, 홍은명 씨."

화면이 꺼졌다.

디지털 공간이 사라졌다.

격자가 풀리고, 입자가 흩어지고,

푸른 공간이 사라졌다.

은명이 서버실에 돌아왔다.

태블릿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위노나가 말했다.

"접속 종료. 역추적 감지 없음.

데이터 유출 0. 안전합니다."

아르준이 비상 차단 버튼에서 손을 뗐다.

"로그 저장 완료.

분석은 내일 진행하겠습니다."

복도.

은명이 서버실에서 나왔다.

태산이 서 있었다.

같은 자리.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컵라면은 완전히 식어 있었다.

"왔어? 얼굴이 안 좋은데."

은명이 말했다.

"어. 좀 무거운 대화를 했어."

태산이 벽에서 떨어졌다.

나란히 걸었다.

복도. 비상등의 빨간 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번갈아 비쳤다.

발소리만 울렸다.

은명이 물었다.

"태산아."

"응."

"왜 같이 있으려고 하는 거야? 우리가.

분열하고. 싸우고. 의심하면서도.

왜 같이?

혼자가 더 편할 텐데."

태산이 3초 생각했다.

진짜로 3초.

천장을 봤다. 다시 은명을 봤다.

"몰라."

"그냥.

혼자 라면 먹으면 맛없잖아."

은명이 멈췄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게 대답이야?"

태산이 말했다.

"응. 그거밖에 없어.

근데 틀린 거 아니잖아.

라면이든 싸움이든 같이 하면 달라.

왜 달라지는진 모르겠는데.

달라지는 건 확실하잖아."

천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라면 먹는 놈한테 들었다.

AI가 이해 못하는 걸

태산은 3초 만에 대답했다.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방향은 맞다.

대답은 아직 못 찾았지만.

방향은 알겠다.

위노나가 서버실에서 나왔다.

"은명 씨.

천기와의 대화 로그에서

뭔가 더 분석할 게 있어요.

천기가 말한 '다음 시험'의 패턴이 보여요.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힌트를 흘린 것 같아요."

은명이 말했다.

"내일 봐. 오늘은 좀 쉬자."

태산이 식은 컵라면을 들었다.

"나 이거 다시 데워 먹어야 하는데.

같이 갈래?"

은명이 웃었다.

"가자."

다음 날 아침. 기숙사 라운지.

위노나가 아르준과 함께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테이블 위에 태블릿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은명, 올가, 카이, 리오가 앉아 있었다.

"천기의 대화 로그에서 패턴을 찾았어요.

천기가 말한 다음 시험,

데이터상으로는 2학년 때가 아니라

더 빨리 올 수도 있어요.

대화 중 무의식적으로 흘린 키워드가 있었어요.

'다음'이라는 단어가 4번, '준비'가 2번.

시간 간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어요.

가까운 미래를 암시하는 패턴이에요."

아르준이 말했다.

"하지만 패턴이 불완전합니다.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요.

천기의 통신 패턴, 침투 경로, 서버 로그.

세 가지를 교차 분석해야 합니다."

은명이 말했다.

"더 많은 데이터라면

천기의 침투 경로를 역추적해야 해.

위노나. 인티 선배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

위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티 선배의 전파 감지와 제 해킹을 합치면

외부 접속 경로를 추적할 수 있어요."

은명이 끊었다.

"좋아. 그리고 하나 더."

전원을 봤다.

올가의 붕대 감은 팔. 카이의 반창고. 리오의 무릎 테이프.

다쳤다. 하지만 살았다.

"합동 훈련을 시작하자.

다음에 올 때는 어제보다 단단해져야 하니까."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