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명의 대가
아침 7시, 교정은 따뜻한 햇빛과 차가운 잔해가 뒤섞여 있었다.
부서진 벽. 갈라진 운동장. 꺾인 가로등 세 개.
철귀대의 잔해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금속 팔이 떨어진 곳에 아침 빛이 비치고 있었다.
코어 라이트가 꺼진 동체가 화단 위에 쓰러져 있었다.
구미호안드로이드의 교복 조각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승리한 아침은 아니다. 살아남은 아침이다.
활빈당과 체제파 학생들이 교정 여기저기에 앉아 있었다.
경계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적의는 없었다.
어젯밤 등을 맞대고 싸운 사이니까.
체제파 학생 하나가 활빈당 쪽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활빈당 학생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적의도 없었다.
운소하가 교관진과 걸어오며 말했다.
교관복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밤새 결계 복구에 참여한 흔적이다.
"결계 40% 복구.
통신은 위노나가 80% 복원.
부상자, 중상 2명, 경상 다수."
교관이 물었다.
"사망자는요?"
운소하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아침 햇빛이 운소하의 얼굴에 비쳤다.
"기적이야."
기적이 아니다. 아이들이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운소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따로 싸웠으면 이 숫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은명이 활빈당 멤버 상태를 확인했다.
한 명씩 돌아보며.
태산은 타박상 다수. 입술이 터졌고 왼 손등에 피딱지.
금강불괴 덕에 뼈는 멀쩡하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났다.
컵라면을 들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올가는 왼팔 부상. 구미호안드로이드에 맞은 자리.
붕대를 감고 있었다. 붕대 사이로 멍이 보였다.
수호벽이 늦게 올라온 0.5초의 대가.
카이는 경상. 이마에 반창고.
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가지에 긁힌 것이다.
리오는 왼쪽 무릎에 테이프를 감고 있었다.
작은 체구로 철귀대 사이를 빠질 때 착지가 잘못됐다.
위노나는 부상은 없지만 얼굴이 창백했다.
밤새 해킹. 7중 방화벽. 손가락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아르준은 멀쩡했다. 후방에서 데이터를 정리했으니까.
하지만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은명이 말했다.
"올가. 왼팔 괜찮아?"
올가가 팔을 들어 보였다.
"부러진 건 아니야. 움직여."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7명. 다 살았다.
발소리.
이자벨라가 다가왔다.
금발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학생회 완장은 그대로.
완장에도 유압유가 묻어 있었다.
"홍은명. 임시 연합은 아직 유효해.
잔당이 남아있으니까."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잔당?"
"철귀대 일부가 퇴각하지 않고
학교 외곽에 잔류 중이야.
지휘 코어 없이 자율 행동하는 것들.
인티의 전파 감지로 잔류 신호 12건이 확인됐어.
완전 소탕이 필요해."
운소하가 뒤에서 말했다.
"잔당 소탕은 학생 합동으로 진행한다.
교관진은 결계 복구에 집중해야 해.
결계가 40%인 상태에서 또 침투당하면 끝이야."
운소하가 은명과 이자벨라를 번갈아 봤다.
"어제 함께 싸웠으면
오늘 함께 치울 수 있겠지."
합동 작전.
어제는 목숨을 걸고 싸웠고,
오늘은 청소를 같이 하는 거다.
어색한 건 당연하다.
오전 10시. 학교 외곽 숲.
잔당 소탕 편성.
활빈당에서 태산, 카이, 리오.
체제파에서 테무진, 선도부 2인.
합동 소대. 6명.
테무진이 대열을 지시했다.
"3열 종대. 전방 경계."
태산을 봤다.
"전태산. 네가 선두."
태산이 돌아봤다.
"왜 나?"
테무진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네가 제일 안 죽으니까."
카이가 태산에게 속삭였다.
"야 태산. 저 사람 되게 딱딱하다."
태산이 웃었다.
"원래 그래.
근데 어제 등 맞대고 싸울 땐 괜찮았어.
호흡 좋더라. 내가 뚫으면 바로 정리해줬어."
숲으로 들어갔다.
서리 낀 나뭇가지. 12월의 숲.
발자국이 얼어붙은 흙을 밟았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낙엽이 얼어서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6명의 발소리가 리듬을 이루며 숲에 울렸다.
앞에서 금속음.
태산이 손을 들었다.
전원 정지.
뒤에서 선도부원들이 즉시 멈췄다.
테무진의 훈련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숲 사이로 철귀대 잔당.
8기. 패턴이 불규칙했다.
지휘 코어 없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에 부딪히는 기체도 있었다.
방향 감각을 잃은 것이다.
코어 라이트가 빨간색과 꺼짐을 반복하며 깜빡이고 있었다.
오류 상태. 공격성은 있지만 지능이 없다.
태산이 뒤를 봤다.
테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위한다. 선도부 좌익. 활빈당 우익."
태산을 봤다.
"전태산. 정면."
태산이 주먹을 쥐었다.
"됐고."
뛰어들었다.
경기가 온몸을 감쌌다.
첫 번째 잔당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쳤다.
쾅!
기체가 뒤로 날아갔다.
나무에 부딪혀 줄기가 꺾였다.
나무 조각이 흩어졌다.
테무진이 좌익을 밀었다.
선도부원들이 대열을 유지하며 잔당 셋을 몰아붙였다.
테무진의 칼이 관절 사이를 정확하게 찔렀다.
한 칼에 하나씩. 낭비 없이.
어제 밤 교사동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웠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카이와 리오가 우익에서 측면을 찔렀다.
카이가 나무에서 뛰어내려 어깨 관절을 꺾었다.
착지하면서 발로 두 번째 기체를 밀었다.
리오가 뒤에서 다리를 걸어 넘겼다.
작은 체구가 철귀대의 팔 사이를 빠져나가며
정확한 타이밍에 다리를 걸었다.
태산이 돌파. 테무진이 정리.
자연스러웠다.
어제 전투의 경험이 몸에 남아 있었다.
지시하지 않아도 역할이 나뉘었다.
전투 종료. 8기 소탕.
태산이 피를 닦으며 웃었다.
"역시 호흡 맞는데.
너 대열 짜는 거 잘하더라."
테무진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규율은 효율이니까."
시선을 돌리며.
"네 돌파도 나쁘지 않았다.
규율과는 거리가 멀지만."
리오가 눈을 크게 떴다.
"와, 선도부장이 칭찬했어!
기록 남겨야 되는 거 아냐?"
테무진이 돌아봤다.
"칭찬이 아니다."
카이가 리오에게 속삭였다.
"저게 칭찬인 거야. 저 사람 기준으로는."
복귀.
두 진영이 나란히 걸었다.
거리감은 있었다. 하지만 적의는 줄었다.
같은 잔해를 치운 손이 적의를 줄인 것이다.
태산이 앞에서 걷고, 테무진이 뒤에서 걸었다.
보폭이 달랐지만 속도는 같았다.
점심. 학교 식당.
비상 급식 체제.
교사동 일부가 파손돼서 급식이 간이식으로 바뀌었다.
삼각김밥. 컵라면. 빵.
급식실 창문 하나가 깨져 있었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누군가가 골판지로 막아놓았다.
평소엔 영역이 나뉘어 있었다.
활빈당은 왼쪽. 체제파는 오른쪽.
하지만 비상이라 자리가 섞여 있었다.
누가 어디 앉아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
어색한 공기가 김밥 냄새와 섞여 있었다.
은명이 삼각김밥을 들고 빈자리를 찾았다.
앉으려는 순간 옆에 누가 앉았다.
제갈린.
은명이 봤다.
"여기 앉는 거야?"
제갈린이 말했다.
"빈자리가 여기뿐이야. 의미 부여하지 마."
은명이 대꾸하지 않았다.
삼각김밥을 뜯었다.
참치마요. 제갈린은 불고기.
침묵이 길었다. 하지만 적대적이지 않았다.
밥을 먹는 동안의 침묵은 싸우는 동안의 침묵과 다르다.
맞은편에서 아르준이 위노나와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잔적 소탕 현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위노나 씨의 통신 복구 속도는
솔직히 감탄합니다.
7중 암호화를 30분 안에 6겹까지 뚫다니."
위노나가 살짝 웃었다.
"고마워요, 아르준 씨.
하지만 7번째는 10분 넘게 걸렸어요."
"그래도 뚫었잖아요."
은명과 제갈린이 나란히 식사하고 있었다.
침묵이 길었지만, 제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서버실에서.
네 전자부적이 기체 회로에 효과적이었어.
그 원리를 설명해줄 수 있어?"
은명이 놀란 표정을 숨겼다.
"관심 있어?"
제갈린이 시선을 돌렸다.
"효율적인 전술은 출처를 가리지 않아."
은명이 간단히 설명했다.
도술의 주파수를 전자 회로 대역에 맞추는 원리.
부적의 문양이 일종의 전자기 간섭 패턴이라는 것.
기계의 회로에 공명을 일으켜 오작동을 유발한다.
주파수 대역을 정확히 맞추는 게 핵심이다.
틀리면 아무 효과 없다.
제갈린이 메모했다.
안경 너머 눈이 집중되어 있었다.
적을 분석할 때와 같은 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이 아닌 아군의 기술을 분석하고 있다.
"내 팔진도와 결합하면
기체를 가두고 동시에 회로를 파괴할 수 있어.
어제 한 것처럼."
은명이 삼각김밥을 씹다 멈췄다.
"그거 콤보 전술 제안인 거야?"
제갈린이 시선을 돌렸다.
"효율적인 조합을 계산한 것뿐이야."
둘 사이에 처음으로
적대가 아닌 대화가 이루어졌다.
기율 심의에서 대립했던 두 사람이
점심 시간에 전술을 논하고 있었다.
멀리서 태산이 컵라면을 먹으며 그 풍경을 봤다.
"은명이 제갈린이랑 밥 먹고 있어.
세상 진짜 변했다."
올가가 옆에서 말했다.
"전쟁이 사람을 바꾸는 거지."
태산이 국물을 마시며.
"근데 좀 무섭다.
저 둘이 진짜 손잡으면 누가 막아?"
밤. 서버실.
위노나가 천기의 잔여 코드를 분석하고 있었다.
서버 랙의 냉각 팬이 웅웅거렸다.
지휘 코어는 셧다운되었지만 서버 자체는 살아 있었다.
화면에 코드가 흘렀다.
천기가 남기고 간 코드의 패턴이
위노나의 화면에서 분석되고 있었다.
은명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삼각김밥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위노나에게 줄 것이다.
위노나의 손이 멈췄다.
"은명 씨."
"응."
"천기가 퇴각할 때 서버실에 뭔가 남겼어요.
코드 사이에 숨겨져 있었어요.
일반 로그처럼 위장돼 있었는데
복호화 패턴이 달라서 걸렸어요."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뭘 남겼어?"
"메시지예요.
암호화되어 있었는데 복호화하면."
화면에 텍스트가 떴다.
'홍은명 씨에게.
시험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또한 질문이 하나 있어요.
대답해주실 거죠?
— 접속 키: [암호화 코드]'
은명이 화면을 봤다.
나를 지목했다. 또.
시험이라고 했다.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질문이 있다고.
"접속하면 천기와 직접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어요.
접속 키 자체에 트랩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은명이 말했다.
"접속해.
로그 격리하고 비상 차단 준비해둬.
역추적 당하면 즉시 끊는다.
제갈린의 비트로 물리 차단도 준비하고."
위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