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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 일러스트

마지막 수

새벽. 빅토르의 방.

체스판이 이미 한 판 끝난 형국이었다.

흰색 킹이 구석에 몰려 있었고,

검은색 말들이 포위 진형을 이루고 있었다.

빅토르가 와인잔을 돌리며 체스판을 내려다봤다.

활빈당 2.0.

홍은명이 체계를 잡기 시작했다.

정보 체계. 우선순위 시스템. 즉응팀.

예상보다 빠르다.

체계가 완성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

빅토르가 체스판의 비숍을 한 칸 옮겼다.

손가락이 비숍의 머리를 정확히 짚고

대각선으로 미끄러뜨렸다.

흰색 킹의 방어선 뒤, 비숍이 조용히 침투했다.

위노나의 해킹 기술.

그 서명을 이용하면,

위노나가 체제파에 활빈당 정보를 넘긴 것처럼 보이는

가짜 로그를 심을 수 있다.

해시 값. 세션 시그니처. 기기 ID.

세 가지를 완벽하게 복제하면

기술적으로 위노나 본인이 한 것과 구분이 불가능하다.

진짜 내부자는 없다.

하지만 내부자가 있다고 '믿게' 만들면,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균열이 생긴다.

의심은 사실보다 강하다.

증거가 있는 의심은 더더욱.

빅토르가 와인을 마셨다.

잔의 와인이 촛불에 검붉게 비쳤다.

입술에서 잔을 떼며.

홍은명.

네가 28%를 인정한 건 용기였다.

기율 심의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책임을 받아들인 그 태도.

인상 깊었다. 진심으로.

하지만 용기만으로는 이 수를 막을 수 없다.

체스 말을 마지막으로 옮겼다.

검은색 퀸. 대각선을 가로질러 중앙에.

"체크."

적갈색 눈동자가 체스판을 내려다봤다.

촛불의 빛이 눈동자 안에서 흔들렸다.

"아직 메이트는 아니야."

미소.

"하지만 다음 수는 네가 둘 차례야."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소리 없이.

촛불이 흔들리지 않았다.

오전. 활빈당 아지트.

위노나가 새 정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실시간 위협 감지 시스템.

화면이 여러 개 열려 있었다.

구역별 위험도 매핑, 알림 로직, 로그 모니터.

어제 즉응팀 첫 출동의 데이터가

피드백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응답 시간: 58초. 태산의 말대로 1분이었다.

위노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가 옆에 놓여 있었다.

식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아르준이 옆에서 데이터를 점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태블릿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데이터 연동이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위노나 씨."

아르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떨렸다.

안경을 올리는 손도 멈칫했다.

평소 아르준의 손은 기계처럼 정확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것 좀 봐주세요."

화면을 가리켰다.

아르준의 모니터.

로그 분석 중 발견한 이상 항목이

빨간색으로 하이라이트 되어 있었다.

"위노나 씨의 계정에서

학생회 서버로 데이터가 전송된 로그가 있어요."

위노나가 화면을 봤다.

색이 빠졌다. 얼굴에서.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멈췄다.

"……뭐?"

아르준이 말을 이었다.

화면을 확대하며.

"전송 시간은 기율 심의 이틀 전이에요.

10월 31일, 새벽 2시 14분."

손가락이 타임스탬프를 짚었다.

"제갈린이 활빈당 데이터를 정확히 파악했던 이유가

이 로그라면 설명이 됩니다.

보호 성공률, 구역별 대응 시간, 멤버별 활동 내역.

심의에서 제갈린이 제시한 데이터와

이 전송 파일의 내용이 90% 이상 겹쳐요."

위노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이 무릎 위에서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에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지트 안의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조작이에요!"

아르준이 화면을 확대했다.

로그 체인을 열었다.

전송 해시, 세션 시그니처, 접속 기기 ID.

세 가지 모두 위노나의 개인 프로필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르준이 각 항목을 하나씩 짚었다.

"저도 조작이라고 믿고 싶어요."

안경 너머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이 서명은

해시 값, 세션 시그니처, 기기 ID 세 항목 기준

위노나 씨 본인의 것과 99% 일치합니다."

한 줄 한 줄 비교 결과를 보여주며.

"1%의 오차는 타임존 보정 차이로 설명 가능한 범위예요."

위노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술을 깨물었다.

"99%라도, 나는 안 했어요."

카이가 들어왔다.

아이스 커피를 들고.

아르준의 화면을 봤다.

아이스 커피를 든 손이 멈췄다.

발걸음이 멈췄다.

"……뭐야 이거."

아르준이 설명했다.

카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컸다.

"근데, 진짜 안 한 거 맞아?"

위노나가 카이를 봤다.

눈물이 번진 눈.

"카이 씨."

카이가 화면을 가리켰다.

"왜 네 서명이 거기 있는데?"

침묵.

아지트의 공기가 얼었다.

방과 후. 긴급 회의.

은명이 아르준의 보고를 들었다.

아지트 중앙의 화이트보드에

어제 쓴 '활빈당 2.0' 계획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아래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태산이 벽에 기대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눈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누가 흔들리고, 누가 버티고 있는지.

올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보며.

"증거가 있잖아."

은명을 돌아보지 않고.

"위노나를 믿고 싶지만, 증거는 증거야."

리오가 반박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야, 위노나가 그럴 리 없잖아!"

카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단단했다.

"난 사실을 말하는 거야!

감정으로 판단하면 안 되잖아!"

리오가 카이에게 다가섰다.

손가락을 들며.

"네가 쟤 걸 어떻게 아는데?!"

"서명이 99% 일치하는데

뭘 더 어떻게 알아?!"

카이와 리오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주먹이 날아갈 것 같은 공기였다.

은명이 사이에 섰다.

두 사람을 양팔로 갈랐다.

"잠깐. 다들 진정해."

목소리가 차가웠다.

심의장에서와는 다른 종류의 단단함.

멤버들을 둘러봤다.

"이 증거 자체가 함정일 수 있어."

카이가 물었다.

"함정? 그럼 누가 이런 걸 할 수 있는데?"

목소리가 올라갔다.

"위노나 수준의 해킹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학교에 몇이나 있어?"

카이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이 수준의 해킹은 위노나 아니면 천기밖에.

하지만 천기라는 가설을 지금 꺼내면

변명으로밖에 안 들린다.

증거 없이 보이지 않는 적을 말하는 건

음모론과 구분이 안 되니까.

그때 아지트의 태블릿 하나가 울렸다.

위노나의 위협 감지 시스템이었다.

어제 설치한 시스템.

화면에 경고가 떴다.

빨간색 테두리.

'경고: 내부 로그 재변조 시도 감지.

시간: 현재. 대상: 위노나 계정 접속 기록.

소스: 불명. 경유: 교내 게스트 네트워크.'

아지트가 멈췄다.

모든 시선이 화면에 모였다.

카이의 입이 닫혔다.

올가의 팔짱이 풀렸다.

리오가 물러섰다.

은명이 말했다.

"지금, 실시간으로 누군가

위노나의 로그를 또 건드리고 있어."

화면의 경고가 깜빡였다.

"위노나가 범인이라면,

왜 지금 이 시간에 자기 로그를 또 건드리지?"

침묵.

카이가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 위노나를 프레이밍하고 있고,

그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거야."

태산이 낮게 말했다.

벽에서 등을 뗐다.

"나도 확신은 없어."

은명을 봤다.

시선이 단단했다.

"근데 은명이가 함정이라면,

난 그쪽에 건다."

은명이 태산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1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의 신뢰는 논리가 아니라 직관이다.

하지만 그 직관이 틀린 적이 없다.

위노나가 조용히 일어섰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제가 잠시 나가 있을게요."

은명이 말했다.

"위노나, 앉아. 나가지 마."

위노나가 은명을 봤다.

떨리는 목소리.

"은명 씨."

눈물이 번진 눈 안에서

마지막 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를 믿어요?"

1초.

은명이 멈췄다.

그 1초.

위노나에게는 영겁이었다.

아지트의 시계 소리가 세 번 들렸다.

하지만 위노나의 시간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믿어."

은명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풀어야 해."

위노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이 태블릿 위로 돌아왔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할 일이 있으니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밤. 기숙사. 위노나의 방.

불이 꺼져 있었다.

태블릿 화면의 푸른 빛만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불 위에 앉아서.

무릎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고.

조작된 로그를 역추적하고 있었다.

"……손 떨지 마."

위노나가 자신에게 말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추고.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명 씨가 1초 멈췄다.

겨우 1초.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1초.

하지만 위노나는 알았다.

그 1초가 의심이었다.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1초를 되돌릴 수는 없다.

눈을 닦았다.

소매로. 한 번.

태블릿 화면이 번져 보였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하지만 증거를 찾으면 된다.

내가 아니라는 걸 내가 증명하면 된다.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은명 씨가 한 말 그대로.

태블릿 화면에 역추적 데이터가 떴다.

경유 서버 목록.

프록시 체인 3단.

1단 경유: 교내 게스트 네트워크.

2단 경유: 외부 VPN 서버 (스웨덴).

3단 경유: 교내 학생회 서버 내부 포트.

마지막 경유지에서 패턴이 잡혔다.

패킷 시퀀스.

암호화 방식.

세션 핸드셰이크 타이밍.

위노나의 손이 멈췄다.

눈이 커졌다.

이 경유 패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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