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의 교실
A반 교실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교탁 위에 아무것도 없고, 칠판에도 아무것도 없다.
교실 문은 열려 있는데 교관은 보이지 않는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빈 칠판 모서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 필기를 준비하며 펜을 딸깍거리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수업 시작 3분 전인데 누구도 먼저 떠들지 않았다.
A반은 긴장할 때 오히려 더 조용해지는 반이었다.
"오늘 수업 취소인가?"
"운소하 교관 스타일 보면 그럴 리는 없지."
학생 몇 명의 시선이 맨 뒷줄로 향했다.
홍씨세가 장손.
어제 입학식에서 이름이 스크린에 뜬 순간
강당이 웅성거렸던 인물.
하지만 당사자는 태블릿 하나를 켜놓고
이어폰 한쪽을 끼운 채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시선들이 하나씩 돌아갔다. 기대와 다른 온도.
학생들이 서로의 얼굴을 슬금슬금 살피기 시작했을 때.
"늦었나~?"
느릿한 목소리가 교실 안쪽에서 들렸다.
아니, 교탁 밑이다.
운소하가 교탁 밑에서 기어 나왔다.
느슨한 교관복. 그 위에 걸친 낡은 한복 저고리.
긴 은발을 대충 묶어 올린 채 하품을 하면서.
"오늘 첫 수업이니까 가볍게 갈까."
학생 서른 명이 일제히 눈을 깜빡였다.
제갈 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A반 수석. 학생회 부회장.
"교관님, 왜 교탁 밑에서 나오시는 겁니까."
뒷줄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저 직위 진짜야?"
"학생회가 입학 전에 먼저 뽑은 모양인데."
양쪽 어깨에 드론 두 대를 고요히 띄운 채
교탁 정면에 앉아 있었다.
운소하가 씩 웃었다.
"문으로 들어가면 재미없잖아."
제갈 린이 표정을 바꾸지 않고 되물었다.
"……수업도 그런 식입니까?"
운소하가 손가락을 튕기며 대답했다.
"응~ 나는 교과서 싫어해."
그 한마디에 교실 뒤쪽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좋아하는 학생도 있었고, 싫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문제는 둘 다 이유가 같다는 점이었다.
기준을 알 수 없는 수업은
재능 있는 애에게도, 노력하는 애에게도 똑같이 불안했다.
교실 천장에 매립된 홀로그램 패널이 켜지며,
공중에 부적 하나가 떠올랐다.
전통 부적이 아니었다.
도형은 부적인데 글자가 코드였다.
0과 1이 주어를 이루고,
사주팔자 구조가 함수를 대신하는 이상한 혼종.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정적.
은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은 열지 않았다.
"아무도 몰라? 그러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운소하가 각 좌석으로 빈 패널을 하나씩 날렸다.
"기초 전자부적 실습.
이 코드를 완성해서 불을 켜봐. 방법은 자유."
은명이 패널을 받아 들었다.
좌표가 비어 있고, 명령어가 빠져 있고,
부적의 중앙 인자가 봉인되어 있다.
은명의 손가락이 패널 위를 빠르게 훑었다.
3층 구조를 우회해서
코드의 백도어를 열고 중앙 인자에 직접 접근.
전씨세가에서 17년간
도술사들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꼼수.
정석은 아니지만, 시간을 줄이는 데는 이쪽이 빨랐다.
문제는 빠른 길일수록 안전장치를 생략하게 된다는 것.
은명은 그걸 알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A반 첫 실습에서 실패한 얼굴을 보여 줄 생각은 없었다.
패널이 미세하게 떨렸다.
좌표가 잡히고, 불꽃이 피어오르려는 찰나.
퍽.
패널이 터졌다.
은명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변 학생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
운소하가 걸어왔다.
분명 반대편에 있었는데,
한 발짝도 안 걸은 것처럼 은명 앞에 서 있었다.
축지(縮地).
앞줄 학생 하나가 작게 숨을 삼켰다.
옆자리 학생이 움찔하며 의자를 당겼다.
운소하가 부서진 패널의 잔해를 들여다봤다.
반쯤 감긴 눈 사이로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이 방식."
운소하가 나직이 말했다.
"이름이 뭐야?"
"홍은명입니다."
운소하가 되뇌었다. 미소가 묘하게 깊어졌다.
"홍은명."
"재밌는 발상이야.
정석을 무시했는데, 구조는 맞았거든."
"다만 출력 제어를 못 했으니까 터진 거야.
아깝네~."
운소하가 돌아서는데,
제갈 린의 목소리가 교실을 가로질렀다.
"실패한 부적은 수업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은명이 고개를 돌렸다.
제갈 린이 자리에서 일어선 채,
자신의 패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패널 위에 불이 완벽하게 켜져 있다.
정석적인 3층 구조 해제. 기문둔갑 정법.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부적.
"격식을 무시한 발상이 평가받는다면,
이 수업의 기준은 뭡니까?"
운소하가 느릿하게 돌아봤다.
"기준?"
제갈 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전략이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전략은 망상입니다."
교실 공기가 얇아졌다.
앞줄 학생 하나가 펜을 떨어뜨렸다.
아무도 줍지 않았다.
은명의 시선이 제갈 린에게 고정되었다.
"정석이 답이면
이 세상이 진작 평화로웠겠지."
제갈 린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이 흔들렸다.
아르준 싱이 두 사람 사이 너머에서
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운소하가 다시 하품을 했다.
"하아~ 싸우려면 밖에서 싸워.
여기선 다 시험이니까."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A반 교실의 긴장이 가라앉을 무렵,
B반은 정반대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교실 같은 건 없었다.
처음부터 야외 훈련장.
콘크리트 바닥 위에 격투 링이 그려져 있고,
학생들은 교복 위에 보호대만 걸친 채 줄을 서 있었다.
"이름 부르면 올라와. 규칙은 하나.
죽이지만 마."
학생들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농담처럼 들리는데 남궁현의 목소리에는 농담의 결이 없었다.
누군가는 침을 삼켰고, 누군가는 보호대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B반에선 각오가 늦는 순간이 곧 패배였다.
남궁현. B반 담임. 근접강습과 수석교관.
키 193cm. 바위를 깎아 만든 체격.
왼쪽 눈에서 관자놀이까지 이어진 칼자국.
학생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공기가 눌렸다.
"전태산."
첫 번째로 불렸다.
태산이 씩 웃으며 링에 올라갔다.
보호대를 두드리며 손목을 돌리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상대는?"
남궁현이 목록을 봤다.
"쁘아카오."
갈색 피부의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올라왔다.
맨정강이의 흉터들이 햇빛을 받아 그물처럼 반짝였다.
쁘아카오가 링에 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링 밖에서 학생 하나가 고개를 돌려 옆 친구에게 속삭였다.
"저거 어제 교문에서 붙을 뻔한 둘 아냐?"
태산이 눈을 빛냈다.
"어, 어제 그 형?"
쁘아카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답했다.
"냄새가 더 진해졌다, 전태산."
"시작."
남궁현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태산이 달려들었다.
주먹을 질렀다. 빠르고, 무거웠다.
쁘아카오가 고개를 살짝 틀었다.
주먹이 귀를 스쳤다. 바로 카운터.
왼쪽 팔꿈치가 태산의 턱을 노렸다.
퍽.
태산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하지만 웃었다.
"아, 이 맛이지!"
다시 주먹. 이번에는 더 셌다.
쁘아카오가 흘려냈다. 무에타이의 기본.
팔꿈치로 받고, 무릎으로 되치기.
태산이 무릎을 정강이로 막았다.
쿵.
링 바닥에 금이 갔다.
학생 몇 명이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힘은 확실히 태산이 위였다. 그런데.
태산의 주먹이 갈 때마다
쁘아카오는 이미 없었다.
치고 돌고, 빠지고 들어오고.
전신이 무기인 무에타이 앞에서
태산의 주먹은 자꾸 허공을 갈랐다.
쁘아카오의 로우킥이 허벅지를 찼다.
태산이 비틀거렸다.
바로 감아 잡으려 했지만
쁘아카오가 한 발 뒤로 빠지며 무릎을 올렸다.
간발의 차이로 태산이 팔로 막았다.
"좋다!"
태산이 씩 웃었지만, 이마에 땀이 흘렀다.
"거기까지."
남궁현의 목소리.
두 사람이 동시에 멈췄다.
"판정. 쁘아카오 우세승."
태산의 눈이 커졌다.
"……졌어요?"
링 밖 공기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응원하던 애들도, 구경만 하던 애들도
그 한판으로 분위기를 읽었다.
전태산은 확실히 강했다.
그런데 강한 것과 이기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모두가 같은 순간에 배웠다.
남궁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쁘아카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힘은 좋다.
근데 야수가 아니라 전사가 되어야지."
태산이 입을 다물었다. 처음으로.
주먹을 폈다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가웠다.
"다음. 항진."
덩치 큰 중국인이 올라왔다.
역장 증폭 장갑이 양 주먹에 끼워져 있었다.
"비켜라—!"
패왕의 후예다운 직선 돌격.
쁘아카오가 반 보 옆으로 빠졌다.
항진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무릎이 나직하게 항진의 옆구리를 때렸다.
쿵.
항진이 무릎을 꿇었다.
"판정. 쁘아카오."
다음. 아서.
정자세. 곧은 등. 검례를 올린 기사도의 예.
"정정당당히."
쁘아카오는 단 세 번 움직였다.
검을 팔꿈치로 흔들고,
아서의 중심을 무릎으로 무너뜨렸다.
"판정. 쁘아카오."
세 판 전승.
태산이 혀로 입술을 훑었다.
졌다는데 더 붙고 싶어졌다.
주먹이 저절로 쥐어지는 게,
이건 분함이 아니라 배고픔이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태산은 링 옆에 앉아 쁘아카오의 대전을 전부 지켜봤다.
항진도, 아서도, 자기처럼 당했다.
볼수록 이상했다.
쁘아카오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반 박자 먼저 보고, 반 박자 먼저 비켰다.
태산은 그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몸은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엔 저 틈을 먼저 찌르겠다고.
남궁현이 전체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본 것처럼,
힘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내일부터 기본기 훈련. 예외 없다."
태산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즈음, 태산의 손이 무심코
허공에 부적 문양을 그렸다.
육정육갑. 홍씨세가에서 배운 도술.
불꽃이 피어오르다가 꺼졌다.
태산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씩 웃었지만,
입꼬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식당은 전쟁터였다.
학생이 한꺼번에 몰려
배식대 세 줄이 쉴 새 없이 돌고 있었다.
은명은 구석 자리를 잡았다.
태블릿을 꺼내 오전에 터진 전자부적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이었다.
로그 창에는 빨간 경고가 줄줄이 떠 있었다.
출력 과다, 제어 실패, 차단 지연.
처음부터 틀린 계산은 아니었다.
딱 한 박자, 제어 루프가 늦었다.
은명은 그 0.2초를 확대해서 보며
입술 안쪽을 조용히 깨물었다.
쿵.
맞은편에 식판이 내려앉았다. 식판 세 개.
전태산이었다.
은명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이, 혼자 먹냐."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내가 옆에서 떠들게."
태산은 허락도 안 받고 맞은편에 앉았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눈이 안 웃고 있었다.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보통 때보다 빠르게. 씹는 횟수도 적게.
침묵.
태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입이 무거워 보여서 딱 좋거든."
은명이 태블릿에서 시선을 올렸다.
"오늘 졌어."
"왜 나한테 그걸 말해."
태산이 밥을 씹으면서 혼잣말처럼 이어갔다.
"스파링. 첫 판에."
"……."
"쁘아카오라고, 태국 애인데.
힘이 센 것도 아닌데 한 대도 못 때렸어."
은명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멈췄다.
"그 다음에 다른 애들도 다 당하더라.
나만 진 게 아니었어."
태산이 두 번째 식판으로 넘어가면서 덧붙였다.
"교관이 그러더라.
힘만 믿지 말고 머리도 쓰라고."
은명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태산이 알아챘다.
"……웃은 거야, 지금?"
"안 웃었어."
은명이 태블릿을 다시 내려다보며 답했다.
"웃었잖아."
"……."
태산이 밥을 씹다가 다시 말했다.
"너는? 오전에 뭐 했어."
"도술."
"잘했어?"
은명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
"못한 거야?"
"터졌어. 부적이."
태산은 잠깐 웃음을 멈췄다.
그 짧은 멈춤이 의외로 진심이었다.
잘하는 놈도 터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망한 게 자기만이 아니라는,
조금 유치하고 아주 솔직한 안도감이었다.
태산이 눈을 깜빡였다.
"……부적이?"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산이 웃음을 참으려다 못 참았다.
"하—"
은명이 싸늘한 눈으로 태산을 봤다.
태산이 손을 들어 항복했다.
"안 웃을게, 안 웃을게."
또 침묵.
태산이 세 번째 식판을 끌어오며 말했다.
"나도 도술 안 돼."
은명이 고개를 들었다.
"육정육갑.
홍씨세가에서 배웠는데 맨날 중간에 꺼져."
태산이 허공에 대충 부적 문양을 그렸다.
불꽃이 반짝, 하다가 꺼졌다.
"이거 봐."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태산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고,
은명은 그 사실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태산이 식판을 비우고 일어섰다.
"내일도 여기 앉을 거야."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산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그때, 강당 쪽 대형 스크린에 공지 하나가 떴다.
『A반·B반 합동 실기
— 깃발 탈환전
— 일시: 내일 오전
— 파트너: 교관 배정
— 거부권 없음』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식당 여기저기서 숟가락 내려놓는 소리가 이어졌다.
합동 실기라는 네 글자만으로도
A반과 B반의 시선이 서로를 훑기 시작했다.
내일은 평가가 아니라 비교가 되는 날이라는 걸
모두가 동시에 눈치챘다.
태산이 스크린을 보고 씩 웃었다.
"오, 합동이래!"
은명은 태블릿을 들었다.
화면에 여전히 빨간 로그가 떠 있었다.
하교 시간이 다가오자
A반 교실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
학생들이 가방을 싸고 있을 때
운소하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내일 합동 실기."
느릿하게, 하품 끼워가면서.
"파트너는 내가 정한다. 거부하면?"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입꼬리만 올렸다.
"그것도 시험이야."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어떤 학생은 이미 단말기를 켜서
가능한 파트너 조합을 계산하기 시작했고,
어떤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한 번 풀었다.
말은 수업 공지였지만, 교실의 공기는 출정 명령에 가까웠다.
제갈 린이 손을 올려 질문했다.
"파트너 배정 기준이 뭡니까?"
운소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기분."
"……."
"농담이야~.
기준은 있어. 근데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운소하가 교실을 나서며 은명을 스치듯 봤다.
눈이 마주쳤다.
운소하의 미소가 의미심장하게 깊어졌다.
복도 반대편에서 태산의 웃음소리가 환하게 들렸다.
"내일 누구랑 팀이야? 나 아무나 좋아!"
은명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정표의 시간만 다시 확인했다.
오전 9시.
그때까지 출력 제어식을 한 번 더 고쳐 둘 생각이었다.
실패 로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은명은 그 단순함을 믿었다.
적어도 계산은 배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