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업식
대강당. 종업식.
전교생이 모였다.
천기 침투 이후 일주일.
학교는 고쳐져 있었다.
깨진 창문은 새 유리로 교체됐고,
부서진 복도의 석재는 하나하나 메워졌다.
갈라진 체육관 바닥에는 새 코팅이 올라가 있었다.
전부 수리됐다.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까지 수리되지는 않았다.
대강당 좌석 배치가 평소와 달랐다.
A반과 B반이 섞여 앉아 있었다.
일주일 전, 기숙사와 체육관에서 같이 싸운 기억이
보이지 않는 줄로 그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교장 레오나르도가 단상에 올랐다.
1200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평소의 교장 연설이라면 속삭임과 태블릿 소리가 섞였을 것이다.
오늘은 달랐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주 율도고는 이계세력의 침투를 받았다."
대강당이 조용해졌다.
천장의 환기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렸다.
"여러분은—— 잘 싸웠다."
한 박자.
레오나르도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강당 전체가 숨을 삼켰다.
교관석의 교관들조차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둔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학생이 싸워야 하는 상황 자체가——
교관진의 실패다."
숨소리가 사라졌다.
"이것은 칭찬이 아니라—— 사과다."
대강당이 흔들렸다.
교장이 학생에게 사과하는 것은 율도고 역사상 처음이었다.
편입생이 눈을 닦았다.
옆의 친구가 어깨를 잡아줬다.
명문가 학생이 입술을 깨물었다.
중립파가 고개를 숙였다.
어딘가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가 몸을 일으켰다.
눈이 붉었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결계는 강화되었다.
하지만 적은 다시 올 것이다.
2학기에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한 박자.
"너희도. 우리도."
박수가 터졌다.
처음에는 한두 명. 그다음에는 앞줄 전체.
곧 대강당이 박수 소리로 채워졌다.
레오나르도가 단상을 내려왔다.
운소하가 교관석에서 은명과 전태산을 봤다.
작은 고개 끄덕임.
잘 싸웠다는 뜻인지, 수고했다는 뜻인지.
아마 둘 다.
은명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전태산은 씩 웃기만 했다.
종업식이 끝나자마자 학생처 사무실로 호출됐다.
활빈당 4인.
은명, 전태산, 위노나, 리오.
사무실은 좁았다.
학생처장의 책상 위에는 서류가 두 무더기 쌓여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서류 위를 비추고 있었다.
학생처장이 서류를 들었다.
안경 너머로 네 사람을 한 번 훑었다.
"비공인 조직 결성 및 활동. 교칙 위반."
종이를 넘겼다.
"다만 비상 상황 시 자발적 방어 참여를 참작하여
경고 1회 처분으로 감경한다."
이자벨라가 학생회장 자격으로 배석해 있었다.
벽쪽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서류의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공식 칙령은 보류 상태야.
하지만—— 비공인 활동의 기록은 남아."
은명이 입을 열었다.
"천기 침투 때 활빈당의 역할은 기록에 안 남나요?"
이자벨라가 은명을 봤다.
시선이 정확히 2초 머물렀다.
"그건 비상 상황의 자발적 참여로 처리됐어.
활빈당의 공식 활동으로는 인정되지 않아."
위노나가 눈을 내리깔았다.
서버실에서 드론을 날리고, 잠입형 유닛의 위치를 잡아냈던 그 밤.
그게 '자발적 참여'라는 네 글자로 축소됐다.
전태산이 씩 웃었다.
"경고? 벌점? 좋아. 다 받을게."
한 박자.
"근데—— 다음에 또 누가 위험하면. 또 할 거야."
이자벨라가 잠시 침묵했다.
펜을 돌리던 손이 멈췄다.
"……알아. 그래서 더 문제야."
학생처장이 서류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분이 끝났다.
복도로 나오자 리오가 팔을 뻗으며 말했다.
"경고 1회? 나 벌써 3회인데 ㅋ"
위노나가 한숨을 쉬었다.
"리오 너는 그냥 교칙 위반이잖아."
"경고에도 퀄리티가 있는 거지~
이번 건 명예 경고야."
은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태산이 리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명예 경고가 어딨어."
"아야! 폭력 교칙 위반이야!"
복도에 웃음이 퍼졌다.
일주일 전 학교 전체가 뒤흔들렸던 것이 거짓말 같았다.
은명이 걸으며 창밖을 봤다.
교정의 잔디가 새로 깔린 것이 보였다.
체육관 쪽 벽면에 아직 수리용 비계가 걸려 있었다.
처벌받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자벨라도 우리가 한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알아. 그래서 더 문제야.'
알면서도 처벌해야 하는 게 체제의 무게야.
이자벨라는 그 무게를 지고 있는 거지.
교관실. 같은 날 오후.
복도를 걸어 교관실 앞에 섰을 때,
은명과 태산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멈췄다.
문 안쪽에서 찻잔이 놓이는 소리가 났다.
운소하가 은명과 태산을 불렀다.
교관실 안에는 평소와 달리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준비해둔 것이다.
"처벌 받았다며?"
"경고 1회요."
운소하가 씁쓸하게 웃었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쌌지.
내가 학생 때는 정학 먹었어."
태산이 눈을 떴다.
"교관님도 문제아였어요?"
"나는 전씨세가 방계 독립파야.
문제아의 DNA가 뼛속에 새겨져 있어."
태산이 킥킥 웃었다.
은명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교관실 안의 공기가 잠시 부드러워졌다.
운소하의 표정이 바뀌었다.
찻잔을 밀어놓고, 등을 의자에 기대며 진지해졌다.
"본론을 말할게. 너희 둘에 대해서."
은명과 태산이 자세를 고쳤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홍은명."
"네."
운소하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너는 빠르다.
상황을 읽고, 분석하고, 답을 내리는 속도가.
서버실에서 천기의 진짜 목표를 간파한 건 너뿐이었어."
한 박자.
"하지만——
혼자 답을 내리는 습관이 있어.
서버실에 혼자 간 것처럼."
은명이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전태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지 마'라고 했던 그 표정이.
"전태산."
"네."
"너는 강하다.
금강불괴 체질에 금강권까지.
이 학교에서 순수 물리전으로 너를 이길 1학년은 없어."
태산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근데 강한 게 전부가 아니야.
강한 놈이 쓸모없어지는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아직 모르잖아."
태산이 주먹을 봤다.
서버실에서 강시의 부적을 뜯었던 손.
그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운소하가 창밖을 봤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교관실의 석양이 세 사람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너희 둘이 함께하면—— 위험해."
은명이 올려다봤다.
"체제가 싫어하는 조합이야.
분석형과 전투형. 전자부적과 금강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조합은 통제하기 어려워."
한 박자.
"하지만 함께하지 않으면—— 더 위험해."
눈이 마주쳤다.
"천기가 원하는 조합이니까.
너희가 따로 움직이면, 천기는 각개격파할 거야."
교관실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새 한 마리가 울었다.
은명이 입을 열었다.
"……교관님은 어느 쪽이에요?"
운소하가 잠시 침묵했다.
창밖의 석양을 보며, 말을 골랐다.
오래된 교관의 습관이었다.
학생 앞에서 감정이 아닌 판단을 말하는 것.
"나는—— 교관이야.
너희를 가르치는 사람. 그 이상은 아니야.
세력 갈등에 끼면 학생 보호가 흐려지거든."
한 박자.
"방학 동안 쉬어. 싸우지 말고."
은명과 태산을 번갈아 봤다.
눈에 엄격함과 걱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생각해.
왜 싸우는지. 뭘 지키려는 건지.
답이 나오면—— 2학기에 들려줘."
교관실 문이 닫혔다.
복도.
석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은명과 태산이 나란히 걸었다.
은명의 머릿속에 운소하의 말이 맴돌았다.
함께하면 위험하고.
함께하지 않으면 더 위험해.
태산이 옆에서 목을 돌렸다.
"은명아."
"응."
"교관님 말 어떻게 생각해?"
은명이 잠깐 멈췄다.
"……아직 모르겠어."
태산이 끄덕였다.
"나도."
한 박자.
"근데 하나는 알겠어."
은명이 옆을 봤다.
"혼자보다는 낫다는 거."
은명이 피식 웃었다.
단순하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답이 뭐지.
모르겠다. 아직은.
주머니 안의 태블릿이 진동했다.
역추적 로그 2차 분석 결과——
경유지 중 하나가 국내였다.
방학이 시작되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