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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일러스트

보이지 않는 손

아침. 기숙사. 위노나의 방.

모니터가 세 개 켜져 있었다.

커피잔이 식은 채 책상 구석에 놓여 있었다.

위노나가 침입 경로를 분석하고 있었다.

밤새.

내부 네트워크 침입 흔적.

경유 패턴. 타이밍.

그리고.

위노나의 손이 멈췄다.

화면을 확대했다.

침입 코드의 구조.

이건.

내 방식이야.

패킷 분할 순서가 내가 쓰는 시퀀스와 같았다.

암호화 키 교환 방식도,

세션 유지 패턴도 내가 훈련 중에 쓰는 루틴과 동일했다.

내 해킹 기법과 같은 패턴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위노나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 빛이 눈을 찔렀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누군가 내 해킹 스타일을 연구했다.

그리고 일부러 비슷하게 만들었다.

이걸 보여주면 어떻게 되지?

'위노나의 해킹 스타일과 일치합니다.'

그렇게 읽히겠지.

범인이 자기는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겠지.

위노나가 모니터를 봤다.

커서가 코드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말해도 의심. 안 말해도 의심.

완벽한 덫.

노크 소리.

문이 열렸다.

카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평소의 환한 표정이 아니었다.

눈이 어딘가를 피하고 있었다.

"누나."

위노나가 모니터를 최소화했다.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움직였다.

"뭐예요?"

카이가 머리를 긁었다.

문턱에 기댄 채,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애들이 이상한 소리 해."

한 박자.

"네가 외부에 정보 흘린 거 아니냐고."

위노나가 멈췄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얼어붙었다.

한 박자.

"……아니에요."

카이가 말했다.

"나도 알아.

근데, 말이 돌아다니니까."

카이의 시선이 잠깐 모니터 쪽을 스쳤다.

최소화된 창. 분석 코드.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위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카이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졌다.

위노나가 의자에 다시 앉았다.

모니터를 다시 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명 씨에게 보고해야 하나.

보고하면 자신이 의심받을 수 있다.

보고 안 하면 더 의심받는다.

위노나가 코드를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다.

키보드 소리가 조용한 방에 빠르게 울렸다.

덫이라면, 덫을 만든 사람의 실수를 찾아야 한다.

아무리 완벽한 위장이라도 한 줄은 자기 것이다.

위노나의 눈이 모니터 위를 훑었다.

코드 사이로, 패턴 사이로,

누군가의 진짜 지문을 찾고 있었다.

방과 후. 활빈당 아지트.

분위기가 무거웠다.

평소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져 있었다.

아지트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들리던

카이의 잡담도, 리오의 콧노래도 없었다.

리오가 먼저 말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앉은 채.

"……왜 이렇게 조용해?"

카이가 대답했다.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며.

"……몰라. 분위기가 좀 그래서."

올가가 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는 게 아니었다.

눈꺼풀 아래서 시선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르준이 태블릿을 정리했지만 평소의 집중력이 아니었다.

타이핑이 느렸다.

같은 줄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은명이 아지트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공기를 읽었다.

이게 빅토르가 원하는 모습이다.

소리 없이 갈라지는 것.

태산이 뒤에서 들어왔다.

분위기를 봤다. 3초.

"야."

태산의 목소리. 큼직했다.

침묵을 깨는 데는 큰 소리가 제일이라는 듯이.

"다들 왜 그래? 소문 때문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리오가 시선을 돌렸고, 카이가 입술을 다물었다.

태산이 말했다.

"그딴 거 신경 쓰지 마."

한 박자.

태산이 아지트 한가운데 섰다.

주먹을 허리에 올렸다.

아까까지의 무거운 공기를 무시하듯.

"우리가 뭘 했는데.

익명으로 글 쓴 놈이 문제지."

올가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뜨고 태산을 봤다.

리오가 태산을 봤다.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은명이 말했다.

"태산아. 소문이 문제가 아니야."

태산이 돌아봤다.

"뭔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 안에

균열을 만들고 있어."

태산의 표정이 변했다.

장난기가 사라졌다.

눈이 좁아지고 턱이 약간 당겨졌다.

"……누가?"

"아직 몰라."

은명이 태블릿을 들었다.

"하지만 패턴이 있어. 이건 우연이 아니야."

바로 그때, 카이의 태블릿에서 알림이 울렸다.

카이가 화면을 봤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또 올라왔어. 익명 게시판."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활빈당 내부 분열 시작?

핵심 멤버 간 불화설의 근거.'

아지트가 다시 조용해졌다.

글의 제목이 공기를 눌렀다.

아르준의 타이핑이 완전히 멈췄다.

올가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

은명이 화면을 봤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한 수순이라는 듯이.

태산이 은명을 봤다.

한 박자.

"그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단단했다.

"너가 그렇다면 믿을게."

한 박자.

"은명이가 '아직 모른다'고 하면

진짜 모르는 거니까.

찾아낼 때까지 기다릴게."

은명이 태산을 봤다.

이 녀석 하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태산이 씩 웃었다.

터진 입술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랭킹전의 흔적.

"고맙긴. 됐고,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리오가 웃었다.

"야, 갑자기?"

카이가 배를 잡았다.

"나도 배고파!"

분위기가 조금. 아주 조금 풀렸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숨 쉴 틈이 생긴 것만으로도 달랐다.

심야. 기숙사. 은명의 방.

태블릿의 푸른 빛.

은명이 혼자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교정의 가로등 빛이 가늘게 새어 들었다.

항목 1. 익명 게시판 글의 타이밍.

랭킹전 직후.

우리가 가장 주목받는 시점이다.

관심이 최대일 때 불씨를 던져야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르니까.

은명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를 넘겼다.

항목 2. 올가 소문의 확산 경로.

교내 전체에 동시다발적이었다.

자연 확산이 아닌 인위적 배포.

복수의 계정에서 같은 시간대에 올라간 흔적이 있었다.

은명이 손가락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3초. 다시 떴다.

항목 3. 내부 네트워크 침입 패턴.

위노나의 해킹 스타일 위장.

패킷 시퀀스까지 일치시켰지만,

세 겹째 래핑 구간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위노나가 찾아낸 '한 줄'이 그것이다.

은명이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세 항목을 연결하는 선을 그었다.

타이밍이 너무 정확하다.

셋을 연결하면 패턴이 보인다.

1단계, 정보 교란.

익명 게시판으로 신뢰를 흔든다.

2단계, 과거 노출.

올가의 과거를 소문으로 퍼뜨려 감정적 균열을 만든다.

3단계, 내부자 의심 유도.

위노나의 해킹 스타일을 위장해 '내부의 적'을 가리킨다.

3단계 구조. 이건 아마추어가 아니다.

은명이 산토스의 말을 떠올렸다.

'빅토르는 직접 싸우지 않아.'

이 수법을 쓸 수 있는 사람.

학교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해킹할 사람을 부릴 수 있고,

이런 심리전에 익숙한 사람.

더구나 산토스 선배의 자유파에게

똑같은 패턴을 써서 성공한 전례가 있는 사람.

빅토르 드라쿨레스쿠.

아직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 그림에 맞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명이 태블릿에 적었다.

'빅토르 드라쿨레스쿠. 가설.

근거: 접근권(3학년 학생회 핵심), 과거 전례(자유파 공작), 행동 타이밍 일치.'

밑줄.

태블릿을 덮었다.

빅토르가 배후라면 증거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증거를 잡으려면

그가 더 많은 수를 두게 놔둬야 한다.

그 사이에 활빈당은 더 갈라질 것이다.

이기려면, 동료가 더 다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은명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럴 때, 태산이라면 뭐라고 할까.

아마 이렇겠지.

'됐고, 가자.'

은명이 태블릿을 다시 열었다.

새 파일을 만들었다.

'역추적 계획서. 미끼 데이터 구성안.'

타이핑이 시작됐다.

빠르게. 정확하게.

밤이 깊어가는 방 안에서

태블릿의 푸른 빛만이 은명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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